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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동 (161/344)

달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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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온종일 꼬박 걸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지친 나를 응원하는 팽유성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들려왔다. 

“류형 힘을 내시오. 다 왔소이다.” 

“하아··· 하아···. 그 이야기는 벌써 백번도 더 들은 것 같습니다. 헉헉··· 그리고 낼 힘이 있어야 힘을 내지 않겠소이까?”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털옷 안쪽은 이미 샤워라도 한 듯 흠뻑 젖은 상태. 

이러다 오늘도 어디선가 노숙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엄살은. 자자, 저기 소림사의 산문(山門)이 보입니다. 정말 다 왔습니다.” 

연속된 구라에 나에게 만큼은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팽유성. 

일 다경 쯤 전에 이제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또 다 왔다니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것. 

‘제갈가의 사위가 팽가의 하프 바바리안에게 이렇게 농락당할 줄이야!’ 

마음속으로 절규하며 또 속겠거니 생각하고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진짜로 저 멀리 진짜 소림사의 모습이 모이기 시작했다. 

숭산(嵩山) 소실봉(少室峯)의 중턱에 위치해서 있다 해서 소림사(少林寺). 

그 소림사의 산문 중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드디어!” 

기쁜 목소리로 소리치며 마지막 기운을 짜내 소림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류형 같이 갑시다!” 

“빨리 오시오!” 

“아니, 기운 없다는 사람이···.”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 소림사의 산문 앞에 도착하자, 소림사의 산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는데. 

“끄아아! 드디어!” 

입구에 도착해서 해내고 말았다는 기쁨에 주저앉으며 소리치자, 안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두 명의 스님이 뛰어나와 놀란 얼굴로 나를 향해 합장했다. 

중년의 승려와 젊은 승려 하나. 

“아, 아미타불. 이리 눈이 많이 온 겨울에 숭산을 오르다니···. 대체 어떻게 숭산을 오르셨습니까?” 

웬 미친놈이 한겨울에 숭산을 올랐냐는 그런 물음. 

이분들이 놀라는 이유는 당연했다. 

첫날은 그래도 사람이 지날만한 길이었다면, 이튿날부터 나타난 것은 벼랑에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만한 그런 길. 

눈까지와 미끄럽기까지 했는데, 발을 헛디디면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런 사람 미치게 하는 인디 게임처럼. 

떨어지면 그냥 시작 지점부터 다시 걸어와야 할만한 그런 벼랑길이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혀, 현원법사님을 뵙기 위해 왔습니다!” 

내가 감격한 눈으로 대답하자 두 승려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해했다. 

내 표정과 목소리에 무슨 큰 변고가 있어 소림에 도움이라도 청하러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라도 하는 모양. 

이렇게 한겨울에 눈까지 왔는데,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소림에 찾아와 소림에서 제일 강한 승려를 찾는 것은 보통 그런 클리셰니까 말이다. 

산적이나 뭐 그런 놈들에게 가족을 잃은 남자가 소림에 복수를 부탁하는 것. 

그러다가 복수의 무상함을 깨닫고 소림의 승려가 되는 뭐 그런?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가와 북해빙궁, 제갈가에서 소림을 때려 부수기 위해서 일어날 태지만 말이다. 

사위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면서···. 

그렇게 두 스님이 당황해있는 사이. 

곧이어 나를 따라온 팽유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둘의 의심은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두 분.” 

“아! 팽 시주.” 

이미 안면이 있는지 팽유성은 알아보는 중년의 스님. 

“예, 혜정(惠正) 스님. 팽가의 팽유성 인사드립니다. 그분은 제 일행입니다.” 

“아미타불. 두 분이 같이 오신 모양이군요? 저쪽 시주의 모습에, 무슨 큰일로 찾아오신 것은 아닌가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오는 길에 고생을 좀 해서요.” 

팽유성의 고생을 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스님은 고맙게도 곧바로 우리를 소림사 안으로 안내했다. 

“날도 추우니, 겨울에 어찌 찾아오셨는지는 안에 들어가서 듣도록 하고, 소림사에 오는 길이 녹록지 않았을 테니,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스님들.” 

그렇게 우리는 소림사 내부의 지객당(知客堂)이라는 손님 전용 객실로 안내될 수 있었다. 

*** 

이미 몇 번 와봤다고 소림사의 식당에서 주의할 것을 알려주는 팽유성. 

“류형, 소림사에서는 식사 중에 절대 말을 하면 안 되오.” 

“말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조용히 각자 식사하고. 음식이 더 필요하면, 식탁 끝에 그릇을 내밀고, 음식을 나눠주는 스님에게 조용히 눈을 맞추면 되오. 그리고 받은 음식은 남김없이 먹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자객당에 쉬고 있자 얼마 안 돼 소림의 승려들이 식사하라고 우리를 부르자, 식당으로 이동하며 팽유성이 나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을 든든하게 드십쇼.” 

“예? 아니, 뭐 든든하게 먹긴 할 테지만,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뭐, 내일 되면 알게 되오.” 

묘한 미소를 짓는 팽유성. 

그렇게 그를 따라 식사하기 위해 소림사의 식당을 찾았다.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밀려오는 음식의 냄새. 

자리에 앉자 두 개의 그릇에 담긴 음식이 내 앞에 놓였다. 

말린 채소볶음과 두부구이, 그리고 말린 채소와 버섯을 넣어 끓인 따듯한 갱(羹). 

말린 채소는 뜨거운 물에 한 번 삶아 빠르게 볶아냈는데, 건조채소는 오래 삶으면 식감이 너무 물러지고, 너무 짧게 삶으면 질겨 먹을 수가 없는데, 그런 건조채소의 단점을 파악해 적당히 조리한 그런 요리. 

주식은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만두였는데,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고기 없는 고추잡채에 꽃빵을 먹는 느낌도 들고. 

‘오신채가 빠진 것 빼고, 나쁘지 않구나.’ 

그리고 오신채가 없음에도 전체적인 맛도 괜찮았다. 

송 시대에는 워낙 절이 많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채식을 좋은 것이라 여기는 문화가 있어 채식이 상당히 발달했는데, 이 시대 채식의 특징은 육식 요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 

박으로 오리를 흉내 낸 오리요리를 만든다거나 두부로 고기를 흉내 내는 것이 채식 요리의 특징. 

오리의 껍질까지 짝퉁으로 만드는데, 겉모양이 얼마나 흡사한지 그냥 봐서는 진짜 요리라고 착각할 정도. 

민족성이 짝퉁을 워낙 좋아해서 채소 요리도 그런 쪽으로 테크를 밟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림사의 요리는 그런 것보다는 맛에 중점을 둔 상당히 먹을만한 요리였다. 

[많이 드시오. 류형.] 

자꾸만 많이 먹으라는 팽유성의 전음이 묘하게 귓가를 울렸다. 

*** 

기분 좋게 식사하고 배를 두드리며 나오자, 우리는 소림사의 방장(方丈)에게 안내되었는데, 소림사의 방장이란 소림사의 주방장이 아니라, 소림사의 주지이자 장문인을 뜻하는 말. 

천축국 그러니까 인도의 유마거사라는 사람이, 불법을 닦는 고승들이 사방 한 장 정도 되는 방안에서 도를 수련한다고 해서 붙여진 단어라고. 

“그런 연유로 붙여진 말이지요.” 

“처음 알았습니다. 스님.” 

“저도 그건 처음 듣는군요.” 

‘방구석 절대자. 뭐 그런 느낌인가?’ 

그렇게 방장에 대해 설명하는 소림 승려를 따라 방장실(方丈室) 안으로 들어서자 장인어른 나이쯤 되는 인물이 우리를 맞았다. 

종교인답게 아주 선하게 생기 모습이었는데, 그는 팽유성을 보자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소림사 최대 후원자 중 하나의 아들이 찾으면, 뭐 반가울 수밖에 없긴 할 테지만 말이다. 

후원자란 부모님 다음으로 반가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 

“팽 시주. 오랜만입니다. 그나저나 이 추운 겨울에 어찌 소림을 찾으셨습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 시주도 하셨는데?” 

“방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본가를 찾은 손님이 소림을 찾는다고 하여 모시고 왔습니다.” 

“팽가의 손님이 소림에 말입니까?” 

팽무성의 말에 고개를 돌려 의문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방장. 

그가 합장하며 나에게 먼저 인사했다. 

“아미타불. 빈승 혜성(慧成)이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스님. 제갈세가에서 온 류청운이라 합니다.” 

혜자 배분이라면 현자 배분인 고승 현원법사의 바로 아래라는 말. 

나도 그의 합장에 맞춰 포권 하며 인사하자 그가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오! 누군가 했더니! 제갈세가의 데릴사위이신 식룡 시주가 아니십니까? 이런 반가울 때가! 내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런 산골짜기에까지 내 명성이?’ 

내 명성이 이리 산골짜기 시골에까지 퍼졌다니 왠지 어깨가 으쓱했지만, 겸손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부끄럽습니다. 방장님. 무공을 익히지 못한 한낮 범부인 저를 알고 계신다니.” 

“범부라니요. 요리로 무림 고수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니, 속세를 잊은 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소림에는 어찌? 아! 그것 때문에 찾아오셨군요!” 

“예?” 

자기 혼자 묻고 자기 혼자 대답하는 방장. 

‘법력이 좀 센가?’ 

그는 내가 찾아온 연유를 알고 있다는 듯,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역시, 이리 소림을 찾은 것이라면,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면 다 괜찮아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탁자 위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며, 뜨거운 온기를 나에게 전했듯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뭔가 다 안다는 듯한 그의 눈빛. 

그의 눈빛은 우리는 동류이니 뭔가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그런 영혼의 언어가 담겨있는 기분이었다. 

‘뭐지?’ 

당황해있는데, 이어지는 그의 물음. 

“어찌. 그러면, 백일치성이나 일만 배를 준비할까요?” 

갑자기 백일치성과 일만 배 이야기를 꺼내는 방장. 

그가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아 조심스레 대답했다. 

“방장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찾은 것은 현원법사님께 물음을 구하고자 하는 것인데요.” 

그러자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가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현원법사님께요? 그분이 저희 소림에서 무공과 법력이 높으신 고승이진 하시지만, 이것은 그분도 어찌할 수 없으실 텐데요? 아무래도 이런 것은 본인의 정성을 담은 치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예?” 

갑자기 본인의 치성과 정성 이야기를 꺼내는 방장.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 설명했다. 

“아니, 식룡께서 그···. 그것의 치료를 위해 약왕을 찾으셨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리 소림을 찾으신 걸 보면, 치료에 실패해 부처님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불공을 드려보고자 하심이 아니신지?” 

“풉!” 

그의 물음에 옆에 팽유성을 바라보자 그가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가 눈 속에서 얼어 죽을뻔했을 때, 내가 기능상의 문제가 없다는 것은 그가 직접 확인했었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이 웃긴 모양. 

‘진짜 벗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류형 미안하오. 크크큭.] 

이런 산골짜기까지 나의 명성과 함께 이상한 소문도 같이 전파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잘못 알고 계신 것이라고, 이번에 찾은 것은 현원법사께 물음을 구할 것이 있어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뭔가 큰 건수 하나 잡았는데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방장. 

불공이나 치성을 드리면 절에 시주해야 하니, 무척이나 아쉬운 모양이었다. 

제갈가의 사위라면 시주가 적지는 않을 테니 기대한 모양인데, 그것이 아니라니 당연했다. 

원래 어느 종교단체든 아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야 마음 편히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지만, 저리 방장처럼 사람들의 의식주를 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약간은 세속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나도 빈손으로 온 것은 아니라 가지고 왔던 은자 주머니를 시주하자 그가 반색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현원법사와의 면담도 곧바로 허락되었다. 

“하하, 다행입니다. 병 때문이 아니라니 말입니다. 식룡 시주의 불심이 이리 지극하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현원법사님께는 내일 찾아뵙도록 하시지요.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스님.” 

역시 어딜 가나 헌금이 신앙심을 결정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방장과 이야기를 끝내고 소림의 자객당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동자승을 따라 아침을 먹으려 가려 하자 팽유성이 이번에는 아침을 조금만 먹을 것을 권했다. 

“류형 아침은 조금만 드십시오. 알겠습니까?” 

“예?” 

어제는 든든히 먹으라고 했다가 오늘은 도리어 조금만 먹으라는 팽유성. 

‘뭐가 자꾸 이랬다저랬다야!’ 

하프 바바리안에게 다시금 농락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식사를 끝내고, 현원법사가 기거하고 있다는 곳으로 가는 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그제야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동자승이 소림사 승려들의 사리가 들어있다는 탑이 많이 세워져 있다는 탑림(塔林)을 지나 우리를 끌고 도착한 길 앞에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현원법사님께서는 이 길의 끝에 있는 소림의 달마동에 기거하고 계십니다.” 

탑림을 지나 소림사 뒤쪽. 

기어서 올라가야 할 것같은 가파른 계단이 정상 쪽을 향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놈의 중들은 정말 민생을 살피는 데 관심이 없구나!’ 

객잔으로 돌아가면 기둥에 붙여준 만(卍)자는 이제 이별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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