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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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뀌이익
팽가 가주의 말에 고개를 돌려 먼저 덕구를 확인했다.
자기를 고기 취급한 가주의 말에 덕구가 화를 내며 덤벼들지도 몰랐기 때문.
하지만 팽가의 가주가 개가 매우 살이 통통하다고 말한 부분에서 돼지가 울부짖는 통에, 그의 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는지, 덕구는 돼지를 위협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이구만.’
일단 사고가 터지기 전에 오해를 풀기 위해 가주를 향해 설명했다.
“팽 가주님, 개는 제가 키우는 녀석이고, 선물을 새끼 돼지 세 마리입니다.”
“아, 그런가? 하하. 내 오해를 했구만, 돼지 세 마리가 선물이었다니···. 아하하!”
내 설명에 너털웃음을 터트린 팽가의 가주.
그러나 그는 그렇게 호쾌하게 웃다 말고 갑자기 한마디를 내뱉었다.
“잠깐? 돼지 세 마리?”
그리고 팽가 가주의 의문 섞인 물음과 함께 그의 오른 눈썹이 한번 꿈틀하며 움직이더니, 그가 씩 하고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일어난 일은 그가 미소 띤 얼굴로 아무런 말 없이 바로 내 멱살을 잡아채, 나를 공중으로 뻔쩍하고 들어 올린 것.
가주가 내 멱살을 잡아채는 통에 손에 잡혀있던 새끼줄을 놓쳐버렸고, 돼지들이 사방으로 달아나며 울부짖었다.
-뀌익 뀌이이익!
그렇게 내 발끝이 땅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그제야 가주의 물음이 들려왔다.
“식룡, 선물은 고맙네만, 어찌 천한 돼지를 선물로 가져왔는가? 설마 우리 팽가를 천하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가끔 무림 놈 중에 그런 놈들이 있단 말이야? 특히 머리 쓰는 놈들이! 크흠!”
‘역시 팽가인가?’
팽 가주의 다짜고짜 진행된 행동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다른 가문이라면 조카를 따라온 손님이고, 제갈가의 사위가 특이한 선물을 가져온 것을 이상하게 여겨 연유부터 물을 테지만, 여긴 팽가니까 말이다.
나름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랄까?
게임으로 치자면 우리 제갈가가 신체적 능력은 일반인 정도에 맞추고, 남는 포인트를 지능에 몰빵 한 일종의 지능캐이자 마법사인 지능 특화 캐릭터라면, 당가는 독이라는 특수 공격을 사용하는 특수 캐릭터.
그리고 팽가는 다른 모든 능력치를 깎아 힘에 몰빵 한 힘캐.
심지어 보통은 밸런스를 위해 다른 능력치를 깎아 스텟을 올릴 때, 일반인 정도의 능력치를 남기는 것을 한계로 두지만.
팽가는 힘의 극대화를 위해 지능을 사정없이 평균 이하로 깎아버린 그런 느낌의 가문.
판타지로 치면 야만족 바바리안 전사들인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제갈가가 행동하기 전에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움직이는 것이 가문 특성이라면, 팽가는 일단 생각할 시간에 먼저 행동하는 것이 팽가의 가문 특성.
그러니 일단 내 멱살을 움켜쥐고 질문을 해 온 것이 분명했다.
그의 행동에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
생각해보니 당가에서 자기한테 귓말 좀 날렸다고 뒷골목으로 끌고 가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던 영영이 행동이 어디에서 근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영이 생각보다 팽가의 피가 진했구나···.’
전생에서 막장 드라마를 보다 보면, 부부가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 나쁜 것은 상대방 닮은 것이라고 극딜을 해대는데, 영영이는 장모님 닮은 것으로···.
아무튼 그렇게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팽가 가주의 솥뚜껑만 한 손에 붙들려 흔들리고 있을 때.
아내와 영영이는 팽 가주의 행동에 놀라, 영영이는 자기 외삼촌의 팔에 매미처럼 매달리고, 아내는 내 몸을 받치며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외삼촌! 마 말로 하세요!”
“어르신 진정하시고.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의 행동을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지만, 둘은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표정과 목소리.
“케흑!”
아내가 몸을 받쳐주어 기침과 함께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져 그쪽을 바라보니, 팽 가주의 솥뚜껑만 한 주먹이 내 머리통을 후릴 것같은 위치에 올라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이어서 영영이의 놀란 외침과 함께 팽가 가주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외삼촌! 소, 손 내려요! 말로, 말로!”
“영영아, 지금 말로하고 있지 않으냐?”
“아니 멱살을 잡아채고, 주먹으로 때릴 것처럼 하면서, 무슨 말을 한다고 하세요! 화내지 말고 진정하시고.”
그러나 명백히 말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라고 우기는 팽가의 가주.
“영영이 네가 여자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남자들끼리는 원래 다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란다. 더군다나 진심을 이야기하려면, 주먹 한두 대는 들어가야 마음속의 진심이 술술 나오는 법이란다. 그리고 나 화 안 났으니 걱정 말거라.”
‘아, 이것이 팽가식 대화인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것은, 진심이 아닐 것 같은데···.’
자기 입으로는 자기가 화가 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팽가 가주의 관자놀이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 지렁이들.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 들려오는 한 여자의 외침.
“이게 또 무슨 일이죠!? 가주!”
그 여자의 외침이 들려오자 팽가의 가주가 범 만난 소도둑처럼 화들짝 놀래더니, 나를 아주 조심스레 땅에 내려두고 구겨진 옷까지 살펴주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소리쳤다.
“아, 아무 일 없소이다. 부인. 귀, 귀한 손님이 와서 잠시 대화를. 안 그런가?”
그의 행동과 물음에 딱 느낌이 왔고, 나는 일부러 기침을 크게 하며 대답했다.
“켈륵! 켈륵! 아이고, 죽겠네! 물론 아무 일 없었습니다. 어르신. 지금까지는 말이죠.”
“아니,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부인이 오해하겠네!”
‘이 집 이거 실권자는 안방마님이셨구만.’
내 대답에 팽가의 가주가 기겁하고, 목소리의 주인이 가까워져 오자 영영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외숙모님!”
“아니, 영영이? 영영아, 이 겨울에 춥게 어찌 이 북쪽까지 온 것이야?”
팽가 가주의 덩치에 가려져 있던 영영이가 나타나자 반가운 목소리로 달려온 부인.
멀리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그녀가 다가오자 그녀의 모습을 똑바로 확인할 수 있었고.
영영이를 끌어안은 중년의 부인은 소도둑 같은 팽가의 가주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아주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여인이었다.
키가 150쯤 될까? 팽가의 가주가 190에 가까워 보이니 정말 아담하게 보일 지경.
“동경에 왔다가 그냥 갈 수 없어서 들렀어요.”
“동경에? 그러면 미리 연락을 했어야지! 그냥 갔으면, 이 외숙모는 서운할 뻔했구나. 아무튼 잘 왔구나! 잘 왔어!”
그리고 그 뒤로는 건장한 남녀 둘이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여자는 인상이 뚜렷한 미인이고, 남자는 팽가의 가주와 판박이인 모습.
숯검댕이 눈썹과 둘의 얼굴이 가주의 직계임을 유전자로 증명하고 있었다.
특히나 젊은 남자는 초겨울인데도 털 달린 조끼 하나만 입고 있는 모습.
그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중원 바바리안!’
그리고 그런 나의 감상 속에 좀전의 삭막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화기애애한 인사가 이어졌다.
“영영아, 오랜만이구나?”
“유성, 오라버니!”
“오랜만은요. 할아버지의 산수(傘壽) 잔치에서도 뵈었잖아요.”
“그 정도면 오래된 것이지.”
“영영아, 나와는 정말 오랜만이지?”
“유화, 언니!”
확 바뀐 분위기.
이제 뭔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 기분.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이어지던 인사가 끝날 때쯤, 영영이의 외숙모님의 물음에 잠시 뒤로 밀려있었던 우리에게 셋의 시선이 쏟아졌다.
“영영아, 그런데 저쪽은?”
“아! 저분들은.”
외숙모님의 물음에 영영이가 우리를 소개하려고 할 때, 팽가 답지 않게 남자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 이게 누구십니까? 독왕 어르신의 생일잔치를 재미있게 만들어 주신 식룡 류청운님 아니십니까?”
키 작은 외숙모님의 영향인지 정상 범주는 되어 보이는 남자의 지능.
팽가의 지능은 모계 유전 영향이 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놀란 외침.
“어!? 그러고 보니? 벽안? 설마 청이?”
“언니,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유성 오라버니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내와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하긴 아내와 영영이가 친자매 같은 사이라서 자주 왕래하고, 중원은 한번 가면 몇 달씩 묵는 건 기본이니, 어릴 때 자주 봤던 모양.
팽가의 가주도 그제야 아내의 이름을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아니, 모르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인사.
팽유성이라는 남자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얘가 청이라고? 아니, 청이는 좀 더 이렇게 뭐랄까? 만두···. 크훅!.”
그의 말에 유화라고 부르던 여자가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오라버닛! 청아 몰라보게 예뻐졌구나. 병은 다 나은 것이더냐?”
외숙모님의 유전자로 남자가 팽가의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줄 알았지만, 그것은 아닌지 뇌에서 할 말을 한번 걸러 주는 필터링은 조금 부족해 보였다.
“예, 다 나았습니다. 언니.”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그런데 옆에는?”
“아, 제 노공이십니다.”
아내가 나은 것을 기뻐하며 화기애애하게 인사가 이어졌다.
나도 아내의 남편이자 데릴사위로 소개되었고.
그리고 그렇게 화기애애한 인사가 끝나고, 좀 전의 일은 그대로 묻히나 싶었지만, 팽가의 가주의 바람과는 다르게 추궁이 이어졌다.
“그런데, 가주. 청이의 남편이자 손님인 청운 공자의 멱살을 왜 잡아채고 계셨던 거죠?!”
“아, 아니 그게 말이지···.”
“똑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무슨 일이든 가주는 행동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찌 또 손을 먼저 쓰신 겁니까?”
“아니, 그게 돼지가···”
“똑바로 말씀해주세요!”
-뀌익! 뀌익!
그때 들려온 돼지들의 꿀꿀거리는 소리.
다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덕구가 돼지 세 마리가 묶인 새끼를 물고 이쪽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아마 아까 내가 놓친 놈들을 다 붙잡아서 데리고 오는 모양.
“돼지?”
“돼지네요?”
“웬 개가 돼지를?”
개가 돼지 세 마리를 끌고 오는 희한한 광경에 다들 놀랄 때.
팽가의 가주가 억울하다는 듯 돼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아니, 식룡이 선물로 돼지 세 마리를 가지고 와서. 내가 왜 하필, 돼지 세 마리를 사 왔느냐 묻던 중이었소!”
“저것을요? 선물로?”
그의 말에 다들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대표로 영영이의 외숙모님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청운 공자, 저 말이 맞습니까?”
“예, 물론 제가 선물로 사 온 것이 맞습니다.”
“맞단 말입니까?”
내 대답에 잠시 머뭇거리던 영영이의 외숙모님이 나를 향해 다시금 물어오셨다.
“중원에 예법이 있고, 돼지고기는 천하기에 손님을 대접하거나 선물로 어울리지 않다는 것은 공자도 당연히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돼지고기를 사 온 이유가 있나요?”
역시 팽가의 유일한 브레인답게 조곤조곤 물어오시는 외숙모님.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다만?”
“팽가에 처음 방문하는지라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예, 그런데?”
“영영이가 팽가의 분들은 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큭···. 그, 그렇군요. 들으셨군요. 그런데 어째서 돼지를?”
“양을 사오고 싶었으나, 팽가는 양을 먹지 않을 것 같기에, 부득이하게 돼지를 사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는 겨울이 오면서 도축이 금지되었다고 하더군요.”
내 말에 주변이 싸늘한 분위기로 변하고, 주변에 구경하던 팽가의 사람들과 팽가의 자제들이 나를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팽가의 가주가 화 안 났다더니 불호령을 토해냈다.
“식룡! 지금 우리 가문을 모욕하는 것인가! 우리가 양고기도 먹지 못하고 천한 돼지나 먹는 천한 가문이라는 뜻인가! 내 당장···.”
그러나 그의 외침은 곧바로 외숙모님에게 제압되었다.
“가주! 조용히 좀 해보세요!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나지 않았습니까!?”
“아, 아니. 부인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찌···.”
“자꾸 제가 말씀드렸던 것을 잊고, 이리 행동하시니. 오늘 밤에 저와 좀 ‘깊은’ 이야기를 나누셔야 할 것 같군요!”
밤에 나누는 깊은 이야기라는 말에 사색이 되어버린 팽가의 가주.
그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모습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깊은 이야기라니. 설마? 그것인가?’
저 나이에 아내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측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외숙모님의 질문이 다시금 들려왔다.
“그래, 어째서 팽가가 양을 먹지 못하는 가문일 것으로 생각했는지, 그 연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충분히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그럼 슬슬 처외가에다 생존 혀 근육 좀 풀어볼까?’
예상치 못한 브레인이 한 명 있긴 했지만, 결국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갔고 이제 이야기와 함께 돼지를 요리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