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림사(少林寺) (159/344)

소림사(少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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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수(擒拿手). 

금(擒) 사로잡을 금. 

나(拿) 붙잡을 나. 

수(手) 손 수. 

손으로 하는 무림 잡기 기술의 총칭. 

단순한 관절기뿐만 아니라 혈도를 짚는 베이스 기술이기도 해서 여러 문파에서 각자의 독문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팽가는 때리고 부수고 터트리고 자르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패도적인 무공을 익히고 있기에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사람은 누구나 초인적인 힘을 내는 법. 

팽가의 가주는 내가 탁자 위에 올린 두 개의 목함을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신묘한 금나수의 수법을 펼쳐 순식간에 쓸어 손에 움켜쥐었다. 

아마도 그것을 내 소매 속으로 다시 넣어주려는 느낌. 

-턱 

그러나 그의 계획은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가 움켜쥔 목함을 손아귀에 쓸어 넣고 손을 회수하기 직전. 

그보다 더 신묘하게 뻗어진 누군가의 손이 그의 옷소매를 순식간에 잡아채었기 때문. 

팽 가주에게 끌어안겨져 있을 때 그의 몸을 통해 느껴지는 뭔가 턱하고 걸리는 감각. 

그 감각의 원인을 찾아 둘이 고개를 돌려 팽 가주의 소맷자락을 바라보자,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외숙모님이셨다. 

도박판에서 밑장빼기를 하려다가 들킨 도박꾼처럼 곧 팽 가주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허! 딱 대라! 밑장 빼다가 걸리면 손모가지인 거 알지?’ 

전생 영화에서 한번 들어봤던 대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 상황 속에서 외숙모님이 손을 한번 휘감아 팽 가주의 잡아챈 소매를 단단하게 말아쥐고는 아주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셨다. 

“청이가 북해빙궁의 핏줄이라는 것을 이것을 받고 입을 닫아 달라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실로 민첩한 대응. 

그러나 원래 짐승 같은 본능을 지닌 자들은 죽음 앞에서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는 법. 

본능적 감각으로 위기감을 느꼈는지 팽 가주가 외숙모님을 향해 소리쳤다. 

“어허! 같은 무림인으로 다른 이의 치부를 들추지 않는 법. 이런 것이 어, 없어도 비, 비밀은 당연히 지켜야지 아, 않겠소이까?” 

무림의 정신인 의와 협을 강조하는 팽가의 가주. 

그렇게 입술을 달달 떨어대며 변명하는 팽가의 가주였지만, 애초에 본능적인 감각만으로 엘리트 출신인 외숙모님의 달변(達辯)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니요. 청운 공자의 부탁은 이런 뇌물 아니, 선물을 받고 입을 다물라는 뜻이 아니라. 비밀에 무게를 더하자는 것이죠. 아니, 그렇습니까? 약속의 증표로 삼자는 뜻이니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럴듯한 이유, 그러니까 체면치레할 이유를 만들어 주자는 말. 

솔직히 뜬구름인 의와 협 보다는 이게 좀 더 실용적인 답변이었고, 외숙모님의 말씀에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하자 들려오는 전음. 

[자네! 나와 원한을 맺은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 

원한까지 들먹이며 호소하듯 전음을 날리는 팽가의 가주. 

무슨 뜻인가 싶어 의문 섞인 표정으로 팽 가주를 바라보자, 그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내는 무가에 시집을 간다고 장인이 중원에서 구한 영약을 만두와 물처럼 마시게 했기에, 내공만큼은 장난이 아니란 말일세! 저 약은 한 알만으로 열흘이나 효과가 지속되는데 얼마나 쥐어 짜일···. 아니, 아무튼 나를 죽일 셈인···.] 

그의 전음에 약간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한가지. 

‘나만 아니면 돼~’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한 법. 

들은 척 만척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이려 했는데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아, 안돼!] 

갑자기 전음을 날리다 말고 비명을 지르는 팽 가주. 

그의 비명에 옆을 바라보자 어느새 외숙모님이 식탁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는 팽 가주의 소매를 단단히 말아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팽 가주의 손가락을 하나씩 잡아 펴고 계셨다. 

바르르 떨리며 새끼손가락부터 하나씩 펴지는 팽 가주의 손가락. 

손가락이 하나씩 펴질 때마다 팽 가주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역시 투지 하면 팽가라 그런지 그는 마냥 절망하지만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잠시 고민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죽음 앞에서 살길을 찾는 무생중유(無生中有)의 수법을 펼치기 시작했던 것.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외숙모님의 공격에 대응한 것이었다. 

-팟 

그렇게 뭔가 번쩍하는 느낌이 들더니 외숙모님은 본인의 자리에, 팽 가주는 내 옆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었다. 

뭔가 빠른 공수 교환이 오간 것 같은 느낌. 

바뀐 것이라면 팽가의 가주가 한 손에 움켜쥐었던 목함 두 개를 저마다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칫!” 

외숙모님의 뭔가 아쉽다는 음성과 절망 속에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는 표정의 팽 가주. 

팽 가주가 자기가 들고 있던 목함을 내 소매 속으로 넣어주며 말했다. 

“하, 하나면 충분하네!” 

외숙모님도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이정도에서 만족하려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나로 하기로 하죠. 흠.” 

자기들끼리 협의가 끝난 것 같은 상태. 

대충 계산이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물건을 값을 받을 때, 팽 가주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고. 팽 가주님, 북해빙궁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 북해빙궁의 위치를 들으셨으면, 그것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아, 그렇지. 그걸 알려줘야지. 그게 그러니까 말이네, 우리가 요나라의 행패에 더 참지 못하고 국경을 넘으려 할 때였어······.” 

그냥 위치만 말하면 되는데 갑자기 풀스토리를 뽑아내는 팽 가주.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밤에 국경을 넘으려다가 걸려 추격대가 따라붙고 말았는데, 엄청난 고수가 나타나 추격대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 

은인은 중원인은 별로 도와주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도와준 거라고 말하고는 그냥 가려는 것을, 팽 가주가 매달려 무조건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하니, 웃으며 그렇게 은혜를 갚고 싶으면 어딘가로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 

‘오오, 그럼 위치가 대략 나오겠구만.’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은혜 갚고 싶으면 선물 들고 우리 집 찾아오라고 말한 느낌. 

그때는 새외혈사 전이니 위치를 알려준 것이 확실했다. 

기대하는 목소리로 팽 가주에게 물었다. 

“그래, 그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그것이···” 

“?” 

갑자기 난처한 표정으로 변하는 팽가의 가주. 

그의 얼굴이 조금 난처한 표정이 되더니 그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잊었네···.” 

“예!?” 

“까, 까먹었다는 말일세!” 

까먹었다는 말. 

그래, 그럴 수 있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잊을 수도 있지···.’ 

다만 기억이 안 난다면 기억이 나게 해줄밖에··· 

그리고 기억이 안 날 때 제일 좋은 것은 충격요법. 

-탕! 

그가 내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던 회생환을 다시 탁자 위로 큰 충격음과 함께 내려놓자 그가 비명을 지르듯 대답했다. 

“정말일세!” 

좀 더 강한 충격을 주기 위해서 회생환을 세 알까지 베팅했지만, 정말 까먹었는지 많은 것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충격요법을 주니 팽 가주가 살기 위해 조금은 기억해내기는 했다. 

한 단어. 

“아! 그, 그래! 분명 호수라고 했는데!” 

“호수 말입니까?” 

호수라는 한 단어 말이다. 

‘호수라···’ 

그의 말에 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 팽가의 가주는 잠시 후 외숙모님의 손에 이끌려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처소로 끌려들어 갔다. 

중년 부부는 대화가 많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 

소동이 있고 며칠 후 팽가에서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외숙모님이 나를 향해 미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청운.” 

우리가 내일 떠난다는 말에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신 모양.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본인이 기억을 못 한다는데 믿을 수밖에···. 

어차피 팽가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괜찮았다. 

이럴지도 모른다고 마음 한편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으니까. 

온 김에 영영이 일을 나중에 도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고 말이다. 

“아닙니다. 외숙모님 영영이 일로 나중에 큰 도움을 주실 테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기억을 못 하시는데 어쩔 수 있나요?” 

내 말에 옆에 며칠 만에 핼쑥해진 얼굴로 변한 팽가의 가주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사람과 목내이의 중간쯤 되는 멍한 모습. 

퀭한 눈의 그의 팔에 매달려 외숙모님이 대답하셨다. 

“제가 밤에 몇 번을 물어보아도 그 이상 기억해내지 못했으니 잃은 것이 확실할 겁니다. 그리고 영영이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예, 감사합니다.” 

사람이 저 지경이 되도록 몰아붙였는데, 대답하지 않았다면 모르는 것이 확실한 모양.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 다음은 어디로? 제갈세가 본가로 향하나요?” 

“아닙니다. 소림사로 가보려고요.” 

“소림사로요?” 

“예, 소림사의 현원법사(現原法師)님을 만나 뵈려고요. 북해빙궁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하셔서···.” 

대충 오면서 알아보니 현원법사는 현재 제일 나이를 많이 먹은 노승으로 오늘내일하는 그런 양반. 

현 소림사 주지보다 배분이 높은 그런 고승이라는데, 찾아가 그와 만남을 청해보려는 것. 

내가 우리의 계획을 이야기하자 외숙모님께서 놀란 목소리로 질문하셨다. 

“설마 셋이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외숙모님.” 

“저런, 그건 안될 말이죠.” 

그러자 고개를 저으며 절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외숙모님. 

“예? 어째서?” 

“소림사의 천왕문(天王門) 안쪽은 금녀(禁女)의 구역. 숭산에 올라 둘은 이 추운데 밖에서 기다려야 하고, 소림사 안쪽으로는 청운 공자만 들어가야 할 텐데, 어쩌시려고요.” 

“아!” 

생각해보니 소림사는 금녀의 구역. 

전생 같으면 소림사 주변에 숙소도 많고 일반 참배객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 시대의 소림사는 여자 출입이 불가능한 금녀의 구역. 

결국 이 엄동설한에 아내와 영영이는 노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입 돌아가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럼 소림사에 갔다가 다음 여정은?” 

“일단 개봉으로 돌아가 생각입니다만.” 

일단 개봉에서 장인에게 올 편지를 기다릴 생각이었기에 그대로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외숙모님. 

“그럼 잘되었습니다. 유성이를 데리고 두 분이 다녀오세요. 저희 상단에서 소림에 지속해서 시주하고 있으니 편지도 한 통 써드리겠습니다. 일이 끝나고 되돌아와 여기서 둘을 데리고 다시 동경으로 되돌아가면 되니까요. 소림까지는 제가 마차를 빌려드리겠습니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어차피 동경으로 되돌아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했으니, 아내와 영영이는 좀 더 쉬게 뒤고 내가 팽유성과 둘이 마차를 타고 빠르게 다녀오면 될 일이었으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 

-뿌드득 뿌득. 

눈 밟는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들려오는 팽유성의 목소리. 

“어휴 시원하다. 오랜만에 눈 쌓인 곳을 걸으니, 아주 시원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식룡? 크으! 시원하다.” 

야생짐승도 아닌데 눈을 퍼먹어 갈증을 푼 팽유성. 

털 달린 민소매 차림 팽유성이 신난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눈썹에는 살얼음이 끼고 머리 위에도 눈이 쌓였지만, 야성의 피를 가진 중원 바바리안이라 그런지 이 정도 추위에는 끄떡없다는 그런 표정과 목소리. 

다른때는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팽가의 피가 조금 부러웠다. 

‘중원 지능케의 정점이라는 제갈가의 식구가 되었는데, 근육 뇌 팽가의 피가 부러울 때가 있을 줄이야!’ 

나는 털옷에 털모자에 누가 보면 곰이라고 할만한 모습이었는데, 팽유성은 자기의 도와 내 급까지 매고 날랜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눈 내린 설산을 오르는 이유는 소림사가 숭산의 산자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숙모님이 빌려주신 마차는 산 아래까지밖에 올 수 없었던 것. 

그렇기에 지금 나와 팽유성은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중원 오대 악산 중 하나인 해발 천오백 미터의 숭산(嵩山)! 

대충 설악산 높이 정도 되는 그 산을 말이다. 

사람들은 소림사를 지칭할 때 보통 태산북두(泰山北斗) 소림사(少林寺)라 말하는데. 

태산북두란 소림사를 우러러 칭송하는 말이자 소림사에 따라붙은 수식어. 

태산(泰山)이란 산동성(山東省)의 태안(泰安)에 있는 중원의 오대 악산 중 하나인 동악(東嶽)을 일컫는 말로 고대부터 성산(聖山)으로 추앙받는 산으로 수식어로 쓴다면 산중에 으뜸이라는 말이고. 

북두라는 것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가리키는 말로, 중원에서는 모든 별 중 으뜸을 북두칠성으로 치기에 결국 산 중 산이요 별 중 별이라는 최고 중 최고라는 말. 

모든 무공이 소림에서 나왔음을 인정하고 칭송하는 말이랄까? 

그런데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숭산 자체가 산이 더럽게 높다는 것과 겨울이라 더럽게 춥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필 첫눈까지 내려 허리춤까지 쌓인 상황. 

“헥헥. 얼마나 더 올라야 하오?” 

“아유 이제 초입인데 한나절은 가야지요. 식룡.” 

‘니미···.’ 

팽유성의 말에 욕이 절로 나왔다. 

중들이 백성 구제할 생각은 안 하고 이리 험한 산골에 틀어박혀 자기들 수양만 하니, 세상이 이리 흉흉하고 도탄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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