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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돈합(黄山炖鸽) (186/344)

황산돈합(黄山炖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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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영이가 나서자 비둘기 몇 마리 정도야 금방이었다. 

셋이 사라졌다가 나타났을 때는 아내와 남궁소소의 양손에 축 늘어진 비둘기들이 여러 마리 붙잡혀 있었으니까 말이다. 

머리에 긴 바늘 같은 것이 꽂힌 것으로 보아 한 놈당 한방씩 암기를 쏴준 모양. 

“두 마리면 충분한데 많이도 잡아 왔구나.” 

“저희도 먹어보고 싶어서요. 소소가 고향에서 자주 먹던 음식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요. 아! 청아 합자는 소소에게 전부 넘기려무나.” 

“예, 언니.” 

두 마리면 충분한 데 왜 이리 많이 잡아 왔냐고 묻자 자기도 맛을 보여달라는 영영이. 

영영이는 아내에게 손에 든 비둘기를 모두 남궁 소소에게 넘기라고 하고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소소야, 암기는 잘 씻어서 네가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주고, 합자는 부엌의 하인들에게 가져다주려무나. 그리고 가가께서 요리하기 쉽게 털을 다 뽑아두라고 하려무나.” 

“예, 어, 언니···.” 

비둘기를 잡으러 다녀오는 사이 꽤 갈궈댔는지 시커멓게 죽은 남궁소소의 얼굴. 

이등병이 분대 실세랑 야간근무를 다녀온 그런 얼굴이랄까? 

탈영 마려운 그런···. 

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영영이의 명령에 양손 가득 비둘기를 넘겨받은 남궁소소가 회색빛 눈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봤고, 그러자 그 눈빛마저 차단하겠다는 듯 나와 남궁소소 사이에 끼어든 영영이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 그러면 가가께서는 좀 있다 요리하기 전까지 저희 차나 한잔 타주세요. 추운데 밖에 다녀왔더니 따듯한 차가 생각나네요. 나는 가가가 타준 차가 제일 맛있더라.” 

“여, 영영아!” 

영영이의 팔짱에 화들짝 놀라 외쳤다. 

남궁소소가 있는 자리에서 할 행동이 아니었던 것. 

그러나 영영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소소한테는 다 설명했으니까.” 

“서, 설명했다고?” 

자꾸 비밀은 아는 자가 늘어나 이러다 모든 중원인이 다 알게 알지 말아야 할 분들까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고. 

언제 영영이를 잡고 이제 더는 비밀을 공유하는 자를 늘리지 말라고 이야기했다고 생각할 때, 영영이가 남궁소소를 향해 말했다. 

“소소야, 너도 그거 부엌에 가져다 두고 생각 있으면, 차 마시러 오렴.” 

오라고 이야기하지만, 오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남궁소소도 알아들었는지 영영이에게 얼른 대답했다. 

“네? 아, 아닙니다. 언니. 그냥 조, 좀 쉬려고요.” 

“그래? 그럼 그러고.” 

재빠른 영영이의 대답. 

그리고 곧이어 영영이가 나를 처소 쪽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얼른 가요. 가가.” 

“어, 그, 그래.” 

너무 남궁소소를 잡아대는 것 같아서, 영영이에게 적당히 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도, 내가 나서면 또 영영이가 검봉을 더 괴롭힐 수 있으니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

뒤를 흘깃 바라보자 남궁소소가 힘없이 터벅터벅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괜찮을까?’ 

*** 

영영이와 아내에게 따듯한 차를 끓여주고, 한 식경쯤 지나 둘에게 이야기했다. 

“난 그럼 먼저 부엌으로 갈 테니 나중에 오시오.” 

“네, 가가.” 

“예, 노공.” 

침상 위에서 흥부네 집 아이들처럼 이불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몸을 녹인다는 영영이와 아내. 

둘은 모르지만 나는 황산돈합을 요리해야 했으니까 서둘러야 했다. 

황산돈합(黄山炖鸽). 

황산돈합은 전생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백숙과 비슷한 느낌의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닭둘기로 끓이는 삼계탕이랄까? 

다만 닭이 아닌 비둘기로 끓인다는 것과 산삼 대신 마를 넣는다는 것 그리고 끓이는 방식이 좀 다른 정도. 

그러니 환자의 보양식으로도 나쁘지 않은 음식. 

‘향수병이 나았으면 좋겠는데···.’ 

둘을 뒤로하고 부엌에 도착해 하인들이 미리 손질해둔 비둘기를 확인하고, 바로 요리를 시작을 알렸다. 

저녁 전에 요리를 끝마쳐 오늘 저녁에는 어떻게든 잘 먹이려는 계획. 

남궁현이 하루 정도는 죽을 더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반 음식을 먹는 것이 조금 일러도 죽을 깨작거리는 것보다야 일단 잘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기운을 차릴 것이 아닌가? 

“자, 그러면 한번 만들어볼까?” 

그러나 멋있게 시작을 알리고 채도를 채 손에 쥐기 무섭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저, 접각부님. 헉헉···. 오, 오늘은 무슨 요리를?” 

뒤를 돌아보자 어디선가 나타난 총관이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허덕이는 것이 어디선가 내가 또 요리한다는 말에 다급하게 달려온 모양. 

또 재료를 다 써버릴까 봐 걱정되어 그러는 것 같았다. 

‘거참 사람 쪼잔하게 시리···.’ 

큰 가문 총관으로 일하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작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를 안심시키려고 필요한 재료를 알려주었다. 

“걱정하지 말게 이 사람. 오늘은 닭 한 마리만 있으면 되고, 양총(洋蔥 양파)과 생강, 소총(小葱 쪽파)과 월주(月酒 소흥주)만 있으면 되니 걱정하지 말게.” 

“그, 그렇습니까?” 

“자, 그러니 재료나 부탁함세.” 

“아, 알겠습니다?” 

다소 안심한 총관이 하인들을 시켜 재료를 준비해 주고, 그 틈에 솥에 물을 올려 일단 뜨거운 물을 끓여주었다. 

그리고 먼저 하인들이 털을 뽑아둔 닭둘기의 항문을 벌려 간을 제외한 모든 내장을 꺼내주었다. 

그렇게 모든 닭둘기들을 손질해주자, 하인들이 닭을 한 마리 잡아 왔고, 닭마저 손질을 끝내고 토막을 치자 육류 손질은 이제 끝. 

토막 친 닭은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육수를 내기 위해 먼저 다른 솥에 넣어 불 위에 올렸다. 

“고기 준비는 끝났고. 다음은 산약(山药)을 손질해볼까?” 

참마는 껍질을 벗겨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내고, 양파는 크게 두 조각으로, 쪽파는 묶어서 준비. 

-탁탁탁탁. 

마지막으로 채도로 생강을 편 내자 향긋한 생강의 내음과 함께 재료 손질이 끝났고, 그때 영영이와 아내가 남궁소소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왔소? 왔느냐?” 

“예, 노공.” 

“구경하러 왔어요. 가가.” 

둘에게 아는 척을 하고 뒤에 있는 남궁소소에게도 인사하려 했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화들짝 놀라는 남궁소소. 

호감 어린 시선에서 범이라도 만난 듯 화들짝 놀라는 모습으로 변한 것으로 봐서는, 영영이에게 호되게 정신 교육을 당한 모양이었다. 

‘좀 안타깝긴 한데, 한편으로는 잘 된 건가?’ 

영영이가 기가 센 여자라 그런지 여난 정도는 영영이의 기로 커버가 되는 느낌. 

원래 기 센 여자들은 귀신도 물러나게 하는 법이니, 내 여자답게 하늘을 거스르는 모양. 

‘나도 뭐 역천의 거시기니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소 안심하며 다음 작업을 서둘렀다. 

끓는 물에 마를 데쳐 겉의 전분기와 끈적한 점액질을 한번 날리고, 비둘기도 데쳐 기름기와 남아있는 피 그리고 떠오른 거품을 한번 빼주었다. 

이어서 마와 비둘기를 찬물로 깨끗하게 씻어내 적당한 그릇에 담고, 생강 편, 묶은 쪽파, 양파 조각을 넣어 사당(설탕), 소금으로 간을 해준 후, 잡내를 제거해주기 위해서 월주(소흥주)를 마지막으로 넣어주면 남은 것은 최후의 작업. 

-부글부글. 

“어디 보자. 육수가 얼마나 되었나.” 

마지막 작업을 위해 끓고 있는 닭 육수를 살폈다. 

왜냐하면 황산돈합에 들어가는 닭 육수는 절대 오래 끓여서는 안 되기 때문. 

닭의 풍부한 맛이 살아있어야 하지만, 오래 끓여서 육수가 뿌옇게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전생의 삼계탕이 닭을 푹 끓여서 뿌연 국물을 사골처럼 우려내 닭의 풍부한 맛을 즐기는 요리라면, 황산돈합은 닭과 비둘기에서 우러나온 담백함을 머금은 아주 맑은 육수를 즐기는 것이 특징. 

그렇기에 이 닭 육수를 내는 과정부터 아주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너무 오래 끓어서 육수가 뿌옇게 되어도 안 되고, 또 너무 짧게 끓여서 육수가 밍밍해서도 안 되는 것. 

그래서 처음에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넣은 것이다. 

그렇게 육수가 끓고 있는 냄비에서, 육수에서 뿜어져 나온 거품과 기름을 모두 걷어내자 드러나는 맑은 국물. 

“색은 이 정도면 좋은데. 맛을 한번 볼까?” 

-후릅. 

살짝 맛을 보자 닭 육수이지만 담백한 상태. 

부족하면 맹물의 맛이 많이 나는데, 지금 상태로는 나쁘지 않았다. 

“좋아.” 

준비된 육수를 비둘기가 담긴 그릇에 가득 담자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이제 이것의 입구를 종이로 덮고 뚜껑을 덮어 찜기에서 쪄주기만 하면 되는 것. 

비둘기가 너무 삶아져 살이 풀려 육수가 뿌옇게 되지 않도록 찜기의 증기로 쪄서 은은하게 익혀주는 것이다. 

맑은 국물을 유지함은 물론이거니와 대가리도 잘 보여야 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유교 문화의 요리니까.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난 재료를 종이로 덮어 찜기 위에 올리고 뚜껑을 덮자,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남궁소소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단하시군요. 황산돈합을 요리하시는 것을 보니, 황산 사람이라 해도 믿겠어요.” 

“그렇소?” 

집에서 황산돈합을 요리하는 것을 몇 번 보았던지. 놀랍다는 그녀의 목소리. 

그러나 그녀는 놀랍다고 외치고는 곧바로 자기의 행동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아니, 그, 그러니까.” 

아마 영영이의 눈치를 보는 모양인데, 영영이 녀석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어서 그런지 끓고 있는 솥만 살피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남궁소소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렇게 딱 한 시진. 

-부글부글. 

여기저기서 끓고 있는 찜 냄비들. 

남궁현에게 먹일 특별히 신경 쓴 녀석부터. 

영영이와 아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까지. 

그렇게 늘어난 찜 냄비들이 끓어오르며 부엌 여기저기서 소리와 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치이이이. 

소흥주와 생강의 향을 머금은 새고기 특유의 향이 찜 냄비의 뚜껑 틈으로 증기기관차의 증기처럼 뿜어져 나오고. 

“한 시진쯤 되었으니 한번 볼까?” 

요리를 살피기 위해 앉아있던 의자에 일어나자 들려오는 세 여자의 물음. 

“가가. 끝났나요?” 

“노공, 완성인가요?” 

“은공, 다 되었나요?” 

‘아주 다양한 호칭이구만.’ 

들려오는 다양한 호칭에 고개를 끄덕이고 제일 먼저 남궁현의 황산돈합(黄山炖鸽)을 살폈다. 

찜기의 뚜껑을 열고, 증기를 머금어 젖은 종이를 벗겨내자 뿜어져 나오는 향긋함을 머금은 진한 향. 

아내와 영영이, 남궁소소도 몰려와 두 눈을 살포시 감고 향을 들이켰다. 

“흐응. 맛있을 것 같아요.” 

“고향에서 항상 맡던 그 향입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깊은 향 같아요.” 

“가가, 이제 먹어도 되는 거죠?” 

영영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하인들에게 지시했다. 

“이것들은 식사하는 곳으로 옮겨주시오.” 

“알겠습니다. 접각부님.” 

“부인과 영영이는 먼저 가 있구려. 나는 잠시 남궁현 공자에게 들렀다 가겠소.”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가가.” 

그리고 남궁현의 황산돈합과 냄비 한 개를 더 쟁반에 올리고 남궁소소에게 말했다. 

“남궁 소저는 저와 함께 오라버니께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은공.” 

그렇게 남궁소소와 함께 발걸음을 서둘러 도착한 남궁현의 처소. 

“오라버니, 소소입니다.” 

“어, 그래. 소소야. 들어오너라.” 

남궁소소가 도착한 것을 알렸으나, 먼저 머리를 들이민 것은 나. 

먼저 안으로 들어서는 내 모습에 남궁현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으, 은공께서 어찌?” 

남궁현은 거동이 힘들지는 않았던지, 마침 식탁 의자에 앉아 열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앞에 쟁반을 내려두고 얼른 달려가 창문을 닫았다. 

“남궁 공자, 마음이 답답하시겠지만, 이리 창을 열어두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급하게 사과하는 남궁현. 

남궁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뭐 죄송할 것까지야 하하···. 내 남궁 공자께서 마음에 병이 난 듯하여 약을 가져왔으니, 이걸 드시고 씻은 듯 나으시면 좋겠소이다.” 

“야, 약을 말입니까?” 

약이라는 말에 당황하는 남궁현. 

그는 정말 감사하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니, 이리 목숨까지 구명을 받고, 약까지 챙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자, 그만 진정하시고, 일단 약부터 듭시다. 식으면 안 되니까 말이오.” 

나는 그의 예를 거두게 하고, 냄비 하나를 그의 앞에 다른 것을 그의 옆에 자리 잡고 앉은 남궁 소소 앞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앞에 놓인 자기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스르릉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뜨거운 김. 

처음에는 김에 무슨 요리인지 몰랐다가 살짝 김이 사라지자 그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것은?!”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자기 냄비만 바라보는 남궁현. 

멍한 그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드셔보셔야지요. 공자. 제 성의를 이리 무시할 참입니까?” 

그러자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락을 가져가 국물을 떠 입 안으로 넣었다. 

-후르륵. 

아직 갈라져 있는 그의 입술이 따듯한 국물에 적셔 기름을 머금고. 

살며시 감긴 눈으로 국물을 맛보던 그의 입에서 나직이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황산의 봉우리와 그 봉우리를 휘감은 구름이 보이는 듯하군요.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간이 조금 부족했는지,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냄비 안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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