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룡 (169/344)

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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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검의 최고봉을 논한다면, 누구도 의심치 않고 당연히 한 사람의 별호를 말할 것이다. 검왕(劍王). 

검왕 남궁강천(南宮江天). 

팔 왕 중 제일 나이가 적지만, 당당히 팔 왕에 이름을 올린 검의 제왕. 

그는 검의 고수로도 유명했지만, 최근 또 다른 것으로도 유명해졌는데, 그것은 그의 자식. 

검룡 남궁현. 

약관(弱冠)의 나이에 무림비무대회(武林比武大會)에서 쟁쟁한 검의 후기지수들을 꺾고 그의 아들이 검수 중 최고가 된 것이었다. 

물론 모든 무공을 가진자들이 제한 없이 겨루는 부문에서 우승한 자에게 내려지는 호칭인 대장원(大狀元)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검수들만 겨루는 부문에서 장원(狀元)을 했으니, 역시 검왕의 자식이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검룡의 별호를 얻은 것이었다. 

그것이 몇 달 전. 

어젯밤 늦게 몇 달 만에 남궁가로 되돌아온 남궁현은,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수련을 위해 동생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하구나.’ 

비무대회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검의 기재(奇才), 검의 천재(天才)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그의 동생을 보지 못했기에 하는 소리. 

자신은 그 발치에 서지도 못할만한 검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 

지금까지는 한 번도 녀석이 자신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를 보지 못한 몇 달 사이 얼마나 성장했을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약속 장소인 후원이 가까워져 오자 들려오는 소리. 

-씨잉. 씨이잉. 

이른 새벽 후원 뒤뜰에서는 검법을 펼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빠르게도 또는 느리게도. 

또 잠시 멈췄다 이어지기도 하며. 

‘녀석. 지루하기라도 한 것인가?’ 

검술을 펼치는 소리로 보아 지루하기라고 했던지, 일관되지 못하게 적당히 검을 펼치는 모양. 

오랜만에 잔소리라도 해줄까 싶어 웃으며 후원 쪽으로 다가서자, 곧 검에서 나는 소리가 끊어졌다. 

잠시 쉬려고 검법을 멈췄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후원의 문안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보이는 그의 동생. 

그런데 이상한 일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검을 휘두르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데,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그의 동생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 

빠르게도 또 느리게도 

또 잠시 멈췄다 이어지기도 하는 동작. 

이곳으로 들어서기 전 자기 귀에 들려왔던 소리대로. 

하지만 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이, 이건!’ 

멍하니 동생이 펼치는 검법을 바라봤다. 

분명 동생이 펼치는 것은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하지만 창궁무애검법을 저렇게 펼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문의 어르신들 그리고 아버지의 검과도 다른 무엇.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검 끝이 허공을 가르고, 시리도록 푸른 그 무엇인가가 하늘과 검 끝을 이어주고 있었다. 

한 초식이 펼쳐질 때마다 울려오는 가슴. 

그렇게 멍하니 동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마지막 초식을 끝낸 동생. 

동생은 검을 갈무리하고 주변을 살피다가 자신을 발견하고는 꽃 같은 미소를 띤 채 달려왔다. 

“오라버니!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어, 그, 그래. 소소야. 어젯밤 늦게 돌아왔단다.” 

“검룡 이라는 별호를 얻으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감축(感祝)드립니다!” 

하나뿐인 동생 소소가 반가운 목소리로 달려와 자기 팔을 끌어안으며 축하했지만, 축하의 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좀 전의 창궁무애검법은 무엇이더냐?” 

“아, 자, 작은 깨달음이 있어, 그것을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깨달음?” 

무학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데,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동생. 

만약 동생이 펼치는 검을 보지 못했다면, 웃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그 검을 본 이상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 

대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동생인 소소를 바라보자, 그녀가 조금 부끄럽다는 표정을 하며 대꾸했다. 

“네, 소녀가 혼자 검을 펼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창궁무애검법은 창궁무애검법이라는 이름이 되었을까?” 

“그래, 어째서 그런 것 같더냐?” 

다정한 목소리로 되묻자 동생이 대답했다. 

“창궁무애(蒼穹無涯). 푸를 창(蒼), 하늘 궁(穹), 없을 무(無), 물가 애(涯). 푸른 하늘에는 그 끝이 없다. 검을 형(形)과 식(式)으로 펼치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푸른 하늘로 뻗어나가기 위한 시작일뿐. 하늘에는 끝도 시작도 없으니 형과 식에도 제한은 없다.” 

그리고 검을 뽑아 몇 가지 초식을 선보였다.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검 끝. 

동생은 창궁을 가르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드넓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동생의 초식이 끝나자 두근거리는 가슴. 

동생이 깨달음을 정리해 말해주고 몇 가지 초식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무엇인가가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보고 싶었다. 

그녀의 검을. 

아니, 직접 느끼고 싶었다. 

“소소야, 오랜만에 오라비와 비무를 해보겠느냐?” 

“좋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꼭 이길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비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동생의 검을 마주 대할 능력이 없었다. 

십 초씩 만에 그녀의 검이 자기의 목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오라버니, 오랜만이라고 이리 져주시면 제가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서운합니다.” 

십 초식 만에 검룡인 자신을 패배시키고는 서운하다는 녀석. 

남궁현은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오라버니?” 

동생은 태어나면서 이미 다른 가문과의 혼례가 결정된 상태.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최소한의 무공만이 허락되었고, 내공 또한 마찬가지. 

그녀에게 검의 스승은 오라비인 남궁현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전해준 것이 전부. 

그런데도 자신을 뛰어넘어버린 녀석. 

동생의 스승이자 사랑하는 오라버니로서 남궁현은 동생의 대성을 기뻐했다. 

“아하하, 소소야, 이 오라버니가 져준 것이 아니고···.” 

그렇게 동생의 대성을 축하해주려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도련님! 도련님! 여기 계시면 어쩌십니까? 가주께 인사를 드리러 가셔야죠. 어제는 밤이 늦어서 하지 못했지만, 제일 먼저 가주를 찾아뵈셨어야죠. 이미 가주께서 기침하시고 도련님을 찾고 계십니다.” 

남궁현은 먼저 일단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동시에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동생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버지도 기뻐하실 테니까. 

“소소야, 쉬고 있거라 내 일단 아버지를 만나 인사를 드리고 올 테니까. 알겠지?” 

“예, 오라버니. 소녀는 그럼 아침이나 먹으러 가렵니다.” 

남궁현은 날랜 걸음으로 하인을 따라나섰다. 

자신의 장원보다 더 기쁜 소식. 

동생의 대성을 아버지께 알리고 싶었기에···. 

그렇게 날랜 걸음으로 가주전(家主殿)에 도착한 남궁현. 

“아버님, 소자 돌아왔습니다.” 

“그래, 내 장원하여 검룡의 별호를 얻었다는 것은 들었구나.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엄하신 아버지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신 모습으로 자신을 맞으셨다. 

검룡이라는 별호를 얻은 것이 기쁘신 모양. 

하지만 마냥 칭찬만은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자만하지 말고 더 정진해야 하느니라. 알겠지?” 

“예,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돌아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가서 푹 쉬거라.” 

아버지께서는 짧은 인사를 끝내고 돌아가 쉬려고 말했지만, 남궁현에게는 아직 용건이 하나 남아있었다. 

소소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 

“아버지, 소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아! 선물이라도 달라는 것이냐? 그래 뭐가 좋을까?” 

기분이 좋으신지 선물까지 주신다는 아버지. 

하지만 선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소소···.” 

그렇게 소소의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들려오는 아버지의 이야기. 

“아, 소소. 그 이야기로구나. 그래, 소소도 이제 나이가 차서 혼례를 서두르기로 했느니라. 오늘쯤 소소와 혼례를 치를 아이가 당도한다 했으니, 너도 만나보거라.” 

‘뭐?!’ 

날벼락 같은 이야기. 

가문의 보배 같은 아이를 시집을 보낸다니, 남궁현은 믿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혼례라뇨! 아니 될 말입니다!” 

“응? 무슨 소리더냐? 아니 될 말이라니. 소소의 혼처는 이미 너도 알다시피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는데?” 

“소소가 깨달음을 얻어 대성을 이룬 것을 아십니까?” 

“뭐라? 깨달음?” 

자기의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된 아버지.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네가 잘못 안 것이겠지. 네 동생의 나이 이제 열일곱.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운 적도 없는데 무슨 소리더냐. 네가 재미 삼아 가르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닙니다! 소자 새벽에 검을 나누었는데, 십 초식 만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뭐라!? 네가? 귀여운 동생이라고 손에 사정을 둔 것은 아니더냐?” 

이어지는 자기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정하는 아버지. 

하지만 모든 것은 진실이었고, 남궁의 이름을 가진 자가 검을 가지고 허언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남궁의 이름을 가진 자가 사소한 비무라 한들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 허니 소소의 검을···.” 

“네 이야기는 잘 알겠다. 소소가 성취를 이루었다니 기쁜 일이구나. 하지만 그 아이의 혼례는 이미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것. 우리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지만!” 

“그만! 이제 소소에게 검을 가르치는 것을 금하겠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바. 사사로운 욕심보다 무림에서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맞을 터. 그만 나가보거라.” 

“아버지!” 

가주전 밖으로 쫓겨난 남궁현. 

그는 가슴속으로 한탄했다. 

창궁무애검법은 그 자체로도 뛰어난 검법이지만, 그것은 모두 제왕검형(帝王劍形)을 펼치기 위한 것. 

창궁무애검법의 오의(奧義)를 담아 펼치는 것이 제왕검형. 

소소가 얻은 창궁무애검법의 깨달음을 제왕검형으로 펼친다면 어떤 검이 될까? 

그는 그것이 너무도 궁금했다. 

가주와 후계자에게만 허락되는 제왕검형을 소소가 펼친다면 어떤 검이 될까 하는 그 궁금함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렇게 혼란한 마음으로 가주전에서 걸어 나오는데 마주친 소소. 

“오라버니!” 

“소소더냐?” 

“응?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검룡의 별호도 얻으셨는데, 아버지께서 기뻐해 주시지 않던가요? 또 ‘정진해야 하느니롸’같은 말만 하셨나요? 헤헤.” 

아버지의 흉내를 내는 소소. 

피식 웃어버린 남궁현은 자기 동생에게 물었다. 

“소소야, 너는 네 마음대로 검을 배우고 펼칠 수 있게 된다면, 뭘 이루고 싶더냐?” 

“음···. 저야 뭐 얼마 안 돼 혼례를 올리겠지만, 그래도 검을 펼칠 수 있다면···.” 

-척 

저 먼 하늘 가리키는 소소의 손가락.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펼치고 펼쳐, 저 창궁의 끝을 보고 싶습니다.” 

*** 

저녁이 되자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소소와 혼례를 올릴 녀석이 도착했다. 

독고세가(獨孤世家) 대공자. 

신경질적인 얼굴의 차갑게 생긴 남자.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나자, 소소의 일로 시끄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검을 펼치고 있는 후원으로 놈이 자신을 찾아왔다. 

잡스러운 생각을 좇기 위해 너무 집중했던가? 

갑자기 들려오는 박수 소리. 

-짝짝짝 

“그것이 창궁무애검법입니까? 하하, 저는 제왕검형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좋은 구경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기의 수련을 훔쳐보고 있던 무례한 놈. 

분노를 참으로 녀석에게 따졌다. 

“허락도 없이 다른 이의 무공 수련을 훔쳐보다니. 실례가 아닙니까?” 

“저도 곧 식구가 될 몸인데 어찌 그리 차갑게 말씀하십니다. 하하.” 

느물거리는 녀석. 

무례를 범한 녀석을 혼쭐을 내주고 싶었으나 소소를 봐서 참아야 했다. 

“내 소소를 봐서 이번만 참을 것이나, 다음부터는 이런 무례는 참지 않을 것입니다!” 

큰 무례였지만, 싸늘한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자 놈이 달라붙으며 물었다. 

“어찌 그리 예민하게 구십니까? 저도 보여드리면 될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챙.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소리. 

놈이 검을 뽑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비무라도 한번?” 

소소와 혼례를 올릴 놈이 어떤 놈인지, 가문의 사람들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호승심이 강하고, 기루에 드나든다는 것 정도. 

별로 좋은 소리는 없었어도 크게 생각지 않았지만, 이런 망나니일 줄이야. 

화가 치밀었지만, 남궁현은 놈을 뒤로하고 후원에서 멀어졌다. 

“못들은 것으로 하겠소!” 

“쳇···.” 

놈의 혀 차는 소리가 귓가에 길게 메아리쳤다. 

그날 밤. 

아무래도 남궁현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소소의 검에 관한 생각과 소소가 그런 놈과 혼례를 올린다는 사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 

소소가 아직 잠들지 않았으면 이야기라도 해볼까 싶어 처소를 나섰다. 

그렇게 처소를 나서 후원을 지나려는데 들려오는 작은 소리. 

[흐읍···. 도, 도련님. 이런 곳에서는···.] 

[닥쳐라. 계집 따위가 시끄럽구나!] 

[흐으응···] 

남녀가 만들어내는 낯 뜨거운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리는데 머릿속에 남는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 

‘설마?’ 

안력을 집중해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살피자, 후원 나무 아래 엉켜있는 남녀. 

그의 생각대로 남자는 독고가의 대공자였고, 여자는 그가 데려왔던 여자 하인. 

[계집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느니라.] 

놈의 목소리가 풀벌레 소리와 함께 벌레같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남궁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창궁의 끝을 보고자 하는 그 아이의 검이 이놈으로 인해 영영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동생의 하늘은 쇠창살이 드리워지고 하늘을 가르던 그녀의 검은 사로잡힌 새가 되리라. 

고민하던 남궁진은 자신의 검을 소소의 처소 앞에 놓아두었다. 

비무대회에서 돌아오면 소소에게 선물하려 했던 붉은 수실을 매어. 

그리고 이른 아침 연습용 검을 하나 챙겨 들고, 독고가의 대공자를 찾아가 물었다. 

“비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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