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옥 (170/344)

뇌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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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를 돕기 위해 둘 사이에 선 무사가 둘에게 신호했다. 

“제가 물러남과 동시에 시작하시면 됩니다.” 

“알겠다.” 

“이쪽은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시작하도록.” 

칼을 뽑아 들고 마주 선 둘. 

밤새 고민했지만, 마지막까지 검룡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놈의 많은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행동을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 

결국 모든 것이 동생과 남궁을 위한 일이었지만,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이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것. 

처음에는 반병신을 만들거나 팔다리 하나 정도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병신이 된다 해도 할아버지께서 약조하신 결혼이니 혼례는 취소되지 않을 것이고, 소소가 병신이 된 놈을 평생을 돌봐야 하거나 병신이 된 놈이 자신을 향한 복수심을 소소에게 풀어댈 수도 있으니, 손을 댄다면 목숨을 취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고민. 

이른 아침 낮게 깔린 안개처럼 검룡의 마음도 혼탁했다. 

아침의 이슬이 내리깔리는 연무장. 

혼란한 마음으로 천천히 칼을 뽑고 기수식(起手式)을 취하려 하자, 반대편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에는 거절하시더니, 이른 아침부터 무슨 바람이신지? 뭐 저야 좋지만 말입니다. 후후.” 

놈의 이죽거리는 물음. 

놈의 물음에 고민하던 검룡은 그래도 마지막으로 놈에게 한번 기회를 주어보기로 했다. 

첩을 두는 것이야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그래도 자기 처자는 아낄 수도 있으니까. 

또 의외로 소소의 재능을 꽃피워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검룡은 뽑았던 칼을 늘어트리고 상대방에게 물었다. 

“공자는 공자와 혼례를 올릴 소소가 뛰어난 검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어쩌시겠소?” 

놈의 운명을 결정한 중요한 물음. 

그러나 놈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고 피식하고 비웃으며 대답했다. 

“훗. 계집 따위가 검에 재능이 있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계집이 할 일은 아기나 낳고 집이나 돌보면 되는 것. 저희 비무에 어울리는 질문은 아니군요?” 

놈의 대답에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 이놈은 하늘을 품을 자격이 없다.’ 

*** 

새벽 수련을 위해 눈을 뜬 소소는 자신의 처소 앞에 오라버니의 검이 놓여 있다는 사실에 놀라야 했다. 

가지런히 놓인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명검. 

아버지께서 한철을 구해 유명한 장인에게 부탁해서 만들어 오신 검. 

푸른색의 시린 검날이 아주 아름다운 검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 아름다움에 이름을 지어주라 했지만, 오라버니가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 검이었다. 

자기라면 청천(晴天)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검에 장식 따위는 달지 않는 오라버니인데, 검에 붉은 수실까지 달려서. 

마치 여자의 검처럼 말이다. 

한 번만 만지게 해달라 해도 검수의 검은 누구에게도 쉽게 만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치사하게 굴던 오라버니가 할 행동이 아니었던 것.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오라버니가 없는지 확인한 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 검에 손을 뻗었다. 

그 푸르고 시린 검날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새벽 수련을 위해 자신을 찾으러 왔다가 측간이라도 간 모양인데, 이 기회에 이 검을 마구 주물러 보리라 생각했던 것.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막 검에 손을 뻗으려던 소소. 

그런데 그 순간 하인 하나가 집에 불이라도 난 것 같은 표정으로 뛰어 들어오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외쳐댔다. 

그의 오라버니가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그녀의 혼례 상대를 말이다. 

“지금 큰일이 났습니다. 아가씨! 도련님께서 독고가의 대공자를!” 

“예!?” 

그녀가 놀라서 부리나케 달려갔을 때는 오라버니는 가문의 뇌옥에 갇힌 상태였고, 독고가에서 온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 아버지께 항의하고 있었다. 

“비무 중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검룡이나 되는 공자께서 어째서 손을 거두지 않은 것인지!” 

-쾅! 

아버지의 검이 뽑혀 큰 소리를 내며 가주전 앞마당 돌바닥에 꽂히고, 그 강한 기세에 움츠러든 독고가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의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자식의 잘못은 나 검왕(劍王)의 잘못!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살필 테니, 우선 대공자를 수습하고 독고 가주께 연락해 주시길···.” 

달이 두 번 차오를 때까지의 지루한 조사와 항의를 위한 독고 가주의 방문. 

그 피 말리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오라버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오라버니를 만나기 위해 뇌옥을 찾았으나, 가주의 명령이라며 만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꼬박 한 달만의 만남이었다. 

오라버니가 자기의 잘못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소리를 들어, 아버지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설득하라고 간 것인데 목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가주전 앞에 그 오라버니가 꿇어앉혀져 있었다. 

한 달간 씻지도 잘 먹지도 못했는지, 꾀죄죄하고 수염까지 듬성듬성 난 얼굴로 꿇어 엎드려진 그녀의 오라버니 남궁현. 

살초를 먼저 펼친 것은 독고가의 대공자였지만, 손속을 멈추지 않고 기어이 그의 목숨을 취한 오라버니는 그 죄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독고가에서 대공자의 핏값에 어울리는 처벌을 원했으니까. 

가문의 모든 어른과 무사들이 모인 가주전 앞에서 아버지의 싸늘한 목소리가 오라버니에게 쏘아졌다. 

“할 말이 있느냐?” 

“흐윽! 아버지! 오라버니를 용서해주세요!” 

무엇이라도 해보기 위해서 같이 오라버니 옆에 엎드려 빌었지만, 곧 무사들의 손에 한쪽으로 끌려 나간 소소. 

“오라버니!”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바라본 오라버니가 미소를 짓더니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자의 잘못은 소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벌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 다만.” 

“다만? 네 녀석이 그래도 할 말이 있더냐?” 

“예, 소자 마지막 소원입니다. 소소, 소소의 검을 봐주십시오!” 

-쿵 

돌바닥에 이마를 찧은 오라버니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 그의 얼굴을 적시기 시작했다. 

소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오라버니가 처벌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자신의 검을 봐달라고 말했는지. 

곧 아버지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리석은 놈! 그게 네 뜻이더냐!?” 

“예.” 

아버지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도 아버지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대답하는 오라버니. 

아버지의 턱짓에 무사들이 자신을 풀어주고, 오라버니 옆으로 달려가 그의 이마를 살피자 오라버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소야, 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으나, 이 오라비의 소원이니. 네 검을, 네 창궁무애검을 볼 수 있겠느냐?” 

“어째서···.” 

“내 그것을 꼭 보고 싶구나. 혼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다 지우고 내 검을 이 오라비에게 펼쳐보거라.” 

오라버니의 간곡한 부탁.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소소는 눈물을 훔치고 앞으로 나섰다. 

오라버니는 그녀의 스승이었고 사랑하는 오라버니였으니,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으니까. 

“예, 오라버니.” 

웅성거리는 무사들과 가문 어른들의 목소리. 

“이 무슨 일인가?” 

“대공자께서 어째서?” 

“아가씨에게는 왜 검을?” 

아버지의 명으로 근처에 있던 무사의 검이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익숙한 검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검은 그저 손이 길어진 것일 뿐. 

짧고 길고 무겁고 가벼운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건 그대로 펼치면 될 뿐이니까. 

소소는 바뀐 검을 느끼며 검을 하늘 위로 세웠다. 

그리고 다른 잡스러운 소리를 지우기 위해서 외쳤다. 

“개천(開天)!” 

-챙! 

창궁무애검법의 일 초식 개천. 

그녀의 끝없는 푸른 하늘이 가주전 앞마당에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첫 초식 개천이 펼쳐지자 가장 놀란 것은 그녀의 아버지 검왕이었다. 

이미 자기의 딸이 창궁무애검법의 모든 것을 얻어내고, 그것을 자신의 깨달음으로 펼치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의 검은 창궁무애검으로 깨달음에 도전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제왕검형을 배워 오의를 얻는 것. 

선대들이 걸어온 평탄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천하의 기재가 아닌 이상 창궁무애검 만으로 깨달음을 얻고 거기서 오의를 얻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딸은 창궁무애검으로 깨달음에 도달했고, 제왕검형을 배우기 전 오의를 얻은 것이었다. 

창궁무애검을 창안한 시조처럼 평탄한 길이 아닌, 대지에 새로운 길을 새긴 것. 

딸은 자신의 검을 완성하는 길 위에 서 있었다. 

미약한 내공과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딸의 검은 끝도 없는 푸른 하늘에서 그 끝을 찾아 헤매는 구도의 물음이 담긴 검. 

밝고 명랑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추구하는 검은 고뇌가 담긴 구도자의 검이었다. 

부족한 내공을 치밀하게 배분해 검의 시작과 끝, 초식의 시작과 끝을 하나로 연결하는 매끄러운 움직임. 

식과 형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으나 초식의 의미를 꿰뚫어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그런 검. 

처음에는 그녀의 검을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리고 그녀의 검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펼치는 끝도 없는 창궁에서 사람도 소리도 검도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제야 자기의 아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자신이 가르쳐 하늘에 오를 검을 대체 누구에게 양보한단 말인가? 

아들도 자신처럼 검에 미쳐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소의 마지막 초식이 끝나자, 소소를 제외한 검왕 그리고 가문의 어른들과 무사들은 대공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검왕의 입이 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공자의 처분이 내려졌다. 

“대, 대공자 남궁현의 단전을 폐하고, 가문에서 추방한다!” 

“어째서! 아버지! 제발!” 

-땡그렁. 

검을 떨군 소소가 아버지에게 울부짖었지만, 뒤쪽에서 들려오는 오라버니의 목소리. 

“감사합니다!” 

무림인으로서 죽음을 의미하는 단전을 폐하는 처벌과 가문 추방이 명해졌는데, 감사하다니. 

소소는 자기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서 가주전 앞에 모인 모두가 대공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포권으로 예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대공자!” 

소소만이 이해 못할 상황이었다. 

소소는 이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의 길을 얻었으나, 그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웃음도 미소도 검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을···. 

그날 끔찍한 비명 속에 남궁현의 단전이 폐해지고, 며칠 후 간신히 기운을 차린 남궁현이 맨발로 가문을 떠날 때. 

가문의 무사가 떠나는 남궁현을 향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 대공자 어, 어디로 가십니까? 이제 무엇을 하시렵니까? 크흑···.” 

그의 물음에 되돌아본 남궁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배운 것은, 칼을 쓰는 법뿐이니, 요리사나 되어볼까?” 

그렇게 검룡은 남궁가에서 사라졌다. 

동생의 길을 열어주고. 

*** 

소소는 오라버니가 가문에서 쫓겨난 후, 검에만 매진했다. 

유일한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영약과 검왕의 지도로 매섭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기도 하고, 검 외에는 이제 정을 붙일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 년 후 검봉이 된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오라버니도 해내지 못한 대장원에도 이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장원의 소식을 가지고 가문으로 돌아온 날, 그날의 의문과 진실에 대해 마주할 수 있었다. 

자기의 오라버니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아버지가 왜 오라버니를 가문에서 추방했는지. 

한밤중 오라버니와 수련하던 후원에서 옛 생각에 젖어있을 때 무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자신이 대장원한 것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한 이야기. 

[아가씨께서 대장원을 하시다니, 이리 감격스러운 일이!] 

[이를 말인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저 가문의 무사들이 자신의 대장원을 기뻐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의 오라버니에 관한 이야기가 말이다. 

[그런데 대공자님은 잘 계실까?] 

[가문과 아가씨를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데, 아가씨께서 대장원을 하신 것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래, 분명히 오라버니도 기뻐해 주셨겠지? 그런데 그런 결정?’ 

무사들의 말에 오라버니의 생각이 떠오르고, 뭔가 이해 못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들려오는 그 날의 진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고가의 그 쓰레기 같은 놈이 제 하인과 후원에서, 그렇고 그런 짓을 벌였다지 뭔가?] 

[그런 놈에게 아가씨를 보낼 수는 없으셨겠지. 더군다나 검에 저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계신 데 말이야.] 

[나는 아가씨의 검을 보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네.] 

[어허 이 사람 검을 쥔 사람이라면,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을 여셨는데···.] 

[더 성장한 아가씨의 검을 보고 싶으셨던 게지.] 

그제야 그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날의 말도 안 되는 모든 것들이···. 

소소는 그날 밤 서찰 한 장만을 써두고 집에서 나왔다. 

형제혈적검무의미(兄弟血積劍無意味). 

오라버니의 피와 희생 위에 쌓아 올린 검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단 한 줄. 

그리고 오라버니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이 검을 쥐게 할 이유가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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