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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삼갱(玉糝羹) (168/344)

옥삼갱(玉糝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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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시대의 어떤 집이라도 냉장고 느낌으로 커다란 식자재 창고가 있는 것은 기본이다. 

쌀이나 밀 또는 콩 같은 기타 곡식. 

그리고 겨울에는 각종 장과 말린 고기라든지 말린 채소, 그런 것들을 가득 비축해두는 것이 보통인데, 무만 달랑 내어주다니, 뭔가 숙부님 댁 창고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에게 무를 달랑 내어주는 행위는 대놓고 엿을 먹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인이 내민 무를 바라보다가 싸늘한 눈으로 총관에게 대체 이게 무슨 의미냐는 뜻을 담아 그를 삐뚜름하게 바라보자, 그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며, 며칠 눈이 많이 와서 시장에 나가지를 못해서 말입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먹을 것이 있는데, 정작 오늘 사용해버리면 내일 아침도 문제입니다.” 

“창고에 음식 재료가 없소?” 

“그, 그것이···. 곡식들은 많이 있지만 채소와 고기 같은 것들이···.” 

“어째서 그런 재료들이 갑자기 부족한 것이요?” 

“그, 그것이···.”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총관. 

‘어쭈 대답 못해? 설마? 이 새끼?’ 

이런 큰 가문의 창고를 맡은 총관들은 꽤 큰 금액을 주무르고, 장진처럼 거래 와중에 접대받고 하품(下品)을 납품받거나 하면서 이득을 취하거나, 아니면 물건을 빼돌리는 것이 흔한 일. 

갑자기 창고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니, 총관 이놈이 뭔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제갈각 숙부님의 집은 생각보다 알부자 집. 

나는 공무원 월급이 박봉인 줄 알았는데, 송 시대 공무원 봉급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숙부님 기준으로 매월 백석(淅)의 쌀이 지급되고, 돈도 백관 정도 지급된다고. 

한 관(貫)이 철전 천문이니 은자 백 냥이 현금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쌀이 들어올 때 총관에게 슬쩍 물어보니 봄, 겨울에 비단이랑 명주 그리고 솜도 나온다고. 

전생이나 현생이나 이래서 공무원 공무원 하는가 싶었으니까. 

싸늘한 눈빛으로 총관을 쏘아보며 말했다. 

“총관! 내 그리 안 봤는데, 혹시 물건들을 빼돌리기라도 한 것이요!? 이거 장부를 확인해봐야지 안 되겠구만!” 

내가 으름장을 놓으며 총관에게 한발 다가서자 그가 바닥에 엎드리며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요! 억울합니다요! 고기와 말린 채소 같은 것들이 부족한 것은···” 

항변하면서도 말끝을 흐리며 제대로 말을 못하는 총관. 

다시금 그를 압박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말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오! 내 당장 숙부님께 아뢰어서···” 

“저, 접각부님!” 

‘응? 나?’ 

강하게 압박하자 나를 부르는 총관. 

그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접각부님 때문입니다!”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내 탓을?!” 

‘이놈이 날 물고 늘어져? 내가 데릴사위라서 내 탓을 하겠다 이거지? 이눔시끼를!’ 

요걸 어찌 조져버리나 고민하는데, 총관의 억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드, 들어보십시오! 제갈각 님의 녹봉(祿俸)은 남궁 부인께서 관리하시고, 저는 녹속(祿粟)을 관리하는데, 그렇기에 쌀을 팔아 다른 것으로 바꿔와야 하는데, 눈이 많이 와서 쌀을 못 가지고 나가서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접각부께서 요즘 고기랑 그런 것들을 매일 사용하셔서···” 

“그, 그렇나?” 

“예, 그리고 동경의 제갈가에서는 쌀이 남아돌아 오래된 쌀은 팔아 고기나 채소들을 그때그때 사 오는 편이라서, 다른 음식들은 그리 많이 비축하지 않습니다요. 억울합니다아!” 

칠 옥타브 고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는 총관. 

‘뭐야? 결국 나 때문이었어?’ 

그런 이유라면 나도 이번 사건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것이 맞았다. 

요리사가 창고 확인은 필수인데, 내 창고 아니라고 막 꺼내오라건 한 것은 맞으니까. 

결론은 돈은 안방마님이신 숙모님이 관리하고, 자기는 곡식으로만 곳간을 운영하는데, 요 며칠 눈이 많이 와서 무거운 쌀을 끌고 밖으로 못 나갔다는 말. 

거기에 내가 겨울이라 심심해서 이것저것 요리해대니, 재료가 빠르게 소모되어 당장 쓸 수 있는 재료가 무 한가지라는 말이었다. 

배신감과 우울감에 빠진 총관. 

총관에게 만병통치약을 얼른 처방했다. 

“지, 진정하게. 말을 하지 않으면 어찌 알겠나. 내 의심해서 미안하네. 그래 자네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자자 여기 은자 받고, 오늘 처소 들어가기 전에 술이나 한잔하게.” 

“억울합···. 어?! 아니, 제가 이런 것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어허, 내 미안해서 주는 것이니 받게. 아이고 팔이야.” 

“감사합니다요!” 

역시 은자는 심(心)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 콧물 빼던 그는, 은자 하나를 받고는 다시 돌아가신 조상님 뵌 것 같은 얼굴이 되어 헤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창고에 재고가 떨어지면 미리 말을 해야지. 갑자기 이러면 어쩌란 말이냐.’ 

결국 날씨와 내 행동이 어우러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있나? 

결자해지(結者解之)! 

내가 사고 쳤으니 내가 수습해야지. 

‘근데 무를 가지고 대체 뭘 끓여야 하냐?’ 

하다못해 소고기라도 조금 있었다면, 겨울이니 소고기뭇국이라도 끓일 것인데. 

무만 달랑 있는 상황. 

무를 들고 고민하는데, 영영이가 날렵한 걸음으로 부엌으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가가, 와보셔야겠어요! 그 여자 아니, 검봉이 가가께서 오지 않으면 말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숙모님께 뒈지게 아니, 크게 혼나고 있어요.” 

갱으로 머리가 아픈데 여자까지 다시 말썽인 상황. 

‘이래서 여난(女難)인가?’ 

일단 갱부터 빨리 마무리하고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거라 영영아 갱을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가 나복(蘿蔔)밖에 없어서 내 고민 중이다.” 

“나복(蘿蔔)이요?” 

“그래, 나복.”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영영이가 뭔가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가가께서는 어려운 요리는 잘하시면서, 이런 간단한 요리를 잘못하시는 것 같더라. 제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영영이가 저리 자신만만한 것은, 또 어디서 주워온 돌로 석자갱 따위나 끓이려는 자신감이 분명했다. 

‘요알못이 대체 어찌 저리 자신감이 충만한 것인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좋은데 이번 갱은 손님에게 낼 것. 

손님을 독살할 것이 아니라면 절대 영영이에게 맡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궁의 딸을? 

전쟁하자는 것도 아니고···. 

“여, 영영아 여기는 계곡이 없어서 돌이 없는데?” 

석자갱에 쓸 돌 따위는 없다고 말하자, 영영이가 가슴을 내밀며 자신감 넘치는 몸짓으로 나에게 바짝 붙으며 이야기했다. 

“가가! 제가 무슨 매번 석자갱만 끓이는 줄 아세요!? 저도 식소제 아니, 식룡의 아내가 될 몸. 청이와 나름 연습한 갱이 있습니다. 아차!” 

부엌에 있던 하인들과 밖에서 구경하던 무사까지 몽땅 영영이의 말을 들어버린 상황. 

자신감 넘쳐 말실수해버린 영영이. 

무사와 하인들이 나와 영영이를 인간쓰레기처럼 바라봤다. 

내가 영영이와 바람이라도 피우는 줄 알고 그러는 모양.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입니다.” 

“됐습니다! 접각부님께 실망입니다!” 

‘아니, 총관 이 사람아! 자기 이야기 안 들어줬다고, 억울하다고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 아가씨 불쌍해서 어쩌누···” 

“친언니처럼 따르던 분과 접각부께서···” 

급히 수습하려 했지만, 눈총만 따가워지는 상황.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때 아내가 부엌의 문밖에 나타났다. 

“언니, 노공을 모셔 오신다더니, 오도 가도 하지 않으시면 어째요? 숙부님과 숙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응?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측은한 시선과 나와 영영이의 당황한 모습을 본 아내가 묻자, 하인들의 대장인 총관이 분루를 흘리며 외쳤다. 

“아가씨! 저 황추성, 제갈가에서 삼십 년을 살았고, 아가씨가 갓난아기 때부터 뵈었기에, 이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접각부님과 당가의 아가씨가 뒤에서 몰래··· 흑···” 

그러자 총관의 말에 화들짝 놀란 눈으로 아내가 전음을 날려왔다. 

[거, 걸렸어요? 어째서?] 

내가 영영이를 슬쩍 바라보자 영영이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언젠가 걸릴 거로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오늘인 모양이었다. 

‘아, 인생···’ 

*** 

우리의 말은 믿지 않았지만, 아내가 부엌 안으로 사람들을 다 들이고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나와 영영이의 바람 같은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이 다 나은 게 아니라 영영이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 소처를 자처한 것이라고. 

그렇게 영영이와 한 지아비를 섬기기로 했으니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이다. 

두 가문의 문제 때문에 아직 어른들에게는 이야기 못했으니 그때까지만. 

“여부가 있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지켜드려야죠. 아가씨를 위해서인데.” 

“그럼요. 저희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킬 것입니다.” 

“두 분 그렇게 사이가 좋더니, 영영 아가씨가 소처를 자처하실 줄이야. 흑흑···.” 

언제까지 비밀이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막아낸 상황. 

총관이 갑자기 태도를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바꾸며 외쳤다. 

“저는 접각부님을 믿었습니다!” 

“아니, 자네 몇 분 전에 분명 실망했다고···” 

“어휴 그럴 리가요.” 

총관의 말에 총관 이 새끼 신의가 없어서 숙부님께 정리해고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금 잘리면 나불나불 불어댈 테니 나중에··· 

그렇게 부엌의 소란이 정리되고, 영영이가 앞으로 나서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 아직 요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모양. 

“자, 그럼 옥삼갱(玉糝羹) 한번 만들어 볼까나?” 

“옥삼갱?” 

“무로 끓일 수 있는 갱이에요. 저와 청이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너와 부인이?” 

“예!” 

‘아니, 이거 너무 자신감 넘쳐서 조금 걱정되는데?’ 

둘의 음식 솜씨는 이미 한번 본 상태. 

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희가 가장 배우기 쉬운 것으로 배웠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 그렇소?” 

그리고 시작된 요리. 

영영이는 그간 나를 따라다니면서 본 것은 많은지, 일단 하인들을 시켜 쌀가루를 준비시켰다. 

“쌀을 좀 빻아주세요! 아주 곱게 빻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리고, 무도 빻아주세요.”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곧이어 나에게도 명령하듯 말했다. 

“가가는 물을 끓여주세요!” 

“어? 그, 그래.” 

화구에 웍을 올리고 물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그 물이 천천히 끓어올라 부글거리기 시작할 때, 빻은 무를 가져온 영영가 그것을 전부 물속으로 부었다. 

-부글부글 

‘간 무로 국물을 끓이면 시원하긴 할 텐데, 무슨 조합이지?’ 

영영이의 지시에 요리를 도우면서 대체 무슨 갱이 나올까 궁금했다. 

영영이와 아내 수준이니 어려운 요리는 아닐 것이니까 말이다. 

“가가 잘 좀 저어 주세요.” 

“그래. 걱정 말거라.” 

영영이의 지시에 열심히 손을 움직이며 간 무를 끓이고 있을 때, 곧이어 아내가 빻은 쌀을 물에 개어 가지고 와 그것도 몽땅 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언니, 다 넣었어요.” 

“그래, 완벽하게 되었구나, 자, 이제 소금으로 간을 하고, 익으면 먹으면 돼요.” 

‘이게 끝이라고?’ 

요리가 딱 아내와 영영이의 수준에 어울리긴 했는데, 뭐랄까? 

석자갱에서 한 꺼풀 업그레이드된 느낌. 

그런 느낌이 드는 요리였다. 

정말 심플한 조리법. 

멀건 풀죽 같은 느낌이었는데, 무 국물로 맛을 냈으니 시원하긴 할 것 같은 느낌. 

-후루룩 

소금으로 간을 하고 작은 그릇에 조금 떠 맛을 보자. 

역시나 머릿속에 그렸던 맛이 느껴졌다. 

시원한 무 국물로 끓인 풀죽. 

그런데 이상하게 맛이 나쁘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노공.” 

“어떤가요. 가가? 저희가 본가에 있을 때 아구 영감의 며느리에게 배운 것인데. 맛이 있나요?” 

아구영감 나중에 큰 치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이제 아내와 영영이가 해준 음식을 먹고 죽을 염려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맛있구나? 옥삼갱(玉糝羹).” 

송 시대의 갱은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 

부엌에서 일을 정리하고 곧바로 접객당으로 향했다. 

무사들이 눈을 쓸어 길을 내었지만, 그사이 다시 눈이 쌓여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 

그 눈길을 헤치고 접객당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인자하신 숙모님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 어째서 제갈가 앞에서 그러고 있었느냐!” 

“부인, 진정하시오. 그렇게 다그치면 검봉이 이야기를 못 하지 않소이까?” 

“식룡이 오면 이야기하겠습니다. 고모님.” 

“어허! 그래도 끝까지!” 

아직까지 고집을 피우고 있는 모양. 

저러다 숙모님이 혈압으로 쓰러지겠다 싶어 안쪽에 우리가 도착한 것을 알렸다. 

“숙부님, 숙모님 저희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 자네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반색하는 제갈각 숙부님의 부름에 눈을 털고 안으로 들어서자,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는 검봉. 

빈자리에 나와 아내 그리고 영영이가 자리를 잡자, 검봉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식룡!” 

“예?” 

-짤그랑 

큰 목소리로 부르기에 찻잔을 잡으려다가 화들짝 놀라 놓쳐버리고, 양손으로 간신히 쏟아지는 것을 막아내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툭. 투툭. 

‘천장에 구멍이 뚫려 눈이 녹은 것이 떨어지나?’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물방울이 어디서 떨어지는지 자세히 살피자 고개를 숙인 검봉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테이블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검봉이 다시금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 오라버니를 제발 살려주십쇼!” 

“어···.” 

‘아니, 사람을 살리려면 장의문으로 가세요··· 이쪽은 분야가 달라요.’ 

망한 요리라면 내가 살릴 수 있지만, 오라버니가 망한 요리도 아니고, 정말 뜬금없는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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