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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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佛) 부처.
도(跳) 뛸.
장(牆) 담.
너무 맛있어 부처가 맛을 보고 싶어 절의 담을 넘는 요리라 해서 불도장(佛跳牆)!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썰이 있다.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청나라 시대 여행하던 한 학자가, 여행 중 음식 재료를 술이 담긴 토기 항아리에 보관하고, 먹을 때는 그 항아리 통째로 데워먹었는데.
긴 여행 끝 복주(福州)에 도착해 요리를 먹기 위해 항아리를 불에 올리자, 거기서 퍼져 나간 향기가 근처 절로 퍼져나갔고, 불도를 닦던 한 승려가 그 향에 이끌려 담을 넘어 찾아왔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
중원에 퍼진 이런 소문들은, 진실 십 퍼센트와 나머지는 중원식 춘장 듬뿍 가미된 구라와 과장법으로 버무려져 있기 마련이지만, 이게 또 부처님이 담을 넘는 요리라니, 상황이 딱 맞아떨어져 만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번 믿어보마. 중원!’
더군다나 지금까지 구한 재료들을 총 망하라는 요리니까, 뭔가 지금까지의 중원 생활을 정리하는 느낌도 들고.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대접했던 연와.
공부의 연성공 형님이 주신, 선조를 향한 후손들의 존경심이 가득 담긴 은행.
장의문 약왕을 향한 장진의 효도심이 별로 담기지 않은 어시.
중원 최대 토란 산지인 남만야수궁의 맹희 누님이 생각 나는 토란.
서시 누님을 두 번 능욕하고서야 비연을 통해 구할 수 있었던 고려인삼.
요강 같은 항아리에 그 모든 것들이 마음과 추억에 섞여 꾹꾹 눌러 담겼다.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같은 드립이 생각나는 요리.
그렇게 모든 재료를 항아리에 집어넣고, 생강과 마늘을 제일 위에 올렸다.
그리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그러자 조심스레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
“가가, 끝인가요?”
영영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은 후, 마지막으로 고모님께 부탁해서 구한 병의 마개를 열었다.
-뿅
마개를 열자마자 나오는 진한 과일 향.
이것이 불도장을 완성하는 마지막 재료.
이 시대 이름으로 월주(越酒), 소흥주(绍兴酒).
그것을 아낌없이 요강같이 생긴 항아리에 따라주었다.
-콸콸콸콸.
황금빛 액체가 병에서 따라져 나오고, 항아리 안에 담긴 재료를 적시며 사방으로 향을 뿜어냈다.
“월주의 향이 무척 좋군요. 식룡.”
팽유성이 소흥주의 향을 맡고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이 소흥주는 십 년도 더 묵은 소흥주라는 모양이니까.
“외숙모님께서 십 년도 더 된 월주라 하시더군요.”
“어허, 그런 것을 아깝게···. 그리 듬뿍.”
술을 좋아하는지 팽유성이 입맛을 다시며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 불도장에 들어가는 소흥주는 무조건 좋은 것을 써야 하는 법.
많은 중원의 요리에 이 소흥주가 들어가는 이유는 소흥주가 가진 뛰어난 향 때문이다.
소흥주는 쌀을 주재료로 한 술이지만, 다른 황주들과 다르게 위스키처럼 숙성된 기간과 술을 마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향을 즐길 수 있는데.
알코올의 향은 적고 양조주처럼 과일향이 나기 때문에, 이 과일향을 음식 재료에 입혀주는 것.
그렇게 소흥주가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어제 다시 잡았던 돼지 오줌보를 뚜껑에 씌우고 실로 묶어 밀봉해 주었다.
팽가가 있는 정주(郑州)에서 소림사가 있는 숭산(嵩山)까지는 전생 기준으로 오십 킬로미터 정도.
마차를 타면 관도가 있기에 하루면 충분하니 그동안 소흥주에 재료를 듬뿍 절여주는 것이다.
내가 배운 대로라면 소흥주를 살짝 추가해줄 뿐이지만, 그건 재료를 아끼기 위함이고 이렇게 원래 전승대로 좋은 소흥주에 재료를 충분히 절여주면 그 향과 맛이 더욱 뛰어나질 터.
항아리를 밀봉하고 뚜껑을 덮어준 후 미소를 지으며 넷을 바라보자, 넷이 여전히 ‘괜찮을까?’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그리 걱정인지.
소림은 살생 금지니까 최소한 죽지는 않는데 말이다.
***
팽가에서 준비해 팽유성이 가지고 오느라 고생했던 급(笈).
그 급에서 꺼낸 항아리를 옆에 두고 팽유성에게 땔감을 부탁했다.
“팽형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를 좀 구해주시겠소?”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소림에서 직접 닭을 손질하고, 고기를 자르며 생선을 손질하지는 못할 것 같아 미리 다 준비된 항아리.
내가 아무리 미친놈 빙의해 소림에서 불도장을 끓이려 하고 있다지만, 그 정도까지 간 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던 것.
항아리 두드리자 안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이대로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원래는 이틀 정도만 소흥주에 절일 예정이었는데, 그제 정신을 잃은 것도 있고,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사흘이 되었지만, 외관상 문제는 없어 보였다.
입구를 밀봉한 돼지 오줌보가 살짝 부풀기는 했지만, 날씨가 워낙 추워 변질은 일어나지 않아 보이는 상태.
곧 땔감을 구해온 팽유성의 도움을 받아 불을 지피고, 돌을 괴어 그 위에 요강 녀석을 올릴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팽유성의 시선을 받으며 뚜껑을 밀봉하고 있던 돼지 오줌보를 풀자 올라오는 향긋한 소흥주의 향.
재료들이 소흥주의 향을 듬뿍 머금어, 뚜껑을 열자마자 향이 미칠 듯이 뿜어지고 있었다.
마치 향수에 적셔진 것 같은 그런 느낌.
‘이정도면 충분하구만.’
곧바로 절벽 한쪽으로 걸어가 아래로 소흥주를 따라 버렸다.
-주르르륵
절벽 끝으로 떨어져 내리는 소흥주의 소리.
거침없이 그것이 벼랑 아래로 흘러 내려가자 팽유성이 그것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저 아까운 것을···.”
그렇게 소흥주를 다 따라 버리고 소복이 쌓인 눈을 뭉쳐 항아리 안에 넣어주었다.
원래는 물을 넣어 끓이려고 했지만, 여기 물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쌓인 눈을 이용한 것.
전생이라면 눈으로 음식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여기는 아주 청정한 환경이니까.
그렇게 눈이 녹으면 조금씩 눈을 추가해 항아리 가득 물을 채우자, 곧 불도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이제는 불을 최대한 줄여줄 때.
불씨를 죽을 듯 살 듯 유지해 아주 약한 불로 최대한 천천히 끓여내는 것이 진정한 불도장.
불을 최대한 줄여주고 은은한 불에서 불도장을 천천히 달여주었다.
-보글보글.
한 시진 후.
불도장은 잘 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
-달그락
물이 얼마나 졸았는지 살피기 위해 뚜껑을 열자,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진한 과일의 향.
피어오른 불길에 훈훈했던 동굴 앞 공터가, 뚜껑을 열자마자 항아리에서 뿜어지는 향을 주변으로 퍼트려 불도장의 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꼴깍
어디선가 들려오는 군침 삼키는 소리에 팽유성을 바라보자 눈을 깜빡거리는 팽유성.
‘아니야? 그럼?’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동자승을 확인했다.
동자승은 고기를 한 번도 못 먹어봤는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불도장의 향에 고기의 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도 모르고 침을 꼴깍 삼키며 물어왔다.
“시주님. 법사님께 요리를 선보이시는 겁니까?”
“예, 스님.”
“많은 분이 재주를 선보이긴 했지만, 요리는 처음이군요. 무척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꼬마 스님은 요리의 의미대로 이미 심리적 담장을 넘어버린 상태.
그러나 내가 노리는 큰 스님은 아직도 달마동 안쪽에서 반응이 없었다.
-바글바글
뚜껑을 덮고 불도장을 끓이는 틈틈이 물이 증발하면 눈을 뭉쳐 항아리 속으로 넣어주며, 불도장을 푹 고아주었다.
원래는 불도장은 하루에서 이틀 정도 푹 끓이는 요리.
아직은 좀 더 끓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중원식 스튜. 잘 끓고 있구나.’
내가 불도장을 동양식 스튜라고 부르는 이유는, 불도장은 그 유래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서양 요리의 스튜를 닮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중세여관 여행객의 식사는 대부분 스튜로 이루어졌는데, 우리가 아는 그런 스튜가 아닌.
그냥 솥에 온갖 재료를 때려 넣고 끓여서 먹는 음식이 스튜.
고기가 생기면 고기, 생선이 생기면 생선, 채소가 생기면 채소를 마구 때려놓고 물이 줄어들면 물을 부어 계속, 계속 끓이는 것이다.
뭐 가끔 쥐도 넣고, 이름 모를 고기나 사람의 손가락이 등장한다는 괴담도 있긴 하지만, 그것이 서양 스튜의 시작.
중세여관에서는 이 스튜에 별명도 붙여줬는데, 영원히 끓는다고 해서 ‘영원의 스튜’.
그러니 어찌 보면 불도장은 동양의 스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있는 음식 다 때려놓고 계속 끓여서 먹는다는 같은 시작점을 가진 것.
다만 불도장은 고급 재료를 넣는 것으로 고급화되었고, 스튜는 일반인들이 깔끔한 재료를 넣고 먹는 것으로 변한 것일 뿐.
그렇게 한참 중원 무림의 스튜를 끓이다 너무 반응이 없어 꼼수를 부려 보기로 했다.
딱히 재주를 선보이는 데 어떤 제한 시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좀 더 빠른 승부를 내기로 한 것.
‘이러다 밤새우겠어.’
나는 전생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자.
빨리빨리야 말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
속 터지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빨리 결론을 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간구하는 것이 우리 한민족의 기본 패시브 아니겠나?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국물이 너무 빨리 증발하지 않게 뚜껑을 비켜서 살짝 열고.
-촤악
의천 스님에게 선물 받은 부채를 펼쳐 살살 동굴 쪽으로 향을 부치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그렇게 두꺼운 발로 가려진 동굴 입구 틈으로 신나게 불도장의 향을 날려 보냈다.
‘이래도 버텨? 이래도? 어디, 이래도?’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래도’를 외치며 부채를 부친 지 한식 경쯤 되었을까?
드디어 처음으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크흠!”
안쪽에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얼마 안 돼 짚으로 짠 두꺼운 발이 걷히며, 석장(錫杖)을 든 칠십 대의 노인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시바! 이게 진짜 된다고? 아니, 중원 이새퀴들 다 개구라 아니었냐고?’
중이 담을 넘는다더니 진짜 밖으로 걸어 나온 현원법사.
팽유성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나도 팽유성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갈가에서 온 류청운이라 합니다.”
“팽가에서 온 팽유성이라 합니다.”
현원 법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동자승을 향해 말했다.
“공진(空眞)아.”
“예, 큰스님. 부르셨습니까?”
“눈이 많이 왔으니 식사를 가져오는 아이들이 고생할 터. 한 사람의 입이라도 줄여야 할 테고, 날도 더 추워질 테니, 네 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터. 그만 따듯해질 때까지 내려가 있거라.”
역시 높은 종교인이라 그런지 아랫사람을 위해주는 분인 모양.
그래, 아이가 이리 높은 산에서 밤을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현원법사의 조치에 고개를 끄덕이자 공진이라는 동자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하지만···. 수발은···.”
“내 아직 네 수발을 들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러면 식사는 앞으로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아니다. 식사야 다른 수련하는 아이들이 가져오면 될 터. 어서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거라.”
“알겠습니다. 스님.”
현원법사의 말에 공진이라는 동자승은 조그만데도 무공을 익혔는지, 바람처럼 몸을 날려 산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칠십오 도의 경사 계단을 평지처럼 내달리는 동자승.
‘저리 조그만 아이도 무공을 익혔는데···. 난 뭐냐?’
현원법사와 그렇게 산 아래로 멀어지는 동자승을 배웅했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현원법사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내 재주가 마음에 든 모양.
그리고···.
-휘익! 뽀각!
“꽤액!”
그의 석장이 바람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충격과 함께 바닥으로 처박히는 몸.
그리고 곧이어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빡!
“끄허억!”
공평하게 팽유성의 머리에도 떨어져 내린 석장.
곧이어 분노한 노승의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내 여태까지 다양한 미친놈을 봤지만, 그중 제일이 네놈이다! 소림의 산문 안에서 고기 요리를 할 줄이야!”
‘이거 좃됐나?’
그렇게 노승의 분노에 마음속으로 ‘이거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
“아니, 저는 왜?”
팽유성이 내 옆에 고꾸라져 나를 바라보며 원망하는 소리를 낸 것.
그러나 그에게는 대답 대신 다시 석장이 떨어져 내렸다.
-빠악!
“끄아아악!”
팽유성은 이런 상황에서는 닥치고 있는 게 제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느낌.
‘그럼 그렇지. 중이 담을 넘긴 무슨 담을 넘어. 내가 선만 넘었네.’
아무래도 불도장으로 넘긴 넘었는데, 중이 담을 넘은 것이 아니라, 내가 선을 넘어버린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