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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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서늘한 눈빛을 대하니 왠지 움찔하는 몸.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내가 움찔하자, 지휘사의 등에 기운 없는 모습으로 늘어진 채, 남궁현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혼례를 올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뭔가 무척이나 자책하는 모습.
‘이거 이대로 두었다가는, 제갈가에 가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매부 찾아내라고 할 수도 있겠구만.’
그가 괜히 제갈가에 가서 입을 잘못 놀리지 않게 미리 설명해야 했다.
잘못하면 그의 입놀림 때문에 아내와 영영이에게 또 밤새 추궁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그러니까. 도, 동생분은 혼례를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예?”
“구, 궁에서 조금 오해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관원들이 일을 처리하다가 실수한 모양입니다. 왜 관원들 일 처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느리고 정확하지 않고? 그래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황후만 오해했고, 사선태감인 이헌이 급조해서 만든 관계.
궁 안에만 계시는 분이니, 오해가 밖으로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기에 대충 둘러댔다.
‘살다가 황후를 만날 일이 또 있으려고? 그분이 입이 싸서 소문을 낼 분도 아니고···’
나중에 사선태감에게 혹시라도 궁 밖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게 부탁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도 대충 우리끼리 급조해서 만들어낸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언질을 주면 알아서 막아줄 터.
“그렇습니까? 뭔가 잘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오해라면 다행입니다. 여동생의 혼례. 먼발치에서라도 꼭 보고 싶었거든요. 혼례도 못 보고 죽는가 했는데··· 큭.”
그간 뇌옥에서 설움이 복받치는지 아랫입술을 집어삼키는 남궁현.
드러난 그의 맨발을 병사들이 벗어준 겉옷으로 감싸며 그를 위로했다.
“이리 풀려나셨으니, 여동생의 혼례 꼭 보실 수 있을 테지요. 기운 내십시오.”
내 위로에 고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남궁현은,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르고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나저나 그러면 그쪽은 누구십니까? 저를 구하신 분이 당신입니까? 그리고 제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제 처소는 동문 쪽에 있는데 이쪽은 아닌 듯한데?”
이제야 자기 매부가 아니면 내가 누구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걱정되었던 모양.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제갈세가의 접각부 류청운이라 합니다. 지금 가는 곳은 동경의 제갈세가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했지만, 남궁현은 내 이야기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라 나도 같이 놀랄 지경.
“제, 제갈!? 서, 설마 그러면 고모님이? 그러면 지금 고모님 댁으로 가는 것입니까? 아, 안 됩니다. 고모님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독고가에서 알면 가만 있지는 않을 텐데 어찌 출가하신 고모님께 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자기 동생과는 다르게 동경의 제갈세가인 제갈각 숙부님 댁이 고모님 댁이라는 것을 떠올렸는지, 그가 갑자기 멀쩡한 사람처럼 몸을 움직여 지휘사의 등에서 뛰어 내리려 했다.
그리고 그의 버둥거림에 지친 지휘사가 자빠질 뻔하는 바람에 병사들이 달려들어 지휘사를 부축했다.
“허억 허억. 아이고, 진정 좀 하시오!”
지휘사의 짜증 섞인 비명.
남궁현이 저러는 것은 아마 고모님이 관계되면 혹시라도 독고가에서 항의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추밀사가 뒤를 봐주기로 한 이상, 만약 항의가 들어온다면 뇌옥에서 남궁현을 핍박한 간수 놈을 잡아다가 역공을 취하면 될 일.
남궁현이 투옥되는데 연관된 자들도 다 잡아다 증좌를 얻으면 되니 상관없었다.
분명 추밀사에게 부탁하면 없던 죄도 만들어줄 모양이었으니까.
그분은 분명 그러고도 남을 분이셨다.
일단 날뛰는 남궁현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말을 꺼냈다.
그가 제일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동생 보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진정하십시오.”
내 한마디에 뭍에 올라 펄떡거리던 물고기 같던 그가 갑자기 숨을 멈춘 것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한마디.
“소, 소소가 말입니까!? 소소가 제갈가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단 말입니까!?”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린 것같은 그런 목소리로 그가 물어왔다.
“예, 오라버니를 구하겠다고 먼 길을 찾아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제발 좀 진정하시오.”
“어, 어째서···. 가문은 어쩌고···.”
그는 몇 마디를 뇌까린 후 그대로 조용해졌고.
잠시 후 우리는 목적지인 제갈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접각부님!”
“접각부님 이 무슨 일 입니까?”
사람을 업은 병졸들이 제갈가의 문 앞에 들이닥치자 무사들이 내 이마에 눌어붙은 핏자국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진정들 하게, 내 다친 것은 아니니. 일단 지휘사께 병자를 넘겨받고, 누구 은자 있으면 두어 개만 주게 내 안에 들어가서 주겠네.”
두 무사가 남궁현을 넘겨받고, 다른 무사들은 뒤를 돌아 바지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은자는 큰돈이라 혹시 가지고 다닐까 싶었는데, 뒤돌아 바지춤 안쪽에서 은자를 꺼내는 두 무사.
왠지 냄새가 날 것 같았지만, 냄새나고 더러워도 은자는 은자.
각각 하나씩 꺼내든 은자를 받아 지휘사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휘사님. 여기 가는 길에 목이라도 좀 축이시지요.”
“아, 아니. 이런 것을 받으면 저희가···”
지휘사는 거절하는 척을 했지만, 은자를 받아든 주먹은 꽉 쥔 상태.
덕담 몇 마디를 나누고 그를 돌려보낸 후, 곧바로 남궁현을 데리고 세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숙부님의 거처 앞에 도착하자 미리 무사에게 언질을 받은 숙부님과 숙모님이 송 시대 버선인 말(襪)만을 신은 채 눈밭으로 뛰쳐나오셨다.
“성공했습니다. 숙부님.”
“오오, 자네 성공했군! 고생했네. 아니, 그런데 이 모습은? 설마 뇌옥의 시안 이놈들이!”
“현아! 이런 참혹한 몰골이라니···.”
숙부님과 숙모님이 남궁현의 참혹한 모습에 놀라움과 분노를 토해내셨다.
지금 남궁현은 전생 아프리카 빈민촌 거주자처럼 기아에 허덕이는 모습이니 당연한 반응.
이어서 숙부님께서 내 얼굴을 확인하고 물어오셨다.
“자네 이마는 왜 그런가?”
“좀 다쳤습니다. 연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자 들려오는 숙모님의 다급한 목소리.
“현아! 청운, 아이가 왜 이런가요?”
좀 전까지 펄펄 뛰던 사람이 미동도 하지 않기에 살펴봤더니, 무리하게 기운을 빼서 그런지 혼절한 모습.
탈진한 것 같기에 고모님에게 일단 안으로 옮기자고 권했다.
“좀 전에 제갈가로 가면, 고모님께 폐가 될 것 같다며, 갑자기 몸을 움직여 잠시 혼절한 것 같습니다. 일단 따듯한 처소로 옮기겠습니다. 고모님.”
“거기 아무도 없는가요!?”
남매 아니랄까 봐 똑같은 패턴을 밟는 둘.
고모님과 사람을 시켜 남궁현을 옮기라고 시킨 후,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밤을 꼬박 새워 웅장을 만들었고, 목이 떨어질 뻔했던 상황에서 살아나온지라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지만, 남궁현을 저대로 두고 잠이 들면, 안될 것 같았기 때문.
장기간 굶은 사람에게는 물을 마시게 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는데, 내가 잠들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한동안 굶었다고 만두 같은 것을 잔뜩 먹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개고생해서 구했는데 이리 보낼 수는 없지.’
그렇게 부엌으로 이동해 하인들에게 쌀을 갈라 지시하고, 곱게 간 쌀가루로 물 같은 미음을 끓였다.
“혹시 실려 온 공자가 배고프다고 음식을 찾으면, 큰 술잔으로 하나씩만 가져다 먹이거라. 두 시진에 한 번 이상 먹이면 안 되니, 절대로 조심하고 알겠느냐?”
“예, 접각부님.”
일단 첫 미음은 직접 전달하는 것이 좋겠기에 끓인 미음을 가지고 남궁현이 있는 거처로 향했다.
혹시 그사이 깨었으면 뭐라도 먹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
그렇게 죽을 들고 남궁현을 눕혀둔 전각으로 향하자, 저 멀리 처소 앞에 웅크리고 무엇을 훔쳐보고 있는 둘.
누군가 싶어 그 모습을 살피자, 안에서 흘러나온 불빛에 아내와 영영이가 위아래로 겹친 채로 처소 안을 훔쳐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나를 찾아왔을 것인데, 뭔가 재미난 것을 발견했는지, 여기서 뭔가를 훔쳐보고 있는 모습.
“여기서 뭣들···.”
[조용. 가가 조용히 해보세요.]
[노공, 조용히.]
내 물음에 입을 막고 조용히 하라는 둘.
엎어질 뻔한 죽그릇의 균형을 잡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 소소야···.”
“어째서입니까···.”
떨리는 둘의 목소리.
나도 둘의 해후 장면이 궁금해 죽그릇을 한쪽에 내려두고, 영영이, 아내, 나 순으로 문틈을 살폈다.
“다, 알게 되었느냐?”
“예,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검을 잡은 사실을 후회했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된 남궁소소의 말은 금방 격앙되어 외침으로 변했다.
“이, 이런 꼴이 되실 만큼. 아니, 이래도 상관없을 만큼. 모든 것과 맞바꿀 만큼. 제 검이 그리 가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계집아이가 휘두르는 그깟 검이 뭐라고!”
남궁현은 하인들이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혀 흉한 꼴은 면했지만, 갈라진 피부와 마른 입술에서 흐른 피, 퀭한 눈과 앙상히 드러난 뼈마디에 그를 향한 걱정이 비난으로 변한 느낌.
“······”
“어찌 대답하지 못하십니까!?”
-툭 투툭.
격앙된 검봉 남궁소소의 눈에서 눈물이 장대비가 내리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라버니의 처참한 모습을 대하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던지, 움켜쥔 떨리는 양손과 멈추지 않는 눈물.
[훌쩍.]
[흑.]
갑자기 들려오는 훌쩍거리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내와 영영이도 눈물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와 영영이의 눈물을 살피던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그대로 앞으로 쏟아진 우리 셋.
검봉은 우리를 흘깃 바라보더니 재빨리 달려 후원 쪽으로 사라졌다.
아마 그녀의 오빠에게 더는 눈물을 보이기는 싫었던지 자리를 피하는 느낌.
그리고 정수리에 느껴지는 시선.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남궁현에게 말했다.
“아하하. 남궁 공자 그, 죽을 좀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배가 고프실 듯해서···.”
“······”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
훔쳐보다 걸렸지만, 딱히 우리에게 뭐라고 비난하지 않은 남궁현.
아내와 영영이에게 남궁소소를 따라가 보라고 하고, 적당히 식은 죽그릇을 들고 남궁현 옆에 앉았다.
“자 이거라도 일단 드시지요. 얼른 몸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혹시 팔을 움직이기 힘들면 제가 먹여드릴까요?”
“아닙니다. 그 정도는. 이리 신경을 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꽤 굶어서 환장하고 들이킬 듯한데, 힘없이 손을 움직여 숟가락을 드는 남궁현.
남궁소소와의 일 때문인지 그는 기운 없이 멍한 눈으로 손을 움직였다.
급하게 먹으면 제지해야 했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구해왔는데 초상집 분위기니, 신경이 쓰일밖에.
굳이 문제 삼지 않는 훔쳐본 것을, 내가 내 입으로 자인하는 꼴이 될 테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예? 무엇을 말입니까?”
“검 따위가 아니라 소중한 동생을 위해서였다고, 어째서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아마 그 이야기를 바랐을 듯한데.”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을 위해서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난 풍운아인데, 그리 끔찍하게 생각하는 동생에게 왜 듣고 싶은 이야기 한마디 해주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숟가락을 내려둔 남궁현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분명 그것이 소소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저 아이가 저리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저 아이의 검이 어디까지 성장할지가 궁금해, 저만 소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게 정말 맞았는지···. 검의 길이 과연 저 아이가 원하던 길이었는지··· 후회가 되는군요.”
중원에 와서 다양한 바보들을 봐왔다.
딸바보 장인에, 손녀 바보 독왕, 이제 동생 바보란 말인가?
삼 바보를 모아서 모임이라도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느낌.
‘동생 바보. 이 와중에도 동생 걱정이었구만?’
이거 남궁현 생각보다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있나? 부인이 둘인 여심 전문가(?) 내가 나설 수밖에.
“이거 이대로면 치료고 뭐가 안될 것 같으니, 일단 가봅시다.”
잘 먹어야 일어날 것인데, 이리 깨작대서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
죽그릇을 치우고 침상에 누운 그를 이불과 함께 강제로 둘러업었다.
“어, 어디로 가신단 말입니까? 소소가 어디 있는지 아신단 말입니까?”
“아니, 동생분을 그리 아끼시면서, 왜 모르십니까? 뭘 하고 있을지 뻔하지 않습니까?”
보쌈하듯 그를 둘러매고 후원으로 들어서자 바위 뒤에서 검봉을 살피고 있는 아내와 영영이.
그리고 역시나 저 앞에서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일단 둘 옆에 남궁현을 내려두고 물었다.
[아까부터 와서 저러고 있는 것입니까?]
[네, 노공.]
[분위기가 너무 측은해서 다가가지도 못했어요.]
[남궁공자를 좀 살펴주시오. 내가 가보겠소.]
[예, 노공.]
[알겠어요. 가가.]
곧바로 바위 뒤에서 걸어 나가 광년이 처럼 검을 휘두르는 검봉 남궁소소에게 향했다.
몇 걸음 가까워지자 검을 멈추는 남궁소소.
내가 다가서자 재빨리 눈물을 훔친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죄송하네요. 식룡. 제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감사에 대답지 않고 그녀를 향해 물었다.
“길. 다시 찾으셨을 듯한데, 어째서 그리 어지러운 검입니까? 오라버니께 칭찬받고 싶어서 오라버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어 시작한 검일 텐데?”
잃었던 목적을 찾았는데 왜 고민하냐는 내 물음에 당황한 그녀.
당황한 그녀의 입에서 물음이 흘러나왔다.
“어, 어떻게 그것을!?”
‘어떻게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이 팍 왔으니 뻔했다.
내가 전생에 아버지를 돕기 위해, 아버지의 칭찬을 받기 위해 시작했던 요리인 만큼, 그녀도 그녀의 오라버니에게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노력한 것이었을 테니 당연한 결론.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의 입에서 고백 같은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세가를 떠나올 때는, 왜 저를 위해 그런 고난을 짊어지셨는지, 묻고 싶었지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저를 위해 그런 일을 하실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말입니다. 아니, 이곳에 도착하고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잠시 감정을 가다듬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식룡께서 그 밤에 제가 무엇보다 검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오라버니를 뵈면, 무엇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저리 참혹한 모습으로 나타난 오라버니를 뵈니···. 흑···.”
다시금 눈물을 훔치는 남궁소소.
그녀를 향해 제안했다.
그녀도 그녀의 오빠도 아마 서로 같은 것을 바라고 있는 듯했기에···
“우리 같은 사람은 말로 전하기 힘들 때 자기의 재주를 보여주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말로 전하지 못할 것은 요리로 전하지요. 기쁨과 슬픔이 제 모든 감정을 그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라버니께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보여드리지 못했던 검, 한번 시원하게 펼쳐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러면 마음이 정리되어 다시 오라버니를 만나도,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실 수 있을 테지요.”
내 제안에 잠시 망설이던 검봉은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푸르고 시린 검을 하늘로 세우고 외쳤다.
“개천!”
***
겨울바람 소리마저 멎은 조용한 후원.
검봉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검이 눈 쌓인 후원에 조용히 펼쳐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완벽히 몰입했는지, 주변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
그렇지 않아도 삭막한 후원이었지만, 그녀가 검을 펼칠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
어둠도 달빛도 소리도 호흡도.
나는 조용히 물러나 바위 뒤에서 그녀의 검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궁현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어, 아까 내가 있던 자리에 조용히 내려두었다.
그리고 아내와 영영이와 함께 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펼쳐진 검봉의 검술이 끝나고, 그녀가 내가 있던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의 오라버니를 보고 당황한 음성으로 외쳤다.
“오, 오라버니!?”
그리고 들려오는 남궁현의 목소리.
“소소야. 네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물었더냐? 그래, 네 검을 보니. 이 오라비의 모든 것. 아니, 목숨까지도 걸 가치가 있었다고 대답해주고 싶구나. 고맙구나. 이리 성장해 주어서. 만약 다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기꺼이 이 오라버니 너를 위해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오, 오라버니! 흐흐흑···”
그의 대답에 남궁소소가 통곡하며 계수배를 올리며 감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남궁소소의 검술로 모든 것이 사라진 삭막한 후원에 둘의 눈물이 따듯한 온기가 되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