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문답(禪問答) (164/344)

선문답(禪問答)

.

평소 같으면 가문 드립이나 체면 드립이라도 쳤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 우리 셋만 있는 상황.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했다. 

체면이고 지랄이고 무림계의 가장 높은 어른이 불같이 화를 내는 상황이니, 나는 일단 최대한 죽은 듯이 기절한 척을 했다. 

주댕이를 털어도 지금은 안되는 것. 

괜히 입을 털었다가는 내 뚝배기만 터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역천의 눈치가 지금은 입을 벌려봐야 몸만 고생한다고 알려오고 있었기에···. 

요리든 감정이든 한번 끓어오르면 넘치고, 그러면 국물이든 감정이든 다시 가라앉는 순간이 찾아오는 법. 

그리고 내가 입을 털 순간은 바로 그때. 

나는 쥐 죽은 듯 숨을 죽이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비 맞은 중처럼 구시렁대는 팽유성. 

그는 눈치 없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현원법사를 향해 구시렁거렸다. 

“아니, 저는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 왜 자꾸 맞아야 하는지···.” 

“뭐라 이놈아! 친우가 아수라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방관했으니 네놈도 맞아야지!” 

‘저러다 한 대 더 맞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원법사의 석장이 다시 바람을 가르며 팽유성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쩔그렁! 부웅! 

석장에 달린 아홉 고리가 쩔그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곧이어 들려오는 뭔가가 터지는듯한 소리. 

-퍼억! 

‘바, 박 터졌나?’ 

저 석장에서 들려오는 쩔그렁거리는 소리는 야생 동물이나 곤충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내는 소리라는데, 팽유성도 야생 바바리안의 피를 가지고 있기에 석장에서 울리는 경고음의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인데, 계율을 어기고 계신 스님. 

‘스님, 걔도 반은 야생이라고요!’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지금까지 중에 가장 큰 소리가 나기에 깜짝 놀라 실눈을 뜨고 팽유성을 확인했다. 

그러자 내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행스럽게도 팽유성이 떨어져 내린 석장을 자기의 양팔을 십자로 겹쳐 막아내고 있는 장면. 

저도 무술을 익힌 무가의 자식이라고 방어 초식을 펼친 모양이었다. 

‘저건 제 팔 아닌가? 아플 텐데···.’ 

그러나 석장의 재질은 보통 구리 아니면 청동. 

아무리 단련했어도 맨팔로 막으면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팽가가 외공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기에 꽤 아프겠다고 생각하자, 아니나 다를까 팽유성이 양 손목을 좀비처럼 떨어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악! 파, 팔! 뼈···. 뼈! 

아파죽겠다고 눈밭 위를 구르는 팽유성. 

외숙모님이 팽가에 대대적인 유전자 조작을 하긴 하셨지만, 진정한 지능은 이런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판명되는 법. 

왜 전생에 바퀴벌레도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순간 시속이 150킬로까지 올라가고, 아이큐도 340 정도까지 오른다지 않는가. 

급조한 유전자 조작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놈 엄살은···.“ 

팽유성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현원법사. 

현원법사가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도 그만 일어나거라 사내놈이 죽은 척은···.“ 

아마도 팽유성의 바보 같은 행동에 화가 식어버린 모양. 

나는 얼른 몸을 일으키고 팽유성을 살폈다. 

”평형 괜찮소?“ 

”아니, 류형이 잘못했는데 왜 나만 세 대나 맞는단 말이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어지는 억울하다는 목소리. 

-쩔그렁! 

”사내놈들이 엄살은! 어서 이쪽으로 오거라!“ 

그러나 현원법사의 석장이 다시 한번 울리고 그의 호통이 떨어지자, 팽유성은 손목과 머리를 문지르며 나를 따라 모닥불 근처로 향했다. 

-보글보글 

아직도 잘 끓고 있는 단지. 

나뭇가지를 이용해 아까 현원법사를 꼬시기 위해 살짝 열어둔 뚜껑을 얼른 닫고, 석장이 닫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현원법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래, 한 놈은 팽가에서 왔고? 한 놈은 제갈가에서 왔다고? 

“예, 현원법사님.” 

“법사는 무슨. 그냥 스님이라 부르거라. 땡중이 무슨 거창하게 법사까지.” 

“예, 알겠습니다. 스님.” 

소림의 가장 나이 많은 고승이고 대단한 분이라기에 인자한 뭔가 통달한 그런 분을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이셨다. 

칠십 대지만 무공을 익혀 아주 정정하고, 이건 스님이라기보다는 뭔가 깡패 같은 느낌. 

‘아! 생각해보니···.’ 

조금 생각해보니 현원 법사라는 분이 왜 깡패 같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소림사 무공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중원 무공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썰이 있는데, 가장 많이 지지받는 의견이 중원 무림의 중원팔선(中原八仙)이니 하는, 그런 신선들이 남긴 도술(道術)이나 선술(仙術)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주류 의견. 

뭐 도가 계열의 문파인 화산이나 점창, 곤륜이나, 공동 같은 문파들이 무공을 익혀 입선(入禪)하는 것이 목적이니 아주 유력한 의견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런 의견이 주류 의견으로 지지받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도가(道家) 계통이 아닌 불교 계통인 소림사의 무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라는. 

그래서 소림의 무공은 중원의 무공과 조금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달마가 천축에서 배워온 인도의 전통 무예 칼라리파야투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 

그런데 그렇게 기원이 다르다면, 두 무공의 계열이 전혀 달라야 하는데, 소림의 무공도 일반적인 도가의 무공과 그 궤를 크게 달리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소림 무공의 발전이 그 내부에서 계승 발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원에 흩어져있는 은거 기인이나 범죄자 무예가들을 흡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원은 자고로 많은 침입을 받았고, 그렇게 환란이 있거나 정복 왕조가 사람들을 박해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도가나 불가로 숨어들어 몸을 의탁했던 것. 

뭐 전생의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다른 것을 시도 하려면, 어떻게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겠지만, 이 중원이라는 곳은 불도장의 단지 같은 곳. 

단지 안에 다 때려 넣고 끓여서 하나가 되는 곳이 중원. 

중원이라는 단지 안에 들어오면 다 중원 것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현원 법사라는 저분도 아마 외부 유입 인사 출신인 모양이었다. 

왜 우리나라도 범죄와 전쟁하고 그럴 때는 형님들이 산속 절로 숨어들곤 했다지 않은가? 

‘뭐, 그럴 수 있지.’ 

그렇게 현원 법사의 출신 성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금 현원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네 녀석은 왜 나를 찾아온 것이냐?” 

“어? 연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일단 자기가 나왔으니 내 궁금함은 풀어줄 모양. 

내가 반색하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재주를 선보이라고는 했지만, 고기를 요리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내 이리 나왔으니 네놈이 원하는 건 들어줘야겠지. 그나저나 간도 큰놈이로구나. 소림의 산문 안에서 고기 요리라니. 사대금강(四大金剛)이나 십팔나한(十八羅漢)과 붙어보고자 하는 놈들보다 네놈 간이 더 크구나. 쩝.” 

요리는 둘째치고, 간 큰 행동이라서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그런 느낌. 

메이드인 중원에 다시 한번 속았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스님.” 

“그래, 감사해야지. 네놈들을 참회동에 가두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중원 무림의 꼰대 중 가장 높은 꼰대라 그런지 반말은 패시브. 

‘그래, 욕쟁이 할머니라고 생각하자.’ 

욕쟁이 할머니 맛집에 찾아왔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제가 이리 소림을 찾은 이유는 스님께서 북해빙궁의 위치를 알고 계시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허···. 개방인가?” 

“예, 뭐···.”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니라고 했겠지만, 뭐 대충 눈치채신 모양이니 인정할 수밖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현원법사가 되물었다. 

“그래, 북해빙궁의 위치는 왜 궁금한 것이냐?” 

그의 질문이 떨어지자 촉이 폭발했다. 

‘지금이니!’ 

혀를 털어야 할 순간! 

고위 중이 어디 가서 수다를 떨 것 같지는 않고, 팽유성도 반쯤 가족이니 어디 가서 혀를 함부로 놀리지는 않을 터. 

“팽형. 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고, 팽형은 앞으로 가족이 될 사람이라 이야기하는 것이니 반드시 비밀을 지켜주시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팽유성 류형의 비밀 무덤까지 가져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스님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이야기는 이십 년 전 새외혈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내의 출신과 결혼하고 아내와 있던 일을 함축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나의 눈물과 설움을 적당히 조미료로 가미해서. 

그리고 아내의 어머니인 장모님을 만나러 가려 한다는 말까지. 

“······그래서 스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내 긴 이야기 중 눈을 감은 현원법사는 뭔가 생각에 빠진 상태. 

‘설마 자는 것은 아니겠지?’ 

-스릉 

-보글보글 

긴 이야기를 끝내고 그가 생각에 빠진 틈에 나는 뚜껑을 살짝 열어 불도장의 국물을 살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 상태. 

줄어든 국물만큼 눈을 뭉쳐 그릇에 던져넣자 그제야 현원법사가 눈을 뜨고 대답했다. 

“참 대단한 놈이구나.” 

“뭐 좀 부끄럽지만,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의 대단하다는 말에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떨어져 내리는 호통. 

“이놈! 말은 똑바로 해야지! 결국 합방을 위해서 중원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냐!” 

그의 외침에 사람이 억울해서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알 수 있었다. 

나의 순수한 마음이 의심되는 상황. 

‘사람의 억울함이 크면 죽을 수도 있다더니.’ 

“예?! 아니, 저는 순수한 마음으로다가 부인의 걱정을 덜어주고, 제갈가의 대를 위해서···” 

순백지신(純白持身) 한 나의 마음을 알리기 위해 애썼으나 돌아오는 것은 호통과 매질.

-쩔그렁! 따악! 

“에라이! 요놈!” 

“꺄욱!” 

현원법사가 다시 다짜고짜 석장을 휘둘렀다. 

분명 이럴까 봐 석장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비겁하게 불도장을 살피는 순간을 노리다니. 

소림 최고 고수라더니, 이런 틈을 노리다니, 역시 고수는 고수인 모양이었다. 

억울함에 머리통을 문지르고 있자 다시금 들려오는 현원법사의 목소리. 

“이리와 얼굴이나 들어보거라!” 

‘아니, 북해빙궁 위치나 가르쳐 줄 것이지 얼굴은 왜.’ 

그의 주문에 얼굴을 살포시 들어 그를 보자, 그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또 때리려나 싶어 몸을 움츠리자 그가 다시금 손을 까딱거렸고, 그의 손짓에 이끌려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좀 더 가까이 오너라.” 

“이만큼 말입니까?” 

“아니, 좀 더.” 

“이, 이만큼?” 

“바짝 오너라! 바짝!” 

‘사람을 자꾸 패니 쫄아서 그러지! 개새끼도 자꾸 쥐어박으면 주눅이 드는 것인데!’ 

그의 호통에 머리를 가리고 그의 면상에 얼굴을 들이밀자, 그가 불타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더니 내 얼굴을 비추며 말했다. 

“내 아직 속세에 미련이 있어 천리를 꿰뚫어 보지는 못하지만, 네놈의 관상 정도야 볼 수 있으니 가만 있거라.” 

그렇게 내 얼굴을 한참 뜯어보던 현원법사. 

그가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놀랍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네놈 전생에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리 여난(女難)이···. 허허···.” 

“여, 여난이요?” 

여자 문제로 골치가 아픈 인생이라는 느낌의 소리. 

그가 내 한쪽 어깨에 손을 얹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관상을 보니, 평생 여난에 시달릴 상이로다. 어떠냐? 속세의 인연을 끊고 불가에 귀의하면, 내 직접 내 제자로 삼아줄 테니. 불가에 귀의 하는 것은? 그러면 여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터인데.” 

“예?! 아니, 무슨 그런 험한 아니, 놀랄 말씀을···.” 

‘이게 무슨 나중에 팔이 아플지도 모르니 팔을 자르자는 소리냐?’ 

내가 정색하자 그가 내 머리를 다시 쥐박으며 말했다. 

“이놈! 누가 네 놈이 예뻐서 제자로 삼아준다고 하는 줄 아느냐? 이대로 두면 제명에 아니지, 제명에는 사는구나. 다만 순탄치 않은 삶이니 좀 도와주려고 한 것인데. 고마운 것도 모르고.” 

토라진 듯 입을 삐쭉거리는 현원법사. 

그에게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이쿠! 스님. 말씀은 고마운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불가에 귀의한다고 하면, 제갈가뿐만 아니라 당가도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응? 당가는 어째서 말이냐.” 

내가 중이 된다고 하면 영영이가 죽어 나자빠진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독왕께서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법. 

내가 조심스레 영영이가 소처라는 것을 이야기하자 현원법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허어··· 쯧쯧··· 벌써 시작되었나? 그러면 늦었단 말인가···.” 

뭔가 크게 늦었다는 듯한 목소리. 

둘한테 양기 다 빨려 죽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현원법사가 다시금 내 어깨를 꽉 주며 나에게 명심하라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네놈. 잘 기억하거라. 집안을 지키는 것이 중원의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알겠느냐?” 

“예!?” 

뭔가 선문답(禪問答) 같은 소리를 한 현원법사. 

“아니, 스님 그게 무슨 말인지?”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묻자 그가 석장을 쩔그렁거리며 말했다. 

“이놈아! 그만큼의 천기(天機)면, 내 하루 목숨은 될 것인데! 그만 묻거라. 나도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니.” 

‘뭐라는 거냐. 대체.’ 

그의 말을 이해 못하고 고민하자 현원법사가 그런 나를 향해 말했다. 

“고민해봐야 해결할 방도가 없느니라. 쓸데없는 생각 말고 와서 관상을 봐준 값이나 치르거라.” 

“예?” 

‘아니, 돌팔이같이 한마디하고 복채까지 달라고?’ 

갑자기 복채를 달라는 현원법사. 

중원 제일 높은 땡중이니 복채가 얼마나 비쌀까 고민하며 되물었다. 

“값이라면?” 

그러자 그가 슬쩍 턱짓하며 물었다. 

“저건 그런데 언제 먹는 것이냐?” 

-꿀꺽. 

‘응?’ 

현원법사의 턱 끝이 끓고 있는 불도장의 항아리를 향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