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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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南宮世家).
남궁세가의 위치는 안휘성(安徽省) 황산(黃山).
지금은 송 시대니 안휘라는 지명이 아니라 강남동로(江南東路) 정도에 포함되어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 황산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이 남궁세가.
이 황산은 세 가지로 유명한데, 중원 오악(五嶽) 바로 아래로 취급될 만큼 수려한 산세, 산약(山药), 그리고 합자(鸽子).
왜 전생에 중국의 명산 사진 보면, 바위만 있는 산에 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라있는 사진은 대부분 이 황산의 사진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뭐 농사지을 곳이 부족한 산악 지역이라서, 산약이라 부르는 마가 유명하고.
마지막으로 비둘기.
전생에 닭둘기라고 부르던 집비둘기의 정식 명칭은 바위 비둘기(Rock Dove 락도브).
전생의 비둘기를 보면 아파트 베란다나 다리 아래 같은데 집을 짓는데, 이건 이 비둘기들이 천적을 피하려고 높은 산의 바위틈에 집을 짓는 습성 때문.
바위틈과 비슷한 대도시 건물의 틈에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러니 바위만 있는 산인 황산에 비둘기가 많이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황산은 그래서 중원 닭둘기 들의 성지.
내가 남궁현이 향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궁소소에게 비둘기를 잡아 와야 한다고 말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려고.
‘향수병에는 고향의 요리만큼 좋은 약도 없지.’
객지 생활해 오래 하다 보면 향수병에 걸리기 마련이고, 그건 객지 생활하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럴 때 즉효 약은 누가 뭐래도 고향의 요리.
나도 전생에 북경 한편에 있던 작은 한식집을 꽤 들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라 그 그리움에 익사할 것 같으면, 한식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퍼먹어야 그 울렁이는 가슴이 가라앉아 숨이 트이곤 했으니까.
그러니 남궁현에게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라앉힐 추억의 요리를 해주려고 하는 것.
황산의 유명한 특산물인 닭둘기와 마를 이용해 만든 요리.
황산 닭둘기 탕이라 불리는 황산돈합(黄山炖鸽)이 그것이었다.
황산돈합은 아주 역사 깊고 오래된 요리이니 그도 당연히 좋아할 터였다.
황산이라는 그의 고향 이름이 떡 붙어 있는 요리이고, 중원인들은 닭보다 비둘기를 더 귀하게 생각하니 말이다.
“합자(鸽子)를 약에 쓴단 말입니까?”
약에 쓰게 비둘기를 잡아 오라고 하자, 되묻는 남궁소소.
“그렇소. 오라버니처럼 고향에서 떠나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저렇게 고향 생각에 마음에 병이 들곤 하는데, 그때는 고향의 요리를 먹어야 한다오.”
“네? 고향의 요리? 어, 그러면 황산돈합을?”
역시나 유서 깊은 요리이니, 그녀도 알고 있는지, 내가 만들려는 있는 요리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렇소.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요리요?”
“물론이에요! 항상 그것을 하면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황산돈합임에도, 저에게 머리를 양보하시곤 했죠. 머리 꼭꼭 씹으면 아주 고소하거든요.”
정말 비둘기 대가리를 좋아하는지 침을 꿀꺽 삼키는 남궁소소.
‘머, 머리가 맛있나? 하긴 뭐 전생의 중원인들은 오리 대가리도 좋아들 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튼 남궁 공자를 기운 차리게 해야 하니, 합자가 몇 마리 필요하오. 혹시 저자에 파는지 한번 나가보고 아니면 몇 마리 잡아 와야 할 것 같소.”
뭐 잡아 오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살 수 있으면 사는 것이 최고.
내 말에 의욕에 찬 남궁소소가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당장 저자에 나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저기 남궁 소저? 남궁? 나, 남궁?”
내가 부르는데도 경공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남궁소소.
오라버니의 약을 구해오라는 말에 바람처럼 저자 쪽으로 쏘아지고 있었지만, 저거 저래도 되나 싶었다.
“아무래도 금방 되돌아올 것 같은데 말이지?”
그렇게 그녀의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혼잣말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뭐가 되돌아와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내 뒤에 자리 잡은 영영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영영이구나.”
“가가, 여기서 남궁 소저랑 뭐 하셨어요?”
대뜸 나를 추궁하는 영영이.
여자의 촉이 아니, 가끔 너무 정확한 영영이의 촉이 발동하는지, 영영이는 요즘 검봉에게 아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아마 남궁소소와 붙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백한 몸.
“남궁 소저의 오라버니가 아픈 것 같아 약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응? 그 사람이 아파요? 어디 가요?”
남궁현이 아프다는 말에 다소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영영이.
“회향병(懷鄕病)이라고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라서 고향이 그리워지는 마음의 병이란다.”
“고향을 떠나왔는데 병이 난다고요? 낫는 것이 아니라?”
“응?”
뭔가 이해 못할 영영이의 물음에 눈을 끔뻑이자 영영이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나는 잔소리하는 할아버지도 없고, 가가랑 중원을 여행하는 게 이리 재미있는데. 집을 나와서 아프다니 이해가 안 돼요. 헤헤.”
‘아이고 귀여운 녀석.’
나와 있으니 환향병 같은 것을 걸릴 새가 없다는 영영이의 말과 표정.
“영영아···.”
“네?”
영영이의 이름을 한번 부르고 핑크빛 레이저를 눈으로 쏴대자, 영영이가 짐승 같은 팽가의 본능으로 내 신호를 알아챘는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로 조금씩 다가왔다.
그렇게 나도 슬쩍 고개를 돌려 후원을 한번 살피고, 귀욤뽀짝한 영영이를 한번 안아주려 영영이에게 가까워지는 그 순간.
-푸드득
갑자기 비둘기가 날아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기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어이쿠!”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자 나타난 것은 남궁소소.
아까 금방 되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영영이한테 핑크 레이저를 쏴대느라 깜빡했었는데 역시나 다시 돌아온 모양.
영영이가 분위기를 깬 남궁소소에게 짜증을 내며 외쳤다.
“아니, 갑자기 경공으로 뛰어오면 어떡해요! 놀랬잖···. 응?”
그러나 영영이의 짜증은 곧 분노와 어처구니없음으로 바뀌었다.
남궁소소가 새빨개진 얼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여자들이 어처구니없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머 연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칠 연발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뾰족한 물음.
“아니, 검봉, 얼굴은 왜 빨개요?”
그러자 남궁소소가 자기 얼굴 양손으로 감싸 쥐고 대답했다.
“부, 부끄러워 그렇습니다.”
“네?!”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던지, 오히려 그 말에 당황한 영영이.
“아, 아니. 왜, 왜 부끄러운데요!?”
영영이가 말까지 더듬으며 묻자 남궁소소가 역시나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 독접께서는 자리를 조금 비켜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욧!”
영영이가 뾰족하게 외치자, 남궁소소가 눈을 감고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토마토 같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저, 저기. 은공, 죄송한데, 도, 돈 좀. 비, 빌려주시면···.”
“에?”
영영이의 바보 같은 음성.
그랬다. 내가 경공으로 저자에 나가 비둘기를 파는지 알아본다던 남궁소소가 금방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그녀가 지금 집 나와 무일푼이라는 사실 때문.
허겁지겁 시장으로 달려갔다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급하게 빌릴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인데, 영영이는 그것이 나 때문인지 안 모양.
영영이는 오해한 것이 미안했던지 자기 소매에서 은자를 하나 꺼내더니, 남궁소소에게 내밀며 말했다.
“여, 여기요.”
***
검봉인 남궁소소의 비둘기 구매 미션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일단 저자에 비둘기 고기를 팔지 않았던 것.
남궁소소가 알아본 바로는 작은 짐승이다 보니, 잡아서 오래 보관할 수 없어 가끔 시장에 나온다고.
그리고 좀 비싸다고.
전생에는 중국산 닭고기나 닭꼬치가 비둘기 고기가 아니냐고 의심하곤 했지만, 그것은 비둘기라는 새를 몰라서 하는 소리.
실제로 중원에서는 비둘기가 닭보다 비싸다.
비둘기는 일 년에 딱 한 번 번식하고, 번식할 때도 부모의 젖을 먹고 자라니, 번식이 쉬운 새가 아니기 때문.
“아무래도 직접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라버니를 하루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돌려놓고 싶은 남궁소소는 저자에 비둘기가 나오는 것을 기다릴 수 없었던지, 영영이에게 돈을 돌려주고 점심나절 곧바로 비둘기를 잡는다며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되돌아온 남궁 소소.
그녀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비둘기가 많은 곳을 찾았는데,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곳?”
나에게 돌아와 상황을 보고하는 남궁 소소의 대답에 무슨 이야기인지 확인했더니, 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개봉 안에서 비둘기를 잡으려 했다고.
“네, 아까 저자에 갔다가 돌아올 때 보니, 동경에도 비둘기가 많더라고요.”
‘아니, 진짜 닭둘기 잡으러 갔었냐고?’
생각해보니 송 시대에는 새를 키우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 많았는데, 비둘기도 그중 한 가지.
놔주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풀어놓고 기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동경에는 비둘기가 전생의 대도시만큼 많은 편.
그러니 돌아오다 본 비둘기가 가장 많은 곳으로 비둘기를 잡으러 간 모양이었다.
뭐 전생도 아니니 비둘기 잡는 것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잡아 먹어도 되니 상관없을 터.
“그런데 개봉에 그런 곳이 있었습니까?”
내가 혼잣말하듯 개봉에 그런 곳이 있었냐고 되묻자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 황궁 앞에···.”
“어, 어디 말입니까!?”
생각해보니 아내와 신혼여행 할 때 황궁 앞 큰 광장에서 비둘기를 많이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설마 거기서 칼을 뽑으셨소!?”
“네, 그런데 관병들이 몰려와서···.”
황궁 앞 큰길에서 비둘기 잡겠다고 칼을 휘두르면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남매가 번갈아 가면서 뇌옥을 구경하고 싶은 것인지, 그나마 안 잡힌 것이 다행이었다.
“노공, 제가 같이 가서 도와드리고 오겠습니다.”
남궁소소가 딱했던지, 돕겠다고 나선 아내.
“부, 부인이 말이오?”
“예, 새는 제가 잘 잡으니까요.”
“아니, 가는 것은 상관없는데 그게, 그러니까···.”
아내는 선행을 하고 싶은지 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뒤로하고, 고마워하는 검봉을 따라 비둘기를 잡으러 떠났다.
그리고 한 시진 후.
내 앞에 울상인 사람이 두 명으로 늘어났다.
울상인 아내와 검봉의 손에 들린 것은 ‘비둘기였던’ 그 무엇.
깃털 뭉치와 약간의 피, 고기가 아주 조금 섞이고, 남궁소소가 좋아한다는 대가리만은 멀쩡했다.
그나마 뭔가 남아있는 것을 보니, 나름 힘을 조절한다고 한 것 같은데, 역시나 예상대로.
“죄, 죄송합니다. 검봉.”
“아, 아니네요. 그렇게 노력하셨는데요. 그나마 스무 번째는 이렇게 성공할 뻔도 했잖아요? 처음에는 깃털도 안 남았으니까···.”
‘스, 스무 마리나?’
내가 둘의 대화에 당황할 때, 아내는 아직 포기 못했는지 검봉의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다, 다시 해보죠.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으니까요!”
“괘, 괜찮을까요?”
“자, 잠깐!”
아내가 다시 남궁소소를 끌고 나가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가 동경의 비둘기가 다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전문가에게 부탁할 수밖에.
둘을 멈춰 세우고 영영이를 향해 물었다.
“영영아, 별일 없으면 네가 나가서 좀 도와주거라.”
독과 암기를 다루는 영영이라면, 비둘기 정도야 쉽게 잡을 수 있을 터.
그렇게 아까부터 찻잔을 들고 먼 산만 바라보는 영영이에게 묻자, 영영이가 그제야 검봉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뭐, 못 도와줄 것도 없는데···.”
영영이가 못 도와줄 것도 없다는 말에 흠칫하는 남궁소소.
남궁소소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라, 계속 자기를 경계하는 영영이의 눈치를 보며 영영이의 대답을 기다릴 때.
영영이가 혼잣말하듯 얄미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저희 가문은 언니, 동생으로 맺어진 그런 관계에서만 돕는 가풍이 있는지라···.”
그러자 들려오는 아내의 물음.
“언니, 언니 가문에 그런 것이 있었나요?”
“이, 있어!”
황급히 말을 더듬는 영영이.
‘아 없구나.’
그러자 영영이의 말에 남궁소소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러면 제가 이제 스물이고. 독접이 열아홉이니 저를 언니로 모시겠다는 것인가요?”
‘순진하기는. 영영이가 그럴 것 같은가?’
이것을 계기로 언니 대접받으면서 나에게 접근하려는 남궁 소소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그런 심산인 것이 분명했는데, 남궁소소 역시나 순진했다.
“아뇨? 제가 언니죠?”
역시나. 무논리가 논리인 영영이의 대답.
“예? 아니. 제가 분명 한 살이 더 많은데?”
“아효. 나는 그냥 낮잠이나 자야겠다···.”
남궁소소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하자, 영영이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제야 무슨 말인지 눈치챘는지, 남궁 소소가 아랫입술을 악물며 영영이를 붙잡았다.
“어, 언니! 제발 도와주세요!”
오빠를 위해 치욕을 감내하기로 한 모양.
그러자 양쪽 볼따구를 잡아 뜯고 싶을 정도의 얄미운 표정의 영영이가 뒤돌아 남궁 소소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소소야. 이 ‘언니’가 도와줄게. 그런데 우리 소소, 표정이 왜 그렇지?”
결국 남궁소소는 영영이의 협박에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