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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대진미(八大珍味) (177/344)

팔대진미(八大珍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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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올려달라는 말에 아궁이에 재빨리 달라붙어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 여자들. 

-후욱! 후욱! 

불을 빨리 피우기 위해서 풍로까지 등장하자, 잠시 후 거대한 주방의 심장인 아궁이에서 서서히 불꽃이 피어오르고, 주방이 뜨겁게 타오르는 심장을 가진 생물처럼 생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거대한 주방에서 무슨 일을 할지 대기하는 사람들, 모여진 시선. 

이 주방만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왠지 전생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에 와있는지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후후, 그나저나 이거 생각해보니, 청와대 수석요리사 체험이나 마찬가지구만?’ 

연성공 형님댁에서 헤드 쉐프 체험은 이미 한번 해보았지만, 황궁 그것도 섭정하는 태후를 위한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느낌. 

전생을 기준으로 하면, 이 시대 최고의 권력자를 위한 주방인 이곳은 청와대 주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요리사의 성공 루트는 여러 길이 있지만, 이곳에서 요리한다면, 누구도 성공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장소였던 것. 

뭐 정상적인 루트를 밟고 올라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 시대 최고의 주방에 섰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청운아, 아주 쭉쭉 뻗어나가는구나.’ 

그렇게 성공루트 체험에 기뻐하며 요리 시작을 위해 재료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자,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여자가 내 앞으로 다가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복(萬福 완푸).” 

허리춤에 양손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무릎을 살짝 구부리는 동경 최신 유행 인사 완푸. 

가련이가 아내에게 배워 나에게 선보였지만, 아직 유행이 멀리까지 퍼지지 않은 느낌. 

그 때문에 다른 데서 저 인사를 하면 ‘뭐지?’라는 분위기인지라, 아내도 요즘 여간해서 보여주지 않은 인사였는데, 나를 향해 다소곳하게 완푸로 인사하는 여자. 

그리고 그녀 뒤에 잡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자 둘이 그녀와 함께 나에게 머리를 숙였다. 

‘아! 이헌 태감이 말했던 선공인가?’ 

아마도 셋은 이헌 태감이 나를 돕기 위해 대기시켰다는 선공인 듯했는데, 제일 고참으로 보이는 이십 대 후반쯤 되는 야무진 인상의 여자가 인사와 함께 자신을 나에게 소개했다. 

“선공으로 있는 정화라고 하옵니다. 이헌 어르신께서 명하셨으니. 오늘 제가 어르신을 보필하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잘 부탁합니다.” 

전생의 조선과는 다르게 선공은 황궁에서 요리할 뿐인 관직이 없는 월급쟁이인지라 계급이 낮다. 

그러니 환관의 관복을 입은 나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정화. 

내가 마주 인사하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가 대답했다. 

“잘 부, 부탁이라뇨. 며, 명령만 내리셔요. 태감 어른.” 

‘아니, 씨바. 태감은 아닌데···.’ 

태감이라는 호칭에 입맛이 아주 썼다. 

원래 태감이라는 것은, 환관들이 맡은 부서의 부서장 정도를 칭하는 말이지만, 이 시대에는 뭉뚱그려서 환관 자체를 호칭하기도 하는지라 나에게 태감이라는 존칭을 쓰는 여자. 

아마 나를 이헌이 자기 후배 정도로 소개한 모양이었는데, 입이 썼지만 일단 요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럼 셋이 어떤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소?” 

선공들은 나처럼 잡캐가 아닌 전문캐. 

각자 할 수 있는 요리가 정해져 있다니 얘들을 사용하려면 먼저 셋의 스킬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 

내 물음에 정화가 대답했다. 

“저는 증(蒸)요리를 주로 담당하옵고, 뒤에 둘은 각각 채소와 고기를 손질합니다.” 

‘아 찜 요리 조리장과 뒤에는 숙련조리사인가?’ 

태후의 요리를 살피는 태감이라더니, 요리에 대해서 뭔가 잘 아는 느낌. 

적절한 조리장과 숙련조리사도 두 명이나 붙여줬으니 손이 조금 수월해질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인사도 끝났으니, 제대로 시작해봅시다.” 

“아, 바로 시작하옵니까?” 

“예.” 

여기서 뭐 시시콜콜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요리사는 칼과 불로 대화하는 법. 

셋의 스킬을 확인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태후가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하루가 조금 덜 남은 정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서 서둘러야 태후의 저녁 시간에 맞출 수 있을 테니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곰 발바닥 요리는 지랄 같은 것이니까. 

그렇게 내 요리 시작을 알리는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지 나에게 집중했다. 

일단 가장 먼저 할 일은 뜨거운 물을 끓이는 일. 

부주방장인 정화에게 명령했다. 

“먼저, 큰 솥에 물을 칠 할 정도 넣어서 끓여주시오.” 

“예, 태감 어르신. 거기 너, 너. 불 올린 아궁이에 솥을 걸고 물을 길어다 붓거라.” 

“예!” 

정화의 명령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궁내 최하급 노비인 여궁(女宮)들. 

다음으로 필요한 재료를 이야기했다. 

“닭과 돼지고기가 혹시 있소?” 

“닭은 있지만, 돼지고기가 필요하십니까? 궁에서는 천한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지라. 가지고 올 수는 있지만 밖에서 구해와야 하는지라 한 식경 정도 걸릴 것이옵니다.” 

“직접 요리에 넣을 것은 아니니 조금만 구해주겠소?” 

“알겠습니다. 태감 어른. 한 근 준비하겠사옵니다.” 

내 부탁에 똘똘하게 움직이는 정화.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안 되겠어, 정화에게 말했다. 

왠지 자꾸 태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지에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닌데, 다리 사이가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태감 어른이라는 호칭은 붙이지 말고 요리사님으로 합시다.” 

“예? 아. 예. 요리사님.” 

호칭을 정리하고 내가 가져온 단지에서 바로 손질된 웅장을 꺼냈다. 

핑크색 오른손 곰 장갑 세 개. 

“아. 이리 깨끗한 손질이라니. 제가 몇 번 웅장을 도운 일이 있지만, 이리 깨끗하게 손질된 웅장은 처음 보옵니다.” 

“그렇소?” 

“예!” 

내가 손질한 웅장을 본 정화의 소감. 

얼음물에 손을 넣어가며 이 류청운이 직접 손질했는데, 당연한 감상. 

미소를 지으며 다음 재료를 부탁했다. 

“지금부터 빠르게 가겠소. 재료를 불러 줄 테니. 전부 부탁하오.” 

“예! 요리사님.” 

정화가 하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경험이 많은 요리사라는 느낌이 들었기에, 정화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필요한 재료를 곧바로 쉬지 않고 쏘아버렸다. 

“우선 웅장의 잡내를 제거할 생강(生薑), 총(蔥 대파), 대산(大蒜 마늘). 단맛과 짠맛을 내는 데 필요한 것은 노두유(老豆油), 사당(沙糖). 필요한 술로는 소흥주. 향신료(香辛料)는 계피(肉桂), 회향(茴香), 팔각(八角), 화초(花椒), 정향(丁香)을 준비해 주시오.” 

‘자 어찌하시겠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자 정화도 같이 미소를 지으며 응수했다. 

“거기 너희 셋, 각자 생강, 총, 대산을 가져와 손질해 옥향이에게 가져다주어라. 그리고 옥향이는 요리사님의 명을 받아 재료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준비하거라. 요리사님 노두유, 사당, 소흥주는 제가 직접 챙길 것이옵고, 계피, 회향, 팔각, 화초, 정향은 가루를 낼까요? 아니면 그대로 준비해 드리면 되겠사옵니까?” 

완벽.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준비해 주는 정화. 

꽤 조리장 위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생강과 대산은 편으로 썰고, 총은 묶어 준비해 주시오. 계피, 회향, 팔각, 화초, 정향은 그대로 준비해 주시고.” 

“알겠사옵니다. 태감, 아니, 요리사님.” 

“크흠···.” 

잠시 정화의 호칭 실수에 얼굴을 찡그린 사이. 

닭과 돼지고기가 도착했다. 

“돼지고기는 세 치로 썰어 준비하고, 닭은 고기를 모두 발라내고 뼈를 준비해 주시오.” 

“알겠사옵니다!” 

두 고기를 마저 준비시키고, 이제 본격적 요리를 시작할 때, 먼저 웍을 확인했다. 

내 웍과 채도를 가지고 들어왔으면 좋았지만, 웍 까지는 모르겠지만 채도도 칼인지라 아무래도 반입에 문제가 있어 모든 것을 황궁 물건을 사용하기로 한 상태. 

일단 먼저 황궁의 웍을 살피자. 황궁의 웍은 사람이 들고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궁이에 고정된 고정형. 

뚜껑 없는 가마솥 같은 형태로 보면 되는 것. 

전쟁 중국 시골 마을이나 꽤 큰 규모의 식당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물건이었다. 

“작자(勺子 국자)” 

“예.” 

마치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집도의처럼 왼손을 내밀며 말하자, 곧이어 손아귀에 착하고 감기는 국자. 

‘너무 편해서 버릇될 것 같네.’ 

-팅 

손에 든 국자로 가까이에 있는 웍을 살짝 튕기며 말했다. 

“여기 불을 좀 넣어주시오. 약하게.”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살피겠사옵니다.” 

정화의 말에 여궁(女宮)둘이 바로 웍에 불을 넣고, 정화가 직접 불의 세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솥에서 약하게 검은 연기가 솟아오를 때. 

국자로 깨끗한 물을 퍼 웍에 둘렀다. 

-치이이익 

곧 검은 연기가 사그라들고, 거의 다 사라진 물이 웍의 제일 아래 고여 조금씩 김을 피어오르다가 사라질 때. 

정화가 준비해 준 사당을 한 국자 퍼 웍에 투척. 

곧 사당이 녹으며 달콤한 향이 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지금 필요한 것은 카러멜라이징. 

설탕을 끓여 갈색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설탕이 끓어올라 갈색으로 물들자, 곧바로 국자로 물을 퍼 넣어 갈색의 설탕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채소 담당이 준비해 준 생강, 마늘, 파를 던져 넣었다. 

다음으로 넣은 것은 오향(五香)인 계피, 회향, 팔각, 화초, 정향. 

마지막으로 노두유로 간을 해주고 소흥주를 조금 따라주면 국물 준비 완료. 

여기에 고기를 손질해주는 여자가 건네준 닭 뼈와 돼지고기까지 넣자 옆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고개를 돌리자 당황한 음성을 낸 목소리의 주인은 정화. 

그녀가 저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마도 당연했다. 

일반적인 요리야 식반행에만 가입해도 요리 레시피를 공유받을 수 있지만, 웅장 같은 고급 요리의 레시피는 어지간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비밀 레시피. 

더군다나 웅장은 고대 중원 팔대진미(八大珍味)인 표태(豹胎), 성순(猩脣), 녹미(鹿尾), 타봉(駝峯), 웅장(熊掌), 후뇌(猴腦), 선복(蟬腹), 와퇴(蛙腿) 중 하나. 

표태(豹胎)는 표범의 태반. 

성순(猩脣)은 오랑우탄의 입술. 

녹미(鹿尾)는 사슴의 힘줄 또는 꼬리. 

타봉(駝峯)은 낙타의 혹. 

웅장(熊掌)은 곰의 발바닥. 

후뇌(猴腦)는 원숭이의 골. 

선복(蟬腹)은 매미의 배 껍질. (울림판) 

와퇴(蛙腿)는 개구리 다리.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저런 것들이 중원 팔대진미.

정상적인 요리는 하나도 없어 정확히는 팔대괴식(八大怪食)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말이다. 

‘대체 왜 사람이 먹지 못할 것같은 부위만 먹는 건지···.’ 

그러니 그녀가 내 입안의 혀처럼 굴고 있지만, 다 꿍꿍이가 있는 행동. 

그녀는 아마도 내 웅장 요리를 어깨너머로 배우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이헌 태감이 직접 붙여준 사람이니 태감도 약간 묵인을 하는 듯도 했고. 

그녀가 몇 번 웅장 만드는 것을 봤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봐서는 어깨너머로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양인데, 지금까지 그녀가 봤던 레시피와는 전혀 다를 테니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마 조금만 더 살피면 웅장 조리법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전에 하던 놈과 전혀 다르니 당황할밖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정화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조리법이라 놀란 것이오?” 

“예? 죄, 죄송합니다!” 

나에게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그녀가 아까 말한 바로는 그녀의 전문 분야는 증(蒸). 

곧 찜 요리. 

웅장은 일종의 찜 요리의 끝판왕 같은 것이니 그녀는 지금 무림인으로 치면, 내 무공을 보며 오의를 깨우치려고 하는 상태랄까? 

이헌도 궁에 웅장을 요리할 요리사가 없다고 했었다니까, 현재 궁의 웅장 요리사 티오가 난 상태이니 배우기만 한다면 그녀의 미래는 탄탄대로일 것이었다. 

그러니 아마 이헌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자원하거나 이헌이 직접 붙여준 사람이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태감님, 감히 주제넘게···. 귀한 것에 눈독을···.” 

“요리사!” 

태감이라 부르는 소리에 버럭 화를 내자, 내가 요리법을 훔쳐 배우는 것에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조아리는 정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아, 화난 건 아니오. 크흠.” 

“예?” 

화난 건 아니라는 말에 그녀가 당황했다. 

-부글부글부글. 

아까 올린 재료들이 나와 그녀 사이에서 끓어오르고, 여전히 엎드려 내 눈치를 보는 정화. 

꽤 쓸만한 능력을 보유한 부주방이나 조리장급 요리사. 

내가 웅장의 요리법을 전수해주면 승승장구할 것이니. 뭐 좀 알려주고, 청와대 조리실에 꽌시 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맥 라인을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전생이라면 유행의 선도는 강남이나 이런 곳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이 시대 유행과 요리문화의 시작은 누가 뭐래도 황실. 

‘온 김에 개인 정보 루트 하나 뚫어두면 나쁘지 않을지도?’ 

눈치를 보는 정화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원하면 내 웅장의 요리법을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예? 저, 정말이십니까? 그렇게 해주신다면 소첩이 태감께 아니, 요리사님께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불에 뛰어들라면 들것이고, 이 몸이라도 바치라면 바칠 것···” 

“어허! 그 무슨 소리요!” 

그렇지 않아도 여난이라는 말에 마음이 힘든데 갑자기 몸이라니, 화가 날 수밖에. 

내 분노에 내 관모와 관복으로 그녀의 시선이 움직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그녀의 음성과 이어지는 사과. 

“···아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신첩이 미쳐서! ” 

‘하지마! 하지마! 사과하지 말라고!’ 

그녀의 사과에 가슴이 더욱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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