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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자(鸽子) (184/344)

합자(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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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어르신이 모두 숙모님의 지휘에 각자의 처소로 끌려들어 가고. 

정리된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기다리자, 아침 식사를 들고나온 것은 하인들이 아니라 뜻밖에도 정화였다. 

제갈가의 하인이 아닌 정화가, 자기 전문이라는 찜 요리 중 하나인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찐 만두를 직접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던 것. 

“아니, 여태 계셨소? 설마 아침까지 준비하신 거요?” 

“예, 헤헤. 요리사님. 제가 조금 미천한 실력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어제 밤새 요리를 만들었는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정화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저 모습으로 보아 웅장 요리법을 가르쳐줄 때까지 제갈가의 노예라도 자처할 모양이 분명했다. 

“아니, 손님으로 오셔서 어찌 아침까지···.” 

“아, 아닙니다. 요리사님. 손님이라뇨!” 

“그러지 말고, 일단 같이 아침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해봅시다.” 

“우, 웅장.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하자마자 웅장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정화. 

웅장 요리는 잘못하면 목이 떨어지는 요리인데. 

무섭지도 않은지, 정말 출세 지향적인 여자였다. 

‘아니, 이 여자는 겁도 없나? 그러고 보니 남궁현 뒤질 뻔한 이야기도 들었을 텐데?’ 

결국 정화에게는 봄이 되기 전까지 틈이 날 때마다 동경의 제갈가에 들리면, 웅장의 요리법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해 주었다. 

웅장 요리법의 대가는 동경과 궁에서 유행하는 요리나 식자재에 대한 정보, 그리고 궁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나에게 알려주는 것. 

거기에 내가 필요할 때 일손을 빌려주는 정도. 

당장이야 큰 의미 없다지만 장투하는 기분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능력도 나쁘지 않고 황실 관련주니, 그래도 묻어두면 평타는 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정부 관련 투자가 폭락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 그것이면 충분하십니까?” 

“그렇소. 그 정도면 충분하오.” 

“정말입니까?” 

“정말이오.” 

“저, 정말?” 

‘아니, 이 여자가!’ 

내 조건에 정말 그 정도면 되냐고 몇 번이나 물은 정화는, 아직 남은 몇 개의 웅장 중 하나를 받고, 손질법 숙제를 내자 왕의 하사품이라도 받은 양 감격하며 돌아갔다. 

그렇게 정화와의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남궁현은 어떻게 지내나 한번 확인해보려 그의 처소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정화와의 이야기로 길어진 아침 식사 때문에 오라버니의 식사를 챙긴다며, 먼저 자리를 뜬 남궁소소가 죽 그릇을 가지고 처소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 남궁 소저.” 

“으, 은공. 여기는 어쩐 일로?” 

아침에는 괜찮았는데, 단둘이 마주치자 놀란 얼굴로 볼을 붉히는 그녀. 

그녀의 붉어지는 볼을 대하자 내 머릿속에 붉은 경고등과 경고음이 켜졌다. 

「여난 경고! 여난 경고!」 

아무리 봐도 남궁소소의 행동이 영영이가 예전에 했던 행동과 비슷했기 때문. 

그동안에는 이 시대 여자들의 반응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적어서, 영영이의의 반응을 보고, 내가 도끼병에 걸린 건 아닌가 의심하곤 했지만. 

현재는 아내와 영영이라는 데이터가 충만한 상태. 

두 여자의 데이터로 가득 채워진 나이 데이터베이스는, 남궁소소의 반응이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인한 부끄러움이라고 맹렬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 그래도 무림의 아가씨니,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겠지?’ 

분명히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했으니, 엉겨 붙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 남궁 공자가 얼마나 회복되신가 해서 들렀소이다.” 

“그,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양손으로 죽그릇이 든 쟁반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이는 남궁 소소. 

“아닙니다. 제가 구해왔으니, 몸이 회복될 때까지 신경을 써야지요.” 

“오, 오라버니는 지금 식사하고 쉬고 계시니 들어가 보셔요.” 

그렇게 대답하고 내 옆을 지나치려는 남궁소소. 

그런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잠깐.” 

“예?!” 

나를 지나치려다가 잠깐이라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남궁소소. 

그녀를 향해 손을 뻗자 그녀가 움찔하더니. 

내 손을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 뒷걸음을 하다가, 뒤에 벽이 느껴지자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저, 저기···. 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 

그녀가 내 행동에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지만, 머릿속의 경고등이 핏빛으로 물들고, 습관대로 손이 먼저 나가 그녀를 오해하게 만든 것 같기에 급하게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남궁 공자가 음식을 남기신 것 같기에.” 

“예?! 에. 웁. 힉.” 

역시나 데이터에 있는 음성을 뱉어내는 그녀. 

혼자 오해해서 부끄럽다는 음성이 분명했다. 

내가 벽치기라도 하면서 ‘남궁 소저, 오라버니 병시중하느라 좀 수척해진 것은 아니오?’ 뭐 이따위 말이라도 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 

요리사로서 남은 음식만 보면 손이 먼저 나가는 버릇 때문인데 말이다. 

‘남긴 음식만 보면 손이 먼저 나가니, 큰일이구만.’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모른 척하면서, 그녀의 손에 든 그릇을 살폈다. 

내가 손님들이 남긴 음식만 보면,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요리사로서의 직업병 때문. 

요리를 남긴다는 것은 손님들이 요리가 맛이 없다고 말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츕. 

“어, 어째서 그걸?” 

먼저 쟁반 위에 그가 남긴 죽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어제 아내와 영영이에게 추궁당하고, 나는 부엌에서 부엌데기처럼 저녁 식사를 해야 했는데, 그때 남궁현의 미음을 죽으로 바꾸라고 한인들에게 전한 상태. 

남궁현을 구해온 지 이제 이틀이나 되었기에 그의 죽을 이제 묽은 죽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기아에 시달렸던 남궁현의 식사는, 이제 물 같은 미음에서 묽은 죽으로 바뀐 상태. 

죽과 같이 먹으라고 간장도 같이 나갔고, 이제 제대로 허기를 달랠 수 있을 텐데, 죽이 남아있다? 

죽이든 남궁현이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 

‘죽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아닌 하인들이 만든 죽이지만, 죽에는 이상이 없었다. 

너무 오래 묵은 쌀이거나 해서 냄새가 나거나 덜 익거나 하지도 않은 것 같은 상태. 

먹기 불편하게 너무 되직하거나 너무 묽지도 않은 환자식으로 나쁘지 않을 죽이었던 것이었다. 

‘보통은 환장하고 먹어야 한단 말이지?’ 

보통 남궁현처럼 기아에 허덕이다가 사람이 음식을 접하면 허겁지겁 먹기 바쁜데, 왜 남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궁 공자께서 어디 다른 곳이 불편하시답니까?” 

“예? 아, 아니에요.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어요. 어찌 그러시나요?” 

“흠···.” 

내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자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일단 남궁 공자를 만나봐야겠소.” 

그녀를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나마 안색이 조금 좋아진 남궁현. 

아직 해골만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눈빛만은 반짝이는 모습으로 그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으, 은공.” 

“아이고 그냥 누워 계십시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을 일으키려 했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돕고 의자를 끌어다가 그의 옆에 앉았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이곳까지?” 

그의 상태를 묻자, 그가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괜찮았다면 죽을 남기지는 않았을 터.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싶어 그에게 묻기로 했다. 

“이렇게 들린 이유는, 몸이 잘 회복되고 있는지 살피러 온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살펴주시니 이 남궁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공.” 

그가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가 들어오면서 남궁 소저가 든 그릇을 보니, 죽을 남기셨더군요? 혹시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혹시 드시고 싶은 요리가 있습니까?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다른 요리를 드시는 것도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 아닙니다! 모, 목숨까지 구명해 주셨는데, 그 무슨. 황망한 소리를. 부, 분명 다음 죽부터는 남기지 않고 잘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사람이 입맛에 맞는 것을 먹어야 몸도 빠르게 회복되는 법. 내일부터는 두죽(豆粥), 하지죽(河祗粥) 같은 것으로 바꿔 드릴까요?” 

두죽이란 송 시대에 팥죽을 부르는 말이고, 하지죽은 말린 생선을 넣어 끓인 송 시대의 죽. 

하지죽은 몇 번 나도 먹어봤기에 하인들에게 부탁해서 만들 수 있고, 팥죽 정도야 당연히 끓일 수 있기에 내일쯤 바꾸는 것은 어떨까 해 물었지만, 남궁현을 펄펄 뛰며 거절했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난감해하지만, 아무래도 꺼림직한 느낌. 

일단 소화는 잘되는지 그런 것만을 확인하고 일단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그를 쉬게 하고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궁소소.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 남궁 소저, 잠시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소? 아, 오라버니 일로 말입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말이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오라버니 일이라는 말에 조금 시무룩한 표정이 된 남궁소소.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 오라버니 일로 말입니까?” 

“그렇소. 아무래도 오라버니께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소소 소저가. 아니, 남궁 소저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오. 아, 미안하오. 자꾸 영영이 이름을 불렀더니 버릇이 돼서···.” 

“괘, 괜찮아요. 소, 소소라고 부르셔도.” 

은근슬쩍 이름을 불러달라는 남궁소소. 

그러나 남녀 사이 이름은 친밀한 사이에서나 부르는 법. 

남궁소소 이 여자 절대 내게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면서, 하는 행동은 좀 정반대였다. 

‘중원에 금사빠가 너무 많구나.’ 

아무래도 아내나 영영이, 남궁소소 같은 여자들은 가문에서 칼질이나 하는 험한 남자들만 보다가 나 같은 스마트하고 다정한 남자를 보니, 뻑이 가버린 모양인데. 

거기에 오라버니까지 구해준 은인이라는 사실이 버무려졌으니, 남궁소소 눈에는 내가 인생에서 만난 남자 중에 제일 멋진 모습일 것이 분명했다. 

막 내 뒤로 후광이 드리우는 특수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 제갈가와 당가가 나에 대한 지분을 반반씩 나눠 가진 상태에서 남궁가까지? 

사전 차단.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후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오라버니께서 그간 죽을 얼마나 드셨는지 알 수 있겠소?” 

“아, 첫날은 두 시진에 한 번씩 네 번을 드셨고, 둘째 날은 여섯 번 정도 드신 것 같네요.” 

남궁소소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따라붙으며 대답했다. 

“드실 때마다 남김없이 드셨소?” 

“아뇨. 반 정도 항상 남기셨어요.” 

“반이나 말입니까?” 

‘아니, 이 인간 정말 어디 아픈가 본데?’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더 달라고 난리 쳐도 이상한 것이 아닌 상황에서 죽을 남기다니. 

내가 놀란 목소리로 되묻자 남궁소소도 걱정이 되는지 다시 물어왔다. 

“어, 어디가 많이 아프신 것입니까?” 

“아니, 확실히 몰라서 확인해보려는 것이오.” 

그녀를 진정시키고 몇 가지를 더 확인했다. 

남궁현이 화장실은 잘 가는지, 물과 소변은 얼마나 봤는지 같은 것들을 말이다. 

“측간을 다녀오시는 것이나 소피(所避)는 잘 보시는 것 같았소? 물은 잘 드시고?” 

“물은 잘 드셨고, 하인들이 수발을 들었기에 자세한 것은 모르겠네요. 다만 그런 것으로 힘들어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내가 의사가 아니더라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크게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가족인 그녀가 이상하게 느끼는 점은 없는지 확인하자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외에 혹시 이 상한점은 없으셨소?” 

“이상한 점이라면?” 

“뭐 좀 다른 행동을 한다든지, 예전과 달라진 것이라든지.” 

“아, 그런데 이것도 이상한 것일까요?” 

“뭐 다른 것이 있었소?”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소소가 생각을 떠올리는 듯 턱을 붙잡고 대답했다. 

“예, 저랑 계실 때 날이 추운데 창문을 열어달라 하셔서, 한참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시거나, 고향에 대한 것들을 자주 물어보셨습니다.” 

“그야 그럴 수 있지 않소?” 

“그런데 나중에 같은 것을 또다시 물어보시고 그러시거든요.” 

‘어디 보자. 창밖을 멍하니 보고 싶다고 하고, 자꾸 고향 이야기를 한다라···. 응?’ 

남궁소소의 이야기에 불현듯 드는 생각. 

나도 전생에 요리 학교에서 공부하던 이 년 차에 걸려서 꽤 크게 앓았던 병이 생각났던 것. 

“아!? 이거, 그거 구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내가 뭔지 알겠다는 투로 말하자 급하게 되묻는 남궁소소.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회향병(懷鄕病)이 틀림없소!” 

회향병, 다른 말로 향수병. 

아마 남궁현은 객지 생활을 너무 오래 해 고향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회, 회향병이라니. 그것이 크, 큰 병입니까?” 

병이라는 말에 놀란 얼굴로 되묻는 그녀. 

간신히 살려냈는데, 병환으로 허무하게 다시 잃을까 걱정이 되는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모습.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대답했다. 

“아아, 큰 병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내 약도 잘 알고 있으니.” 

“약을 알고 계신단 말입니까?” 

당연히 알 수밖에. 

나도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우면, 한식당 가서 김치찌개 퍼먹고 오면 괜찮아지곤 했으니까. 

“야, 약이 무엇이죠? 제가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당장 가서 구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약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요번에도 뭘 잡아 와야 하는데···.” 

“뭔가요? 호랑이 앞발이라도 잘라 올 테니 말씀만 하셔요.” 

“아니요. 이번에는 호랑이나 곰처럼 큰놈 말고 좀 작은놈을 잡아 와야 할 것 같소이다.” 

“자, 작은?” 

“그렇소. 합자(鸽子) 몇 마리만 붙들어 오시오.” 

합자(鸽子). 

향수병 걸린 남궁현의 기운을 차리게 할 메뉴에 빠지지 않아야 할 재료. 

닭둘기 아니, 비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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