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볼록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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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영영이, 그리고 검봉인 남궁소소가 팽가 근처로 곰 사냥을 간 사이.
숙부님은 며칠 동안 술에 잔뜩 취해서 돌아오셨다.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지만, 소동파를 통해 이헌이라는 환관과 안면을 트고, 그에게 이번 건을 부탁하기 위해서 접대를 하시는 모양.
제갈의 피를 이은 분이니 믿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접대에 술과 여자를 동원하는 것은,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 원활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
그런데 송 시대 공무원들은 고급 기루는 가지도 못하거니와 접대하는 분이 환관인 내시이다 보니, 여자를 동원할 수도 없었던 것.
‘환관한테 싸우자고 하는 것이지 그건.’
접대에서 분위기 좋은 기루도 못 가고, 여자도 없으니, 차 떼고 포 떼고 순수 말발로만 능력을 펼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지 연속 내리 나흘을 취해서 퇴청하신 숙부님.
닷새째 아침, 저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따듯한 항 옆에서 키운 콩나물을 가지고 맑은 갱을 끓여 아침 식사에 가지고 들어갔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숙부님.
아무래도 숙취가 심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송 시대의 술은 증류주가 없고 양조주.
숙취의 끝판왕이라는 막걸리를 사흘 내내 취할 때까지 마신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정상일 리 없었던 것.
“숙부님 이것 좀 드셔 보시지요.”
“아이고, 머리야. 이게 대체 뭔가.”
“두아(豆芽)로 끓인 갱입니다. 속을 푸시는 데 좋습니다.”
“그래? 어디?”
-후루륵
“오오, 이건?”
역시나 숙취에 콩나물국만 한 것이 없는 것.
고춧가루가 없어 맑게 끓이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여기서는 사기급이라 할 수 있으니, 숙부님은 그 자리에서 콩나물국을 원샷을 때리셨다.
“어흐, 좋구나. 뜨듯한 것이 속을 편하게 하는 느낌이구나.”
그렇게 숙부님이 콩나물국을 원샷하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신 것 같기에 그간 진척 상황에 관해 물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이정도면 충분히 뭔가 성과가 나올 시간이 되었고, 제갈가의 피가 조조나 사마의도 아니고 고작 환관 하나를 구워삶지 못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궁과 뇌옥 쪽의 일은 어찌 되셨습니까? 아직 진척이 없습니까?”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주객낭중.”
숙모님과 함께 그렇게 만두를 뜯으며 궁금한 것을 묻자 숙부님께서 대답하셨다.
“아, 그렇지. 그 이야기를 내 아직 못했구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는데, 무엇부터 들어볼 것인가?”
‘아니, 이건?’
전생에서 많이 등장하던 클리셰 대화법을 구사하는 숙부님.
아무튼 우리 제갈가는 다들 개구쟁이였다.
이런 순간에 좋은 소식 나쁜 소식 클리셰라니.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연히 좋은 소식이지.’
예전이라면 맛있는 건 아껴두고 먹는 스타일이라서, 나쁜 소식부터 들었겠지만, 요즘 너무 참기만(?) 해서 그런지 나는 바로 좋은 소식을 선택했다.
그간의 고난을 통해 나의 지론은, 맛있는 건 얼른 먹고 보자는 것으로 바뀌었으니까.
“저는 그러면 좋은 소식부터 듣고 싶습니다.”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숙부님께서 그간의 일들을 정리해 말씀해주셨다.
“좋은 일은, 그렇지 않아도 황궁에서 웅장을 요리할 자를 찾고 있었다고 하네. 알고 보니 그 당시 검룡만 갇힌 게 아니고, 특별한 일도 없이 검룡에게 일이 있다며 요리를 맡긴 선공도 같이 쫓겨나, 황궁에는 지금 웅장을 요리할 자가 없다더군.”
“오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그렇지. 요즘 태후께서 잦은 감풍으로 몸에 좋은 요리를 올리려 하는데, 웅장 요리할 자가 없어서 고민이었다고 하더군.”
곰 발바닥은 진미로도 유명하지만, 보양 요리로도 유명한 것.
기력을 북돋고 감기에도 좋다는 썰이 있으니 아마 요리할 사람을 찾는 모양이었다.
곰 발바닥 요리할 사람이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 시대에는 곰 자체가 잡기 힘든 짐승이기도 하고, 워낙 진미로 유명해.
왕족이나 고관대작들 아니면 먹기 힘든 것이니, 요리할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 분명했다.
“내 조카사위이고 무림에서 식룡이라는 별호를 가진 요리사라니, 이헌도 아주 좋아하더군. 태후의 요리를 만들 부엌으로 자네를 데리고 들어가기로 했으니, 황궁 쪽은 걱정하지 말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군요? 검룡 그자가 살 운명인가 봅니다.”
“다행입니다. 오라버니는 아들이 어찌 생활하고 있는지는 아시는지···.”
숙모님이 숙부님의 말씀에 안심하시고.
나도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게 되어 기뻐하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하지만 숙부님은 내 말에 수긍하기 힘들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게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네.”
“예? 그게 무슨.”
“뇌옥을 맡은 시안과 이야기해보다 알게 된 것인데. 시안의 패두(牌頭)가 독고가의 방계라더군.”
“저런. 그러면? 나쁜 소식이라는 것이?”
숙부님께서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마 지금 이 소식이 나쁜 소식이 모양.
독고가의 방계가 시안들의 패두인 소대장이라면 나쁜 소식이 확실하게 맞았다.
“그렇네, 은근히 검룡을 핍박하고 있는 모양이야. 음식을 적게 주거나 뭐 그러는 것 같더군. 그래서 그간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사람이 말이 아닌 것 같네. 더군다나 추운 겨울이 되었으니 고초가 얼마나 심하겠나.”
“아이는! 아이는 괜찮답니까?”
“아직 괜찮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빨리 서둘러야겠군요?”
“그렇네.”
독고가가 생각보다 판을 잘 짠 느낌.
요리 실수하는 것 정도로 목이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 검룡이 뇌옥에서 더 이상 빛을 못 보게 할 모양이었다.
집안 망나니 새끼라도 새끼는 새끼인 모양.
“검룡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답니까?”
“그래도 무공을 익힌 몸이라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네, 내 시안들에게 몰래 요깃거리를 가져다주라 부탁했으나 시안 패두의 눈을 피해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니, 서두르는 것이 맞겠지.”
“그럼, 곰이 도착하는 대로 저도 서둘러 보겠습니다.
그렇게 아침에 숙부님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들은 사흘 후.
아내와 영영이 그리고 검봉인 남궁소소 일행이 곰을 잡아 동경의 제갈가로 되돌아왔다.
“가가! 저희 왔어요!”
“노공, 다녀왔습니다.”
“둘 다 무사하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예!”
“괜찮습니다. 노공.”
반갑게 인사를 하는 둘을 환영하자 그녀들의 등 뒤로 보이는 검봉과 의외의 인물들.
검봉에게 묵례하자 뒤에서 의외의 인물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해왔다.
“여어, 류형. 오랜만이오.”
“아니 팽형이 어째서?”
아내와 영영이 뒤쪽에 나타난 것은 팽유성.
그가 하인들과 함께 수레를 끌고 왔던 것.
“곰고기를 가져다주려고 왔소이다.”
“곰고기를 말입니까?”
팽유성의 말에 그의 뒤를 바라보니, 팽유성 뒤에 서 있는 수레에서 핏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수레 위를 살펴보니 거적때기로 덮은 곰이 세 마리.
그리고 내 말대로 피를 빼기 위함인지 곰 발이 수레에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아니, 분명 운반하기 힘드니까 다 주고 오라고 했는데?’
한겨울에 곰을 전부 운반할 수 없으니, 고기 좋아하는 팽가에 몸통은 다 선물하고 발만 대여섯 개 잘라 오라고 했는데, 곰이 세 마리나 실려있다니.
아 물론 곰이 정상은 아니었다.
얼핏 봐도 머리통이 없거나 가슴에 구멍이 뚫리거나 발이 없는 녀석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이번 곰 공수작전의 총책임자인 아내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다.
“부인, 어찌 된 일이오? 내 분명 발만 잘라서 가져오고, 나머지는 팽가에 주고 오라고 했는데?”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팽가에서 굳이 가져다주시겠다고 하셔서···.”
자기도 노력했지만, 팽가에서 무조건 가져다주겠다고 했다는 말.
팽가 사람들 곰고기는 또 냄새나서 안 먹나 싶어 팽유성을 바라보자, 팽유성이 슬쩍 다가와 귓가에 대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의 부탁 때문에 온 것이니,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알겠소.]
팽가 외숙모님으로부터 뭔가 은밀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
곰 발바닥을 넘겨받자마자 나는 곧바로 손질에 들어갔다.
뇌옥 안에서 검룡이 고초를 겪고 있다니 서둘러야 했던 것.
더군다나 이 곰 발바닥 요리라는 것이, 요리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으니,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곰 발바닥을 요리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이 곰 발바닥이 가진 특수성 때문.
고양이나 개, 족제빗과 짐승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식육목은 발에 털이 없는 볼록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한국어로는 정확히 말하면 발볼록살.
일본어로는 이걸 육구(肉球)라고 하는데, 곰 발바닥 요리는 이 육구와 발 전체를 먹는 것.
개나 고양이 같은 친구들은 발끝으로 걸으니 이 발볼록살이 적지만, 곰은 발바닥 전체로 걷기에 이 발볼록살이 무척 크다.
그래서 이 부분을 요리해 먹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개나 고양이는 만지면 아주 말랑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지만, 곰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
발 전체로 걷는 곰의 발바닥에 발달 된 살.
일종의 곰의 신발 깔창 아니, 밑창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니 당연히 단단한 것이다.
그러니 생각보다 조직이 아주 단단해서, 어지간히 장시간 조리하지 않으면, 질겨서 절대 먹을 수 없는 것.
아마 검룡이 요리 실수하고 옥에 갇힌 것으로 봤을 때, 질겨서 씹을 수도 없을 정도의 요리를 내놔 나이 많은 태후께서 화가 나신 것이 분명했다.
나이 먹어 질긴 음식 먹는 것도 시원치 않은데, 턱이 나갈 것같은 요리를 만들어 내놓았다?
태후하고 싸우자는 이야기로 봐도 되는 것.
그리고 결과는 개작두 아니면, 뇌옥 행.
‘자 그러면 슬슬 시작해볼까?’
일단 제일 상태 좋은 앞발로 세 개를 챙겼다.
그것도 오직 오른발만으로.
전생에는 곰이라는 것이 국제 보호종이라서 거래를 할 수 없으니, 호텔에서는 가끔 캐나다나 러시아에서 밀수해 들어오는 곰의 발을 구해 요리했는데.
가격이 상어 지느러미인 어시나 제비집인 연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가였기에 앞발이든 뒷발이든 모두 요리했지만, 원래 정통 조리법에서는 곰의 앞발만을 사용하는 것이 진리.
그것도 앞발 중에 오른발을 최고로 치는데.
왜 곰의 앞발 그것도 오른발을 사용하냐 하면, 이것도 또 골때리는 이유가 있다.
중원사람들은 짐승에 대한 여러 가지 이상한 이야기들은 신봉하는데, 그중 한 가지가 곰이 가을에 꿀과 과일 같은 달콤한 것을 오른 앞발로 주워 먹고, 겨울잠을 잘 때 그 오른 앞발을 핥으면서 자니, 곰의 오른 앞발이야말로 꿀과 과일 향이 버무려진 극상의 재료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이유.
그러니 곰 발바닥 요리는 무조건 곰의 앞발 그것도 오른발을 이용하는 것이 국룰인 것이다.
‘아니, 곰은 왼발잡이 없겠냐고. 인간이 미안해!’
왼발잡이 곰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전생에 유행하던 고양이 발 장갑 같은 것을 부엌 도마 위에 늘어놓았다.
곰 발바닥 손질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먼저 털장갑 모양으로 생긴 이 곰의 발바닥의 털을 제거해주는 것.
긴 털은 면도를 싹싹 해버리고, 남은 부분은 불에 그슬려 아주 깨끗하게 털을 제거하는 것이 먼저.
그리고 발톱까지 예쁘게 다듬어주면 기본 손질은 끝.
털이 듬성듬성 남을 수밖에 없지만, 이것은 나중에 한 번 더 손질할 것이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곰 발을 발톱까지 다듬는 것은 중원은 닭도 대가리까지 요리 그릇에 올리는 것처럼, 발톱은 안 먹을 거면 미리 뽑아 버리면 되는데, 곰 발바닥 요리할 때도 곰 발을 발톱까지 올리기 때문.
곰 발바닥 요리라는 것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은 귀여운 발볼록살이 접시 위에 뽀옹 하고 올라온 뭐 그런 귀여운 걸 상상하지만, 실제 곰 발바닥 요리는 사람 손가락보다 굵은 곰의 발톱이 접시 위에 쑤욱 하고 솟아나 와 있는 그런 그로테스크한 요리인 것.
그렇게 손질한 곰 발 세 개를 끓이기 위해 큰 솥에 던져넣고 한숨 돌리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형. 한숨 돌리는 중이오?”
‘이건? 팽유성인가?’
“어, 팽형 구경하고 계셨습니까??”
“하하, 류형이 요리하는 건 재미있단 말이지.”
역시나 고개를 돌리자 근처에 앉아있는 팽유성.
분명 저 말은 핑계고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 분명한 느낌.
나는 주변을 한번 슬쩍 둘러보고 팽유성에게 물었다.
“그런데 팽형 외숙모님께서 전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소? 지금 우리 둘뿐인데, 어떻습니까?”
그러자 팽유성도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좀 골치 아픈 일을 상의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오.]
[골치 아픈 일 말이오?]
[아니, 그 요전번에 류형의 도움으로 식비가 많이 절약되고는 있는데. 하···. 이게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복수도 좋은데, 가끔은 양고기도 먹고 싶다고 하니. 마냥 영원히 먹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풀어주면 양고기만 먹을까 봐. 어머니께서 걱정이 크시오. 아버지께서 양고기를 못 먹게 하면 각방을······.]
한번 컨설팅을 해줬으면 되었지, AS까지 해달라는 팽가.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면 대답했다.
[일 년에 두어 번, 하북에서 쫓겨날 때를 생각하며, 놈들의 오장육부를 씹는다 생각하며 양고기를 뜯으라고 하십쇼.]
[오!]
내 말에 그런 방법도 있었냐며 눈이 동그래지는 팽유성.
그러나 그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걱정되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매일 양고기를 뜯어 복수심을 불태우겠다고 하면 어찌합니까? 류형.]
딱 팽가 수준에 할법한 대응.
그러나 뭐 걱정 있나?
[그럴 때는 태우는 것도 장작이 있어야 하는 법. 매일 불태우다가 그 복수심이 사그라질 수도 있으니 일 년에 두 번만 하는 게 좋겠다고 우기시오.]
‘장작 적당히 넣어. 다 탄다.’
팽유성은 아마 그것이 목적이었는지, 하룻밤도 묵지 않고 그대로 팽가로 하인들을 끌고 사라졌다.
팽가 정말 곤란하고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