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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178/344)

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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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와 재료들을 잔뜩 때려 넣은 국물이 끓기 시작하자, 국물은 캐러멜라이징된 설탕과 계피 노두유 등의 영향으로 천천히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솥에서 솟아오른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를 머금은 김이 주방 전체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향이 무척 좋습니다.] 

[웅장이 이렇게 좋은 향이 나는 요리였습니까?]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뿜어지는 향에 수군거리는 여궁(女宮)들. 

-쪽. 

“이정도면 충분하겠군.” 

숟가락으로 그 국물을 살짝 떠 맛을 보자 느껴지는 달달하고 상큼한 맛. 

거기에 향신료들이 어우러진 깊은 향. 

솥에 곧바로 웅장을 던져 넣었다. 

-첨벙. 첨벙. 첨벙. 

-부글부글 

용암처럼 끓는 갈색의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웅장. 

웅장이 가라앉으며 핑크색의 웅장이 천천히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물드는 웅장을 살피며 정화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이걸 여섯 시진 삶을 것이오.” 

“여섯 시진 알겠습니다.” 

정화에게 설명하고 국물 위로 웅장이 떠 오르지 못하게 돌로 누른 후, 솥을 나무로 된 뚜껑으로 덮었다. 

나무 뚜껑을 덮고, 중 불에 열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 

향신료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넣고 이리 긴 시간 삶는 것은 모두 곰 발 밑창 특유의 냄새와 질식 식감 때문이다. 

곰고기는 특유의 강한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곰 발에서는 그것과 더불어 특유의 구린내가 나는데, 모두 그것을 제거하기 위함. 

거기에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면 장시간 조리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이미 일차적으로 손질할 때 약한 불에서 웅장을 삶으며, 곰 고기 냄새의 원인인 기름을 충분히 빼주어서 냄새 대부분은 제거했지만, 이렇게 이차적으로 향신료에 절이듯 담가 남은 잡내를 제거해주며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곰이란 동물이 발로 똥을 싸는 것도 아닌데 왜 발에서 구린내가 날까? 분명 중원산이라 그렇겠지? 국산은 안 그렇겠지? 그리고 뭐? 오른발로 꿀과 과일을 주워 먹어서 달콤하고 향긋해?’ 

그렇게 웅장에 웅도 모르고 헛소리하는 놈들 잡아다, 그 구린 냄새를 맡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정화의 물음이 들려왔다. 

“그동안 따로 준비할 것은 없겠습니까?” 

“나중에 밀가루와 청경채를 준비해 주시오. 아 겨울이라 청경채는 없으려나?” 

“아닙니다. 강남에서 배로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 이따가 준비하겠습니다.” 

역시 황궁이라 그런지 한겨울 청경채를 강남에서 배로 운송해왔다는 저 패기. 

하긴 중국 사대미녀 중 하나인 양귀비 그 여자도 리치를 좋아해, 송나라 이전 시대인 당나라 시대에 말로 리치를 배달했다니, 여긴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였다. 

“알겠소.” 

잠시 숨을 돌리려 부뚜막에 앉자, 갑자기 눈앞에 내밀어지는 허연 것. 

뭔가 싶어 허연 것을 살피자 정화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내게 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요, 요리사님. 어, 어찌해야 제가 우, 웅장 요리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제가 우, 웅장 요리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보았던 방법보다. 이것이 더 맛이 있을 것이 부, 분명합니다. 꼬, 꼭 배우고 싶습니다.” 

무척이나 긴장된 정화의 표정. 

정화가 저리 안달복달하는 것은 내가 아까 원하면 웅장의 요리법을 가르쳐주지 못할 것도 없다고 했기 때문. 

그러나 확답은 하지 않았기에 저리 안달복달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보던 방법이 아니고 새로운 방법에, 같은 요리사인 자신이 봐도 맛이 어느 정도 그려지니 더욱 안달하는 것. 

전생의 웅장을 조리하는 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보통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은 곰 발을 땅에 묻어 살짝 드라이에이징해, 닭과 돼지고기와 함께 삶는 과정을 거쳐 만드는 것. 

곰 발을 묻어두는 이유는 발효로 특유의 조직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인데, 이 과정만 삼사일은 걸리고, 삶아 손실하고 냄새 빼는 과정 또한 그 정도 시간이 걸리니, 곰 발바닥 한번 먹으려면 보름은 기본인 그런 방법이었다. 

그래서 중국 고사에 보면 아들에게 왕위를 강제 계승 당하는 왕이, 죽기 전에 웅장을 먹고 싶다며 시간을 끄는 꼼수를 부리다가 목이 떨어지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현대까지 내려오자 조리법이 꽤 많이 개선되었고, 지금 내가 만드는 방법은 꾸준하게 개량되어 현대에서 쓰는 방법. 

전통적 방법이 곰 발을 살짝 드라이에이징해 손질하고, 닭과 돼지의 국물에 삶아 잡내를 제거해 오향을 가미한 소스를 뿌려 먹는 방법이라면, 현대의 방법은 오향 그 자체에 곰 발을 삶아 잡내를 제거해 풍미를 끌어올리는 것이라 보면 되는데. 

아마 전생 한국의 족발집 사장님들이 보시면, ‘너 이 새끼 웅장 만든다고 해놓고 왜 족발 삶듯이 삶냐?’라고 하실 수 있는 조리법이 바로 그것. 

웅장 요리할 줄 모르니 족발 삶듯이 삶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정말 웅장을 요리하는 방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와, 어시 같은 요리와 마찬가지로 솔직히 웅장은 곰의 발바닥이라는 특수성만 있지 실제 요리는 특별할 게 없다. 

콜라겐과 고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짐승의 발. 

한국인들 데려다 맛을 보여주면 하나같이 족발이 아니냐고 되묻는 요리. 

우리나라의 족발이 계피, 회향, 팔각, 화초, 정향인 오향을 넣어 만드는 오향장육에 영향을 받은 요리인 만큼, 서로 간의 유사성이 있기에 착각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그것이 솔직히 웅장. 

그냥 맛보다는 내가 곰 정도는 잡아서 그 앞발을 먹을 만큼 능력을 과시하는 요리라고 보면 되는 것. 

하지만 체면문화가 뚜렷한 이곳에서는 가치가 높으니, 정화는 어떻게 해서든 요리를 배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거 배울 때는 짜증만 났는데, 개꿀인걸?’ 

연화를 삐뚜름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글쎄 어쩔까?” 

그러자 바지춤에 매달리며 간절하게 외치는 정화. 

“요리사님! 가르쳐만 주신다면 제가! 흡!” 

‘아니, 이 여자가 미쳤나. 바지 벗겨지면 목이 떨어진다고!’ 

일단 바지춤을 부여잡으며 정화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지, 진정하고. 이리 사람이 많은 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웅장 요리는 손질 과정도 중요한 것은 알고 있지 않은가? 가르쳐 준다 해도 이 자리에서 다 알려줄 수는 없는 법. 일단 오늘 일이 끝나고 이야기하세. 알겠나?] 

-끄덕끄덕 

그렇게 정화와 이야기가 대충 끝나고, 여섯 시진인 열두 시간. 

아침이 밝아오고 나서야 여섯 시진의 삶는 과정이 끝이 났다. 

천천히 끓고 있는 솥의 뚜껑을 열어젖히자, 국물에 조려진 웅장이 웅장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이 빛깔. 반질반질 흐르는 이 윤기!” 

“이, 이런 대단한 웅장이라니.” 

“구리로 만들어진 무엇을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건져내는 웅장을 보고 세 요리사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열두 시간 동안 마냥 끓는 것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살짝 물어봤는데, 정화와 함께 나를 도와주고 있는 둘은 정화의 라인이라는 모양. 

그러니 정화가 뭔가를 배워 잘나가면 자기들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칭찬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자, 진정들 하고, 다음은 증이요.” 

요리사들이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이것은 과정의 칠할 정도 온 상태. 

일단 셋을 진정시키고 저녁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요리를 서둘렀다. 

“이제 이것을 한 식경 씩 열 번 쪄주는데, 찌는 사이사이 웅장을 건져낸 국물에 담가 다시 향을 먹여줄 것입니다.” 

다음 과정을 설명하자 나서는 정화. 

자기 전문 분야인 찜인 증이 나오자, 그녀가 나서며 제안했다. 

“요리사님 잠시 쉬시지요. 증은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이니 맡겨 주시면 온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내 살필 테니 한번 해보시오.” 

돼지고기와 닭 그리고, 마늘, 생강, 파를 삶은 물에서 피어오르는 증기에 삼십 분씩 쪄내고, 중간중간 처음에 만들었던 국물을 먹여주어 안에서 향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이제 해야 할 과정. 

저 정도 하면 고기가 다 물러지지 않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곰 발은 오버쿡 되어 물렁물렁해질지언정 익지 않아 질기면 안 되는 요리. 

중국 역사서에도 곰 발을 덜 익히게 조리한 요리사들이 목이 달아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기록되어 있는데. 전 검룡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이었다. 

그렇게 여섯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과정이 얼마 남지 않았고 저녁 시간도 가까운지라 이헌 태감을 부르기로 했다. 

“이헌 태감 어른을 불러주시오. 이제 마지막이오.” 

“알겠습니다. 요리사님.” 

정화의 지시에 사람 하나가 태감을 부르기 위해 뛰고, 막 마지막 찜을 끝낸 정화가 곰 발을 찜기 밖으로 꺼내자. 

솥에서 꺼낸 족발의 냄새가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젓가락을 꺼내 꾹 찌르자 쏘옥 하고 기분 좋게 들어가는 젓가락.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만큼 아주 부드럽게 익은 상태였다. 

“됐소. 잘했소. 마지막 과정을 준비하겠소. 청경채를 소금물에 데쳐주시되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게 준비해 주시고. 밀가루와 계피, 회향, 팔각, 화초, 정향, 소흥주, 노두유, 사당을 준비해 주시오. 아, 계피, 회향, 팔각, 화초, 정향은 갈아서 준비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요리사님.” 

은으로 된 접시에 데친 청경채를 예쁘게 모양을 내서 깔고, 그 위에 웅장 두 개를 올렸다.

“자르지 않으십니까? 요리사님?” 

잘라서 편으로 내가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정화. 

그러나 그러면 호쾌한 멋이 사라지고 내가 만든 것은 연양처럼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만큼 부드러우니 상관없었다.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게 만들었으니 괜찮소,” 

“여, 역시.” 

이제 최후의 과정 소스. 

소스는 웅장을 끓인 국물과 다를바 없었다. 

다만 이미 계속해서 웅장을 끓인 국물은 곰 발에서 빠져나온 잡내가 남아있을 수 있으니 소스를 새로 만드는 것일 뿐. 

설탕을 녹여 캐러멜라이징하고 물과 노두유, 소흥주를 넣고 오향가루를 적당히 배분하는 것으로 기본은 완료. 

이것이 끓어오르면 물에 갠 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드는 것. 

소스가 완성되고 식지 말라고 잠시 찜기에 넣어둔 그릇을 빼내어 걸쭉한 구릿빛 소스를 호쾌하게 뿌려주자, 구릿빛 곰 발에 꼭 꿀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습이 된 웅장. 

그 먹음직한 모습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향에, 식탐 많게 보이는 여궁(女宮) 하나가 참지 못하고 입에서 침을 주르륵 흘려버렸다. 

-츄릅 

그리고 그때 이헌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와 물었다. 

“준비가 끝났는가?” 

“예, 어르신 이제 막 끝났으니 바로 태후께 가져가시면 됩니다.”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헌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믿겠네. 이제 내가 할 일이 남았구만.” 

“잘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길지는 않을 것이야. 자, 가자꾸나.” 

이헌의 말에 궁녀 하나가 작은 상에 웅장이 담긴 접시를 올린 채 그릇으로 덮어 재빨리 이헌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피곤으로 찌든 여궁들이 하나씩 부엌을 청소하고 사라지자, 남은 것은 웅장 한 접시와 나 그리고 정화. 

-꼬르륵 

갑자기 울리는 배꼽시계. 

생각해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요리만 만들었으니 배가 고픈 것은 당연했다. 

‘무슨 궁이 일하는데 밥도 안 챙겨주냐.’ 

궁 인심 참 더럽다고 생각할 때, 슬그머니 사라졌던 정화의 새끼 요리사가 품에 무엇인가를 안고 들어왔다. 

“옥향아, 가져왔느냐?” 

“예, 정화 언니.” 

옥향이라는 채소 손질하는 여자가 품에 안고 있던 보자기를 펼치자 거기서 드러난 것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만두. 

“시장하실 듯하여 준비하라 일렀습니다.” 

역시나 센스있다고 생각하며 얼른 만두를 하나 집어 들었다. 

“황궁 근처에 가장 맛있는 만둣집에서 사 왔습니다.” 

“고맙소. 마침 배가 고팠는데 다행이오.”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마자, 배가 고파 얼른 만두를 베어 물었다. 

그러자 입안 가득 양고기 육즙이 가득 느껴지고, 허겁지겁 만두를 삼키자 어느새 사라진 만두. 

허기를 한숨 돌리자 그제야 시선이 느껴졌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안 드시오?” 

“아, 먹어야죠.” 

둘도 만두를 하나씩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남은 하나의 웅장은 주인이 없는 상태. 

혹시 몰라 하나 더 준비한 웅장이지만, 태후가 대식가가 아니라면, 곰 발 두 개면 그녀에게는 충분할 것이었다. 

“아, 먹는 김에 저것과 같이 먹읍시다.” 

“저것이라면?”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웅장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는 둘. 

“우, 웅장을 말입니까?” 

“저, 귀, 귀한 것을!” 

나는 찜기에 올려진 웅장을 꺼내 들어 젓가락으로 썩썩 잘라 사 등분 한 후, 둘에게 한 조각씩 나눠 주었다. 

“어차피 태후께서는 두 개면 충분하실 테니, 이건 남을 것이니 상관없을 것이오. 웅장도 내가 구해온 것이니까 말이오.” 

“이, 이것이···.” 

난감해하는 둘. 

그러나 그 난감함은 잠시였다. 

난감함보다 맛이 어떤지 궁금했는지, 둘이 웅장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던 것. 

그렇게 나도 간만에 족발이라도 뜯으며 전생의 향수나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웅장을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청운이!” 

이헌 태감이 헐레벌떡 부엌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나를 불렀다. 

“어떻게 잘 되었습니까? 남궁현을 풀어주셨습니까?” 

웅장을 내려두고 벌떡 일어나 묻자 그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허억···. 허억···. 크, 큰일이네!” 

“예?” 

갑자기 큰일이 났다는 이헌. 

그의 큰일이라는 말에 불현듯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 설마? 그건 아니겠지? 전생에 고대에 웅장 요리 잘못했다가 목이 떨어진 요리사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지만, 그건 중원 프리미엄 아니겠어? 칠 거면 애초에 가두지도 않았겠지.’ 

전생에 이 요리를 배우면서, 호텔 부주방장이 우스갯소리로 한두 번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지만, 그건 중원식 과장법 아니겠느냐고 생각할 때. 이헌이 마지막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태, 태후께서. 그, 그자의 목을 치라 하셨네.” 

“예?!” 

‘아니, 이게 진짜라고? 대체 중원은 왜 이럴 때만 진짜야?’ 

검봉이 칼을 들고 황궁에서 날뛰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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