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밀사(樞密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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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자(大舅子)? 그자가 네 대구자였단 말이냐?”
태후가 묻고 있었지만, 황당한 전개에 전혀 대답할 수 없었고, 뭔가 툭 하고 미는 느낌에 이헌을 다시 바라보자 떨리는 그의 턱.
어쩔 수 있나 태후가 묻고, 태감이 재촉하는데, 대답해야지···.
“마, 맞습니다. 태후마마. 크흑.”
대답의 마지막에 흘러나온 울음은 진심 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 상황에···.
그렇게 내 대답은 들은 태후.
그녀가 약간 이런 고얀 놈을 봤나 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허어, 그러면 네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
“예?!”
“네, 분명히 나를 위해 곰을 잡아 요리해왔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네 대구자를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
날카로운 지적.
역시 섭정하는 태후쯤 되니 정치 감각이나 눈치가 남다른지, 나와 태감의 급조한 변명의 맹점을 지적하는 태후.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필살기.
나는 무림의 고수가 최후의 절초를 시전 하는 마음으로 아끼고 아꼈던 내 최고 패를 꺼내 들기로 했다.
이러다가 누굴 구하기는커녕 같이 목이 떨어지게 생겼으니까 말이다.
‘제발 통해라! 통해!’
-쿵
‘아, 무릎!’
액션감있게 무릎을 바닥에 쿵 하고 찍은 후.
다시 태후께 머리를 조아리며 내 목 잘림 방지권을 꺼내 들었다.
“비록 제가 한낮 비루한 요리사의 몸이지만, 얼마 전 연성공을 형님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형님의 말씀에 깨우친 바가 있습니다.”
“여, 연성공?”
“연성공!?”
태후와 태감이 연성공이라는 말에 놀라고, 내 말이 이어졌다.
“형님께 가르침 받은 대로라면, 공자님의 가르침으로는 나라의 큰 어르신 태후님은 가문으로 치면 어머님이나 마찬가지. 어머니가 병환을 앓고 계시다는데, 어찌 자식 된 도리로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이 효심을 표현할 길이 없어 곰을 잡아 요리해 올린 것인데, 어쩌다 보니 처, 처의 오라비인 대, 대구자가 잘못된 음식을 올려 옥에 갇힌 것을 알게 되어 감히 아뢴 것일 뿐. 결코 태후님을 속이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효심을 이 자리에서 목숨으로 증명하겠나이다!”
뭔가 개소리를 잔뜩 털어냈지만, 뒤의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털어댄 주댕이의 포인트는 내가 연성공의 의형제라는 사실.
중원의 거의 모든 황실이 우대하는 공자의 가문, 그 가문을 대표하는 연성공의 의형제니 좀 봐달라는 그런 말인 것.
-쿵!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닥에 머리를 처박자 들려오는 태후의 당황한 음성.
“저, 저 아이를 막거라!”
“이, 이 사람 태후님의 전에서 피가 웬 말인가!?”
“그, 그도 불충이니 이 목숨을!”
이헌이 나를 붙잡았지만, 내가 다시 한번 억지로 바닥에 머리를 박으려고 하자 옆에서 궁녀들까지 뛰어들어 나를 붙들었다.
‘이러다 진짜 뒈지겠구나···.’
너무 액션 연기에 심취했던지 머리가 어지럽고, 이마가 살짝 찢어졌는지 콧잔등에 흐르는 피.
그런 내 귓가에 태후의 물음이 들려왔다.
“네, 네가. 여, 연성공의 아우였단 말이냐?”
“형님의 이름에 폐만 끼치고, 이 못난 아우 이리 갑니다. 태감 어른 말리지 마시옵소서 제, 이 효심을 태후께 목숨으로 증명해···”
“그만! 콜록!”
태후가 급하게 소리치다 기침까지 하고, 나도 저러다가 저분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몸을 멈추자, 태후가 한참 목을 가다듬더니 되물었다.
“크, 크흠. 네가 연성공의 아우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감히 이 자리를 모면하고자 한 말이면 네가 구하고자 했던 그자와 나란히 성문밖에 목이 걸릴 것이니라.”
태후께서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증인이 있었다.
이미 한 명은 죽어버렸지만, 다른 한 명이 남아있는 것.
눈에서 눈물을 찔끔 쥐어짜며 대답했다.
“제가 형님과 의형제를 맺는 자리에 전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사마광과 추밀원(樞密院)의 추밀사(樞密使)가 범순인(范純仁)이 있었습니다.”
“사마광은 얼마 전 죽었으니. 네 말을 보증해줄 사람은 추밀사뿐이구나. 시선태감은 범순인이 퇴청했는지 확인하고, 그가 있으면 어서 불러오라!”
“예! 태후마마!”
그렇게 바닥에 조아린 상태에서 한 한식 경쯤 지났을까?
차가운 돌바닥에서 느껴지는 냉기와 저려오는 다리에 다리의 감각이 사라져 올 때쯤.
태후전 밖에서 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추밀사와 시선태감 들었사옵니다.”
“어서, 들라 해라.”
그렇게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람이 안으로 들오는 기척이 나더니, 한번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후마마 부르셨사옵니까? 추밀사 범순인 마마의 부르심을 받고 찾아뵈었사옵니다.”
“오, 그래, 아직 있었군요. 추밀사. 내 다름이 아니라 혹시 저자를 아는가 싶어 불렀습니다.”
“예? 저자?”
범순인의 당황한 물음과 느껴지는 시선.
태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고개를 들라.”
그렇게 태후의 목소리에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내 앞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그리고는 연이어 조금 당황하고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자네? 자네가 어찌 여기 있는가? 꼴은 왜 이렇고?”
“어, 어르신···. 크흑···.”
나는 괜스레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추밀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울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태후의 당황한 물음.
“추밀사 혹시 아는 자, 입니까?”
태후의 물음에 추밀사 범순인도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알다마다요. 얼마 전 고려의 왕족이 찾아와 그를 맞으러 갔을 때, 공가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연성공과 의형제를 맺었고 제가 사마광과 그 자리에 입회하였지요.”
“그것이 정말이란 말인가요!?”
태후의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
거기에 범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변호해주려는 듯 나섰다.
“그럼요. 연성공의 아우이니 제 아우와도 같은 자라 할 수 있는데, 혹시 태후께 큰 죄를 범하였습니까? 이자가 그럴 위인이 아닌데? 아니, 그런데 자네 어찌 환관의 옷을 입었는가?”
그러자 태후가 갑자기 아주 온화한 얼굴로 표정을 바꾸더니.
우리 쪽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 죄라뇨. 내가 감풍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시선태감에게 전해 듣고, 저 추운 눈산에 가서 곰을 잡아 요리해 보냈다기에 상을 주려고 불렀습니다.”
“오, 웅장을 올렸나 보군요? 제가 공가에서 이자의 요리를 맛보았지만,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는데, 만족하셨습니까? 태후마마?”
“물론입니다. 그전에 웅장을 올린 놈들을 잡아다가 다 목을 치고 싶을 만큼.”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싶다는 태후의 말에 흠칫 놀라자, 범순인이 웃으며 화답했다.
높은 분들의 개그인 모양.
“하하, 저도 공가에서 이자의 음식을 먹고, 집에 돌아와 요리하는 하인들에게 화를 좀 냈었지요.”
그렇게 둘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끝나자.
태후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시 물었다.
“자, 그러면 태후는 나라의 어머니나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이 어머니가 자식에게 무슨 상을 내려야 할까요?”
세상 따듯하고 다정한 눈빛이었다.
중원 국교의 힘은 역시나 막강했다.
***
태후가 상을 내린다고 했지만, 괜히 태감 자리라도 하나 내준다고 할까 봐 극구 사양하고 범순인을 따라 뇌옥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이분이 추밀사니, 병권은 이분이 꽉 붙들고 있다고···.
그러니 뇌옥도 이분의 부하들이 관리하는 것이라는 말.
그와 함께 뇌옥으로 향할 때, 그가 내 꼴을 보고 태후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기에 대략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아니, 그러면 나를 찾을 것이지. 어째서 그리 복잡하게 일을 만들었는가?”
“예?”
내 설명이 끝나자 답답한 표정으로 말하는 범순인.
그의 말에 그게 무슨 말이냐는 뜻으로 묻자 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뇌옥이야 당연히 내가 금군을 통해 관리하니, 나에게 찾아왔으면, 밖에서 아무나 하나 잡아다 넣고, 그자를 빼내 주었을 것 아닌가? 아니, 우리가 이런 사이였단 말인가? 내 자네를 내 친동생처럼 생각한다고 했거늘.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나를 찾았어야지.”
뭔가 무척이나 대담하고 저래도 되나 싶을 것 같은 방법.
저게 정말 가능한 것이냐고 물었다.
“예? 그, 그렇게도 됩니까?”
“어허, 이 사람. 아직 조정을 잘 모르는군, 목이 잘리는 것을 태후께서 볼 것도 아닌데, 누가 잘리든 하나만 잘리면 되는 것이네. 잘려서 피를 뒤집어쓰면 그게 거지인지, 죄인인지 알게 무엇인가?”
‘헐··· 내가 너무 상식적으로 생각한 것인가? 여긴 ‘중원’인데?’
그의 대담하고 심플한 방법에 영혼이 전율했다.
나도 현지화 패치가 상당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원본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
본토인의 감성은 내가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아무튼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바로 나를 찾아오게. 멀쩡한 사내가 태감의 옷까지 입고···. 연성공이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나. 크흠.”
그의 일침에 가슴에 폭포수 같은 눈물이 샘솟고, 동시에 가슴과 함께 이마도 아려왔다.
그리고 걸친 환관의 옷이 죄수복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모두 삽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바로 옆에 펜션이 있었는데, 혼자 옆에 정글에서 생존다큐를 찍고 있었던 것.
‘그아아아악!’
마음속으로 비명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
범순인을 따라 뇌옥이 위치한 궁의 북문 밖에 도착하자, 이미 이곳은 아수라장이었다.
합참의장급 인물이 갑자기 교도소에 나타났으니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미리 태후가 사람을 보내 언질을 보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들이닥쳤으면 어떤 꼴이었을지 눈에 선한 그런 모습.
뇌옥 앞에 도착해 추밀사가 우리를 맞기 위해 도열 한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뇌옥을 맡은 자가 누군가!?”
“지, 지휘사 배, 백현우. 접니다!”
번개같이 튀어나온 중대장급인 지휘사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도 한참 건너뛰고 합참의장.
합참의장 사열이니 영혼이 나가버린 눈동자.
“그래, 미리 이야기했던 죄인은 어디 있나?”
“저, 저쪽에 있습니다!”
이등병처럼 대답하는 중대장.
그를 따라 풀려난 죄인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거적때기 위에 한 남자가 구겨져 있었다.
태후가 먼저 사람을 보내 준비시켜 그런지, 뇌옥에서 풀려나와 입구에 쓰레기마냥 버려져 있던 것.
‘죽었나?’
미동도 없는 모습에 당황해 달려가 그를 살피자, 검봉의 냄새와 비슷한 오래된 청국장의 냄새와 함께, 앙상하게 남은 뼈.
“이보시오. 괜찮소? 정신 좀 차려 보시오!”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는지 이대로 며칠만 지났으면 이대로 숨이 끊어졌을 그런 모습이었다.
분명 제갈각 숙부께서 기름칠도 했다는데, 이건 아니었다.
‘이 새끼들 돈만 받아먹고! 내가 다 고자질해버린다!’
개고생까지 해서 구해낸 사람이 걸레짝이라는 사실에 솟아오르는 깊은 빡침.
“아니, 어찌 사람을···.”
-빠악!
“끄허업!”
내가 범순인을 믿고 항의 하려 했지만, 먼저 나선 범순인.
그가 소리를 지르며 중대장을 쥐잡듯 잡기 시작했다.
“뇌옥에 죄인들에게 지급되는 식량이 있을 터인데, 죄인이 왜 저런 모습인가! 저건 한 달은 굶은 모습인데! 죄인들에게 들어가 식량을 빼돌리기라도 한 것인가!?”
“아, 아닙니다!”
“아니, 그런데 어찌 저런 몰골이란 말인가?”
“그, 그것이 저도···”
“뇌옥을 맡은 자가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퍽!
역시 중원이라 그런지 그냥 냅다 두들겨 패는 추밀사.
대충 그가 알아서 하겠지 싶고, 아무래도 빨리 따듯한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아서 검봉의 오빠를 둘러업으려 하자 추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이 뭐하나?”
“예? 아니, 빨리 옮겨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빨리 가서 따듯한 곳에 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물음에 대답하자, 추밀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를 자네가 왜 업나? 이놈이 업을 것이니 이리 오게.”
“예?”
그렇게 중대장의 등에 업힌 검룡 남궁현.
북문에서부터 서문을 지나 제갈가까지.
뇌옥에는 죄수를 호송하는 마차뿐인지라, 편안하게 업어서 이동하라는 추밀사의 지시에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헉헉. 고, 공자님. 어, 얼마나 남았습니까?”
지휘사가 숨넘어갈 것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뒤에는 같이 숨넘어갈 것 같은 십여 명의 병사들이 따르는 상황.
“거의 다 왔습니다.”
그의 말에 대답하고 그의 등을 살피자, 지휘사의 등에서 땀과 열기가 올라가서 그런지, 그의 등에 업혀 있던 검룡 남궁현이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잠시만 기다리십쇼. 추워하는 것 같아서 뭘 좀 덮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겉에 걸친 털옷을 벗으려 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고, 공자님. 다, 다른 놈들이 벗을 것입니다. 뭣들 하느냐? 너 너, 거기 두 놈, 어서 벗어서 업혀 있는 죄수님께 덮어주거라. 헉헉.”
그렇게 두 병사가 우거지상으로 자기 겉옷을 벗어 남궁현에게 덮어주고, 눈을 뜬 남궁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정신이 드시오?”
“여, 여기가. 어, 어디입니까?”
“내, 그대를 구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대답하자, 남궁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내, 아까 옥에서 끌려 나오면서 들었습니다만, 내 매부 덕에 내가 풀려난다고 하던데, 그가 당신입니까?”
왠지 나를 훑는 것 같은 눈동자.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으면서도 뭔가 똘기어린 서늘한 그의 눈동자에 왠지 등줄기가 서늘했다.
‘아, 이 새끼 동생을 위해서 슥삭도 서슴지 않는 놈이었지?’
이 오해는 반드시 풀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