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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旨) (183/344)

성지(聖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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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아무 일 없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절대로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어젯밤에 그렇게 한참을 붙잡고 영혼을 불사르며 설명했고, 본인들도 그리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아내 제갈 청.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다시 설명해야 했다. 

아무래도 자꾸만 걱정되는 모양. 

“궁에만 계시는 태후께서 잠깐 오해하신 것뿐이라는 거 부인도 알지 않소. 그리고 시선 태감께서 궁으로 돌아가시면, 혹시라도 그에 대해서 태후께서 물으실 때, 오해하지 않게 해주실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러자 내 설명을 들은 영영이가, 식사하러 가는 중간에 만나 우리와 합류한 검봉을 바라보며 걱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가가 말씀대로 태후께서 뭐 여기저기 소문낼 분도 아니고, 그나저나 아무리 검봉의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검봉도 문제가 생기면 난처하겠어요.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그러자 잠시의 정적 후 들려오는 검봉의 대답. 

“저, 저는 아무래도 사, 상관없을 것 같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리?’ 

깜짝 놀라 검봉인 남궁 소소를 바라보자 약간 붉게 상기된 얼굴. 

영영이가 그 상기된 얼굴을 보고 눈알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별꼴이라는 듯 말했다. 

“네? 왜 괜찮아요? 잘못하면 가가의 처라는 소문이 날지도 모르는데, 문제가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잘못하면 시집도 못 간다고요! 문제가 있어야지!” 

“맞습니다. 괜찮으면 안 되는 문제입니다.” 

당사자는 상관없다는 데 문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영영이. 

아내도 옆에서 거들었지만, 남궁소소는 거기에 대답지 않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영영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독접께서는 왜 그리 흥분하시는 것인가요?” 

“네?!” 

“아니, 생각해보니 제갈부인께서 당황하고 놀라시는 건 이해하겠는데, 독접이 마치 은공의 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시니 조금 이해가 안 되네요.” 

남궁소소, 검 이외에는 별로 관심 없는 약간 천재 증후군에 걸린 맹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할 줄 아는 모양. 

그녀의 말에 영영이가 목덜미를 잡고 쓰러지려는 모습을 하며 말했다. 

“제가 당연히 그럴 수 있지요! 저도 소! 큽!” 

소처라고 냅다 지르려다가 아내에게 황급히 입을 틀어막힌 영영이. 

아내가 고개를 젓자 영영이는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며 씨근댈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씨근대는 영영이의 옆에서 남궁 소소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은공, 제 오라버니를 구하시려고 태후 앞에서 이마를 찧으며 목숨을 거시고, 환관의 옷을 입어 수치를 감내하셨으며, 밤을 새워 웅장을 요리하신 은혜를 제가 감히 어찌 잘못이라 따지겠습니까. 제가 은공께 잘못을 따질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여장부!’ 

뭔가 도리를 아는 느낌. 

본인이 그렇다면 더더욱 안심.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걱정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넷이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도착하자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어젯밤 잔치의 결과. 

시선태감이 식탁 위에 엎어져 있고, 소동파와 제갈각 숙부님은 둘이 꼭 끌어안고 식탁 밑에서 잠이 들어있었으며, 추밀사 어른은 식탁에 대자로 누워 잠이 들어있었던 것. 

황당한 모습에 넷이 서로 바라보며 당황할 때, 우리 뒤쪽 문이 열리며 숙모님이 안으로 들어와 말씀하셨다. 

“휴···. 병환으로 등청을 못한다고 연통을 넣었으니, 다들 처소로 옮겨야겠구나.” 

그리고 숙모님의 뒤로 무사들과 하인들이 쏟아져 들어와 손님들을 하나씩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아내가 다시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정말 괜찮을까요?” 

“하, 하루 등청 못하는 사이에 별일이야 있겠소. 자자. 안심하고 일단 아침이나 먹읍시다.” 

‘넷이 하루 등청 못한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 조금 불안이 싹트고 있긴 했다. 

*** 

아침 일찍 조회에 참석해야 하는 경조관(京朝官)들은 동트기 전부터 말과 마차 또는 유교자에 올라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의 치세를 돕는 경조관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 황궁의 어전(御殿) 도착해야 했기 때문. 

아침에 황제를 알현하는 조회(朝會)가 해가 막 떠오를 때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들 졸린 눈을 비비며 황궁에 도착해 황제께서 정사를 돌보는 어전에 도착하자, 얼마 안 돼 황제께서 섭정하시는 태후와 함께 어전으로 드셨다. 

그러자 도열한 경조관들의 입에서 일제히 터져 나오는 외침. 

“황제 폐하!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열 살의 어린 황제가 손을 들자 관리들의 외침이 멎고, 열 살 황제의 앳된 외침으로 조회가 시작되었다. 

“시작하라!” 

조회의 시작은 제일 먼저 금일 참석 못한 관리에 대해서 아뢰는 것. 

태감 하나가 오늘 도착하지 못한 관리들의 이름을 황제께 아뢨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금일 예부랑중 소식과 주객낭중 제갈각, 시선태감 이헌, 추밀사 범순인이 병환으로 등청하지 못하였나이다.” 

큰일이 아니고서는 관리들이 황제를 알현하는 조회에 빠지는 경우가 없는데, 넷이나 빠지다니 신기한 일. 

관리들이 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열 살의 황제 뒤에 쳐진 발에서 태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울이라 감풍 때문입니까?” 

“예, 병환이라 했으니, 아마 감풍 때문인 듯하옵니다.” 

“넷에게 약을 보내 살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어진 황제는 관리들의 몸도 살피는 것이니까요. 어찌 생각하십니까? 황상.” 

태후께서는 오늘 아주 기분이 좋으신 듯한 목소리로 제안하셨다. 

그러자 태후의 물음에 새벽같이 일어나 졸렸던지, 황좌에서 꾸벅거리며 졸던 어린 황제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츄릅. 태, 태후마마 뜻대로 하옵소서.” 

“황은이 망극합니다. 황상. 들으셨습니까? 넷에게 감풍에 좋은 약재를 내리고 열흘간 몸을 쉬고 올 수 있게 해주세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어제 조회 후 도착한 몇 가지 문제들과 상소(上疏)들을 아뢰는 것. 

가장 굵직한 일은 겨울이라 감풍과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이 많다는 사실에 구휼미와 약재를 푸는 것. 

그 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조회가 끝을 보이기 시작하자, 관리들의 마음은 이제 조회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오는 관리들도 있지만, 아침 일찍 등청하는 관리들을 위해 보통 조회가 끝나면 궁에서 관리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주기 때문. 

“어제까지 도착한 상소는 이것이 끝입니다. 황제 폐하.” 

그렇게 마지막을 고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관리들의 마음이 모두 오늘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을까에 쏠려 있을 때. 

황제의 뒤쪽에 쳐진 발에서 태후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상?” 

“예?! 예! 태후마마!” 

이젠 거의 황좌에 기대 깊은 잠에 빠졌던 황제가 태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깨며 대답했다. 

보통 때라면 조회에서 졸면 안 된다느니 하는 잔소리를 쏟아내셨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온화한 목소리. 

태후가 다정하게 말했다. 

“실은 제가 부탁이 있어 말입니다.” 

“태, 태후께서 부탁을 말입니까?” 

“예, 실은 제가 좀 재미있는 일을 겪은 터라.” 

“재미있는 일이라 하시면?” 

황궁에만 계신 분이 재미있는 일이라니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황제가 묻자, 이어진 태후의 설명. 

누군가 환관의 옷을 입고 황궁에 침입했었다는 것. 

태후께 웅장을 올리려고 했다지만, 아마 자신의 대구자를 구하기 위함이 분명한 일. 

사사로운 부탁을 위해 황궁에 침입해 일을 벌이다니, 이건 대역죄였다. 

역시 다른 관리들도 그리 생각하는지 참지정사(參知政事) 장둔이 앞으로 나서 머리를 조아리며 고했다. 

“사리사욕을 위해 황궁에 침입하다니, 이는 대역죄! 놈이 벌인 일로 보았을 때, 태후께서는 대죄인의 목을 쳐 동경의 성문 앞에 매달기를 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황제께서 죄인의 죄를 물으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죄인의 목을 치시옵소서!” 

빗발치는 처형 요구. 

관리들의 요구에 열 살의 황제가 고개를 돌려 발 너머를 바라보자, 태후께서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나라의 어머니 태후인 저를 위해서, 곰을 잡아 요리해 바쳤는데, 목을 치라고요?” 

그런 태후의 물음에 이제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장이가 나서 대답했다. 

“놈이 달콤한 세 치 혓바닥을 놀려 태후마마의 심기까지 어지럽혔으니, 혀까지 잘라 엄히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열 살의 황제도 둘의 의견에 그것이 마땅하다 고개를 끄덕일 때, 발 뒤에서 들려오는 태후의 난감하다는 목소리. 

“연성공의 의제(義弟)가 저를 생각해서 한 일인데···. 이걸 어쩌나···. 연성공이 태후는 나라의 어머님이니, 항상 효도에 힘써야 한다고 해서 벌인 일이라는데. 혀가 잘리고 목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여, 연성!” 

“여성공!?” 

황제도 깜짝 놀라고 이어진 관리들의 놀란 외침. 

한림학사와 참지정사의 발언에 한 다리 걸치려고 했던 관리들은 모골이 송연함을 느껴야 했다. 

연성공의 의제의 목을 치는데 한 손 거들었다? 

정적들의 손에 칼을 쥐여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니까. 

잘못해서 먼저 나섰다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모두 당황한 그때 참지정사 장둔이 후다닥 앞으로 뛰어나와 아뢨다. 

“사! 사내가 화, 환관의 옷을 입는 구, 굴욕까지 견뎌내며, 나라의 어머니이신 태후의 감풍을 났게 하겠다고, 산에 올라 곰을 잡아 밤을 지새워 요리해 올렸다는데, 어느 미친놈 아니, 불충한 자가 목을 치라 하겠나이까! 이는 태후마마를 느, 능멸하고자 하는 것. 비단 백 필 정도를 내려 치하하심이 마땅하다 아뢰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뛰어나온 한림학사 장이가 그를 밀어내며 외쳤다. 

“황제 폐하! 사람이 자고로 잘못된 일을 하면 벌을 받고, 무릇 남에게 귀감이 될만한 일을 하면 상을 받는 법. 제서(制書) 내리시옵소서! 비단과 함께 제서 내려 그자를 치하하고, 그 처가와 연성공에게도 제서 내려 치하하시는 것이 마땅하다 사료 되옵니다!” 

“제서를 내리시옵소서 황제 폐하!” 

“제서를 내리시옵소서.” 

제서란 상을 내리는 자에게 하사하는 황제의 성지(聖旨). 

갑자기 목을 치라고 했다가 이제는 성지의 하나인 제서를 내리라는 요구에 당황한 어린 황제. 

고개를 돌려 발 너머를 바라보자, 태후가 발 너머에서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그리하라!” 

어린 황제의 조금 당황하고 위엄있는 외침이 흘러나가자, 관리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연성공의 의제를 맨손으로 보냈다는 사실에 밤새 마음이 불편했던 태후의 마음에 편안함이 몰려들고, 천자의 크신 은혜에 모든 관리가 각자 다른 의미로 몸을 떨었다. 

그렇게 조회가 끝나고. 

천자의 조서를 작성하는 한림원(翰林院)은 상갓집 분위기였다. 

한림원의 최고위 관리인 학림학사 장이와 그다음 위치인 참지정사 장둔이 나중에 반대 파벌에 몰려 목이 떨어질 수도 있을 만한 소리를 했었던 것. 

연성공 의제의 목을 치자 아뢨으니···. 둘의 눈앞이 캄캄했다. 

“태, 태후께서는 어찌 그자가 연성공의 의제라는 사실을 나중에 말씀하셨단 말인가?” 

“이미 일어난 일. 성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자 어서 서두르세.” 

그렇게 둘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지의 작성을 서두르고, 성지가 모두 완성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정작 연성공을 제외하고 성지를 내릴 사람들의 이름과 가문 그리고 위치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 

“아니, 그런데 이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느 가문인지 묻지를 못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어찌 빨리 처리하지 못했느냐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한데 큰일입니다! 태후를 찾아뵐까요?” 

“일단 태후를 찾아뵈세.” 

그렇게 태후를 찾아뵈었지만, 태후도 그자의 이름이 류청운이라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하는 상태. 

태후께서 시선태감이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라고 했지만, 그는 오늘 병환으로 등청하지 않았으니 난처한 상황이었다. 

“어찌할까요?” 

“어찌한다? 아! 그렇지! 생각해보니 이자의 대구자가 뇌옥에 갇혀있었다는데, 그자의 이름을 확인하면, 되겠지!” 

“오호! 그렇군요!” 

그렇게 뇌옥을 통해 알아낸 대구자의 이름은 남궁현. 

“무림의 가문이군요. 남궁이라면 명문 중의 명문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 그 사위도 그리 마음 씀씀이가 깊겠지. 그러면 일단 남궁가와 연성공의 공가에 먼저 성지를 보내세. 그리고 본인에 대한 성지는 황제께 그자를 불러 직접 성지를 내리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세. 그사이에 시선태감 이헌에게 이름을 확인하고, 나중에 써넣으면 되니까 말이야.” 

“하긴 어린 황제께서 성지를 살피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그러면 다 해결되는군요.” 

둘은 성지의 마지막에 황제의 시호를 적고, 옥새를 받기 위해 바람처럼 황제가 거하시는 복녕전으로 향했다. 

잠시 후 복녕전 안쪽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세 번의 소리. 

-쿵. 쿵. 쿵. 

그리고 복녕전에서 돌아오는 둘의 손에 들린 성지의 마지막에는 헌원계도현덕정공흠문예무제성소효황제(憲元繼道顯德定功欽文睿武齊聖昭孝皇帝)라는 황제의 존호 위에 커다란 옥새가 위엄있게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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