새끼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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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그런데 팽가에는 선물을 왜 하시려고요?”
송 시대에는 다른 집에 방문한다고 선물을 하는 문화는 없기에, 뭘 좋아하냐고 물었던 내 질문에 고기라는 대답을 하고 되물어오는 영영이.
영영이에게 내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물었다.
“영영아, 독왕께서 네가 나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 어찌 반응하시겠느냐?”
“음···.”
내 질문에 여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한 얼굴로 놀랬다가, 곧이어 바로 생각에 빠진 영영이.
영영이는 영영이답지 않게 뭔가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 배시시 웃으며 아주 다소곳한 표정으로 두 손까지 공손히 모으고는, 고개까지 숙인 채 요조숙녀처럼 나를 향해 대답했다.
“소녀, 노공만 믿사옵니다.”
저것이 아마도 영영이 생각의 종착점인 모양이었다.
녀석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 자기가 뭘 하지 않으려고 하니, 어쩜 더 다행이랄까?
그리고 아마도 정답에 가까울지도?
“그, 그래, 나만 믿거라.”
“예, 노공.”
“아무튼 네 그럴 줄 알고. 선물을 하려는 것이니라.”
“네, 그래서 선물을···. 아니, 그럴 줄 알았다는 건 무슨 의미인데요?”
‘녀석아 이제 인정해! 곧 네 그 단순함의 근원이 되는 피를 물려준 곳으로 갈 것인데, 인제 와서 부정하면 무엇 하느냐!’
속으로만 외치며 영영이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계획을 설명했다.
“원래 완고한 분에게 무엇인가 허락받으려면, 주변 분들에게 먼저 허락받아 모두가 한 사람을 압박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니라. 주변에 모든 사람이 다들 허락하는데 자기 혼자 허락하지 않으면 옹졸한 사람이 되고 마니까 말이야.”
“어? 그러면?”
“그래, 네 외가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기회를 봐 운을 띄워두면, 나중에 독왕께서 반대하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분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니라.”
내 대답에 한껏 기쁜 표정이 된 영영이.
“그런 깊은 생각이었다니···. 감사해요. 가가.”
먹다 만 만두를 손에 들고 입까지 멍하게 벌리고 나를 바라보는 영영이.
나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젠 아주 정신이 나가버릴 것같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런 나란 놈의 치명적인 매력이란. 이것이 송 시대 뇌섹남?’
내 매력에 나조차 취할 것 같을 때, 정신을 차린 영영이가 품에서 몇 가지 금붙이를 꺼내 조심스레 내밀며 말했다.
“가가, 이것도 선물 사는 데 사용하세요.”
부잣집 애들은 금붙이나 보석을 들고 다닌다더니.
옷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반지며 은으로 만든 빗 그리고 몇 가지 비녀 같은 것이 영영이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데릴사위인 내 처지를 생각해서 보태려는 모양.
아내도 품에서 몇가지 물건을 꺼내 나를 향해 내밀었다.
“노공, 여기 제 것도. 영영이 언니를 위한 것이면,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둘의 예쁜 행동에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그리고 나의 사랑스럽다는 눈빛에 얽히는 우리의 눈동자.
‘이럴 때는 오른손으로 사정없이 식탁의 음식을 쓸어내리고···. 그냥 식탁 위에서···.’
둘의 눈빛에 참지 못하고 잠시 화경과 독공의 고수를 동시에 제압하는 상상을 했지만, 사리만 늘어날 것 같기에 망상에서 빠져나와 둘을 손을 바라보았다.
고작 선물 사면서 저런 것을 받을 수 있나.
영영이와 아내가 내민 고운 그 두 손을 양손으로 고이 접어주고, 각자의 앞으로 밀며 말했다.
“네 외가에 할 선물은 내가 마련할 수 있으니 걱정 말거라.”
“부인도 걱정하지 마시오. 내 그 정도는 나 혼자 할 수 있소이다.”
“그, 그래도요···.”
“괜찮으니 넣어두거라. 부인도 어서 괜찮소이다.”
둘은 한참을 권하다 마지 못한 듯 대답했다.
“네, 가가.”
“알겠어요. 노공.”
그리고는 왠지 볼을 붉힌 영영이와 아내가 자기가 꺼냈던 것을 주섬주섬 품 안에 집어넣었다.
모처럼 훈훈하고 좋은 분위기.
영영이를 향해서 한 번 웃고, 아내를 향해서도 미소를 지어준 후, 잠시 멈췄던 식사나 마저 할까 싶어 만두를 향해 손을 뻗는데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노공, 그런데 그런 좋은 계책은 어디서 배우신 거죠? 저도 제갈가에서 병법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법 같은 것은 배웠지만, 정말 신묘한 계책인데. 궁금합니다.”
어디서 그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나 궁금한 모양.
그러나 대답할 수는 없었다.
“하, 하하. 그, 뭐 그냥 떠올랐소이다.”
“역시 노공은 대단하십니다.”
아내의 존경심 가득한 눈빛.
그 눈빛에 가슴속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전생에 미연시 게임을 하다가 배운 거라고는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
마음속으로 미연시 절대 법칙을 떠올렸다.
‘히로인 공략은 원래 주변 인물부터야.’
그리고 조용히 만두를 찢어 입으로 가져갔다.
***
“언니, 같이 가요!”
저만치 앞에 가는 영영이를 아내인 제갈청이 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니!”
아내가 앞서가는 영영이를 뒤에서 열심히 부르고 있지만, 그러나 영영이는 못 들었다는 듯, 보폭을 짧게 하고 발걸음만 부지런히 옮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늉을 했다.
가까워지게 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더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조절.
어서 빨리 좀 더 열심히 달려와 나를 위로해 달라는 그런 제스처였다.
‘그 녀석 참.’
영영이가 저리 토라진 이유는 우리가 정주에 도착해 정주 서쪽에 있다는 팽가를 찾기 전 시장에서 구입한 선물 때문이었다.
팽가에 전달할 선물을 보고 서운해서 저러는 것.
분명 팽가의 어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이라고 하니, 남편될 사람에게 용돈까지 챙겨주려고 하며 기대했는데, 내가 고른 선물을 보고는 실망한 것이 분명했다.
‘뭐, 그럴 수 있지.’
토라진 영영이를 달래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버터를 듬뿍 바른 목소리로 불렀다.
“영영?”
-움찔
내 부름에 움찔하며 멈춰서는 영영이.
그러나 멈춘 것도 잠깐.
영영이는 다시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고, 나는 피식 웃으며 영영이의 뒤통수를 향해 혼잣말하듯 이야기했다.
“이, 선물을 하면 팽가의 가주께서 무척이나 기뻐하며, 우리를 도와주실 것 같은데···. 우리 영영이는 왜 저리 토라졌을꼬.”
그러자 마지 문워크 하듯이 경공으로 가까워지는 영영이.
어느새 가까워진 영영이가 토라진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어떻게 저런 것으로 외구(外舅 외삼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죠! 저건···. 휴···”
영영이가 내가 고른 선물을 바라보더니, 말하다 말고 한숨을 쉬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내 계획대로라면 저것만 한 선물이 없을 터.
영영이를 향해 나를 믿으라고 이야기했다.
“영영아, 내가 널 서운하게 한 적 있더냐? 날 믿거라. 나에게 다 맡긴다고 해놓고 왜 그러는 것이더냐.”
내 물음에 잠시 당황한 영영이가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손바닥을 짝하고 내리치며 대답했다.
약간 ‘그래! 말 잘했어.’ 이런 느낌으로.
“그래요! 생각해보니까 서운한 것투성이에요. 제 마음도 눈치 못 채고, 마음을 졸이게 하고. 나는 아파서 죽을뻔도 하고. 청이가 나서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저는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게 분명해요. 나는 목숨을 걸고 마교의 장로에게서 가가를 구했는데!”
‘쓰바···. 알고 보니 서운한 것투성이였나? 아픈 것도 나 때문이었다고?’
항상 나는 영영이나 아내에게 백 점짜리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
말을 잘못 꺼낸 듯했으니, 어서 수습해야 했다.
울음과 서운함 같은 마이너스 감정은 쉽게 전염되니, 아내까지 서운함을 토로하면 감당 불가였기 때문이었던 것.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여, 영영아 이번에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 테니, 믿어보거라! 다른 건 몰라도 요리로 내가 실망하게 한 적은 없지 않으냐?”
“그리고! 생각해보니······ 네? 요리?”
허리춤에 손까지 올리고 따지려던 영영이는 내 요리라는 말에 그제야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요리로 실망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다른 말은 못 하겠지?’
역시 자기가 생각해봐도 요리에 실망한 적은 없는지, 영영이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저걸로 요리를 한다고요?”
“그럼 내가 저런 걸, 뭐 하러 샀겠느냐. 다 요리하려고 샀지. 저걸 그대로 팽가에 선물하는 거로 생각했더냐?”
“아니, 뭐···.”
내 손가락질에 아내와 영영이가 내 한쪽 손에 잡힌 새끼줄에 묶여 덕구가 몰고 오고 있는 선물들을 바라봤고.
한 녀석이 길을 벗어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덕구과 짖자 선물들이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월!”
“뀌이익! 뀌익! 뀌이이익!”
***
토라진 영영이가 간신히 평소의 영영이로 되돌아오고, 팽가로 향하며 그녀가 알고 있는 팽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팽가는 대대로 북경 그러니까, 지금의 하북 지방 연주(燕州)에 뿌리를 내린 가문.
그러니 팽가를 부를 때 하북팽가(河北彭家)라 부르는데, 이걸 우리말로 바꾸면 강북 팽가.
황하강 북쪽을 가리키는 것.
다만 백여 년 전쯤에 연주를 포함한 북경 근처의 연운 16주를 후진의 석경당이 요나라에 바쳤고, 후로는 수복되지 않아 그곳에 남아있었다가 요나라의 횡포에 참지 못하고 온 가문이 송으로 내려와 하남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
내려온 것은 채 30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허허, 강북 팽가였다가 그러면 지금은 강남 팽가가 되었다는 말이군?’
생각해보니 팽가는 요나라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강남이라면 전생이나 현생이나 교육의 중심이 아니겠나?
전생에 강남에 8학군이 유명했던 것처럼, 하남인 강남의 개봉은 학문의 중심지.
이제 여기서 자리 잡고 오래 살다 보면 후손들은 교육으로 아무래도 그들의 특성이 좀 개선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그래서. 요나라를 무척이나 싫어하세요. 요나라 이야기 나오면 무척 예민하니까 조심해야 해요. 알겠죠. 가가?”
“그래, 잘됐구나.”
“예? 잘됐다고요?”
“그래, 요를 싫어한다니 내가 가져가는 선물이 더욱 잘 먹히겠구나.”
요를 싫어한다니 더욱 내가 가져가는 선물이 빛을 발할 것 같은 상황.
끌려오는 세 마리 새끼 돼지의 목줄을 잡아끌었다.
-촤악
“뀌익! 뀌이이익!”
그렇게 돼지들을 끌고 걷길 한참.
정주 서쪽 나타난 비교적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 건물들로 가득한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남자나 여자 모두 숯검댕이 같은 검은 눈썹과 허리에 박도를 차고 다니는 특이한 모습.
얼굴에 ‘나 팽가요.’라고 쓰여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들.
남녀 모두 풍채가 좋아 헬스촌이 아닐까 의심되는 그런 마을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팽가의 인원들이 모두 남하했다더니, 여기다 팽가 집성촌을 차린 듯한 모습.
“여기가 팽가촌에요. 가가.”
“그, 그래. 특이하구나.”
영영이의 말에 마을 입구를 살피며 그쪽으로 다가가자 마을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로 보이는 자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팽가촌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으면서도 인상을 쓰고 뭔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짓는 무사들.
남자가 여자 둘 데리고 오는 건 이해하겠는데, 새끼돼지 세 마리와 개를 끌고 오니 뭔가 이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브레멘 음악대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 모습이 수상쩍게 보일 것으로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웃을 때, 영영이가 앞으로 나서 무사들을 향해 대답했다.
“아, 팽가의 가주님을 만나러 왔어요. 당가에서 왔습니다.”
“당가에서 말입니까?”
그리고 영영이가 당가의 패를 내밀자 무사 중 하나가 재빨리 뛰어 마을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나 싶더니, 소도둑놈처럼 생긴 팽가의 가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쪽으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영영아!”
“외구(外舅 외삼촌)!”
“영영아 이 추운 겨울에 이 북쪽에는 무엇 하러 온 것이냐?”
“외구가 보고 싶어 왔지요!”
“이 녀석! 이제 시집갈 나이가 다 되어 예뻐졌구나!”
‘아니, 저 사람은?’
한번 본 적 있는 익숙한 얼굴.
생각해보니 당가에서 복어로 요리를 만들고 서시의 젖인 복어의 정소를 내놨을 때.
가장 목소리가 커서 제일 먼저 복어를 맛보고 되지도 않는 머리를 굴려 한 점 더 먹으려 했다가 망신당했던 인물.
팽가의 가주 팽무환이 영영이의 외삼촌인 모양이었다.
‘역시 팽가 수준의 잔머리였어.’
그때를 회상하며 영영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팽무환을 향해 포권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팽무환 어르신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아니!? 자네는!?”
나를 알아차리고 놀란 팽무환.
“그런데 누군가?”
‘아, 역시 팽인가?’
“어르신 접니다. 식. 룡. 류. 청. 운.”
한자, 한자 또박또박 알려주자 그제야 그가 눈을 크게 뜨며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오! 식룡! 그래 당가에서 봤었지. 우리! 아니, 그런데 팽가에는 어쩐 일인가? 영영이랑 같이 왔는가?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추운데 들어가세. 영영아 들어가자 춥구나. 아, 이쪽은 자네 부인이겠지? 반갑소이다. 자자 들어갑시다.”
그렇게 그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들려오는 소리.
“뀌이익! 뀌익!”
그 소리에 팽무환이 뒤를 돌아보고 물었다.
“아니, 저것들은 뭔가?”
“그냥 오기 뭐해서 선물을 좀 가져왔습니다. 어르신.”
“선물을? 저걸?”
“예, 어르신.”
내 대답에 팽무환이 입술을 핥으며 외쳤다.
“으하하하, 아니, 뭐 저런 걸 가져오나. 아무튼 고맙네. 개가 매우 살이 통통 하구만, 맛있겠어.”
‘아니, 그쪽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