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뽀드득. 뽀드득.
아무도 눈뜨지 않고 모두 잠이 들었을 야심한 밤.
나와 아내가 눈을 밟는 소리가 적막한 겨울을 맞은 제갈가의 후원으로 퍼져나갔다.
후원에 심긴 나뭇가지에 간신히 달라붙은 마지막 나뭇잎이 눈 밟는 소리에 떨려 떨어지고, 가지에 올라앉은 눈도 우리의 발걸음에 놀라 바람에 날려 허공에 흩어졌다.
후원은 가로지르는 나의 한 손에는 아내의 아름다운 손이.
다른 한 손에는 내 요리 칼인 채도가 들린 상태.
우리의 눈 밟는 소리에 누군지 확인을 위해 나타났던 무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길 몇 번.
목적지인 부엌에 도착하자, 홀로 아궁이를 지키던 하인이 눈을 비비며 하품하고 있었다.
“하암··· 커헙!”
그리고 우리를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오, 오셨습니까. 접각부님?”
“그래, 웅장은 잘 삶아지고 있는가?”
“예, 말씀하신 대로 타고난 숯의 은은한 불로 자, 잘 삶고 있습니다.”
“어디 한번 보세.”
-푸하아악
맹물에 털이 아직 여기저기 남아있는 곰의 오른쪽 앞발을 집어넣고 삶아 여섯 시진.
솥의 뚜껑을 열고 곰의 노린내와 같이 김이 오르는 냄비 안을 살펴보니, 뽀얀 국물 속에 곰의 털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상태로 봐서는 사람이 먹지 못할 모습이라도, 열두 시간이나 삶았으니 고기야 전부 익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제 시작이다.
‘아이고, 전생에도 이거 예약 들어오면, 주방 직원들이 욕을 한 바가지씩 했었는데, 압력솥도 없으니 개고생이겠구나.’
고생문이 열렸다고 생각하며 솥 안에서 곰 발을 건져냈다.
그렇게 곰 발을 냄비에서 건져 찬물에 담가 남은 잔털을 하나하나 손으로 잡아뽑고, 발볼록살을 칼끝으로 힘을 줘 문지르자 발볼록살의 검은 껍데기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뿌득 뿌득.
손으로 열심히 문지르자 벗겨져 나가는 발볼록살의 검은 껍질.
그리고 검은 껍질이 사라진 부분에서는 마치 리치 열매의 껍질을 벗긴 것처럼, 잘 익은 복숭아같이 핑크빛의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나 강아지의 발 같은 그런 보들보들한 살이 말이다.
“노공, 무척 부드럽게 생겼습니다.”
새벽에 깨어 곰 발을 확인하러 간다는 나를 따라나선 아내가, 껍질 벗겨진 발볼록살의 속살을 보고 부드러울 것 같다는 감상을 전해왔다.
하지만 그건 곰 발 밑창을 몰라서 하는 소리.
한 번만 만져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한번 만져보시겠소?”
“네? 네. 어디.”
내 권유에 손을 뻗는 아내.
호기심 어린 아내의 가녀린 손가락이 이미 껍질 벗겨진 분홍색의 발볼록살을 콕콕 찌르고, 놀랍다는 소감을 쏟아냈다.
“겉만 부드럽고 속은 아직도 단단하군요?”
“그렇소. 이제 집을 짓기 위한 첫 삽을 떴다고 할 수 있지.”
“그렇게나 오래 걸리는 요리입니까?”
“보통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오.”
“그렇게나 오래라니···.”
그렇다. 곰의 발볼록살은 더럽게 질겨 보통 며칠씩 삶고 찌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먹기조차 힘드니, 맛있게 요리해 먹으려면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그리고 발볼록살의 껍질은 한 번에 완벽하게 벗겨지지 않으니. 벗겨지지 않는 부분은, 여러 번 다시 삶은 후 벗겨내는 등의 과정을 거처야 하는 것이었다.
얼음처럼 시린 물에 손을 넣고, 벗겨낼 수 있는 만큼의 껍질을 벗겨내길 한참.
손마디가 아릴 때가 돼서야 일차 손질이 끝이 났고.
곰 발을 다시 찬물이 담긴 솥에 넣어 숯에서만 올라오는 은은한 불로 삶기 시작했다.
“이제 한 시진에 한 번씩 사람을 보내 나를 깨워주시게.”
“알겠습니다. 접각부님.”
그렇게 일차 작업을 끝내고, 부엌을 지키는 하인에게 뒷일을 부탁한 후 아내와 함께 처소로 돌아오는 길.
후원 옆을 지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시잉 시이잉.
겨울 밤하늘을 가르며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아내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가 나는 곳을 찾은 우리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달빛 내리는 후원의 눈밭 위에서 홀로 고고히 검을 휘두르는 검봉 남궁소소.
어느 때는 전통춤을 추는 무용수처럼, 절도 있고 부드러운 동작.
어느 때는 현대무용을 하는 무용수처럼 아주 자유롭고 격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듯 검을 휘두르는 모습.
하늘에 높이 뜬 달과 흰 눈에 반사된 빛 속에서 펼쳐지는 그녀의 시린 검법.
검에 까막눈인 내가 봐도 뭔가 대단히 아름답고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체조선수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명연기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저래서 소질 있다고 했구나.’
어떤 기술이든지 정점에 오르면 예술이 되는 법.
그녀는 사람 죽이는 법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단한 예술가였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모습도 잠깐.
검봉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펼치던 검법 중간중간 검을 거두는 모습을 보이더니.
뭔가 처연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긴장감 넘치는 검술을 보던 우리도, 팽팽한 시위 같던 분위기가 풀려 그런지, 눈 밟는 소리를 크게 내고 말았다.
-뿌드득.
후원으로 눈 밟는 소리가 크게 퍼져나가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검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신가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앙상한 나뭇가지 뒤편에 숨어있던 우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거, 검봉. 미안하오. 그, 크흠. 보려고 한 것은 아닌데, 지나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와봤다가···.”
“죄송해요. 검봉.”
무공을 연마하는 것을 훔쳐보는 것은 실례이니, 나와 아내가 포권을 하며 정중히 사과하자 당황한 검봉.
검봉은 우리의 사과에 도리어 아주 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식룡. 제갈 부인. 제가 야심한 시각에 다른 분들을 깨우고 말았네요.”
자기가 한밤중에 검을 휘둘러 사람을 깨운 것은 아니냐는 검봉.
“아닙니다. 웅장을 요리하는 중이라서···.”
“예? 이, 이런 늦은 시간에도 요리하신단 말이에요?”
“예, 뭐. 웅장은 사흘은 밤을 지새우며 만드는 요리인지라···.”
내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검봉은 내 설명에 더욱 당황한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미안한 목소리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하네요. 저 때문에··· 이런 때까지 고생을··· 저는 그런 요리인 줄 몰랐네요···”
웅장이 그렇게 며칠씩 밤을 새워서 만들어야 하는 요리인 줄 몰랐던 모양.
뭐 나야 틈틈이 잘 것이고 고생은 하인들이 할 것이지만, 말이다.
“아닙니다. 숙모님의 조카라고 하셨으니, 가족이나 마찬가지인걸요. 그나저나 이 밤에 수련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이미 끝난 이야기인데 검봉이 자꾸만 미안해하기에 꺼낸 이야기.
달밤에 체조하는 것은 아닐 테니 수련을 하는 것이냐고 묻자, 옆에서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검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검봉.”
“감사한 말씀이네요. 제갈부인. 아름다웠다라···.”
아내의 감상에 말끝을 흐리는 검봉.
그녀의 말에 아내가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검수인데 아름답다는 것은 좀 그랬나요? 달리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사시미질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집안의 사람인데, 그 검술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것이 실례는 아닐까 하여 아내가 사과했지만,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했다.
“아, 아니에요. 감사하신 말씀이네요. 단지···”
“단지?”
“그냥. 오라버니의 희생으로 내가 무엇을 얻었나 그런 생각도 들고···. 검을 이대로 놓을까 싶기도 하고···. 제가 야심한 밤에 무슨 이야기인지···. 그럼 실례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아름다운데요?”
아내가 그리 아름다운 검술인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지만, 검봉은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마 자리를 피하려는 모양.
‘이거 그거구만.’
그녀의 말에 그녀가 겪고 있는 증세를 알 수 있었다.
천재(天才).
보통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주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
하지만 나는 천재에도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보이는 타입.
그리고. 처음에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가 어느 순간 포텐이 폭발해 천재의 반열에 드는 사람.
아마 그녀의 말을 비추어 볼 때 그녀도 나 같은 두 번째 타입인 모양.
전생에 내가 요리를 시작한 계기는, 그저 아버지의 작은 중국집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내 실력은 요리 학교에서 공부를 거듭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칼질이나 웍을 다루는 기술, 요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습득력이 다른 학생들과 차이가 났던 것.
그러니 요리 학교에서 홀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몇 안 되는 대형 호텔 주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 후.
남들로부터 쏟아지는 기대감, 관심 들에 숨이 막혀 지는 것이었다.
그런 주변의 관심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부드럽게 행동하면 좋았지만, 전생에 나는 타국에 홀로 있는 처지.
그러니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그들에 시선에 압박감을 느끼고 실수하지 않으려 집착하다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냈던 것.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왜 그 길을 걷는지를 생각하며 묵묵히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주변인들로부터 재능이 발견됐고, 오빠가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자기 길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자기가 어떤 길을 가는지 잠깐 잊으셨군요?”
내가 검봉의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하자, 검봉이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다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되돌아 무슨 뜻인지를 묻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나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 말 없이 쪼그리고 앉아 눈을 뭉쳐, 가지고 있던 채도로 작은 오리를 깎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손에 오리를 받아든 그녀의 당황한 목소리.
“이건?”
당황한 그녀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사람들이 요리를 먹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요리하는 것 좋아하거든요.”
내 이야기가 시작되자 오리 대신 나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에게 미소를 지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뿐인데, 제 마음과 다르게 제요리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거나, 저에게 그보다 더 대단 것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더군요. 그러다 보니 요리가 잘 안되기도 하고, 요리하는 게 즐겁지 않더군요. 그래서 한때 요리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죠.”
“아···.”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는지, 그녀가 짧은 감탄을 흘려냈다.
아마 충분히 알아들을 모양.
나는 내가 전생에 얻었던 교훈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길을 잃은 것을 알겠더군요···. 검을 놓을까 고민하신다지만, 검··· 무엇보다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길을 잃었다면 어디서부터 이 길을 걸어왔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 말에 생각에 잠긴 검봉.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남기고 뒤로 돌아섰다.
“그럼 밤이 깊어···.”
“그···. 저기···.”
내가 떠난다는 말에 검봉이 뒤에서 나를 불렀지만,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검봉을 뒤로하고 얼른 처소로 향했다.
‘후, 조금 멋있었나?’
후배에게 내릴만한 꽤 괜찮은 어드바이스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흡족해하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아내가 아주 부끄럽다는 목소리로 개미만 하게 말했다.
“노공, 그, 멋있었습니다.”
나란 놈 또 부인이 설레어 잠 못 들게 만든 모양.
나란 놈을 만나서 매일 가슴이 저리 뛰면 수명이 단축되겠다고, 나는 정말 죄 많은 놈이라고 생각할 때 다시금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노공.”
“왜 그러시오. 부인?”
“저도 그러니까. 그··· 오, 오리,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아뿔사!
나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자다 깬 영영이가 영문도 모르고 처소 앞에 놓여 있는 눈으로 만든 큰 오리 두 마리를 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가가, 청아 이리 와 봐. 문 앞에 눈으로 만든 큰 오리가 있어!”
영영이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아내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
이틀간 삶아 벗겨내기를 다섯 번.
그렇게 웅장에 대한 기본 작업이 끝나자 핑크색 곰돌이 장갑처럼 변한 웅장.
발 안쪽으로 손을 넣어서 뼈도 대부분 제거하자 웅장은 정말 핑크색 곰돌이 장갑처럼 변했다.
이제 장갑 세 개의 기본 작업이 끝난 상태.
여기서부터는 이제 황궁에서 요리 해야 했다.
이 상태에서 조리하고 한번 식으면, 곰 특유의 냄새가 폭발하니, 먹기 직전 조리하는 것이 제일.
육류를 조리했다가 한번 식으면 잡내가 폭발하니, 두 번 조리는 절대 안 되는 것.
재료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제갈각 숙부님께 알리자, 그날 저녁 퇴청하시는 숙부님께서 누군가를 데리고 제갈가에 들어서셨다.
기골이 장대한 건장한 남자.
그가 먼저 나를 향해, 체격과 어울리지 않는 여성과 남성의 중간쯤 되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 자넨가? 내 형님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크. 역시 제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싶었더니, 꽌시를 맺어버린 모양.
목소리가 특이한 것으로 봐서는 이헌이라는 태감(太監)이 분명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청운이라 합니다. 이헌 태감 어른.”
“오오, 그래, 반갑네. 형님, 이러면 형님 말씀대로 걸릴 염려가 적겠군요.”
인사와 함께 내 얼굴을 잡고 요리조리 살펴본 태감이 숙부님께 뭔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의 이상한 행동에 숙부님을 바라보자 애써 내 눈길을 피하는 숙부님.
‘뭐지?’
태감의 행동과 숙부님의 회피하는 시선에 약간 뭔가 불안하다고 생각할 때.
태감이 자신을 따라온 다른 환관으로 보이는 자에게 신호하자, 그가 웬 보따리를 하나 가지고 앞으로 나와 그것을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어서 갈아입으시죠. 저와 몸이 비슷해서 옷도 잘 맞겠습니다.”
“예?”
영문도 모르고 보따리를 풀자.
그가 푼 보따리에서 나온 것은 그가 입은 것과 똑같은 환관의 옷.
그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 내가 눈앞의 환관으로 위장해서 궁으로 들어가야 하는 모양.
‘아니, 숙부님 이건 좀 아니잖아요?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왠지 더럽게 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