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처사첩(三妻四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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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남매, 은공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지기로 맹세했으니, 어찌 주저하겠나요? 은공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부, 부인 자리도 거절치 아니할 것이에요.”
남궁소소의 결의에 찬 다부진 외침.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불타고 있었다.
두 남매가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겠다니, 그래도 대가리 박고 수치를 감내한 보람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만 남궁소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지, 목숨 플러스 몸과 인생까지 모두 내던지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궁소소의 눈웃음에 영영이가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넘어갔다.
저건 분명 누가 봐도 도발의 미소.
마치 이제 누가 언니냐고 묻는듯한 그런 미소였으니까.
“끄릅···.”
“어, 언니!”
“영영아!?”
그러나 기절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화를 참지 못해서 뒤로 넘어간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잠시 후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킨 영영이가 씨근거리며 이헌을 향해 물었다.
“거절! 그래요! 거절하면 되지 않나요!?”
위기의 순간 아이큐가 삼백이 되는 바퀴벌레처럼, 충격에 숨넘어가기 직전의 영영이가 대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
내가 생각해봐도 영영이 주장이 그럴듯한 것이, 분명 저번에 태후께서 상을 내린다고 했을 때 그 자리에서 거절하니, 태후도 다시 상을 권하지 않았고.
그러니 이번에도 거절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 그렇습니다! 이헌 태감 어른, 분명 저번에 태후께서 상을 내린다고 했을 때도 거절하고 왔으니, 이, 이번에도 거절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아내와 영영이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남궁소소는 다소 긴장한 느낌.
영영이가 남궁소소를 바라보며 ‘이런 방법은 몰랐지?’ 하는 표정을 짓자 이헌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사람들 법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먼, 내 설명해줄 테니 잘 듣게, 궁에 아침마다 조회하는 것을 아는가? 그 조회가 끝나면 멀리서 새벽부터 달려와 아침을 못 먹은 관리들을 위해서 황제께서는 아침마다 식사를 준비해 주시네.”
구내식당 개념인가?
송나라 공무원 생각보다 복지가 괜찮았다.
“처음 듣습니다.”
내 말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와 영영이 그리고 남궁소소.
제갈각 숙부님이 가끔 궁에서 식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황제가 직접 내리는 의미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
“그래, 모를 수 있지. 아무튼 그 식사는 관가께서 직접 내리시는데, 그 식사는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네.”
“예?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요?”
‘군대도 아닌데 무슨 식고문이야?’
황제가 식고문을 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이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관가께서 내리시는 음식이니 거절하면 불충이 되는 것.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식사를 해야 하네.”
“헐···. 그, 그럼?”
“그래, 자네도 관가께서 내리는 성지를 거절하면 그것은 불충. 무조건 받으러 가야 하네. 애초에 자네가 태후가 내린 상을 거절하고 가서, 태후께서 자네가 거절하지 못하게 관가께 상을 내려달라 부탁한 것이니까 말이야”
‘그냥 그때 금덩어리나 좀 달라고 할걸. 괜히 거절해서는···.’
태후 앞이라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고 싶어 모두 거절하고 나온 것이, 이렇게 뒤통수를 후릴 줄이야.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말에 멍한 얼굴로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자, 둘도 당황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번에는 영영이 대신 아내가 긴장한 목소리로 이헌에게 물었다.
“그, 그러면 저나 영영 언니가 대신 남궁 소저인 척, 관가께 사, 상을 받을 수는 없나요? 노공의 말씀을 들어보니 죄인도 빼돌릴 수 있다는데···.”
그러자 정색하는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 이헌.
“어허! 이 사람들! 큰일 날 소리! 관가의 용안 앞에서 대놓고 속이겠단 말인가? 들키면 관가를 능멸한 죄로 자네와 자네가 구한 자는 물론이거니와 구족을 참수당할걸세!”
“하, 하지만 이미 속인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역시 똑 부러지는 아내.
우리 이미 사기 쳤는데 그럼 그건 어쩌냐고 묻자, 이헌이 우리를 가르치듯 말했다.
“죄인을 빼돌리는 것이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들키더라도 풀어주어야 할 놈과 죽일 놈을 헷갈린 하급 시안 하나가 책임지고 죽는 것으로 무마할 수가 있는데, 이것은 들키면 자네들 대신 누가 죽어줄 텐가?”
‘아니, 그게 그런 시스템이었냐고···.’
중원다운 처리법에 중원다운 대처까지.
추밀사의 방법은 알고 보니, 더욱 대단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관가를 능멸한 죄에서 벗어나려면, 저 소저를 부인으로 만들어야지! 나중에 들키더라도 그 당시에는 혼례를 약속한 사이라 부인이라 칭했다고 하면, 관가께서나 태후께서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실 테지만. 그게 아니라 애초부터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두 분을 속인 것이 되니까 말이야.”
이유가 어찌 되었든 부인이라 했으니, 기정사실로 만들라는 말.
이헌의 말에 어지러워지는 정신.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아내와 영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부축했다.
“노공!”
“가가! 괜찮으세요?”
고개를 돌려 남궁소소를 바라보자 그녀도 조금 놀란 느낌.
내 쪽으로 손을 흠칫 뻗었다가 당황해 다시 손을 회수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아내와 영영이에게 안겨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던가?
‘전생에 결혼을 못 하고 죽어서 그것이 강한 원념이 되었나? 아니, 분명 그건 아니었는데, 어째서 여난이 찾아온 것이지?’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 곰곰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나 영영이가 내 사람이 된 것을 인공호흡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행위였을 뿐.
여난을 촉발하게 된 계기는 도움.
아내의 목숨을 구해주고, 영영이의 아버지인 당가주의 목숨을 구명한 행위, 이번에도 남궁 소소의 오라버니를 구해주었으니, 자연스럽게 사은품이 딸려왔던 것.
그리고 중원에서 가장 흔한 것이 사람이니, 사은품이 사람이었을 뿐.
인공호흡 = 부인이 아니라 구명(救命) = 부인이었던 것이었다.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이헌에게 되물었다.
여난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는 지금 상황에서 중요하지 않았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사태를 어찌 정리하느냐는 것.
“상, 언제 까지, 받으러 가야 합니까?”
“오, 결심했나?”
“아닙니다. 아무래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결심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야. 최소한 열흘 안에는 찾아봬야 할 테니, 결심이 서면 사람을 통해 내게 연통을 주게, 그러면 내 자네를 데리러 옴세.”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헌은 그렇게 우리에게 폭탄을 던지고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던 모습과는 다르게 표표히 사라졌다.
***
이헌이 돌아가고 우선 셋과 함께 처소로 향했다.
아무래도 셋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봐야 했기 때문.
그렇게 처소 안으로 들어서 식탁에 다들 자리를 잡고, 하인들을 시켜 일단 차를 내오라 시켰다.
둘러앉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영영이는 회색 눈빛으로 멍하니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아내는 그런 영영이를 살피는 중.
남궁소소는 아주 긴장된 모습으로 내 표정을 힐끔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하인들이 차를 가져오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하루, 한 달, 일 년이 되는 느낌.
결국 하인들이 차를 내오고, 아내인 제갈청이 각자의 앞에 따듯한 차가 담긴 찻잔을 놓자, 영영이가 갑자기 전원 들어온 로봇처럼 눈에 빛이 들어오더니, 잘못 기동 된 것처럼 식탁을 손으로 내리쳤다.
-탕!
-달그락!
긴 정적 속에 방안에 울려 퍼진 책상을 내치는 소리.
영영이의 찻잔에서 찻물이 넘치고.
식탁을 후려치는 소리에 다들 놀라 영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영영이가 분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가가, 현원법사님이 정말 가가께 여자가 둘이라고 확실히 말씀하셨죠? 그렇죠?”
“그, 그렇지?”
갑자기 현원법사의 이야기를 꺼내는 영영이.
다행스럽게 영영이의 분노는 내가 아니라 현원법사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건 이해가 안 돼요! 도력 높은 현원 법사님이 틀릴 리가 없단 말이지요?”
점을 너무 맹신하는 것 같기에 영영이를 달래기로 했다.
고기 좋아하는 땡중이 한 말을 너무 신경 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이다.
뭐 정작 나는 지금 여난이라는 말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영영아, 그 원래 점이라는 것은 재미로 보는 것이고, 또 틀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아뇨. 가가께서 몰라서 그러시는데, 현원법사님이 그리 함부로 누군가의 점을 봐주시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리고 한번 봐주시면 틀리는 법이 없단 말씀이에요. 사람들이 돈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더라도 못 보는 것이 현원법사님의 점이라고요.”
“맞아요. 노공. 현원법사님의 점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아내까지 거드는 상황.
남궁소소도 현원법사라는 이름이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땡중이 그렇게 법력이 높았던가? 아니, 고기 먹고 싶어서 동자승도 하산시키는 분이 그렇게 법력이 높다고?’
-꿀꺽.
둘의 말에 목이 바짝 타들어 가고 꿀꺽 삼켜지는 침.
영영이와 아내가 그런 내 모습에 눈을 반짝 뜨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갑자기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 가가께서 이리 긴장하고 계실까? 흐응. 긴장한 사람의 땀 냄새가 나는데요?”
“어머, 이 땀 봐. 노공 몸이 어디 불편하신가요?”
“기, 긴장은 무슨. 아, 아니오!”
아내가 관자놀이에 흘러내리는 내 땀을 자기 소매로 훔치며 온화함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언니, 정말 이상한 일이란 말이죠? 현원법사께서 분명 노공의 인생에 여자가 둘 뿐이라고 하셨다는데, 요기 앞에 피할 수 없는 세 번째 여자가 나타났다는 것이···.”
“맞아 청아, 검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나중에 관가께 들키기라도 한다면 가가의 목이 떨어지는 상황이니, 검봉이 반드시 ‘셋째’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남궁소소와 기싸움을 하는지 셋째라는 단어를 강조한 영영이가 식탁 위에 팔짱을 끼고, 그 위에 고개를 눕히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말년이라 정말 현원법사님의 도력이 떨어지셨거나, 아니면 가가께서 우리에게 거. 짓. 말. 하셨거나···.”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스타카토로 한자씩 끊어서 말하는 영영이.
그러자 아내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영영이의 말을 따라 하듯 말했다.
“설마 언니, 노공께서 저희에게 거. 짓. 말, 을 하셨으려고요.”
“그렇지?”
이미 심증을 모두 확보하고, 나의 자백만이 남은 상황.
아내의 스마트한 제갈가의 두뇌와 영영이의 야수 같은 직감이 결합 되니 이건 거의 사기급.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나에게 자백을 은밀히 권하고 있었다.
-똑. 또옥.
식탁 위로 떨어지는 내 땀방울 소리가 천둥보다 크게 들려오고, 눈을 질끈 감고 침을 꿀꺽 삼킨 후에 둘에게 대답했다.
이미 걸렸는데 묵비권이나 결백을 주장했다가는 가중처벌 될 수 있기 때문.
“미, 미안하오! 둘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 못했소!”
그러자 잠깐의 정적 후, 아내와 영영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휴···. 그럴 거로 생각했어요.”
“노공, 다음부터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큰 문제는 저희에게도 알려주셔야죠.”
“요, 용서해주는 것이오?”
“용서라뇨. 노공께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 당황하셨을 테고, 저희 마음이 상하기라도 할까 또 걱정하셨을 테니. 저희가 노공을 용서할 일은 아니지요.”
“가가, 그래도 다음번에는 거짓말하거나 숨기시면 안 돼요. 아셨죠?”
“아, 알겠소. 그, 그럼 영영아. 당연하지 않겠느냐.”
둘의 용서에 긴장이 풀리고, 타는 목을 풀기 위해 이미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하긴 뭐 이 부분에서는 내가 잘못한 건 없지, 땡중이 말한 것이 그런 것인 줄 알았나? 그냥 뭐 여름에는 물 조심 겨울에는 불조심 그런 급인 줄 알았지.’
-꿀꺽. 꿀꺽.
그렇게 물을 들이켜며 위기를 넘긴 사실에 안도할 때,
갑자기 들려오는 아내와 영영이의 물음.
“노공. 그런데 현원 법사께서는 둘이 아니면 셋이라고 하셨나요?”
“그럼. 청아, 아무리 가가께서 여복이 많다고 해도 셋보다 많으려고. 무슨 무림 영웅이라서 삼처사첩(三妻四妾) 막 이러려고 아하하. 그렇죠. 가가?”
-푸흡!
-커흡! 콜록! 콜록!
아내와 영영이의 물음에 식도로 미끄러지던 찻물이 기도로 쏟아지고, 찻물에 코 박고 죽으려는 것으로 생각한 폐가 놀라 찻물을 뿜어 올렸다.
-케흑! 케흑!
“노, 노공. 괜찮으세요?”
“가가?”
그렇게 한참 기침하다가 안정이되 고개를 들자 아내와 영영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그, 그보다 많아요?”
그리고 나를 향해 영영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넷?”
내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고개를 젓자 부릅떠지는 둘의 눈.
이번에는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설마 다, 다섯?”
내가 다시금 도리도리 고개를 젓자 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고, 이번에는 남궁소소 쪽에서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 설마 진짜 삼처사첩?”
셋의 쏟아지는 눈빛.
셋의 눈빛을 받으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대답했다.
“여, 여난이라고···.”
내 말에 방이 고요함으로 가득해지고, 살포시 눈을 떠 셋을 살피자.
모두 놀란 얼굴로 입을 가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삼처사첩이라도 일곱이라는 최대치가 있기에 심리적 한계선이 존재하는데, 여난이라는 두 글자는 몇 명이 될지 가늠할 수 없으니 심리적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