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
“어떻게 아, 아시는 요리입니까?”
영영이의 말에 걱정이 되었던지 검봉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검봉.
떨리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가 뭔가 안심한다는 음성을 내뱉고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졌다.
“하···. 다행···”
-털썩
“검봉?”
“소소야!?”
“검봉, 왜 이러세요? 정신 차려 보세요.”
지금까지 바짝 긴장했다가 모든 것이 완전히 결정 나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 모양인지 그대로 정신줄을 놓고만 느낌.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지는 그녀를, 영영이와 아내가 쏜살같이 달려 나와 붙들었다.
그리고 나도 놀란 숙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다가가 검봉을 살폈다.
내가 검봉에게 다가서자 아내와 영영이가 또 인공호흡이라도 하는 줄 알고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할 때마다 하나씩 늘어나는데, 이젠 누가 눈앞에서 죽어 나가도 인공호흡은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이 필요 없기도 하고.
적당히 맥박과 동공반사를 살피고 둘을 향해 말했다.
“혼절한 것 같으니, 일단 처소로 옮기는 것이 좋겠소.”
어디가 크게 아프거나 한 것이 아니라, 오라버니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 그런 것 같으니, 눕혀두면 정신을 차릴 것 같았기에 빈 처소로 그녀를 옮기자고 권한 것.
그러자 아내와 영영이 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봉을 바짝 당겨 부축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오는 뾰족한 음성.
“꺄아악!”
“흡! 이건!”
-쿵
검봉을 부축했던 아내와 영영이가 갑자기 검봉을 두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난 것.
다시 바닥으로 쓰러진 검봉.
검봉이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냐는 의미를 담아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자, 영영이가 코를 쥐며 대답했다.
“내, 냄새가?”
“응? 냄새?”
영영이의 냄새란 말에 코를 벌름거리자,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고향의 향기.
‘뭐냐? 어디서 청국장이나 메주 띄우나?’
잠시 전생의 고향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냄새의 근원을 쫓자,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은 검봉.
검봉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자, 등불 아래 그녀가 생각보다 상당히 꼬질꼬질한 모습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아, 집을 나왔다고 하더니···.”
집을 나왔다고 하더니 검봉은 한동안 씻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한겨울에 비싼 나무 떼면서 어디서 몸을 씻겠나.
영양상태도 별로로 보이는 것이, 돈도 하나도 없고 대책 없이 남궁가를 나와서, 노숙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뭘 어떻게 안 씻었기에··· 무슨 몸 냄새가 청국장이냐? 그나저나 한겨울에 두부와 씻은 묵은지 넣은 뜨끈한 청국장에 흰쌀밥 썩썩 비벼서···’
검봉으로 인해 오랜만에 청국장 생각이 간절했다.
-츄릅
***
-똑똑
“이 한밤중에 누구시오?”
[가가, 저예요. 영영이.]
[뭐! 아니, 영영아 걸리면 어쩌려고?]
[언니?]
밖에서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에 재빨리 문을 열어 그녀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무사와 하인들에게 우리들의 관계를 모두 걸려버리고 나자 영영이는 대담해진 모양이었다.
추운 밤 얇은 옷차림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영영이.
영영이를 끌어당기고 난 후 처소 밖으로 고개를 빼 좌우를 살폈다.
혹시나 누구에게 걸렸나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좌를 살피자 아무 이상 없었는데, 우가 문제였다.
가까운 곳에서 무사들이 내 얼굴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그들의 미소에 움찔하자 무사들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뭔가 그런 미소.
그리고 두 무사가 주먹을 쥐며 무운을 빌어주었다.
‘뭐냐? 대체?’
아까 부엌에서 걸리긴 했지만, 너무 호의적인 모습.
문을 닫고 영영이에게 물었다.
“영영아 어찌 이 밤에 찾은 것이야, 무사들은 왜 저러고?”
“무사들이랑 하인들은 다 비밀로 해준다고 했으니까 괜찮잖아요? 그리고 밤이나 새벽에 누가 찾아오면 알려주기로 했어요. 철전도 몇 개씩 쥐여줬으니까 괜찮아요. 요즘에 덕구랑 자는 거 무섭단 말이에요. 덕구 녀석 나는 안 지켜주고 매일 밤새 싸돌아다니고···.”
“그, 그래?”
“잘 왔어요. 언니. 얼른 이리 들어오세요. 추워요.”
덕구 녀석 영영이 지키라고 했더니 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는 것인지.
덕구 녀석 경고 좀 해줘야겠다고 생각할 때 영영이가 따듯하게 데워진 항 위로 올라가 아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가가 그런데 제가 이리 밤중에 찾아온 것은,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궁금한 것도 있어서예요.”
“궁금해? 무엇이?”
한밤중에 무엇인가가 궁금하다는 영영이.
궁금한 것이 많아서 먹고 싶은 게 많은 것인가 보다 생각하며 묻자, 영영이의 추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가, 왜 그러셨어요?”
“응? 내, 내가 뭘?”
갑자기 뭔가를 추궁하는 영영이의 목소리에 죄지은 것도 아닌데 움찔하는 나.
무슨 소리냐고 묻자 영영이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아까 검봉이 쓰러졌을 때 왜 입맛 다시셨어요?”
“뭐!? 내, 내가?”
“네, 노공. 저도 분명히 봤습니다. 왜 쓰러진 냄새 나는 검봉을 보고 입맛을 다시신 것이죠?”
“아니, 그게 그러니까···.”
한 여자로 인해 다른 두 여자까지 나를 압박하게 된다니.
여난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도미노냐고. 얘들은 왜 그러냐구···.’
요전번에 먹었던 고려장(된장) 생각이 난 것뿐이라고 필사적으로 설명해 간밤을 무사히 넘긴 나.
본인들도 냄새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말을 믿어주어 다행이었다.
믿어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어젯밤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지경.
아무튼 이놈의 혀는 말 안 할 때 가끔 사고를 치는 것이 문제였다.
말할 때는 머리에서 지혜를 잘 퍼 올리는데, 가끔 쉴 때 이리 사고를 치는 것.
아내 때도 장인 앞에서 혀를 할짝거려서 살기 맞아 뒈질 뻔했는데, 고향의 향이 난다고 아내와 영영이 앞에서 입맛을 다셨으니, 이정도에서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혀가 모든 사고의 근원이라더니 옛 말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니까?’
그렇게 어젯밤을 생각하며 식사하는 곳으로 들어서자, 안에 숙모님이 옷을 주셨는지 깨끗하게 씻고 숙모님의 옷을 입은 검봉이 혼자 식탁 앞에 덜렁 앉아있었다.
이마에 볼록하고 시퍼런 혹과 멍을 하나 달고서.
“아! 식룡. 어제 감사하다는 말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식당으로 들어서자 다시금 감사를 전하는 검봉.
검봉 혼자만 있는 것이 이상해 인사를 대충 받고는 검봉에게 물었다.
원래 이 시간에는 모여서 아침을 먹는 시간인데 숙부님과 숙모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숙모님과 숙부님께서는?”
“아, 고모님은 잠시 후면 오실 것이고, 고모부께서는 이미 등청하셨습니다. 오늘 할 일이 많으시다고···.”
하긴 이 작전에 제일 바쁠 분은 제갈각 숙부님.
간수인 시안도 매수해야 하고, 소동파를 만나 환관도 소개받고 어려운 부탁도 해야 하는 것.
그러니 업무가 개시되기 전 여러 사람을 만나실 모양.
“괘, 괜찮으시겠죠?”
검봉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무래도 여럿을 구워삶아야 하니, 좀 걱정되는 모양인데, 숙부님께서 실패할 리는 만무한 일.
사람들은 제갈가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뛰어난 계략을 짜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 형님을 대충 살펴서 그런 것.
제갈공명 형님을 존경하고 그를 심층 깊이 탐구한 나는 그분의 진정한 능력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심리를 읽어내는 것.
삼국지에 보면 마초가 성도 전투에서 유비에게 합류한 후, 유비가 마초를 대우해준다는 소문이 들리자, 형주를 지키는 관우가 질투심에 차, 제갈공명 형님께 편지를 보내 마초와 서열정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비친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감히 형님 옆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느냐 뭐 그런 의미.
그러자 우리 제갈공명 형님께서 마초는 장비 정도의 수준일 뿐인데, 굳이 서열정리를 하셔야겠냐는 답장을 보낸다.
‘형, 형이 제일 강하고, 서열정리는 애들끼리 하는 거잖아? 그냥 거기 잘 지켜.’라는 의미를 담아서.
그것을 본 관우가 신이 나서 자기 부하들에게 편지를 돌려보게 했다는데, 이건 정사 삼국지에도 기록된 역사적 사실.
형님은 관우의 편지를 받는 그 순간 관우의 마음을 알아채고 답장을 보내버리신 것.
이렇게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리 제갈형님 계략의 토대.
요놈 새끼는 어찌 움직일까?
이 새끼는 이러니까 이렇게 반응하겠지?
요놈이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겠지?
이런 물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제갈가의 방식이니, 제갈각 숙부님께서는 아마도 셋을 잘 구워삶아 오실 것이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는 ‘제갈’이니까요.”
자부심을 담아 대답해주자 검봉이 다소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고, 잠시 후 숙모님과 아내, 영영이가 식사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두 분께서 저를 옮겨주셨다고··· 어제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에요. 몸은 괜찮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은 인사가 끝나고 시작된 식사.
어제 난리 통에 식사를 대충 하고 말았는데, 재료가 없어서 그런지 아침에는 영영이가 선보였던 옥삼갱과 만두.
막 식사를 시작하자 궁금한 것도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영영이가 물어왔다.
“그런데, 가가. 황궁 쪽은 제갈각 숙부님께서 맡으실 텐데, 그러면 저희는 뭘 해야 하죠?”
한 손 거들고 싶은지 일거리를 달라는 영영이.
아내와 검봉도 나서며 말했다.
“노공, 저도 돕고 싶습니다.”
“식룡, 제 오라버니의 일이니 무슨 일이라도 시켜주세요. 어떤 한 일이라도 명하시면 저와 제 검이 함께할 것입니다.”
셋이 아주 그냥 의욕이 충만한 모양인데, 내가 어제 아내와 영영이에게 구박만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도 내 뇌는 한쪽으로는 이 계획을 굴리고 있었다는 사실.
이미 셋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셋은 오늘 아침 든든하게 먹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시오. 내 셋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준비해 놓았으니.”
“정말요? 중요한 일인가요 가가?”
“맡겨만 주세요. 식룡!”
의욕에 차서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둘.
셋에게 딱 어울리는 일을 준비해두었으니 셋도 만족할 터.
일단 영영이에게 물음에 대답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일이고말고. 그러니 영영아 네 외가 좀 다니 다녀와야겠구나.”
“외가? 팽가요? 거긴 왜?”
갑자기 되돌아온 지 얼마 안 된 팽가에 다시 다녀오라니, 거긴 또 왜 가야 하냐고 묻는 영영이.
하지만 하남의 개봉 쪽은 평원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팽가가 있는 정주에서 서쪽이 대부분 산악지형.
겨울이고 산을 타야 하는 것이니 팽가를 거점으로 삼고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가야 그것을 구할 수 있으니까.
“왜긴 왜겠느냐? 웅장(熊掌)을 요리하려면 뭐가 있어야겠느냐?”
“웅장을 요리하려면? 무슨 말이지?”
영영이가 내 물음에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혼잣말했다.
너무 쉬운 질문인데 어렵게 생각하는 모양.
인마 곰 발바닥 요리하려면, 뭐가 필요하겠니?
당연히 곰이 있어야지.
시장에서 흔하게 파는 고기가 아니니 직접 잡아 와야 했던 것.
“곰 몇 마리 잡아 와야 하느니라.”
“에? 곰?”
‘너희 곰 잡아 와야 해···.’
영영이가 내 대답에 눈을 깜빡거렸다.
***
-꾸어엉!
며칠 후 정주(鄭州) 근처의 산속.
겨울잠을 자던 곰은 날벼락을 맞았다.
갑자기 찾아온 인간 셋과 개 한 마리가 자신을 공격해온 것.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지만, 얼마 안 돼 개에게 따라잡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왈왈!
개가 곰의 앞길을 막고 무섭게 짖어댔다.
곰은 다시 다른 쪽으로 달려 도망치려 했으나 개가 다리를 무는 순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두 명의 사람이 곰을 따라붙었다.
“덕구야 잘했어! 벌써 따라잡다니! 얼른 도망 못 가게 앞을 막아! 검봉 그쪽이에요!”
당영영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검봉 남궁소소가 덕구가 막고 있는 곰을 향해 쇄도했다.
-서걱
그리고 단칼.
-꾸어어어어어엉!
곰의 찢어질 듯한 비명.
곰을 잡았나 싶었지만, 이어진 것은 당영영의 힐난.
“검봉 그러면 안된다니까요! 청아!”
-씨이잉!
-퍼석
당영영의 신호에 차디찬 겨울바람을 헤치며 무엇인가가 곰에게 날아들고, 머리가 사라진 곰은 그대로 눈 위에 처박혔다.
그리고 곰에게 모여든 넷.
당영영이 짜증을 내며 다시금 남궁소소를 힐난했다.
“그냥 단칼에 목숨을 끊으라니까요!”
“하, 하지만···. 발 두 개씩만 잘라내면 이 아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저희도 그 웅장을 구할 수 있고···.”
“아니, 어차피 네 발 중에 두 개를 잘라내면 죽는다니까요?”
당영영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계곡을 메아리쳤다.
검봉 남궁소소 아직 살생을 주저하는 마음 여린 소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