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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지계(三分之計) (189/344)

삼분지계(三分之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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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한계선이라는 말이 있다. 

심리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한계라는 뜻인데, ‘여난’이라는 단어는 세 여자의 심리적 한계선을 한계까지 밀어붙인 모양. 

아니, 무너트린 모양이었다. 

세 여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저마다 궁금한 것을 질문했으니까. 

“노, 노공 여, 여난이라고요?” 

“가가, 며, 몇 명이라는 정확한 말도 없었고요?” 

“은공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요?”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 

질문에 익사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그래. 현원법사께서 피할 길! 피할 길을 말씀해주시지는 않던가요? 원래 점을 보시고 가끔 피할 길도 마련해 주시는데, 그런 것은 없었던가요!?” 

“맞아요. 가가, 잘 생각해보세요. 그냥 흘리듯 하신 말씀이라도!” 

“두 분 진정하시고, 은공께서 천천히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기, 기다려보죠.” 

남궁소소의 마지막 말에 셋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좋은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포권을 하는 것처럼 식탁 위에 손을 삼각형으로 세우고는 주먹을 다른 손으로 감싸 말아쥔 모습. 

각자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인지, 조직의 보스들이 취하는 위압적인 포즈 말이다. 

말을 잘못하면 공구리 쳐버리겠다는 그런 기운을 풀풀 날리는···. 

이러면 말해야 했다. 

“이, 있긴 했는데···.” 

셋의 인내심은 이미 거의 존재하지 않는지, 내 짧은 대답에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뭐, 뭔가요!? 그 방법이?” 

“그래, 당연히 피할 길이 있을 줄 알았어. 얼른 말씀해 보세요. 가가!” 

“저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은공.” 

다들 여난을 피할 방법이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 

아니, 셋이 경악할 방법이었지만, 궁금해하니 알려줄밖에. 

“현원법사께서 뭐라 하셨냐 하면. 혹시 제, 제자가 될 생각은 없냐고···. 제자가 되면 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아, 하하···.” 

머리 깎고 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지만, 그 누구도 대답지 않았다. 

방안에 고요한 정적만이 찾아왔을 뿐. 

-달캉달캉. 

얼마나 고요했는지 밖에서 부는 바람에 문짝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영영이가 제일 먼저 입을 열어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림의 현원법사께서 달마동에 은거해 열반에 드실 준비를 하신다더니, 분명 법력이 예전만 못하신 게 분명하네요. 그게 아니라면 농이거나. 안 그러니 청아?” 

“맞아요. 언니. 팔이 아프다니 팔을 자르라는 말도 아니고. 무림 호사가들의 말은 아무래도 믿을 것이, 못 되는 모양입니다. 정말로.” 

“현원법사께서 직전제자(直傳弟子)로 거두신다는 말은, 저희처럼 은공의 자질을 아주 높게 평가하신다는 말인데요. 아마도 은공의 자질이 탐이나 그런 말씀을 하신 모양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끄덕. 끄덕. 끄덕. 

자기들끼리 말하고, 자기들끼리 결론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세 여자. 

저걸 번역하면. 

‘현원법사 늙은이 죽을 때가 되어서 노망이라도 난 거 아니야?’ 

‘아무튼 무림 놈들의 뻥은 믿을 게 못 돼.’ 

‘분명 우리처럼 류청운이 탐나서 거짓말한 게 분명해.’ 

이런 말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을 부정하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난(女難)이라는 말은 ‘여자 여’라는 말에 ‘어려울 난’이 합쳐진 말. 여자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니 꼭 부인이나 첩이 늘어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여인으로 인해 고난을 겪는다는 말일 테죠.” 

“그래, 맞네! 청아, 역시 너는 제갈무후의 후손이라 똑똑하구나? 여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니, 여자를 조심시키면 되는 것이었어. 그래, 그런 것이었어.” 

“두 분의 말씀이 맞네요. 그리고 난이라는 것은 강한 힘으로 막아내면 되는 것.” 

그렇게 결론 내린 셋. 

셋이 스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노공. 어떤 난이 다가오더라도 저희가 막아내 보일 것입니다.” 

“맞아요. 가가. 반드시!” 

“저도 목숨을 걸, 것이어요!” 

그렇게 나에 대한 문제가 여자들의 합의하에 일단락되자, 영영이의 날카로운 질문이 다음 목표를 향했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게 신기할 지경인 영영이의 질문. 

“그런데 소소야, 아직 너에 대한 문제는 결정 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우리와 같이 목숨을 건다고 하는 것이지?”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왜 슬쩍 묻어가냐는 질문이었다. 

남궁소소도 분위기에 휩쓸려 슬쩍 묻어가려한 모양인데, 날카로운 지적을 받으니 낭패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흐, 흐흠. 지, 지금 다른 방법이 있던가요? 제가 은공과의 혼례를 거절하면, 무엇보다 난처해지시는 것은 두, 두 분일 것인데요?” 

영영이의 질문보다 더욱 날카로운 지적. 

어떻게 보면 부인과 영영이 그리고 남궁소소와 나의 문제는 이미 결론이 결정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목이 잘릴 것이냐 부인을 하나 더 얻을 것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내와 영영이도 내가 죽는 것보다 조금 지분 할양을 해주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니까. 

상장폐지나 지분 분할이냐? 

류청운을 휴지 조각으로 만드느냐 조금 양보하느냐.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 

또한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남궁소소가 거절하면, 도리어 우리가 남궁소소에게 싹싹 빌며 매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날 좀 살려달라고. 

“쳇! 소소, 너 많이 건방져졌다? 황실에서 정실부인으로 알고 있다니까 그런 거니? 왜 정실부인 자리라도 꿰차려고?” 

“소소라뇨? 당 소저. 저희 호칭은 좀 다시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네요.” 

“뭐!? 너 지금!” 

“지, 진정하거라 영영아!” 

남궁소소 검만 수련해 아주 순한 성격인 줄 알았더니, 검을 쓰는 여자라 그런지 아주 각을 잘 보는 모양이었다. 

자기의 이득 포인트를 잘 아는 느낌. 

그녀의 말에 영영이가 목덜미를 잡으며 뒤로 넘어갈 것 같다는 포즈를 취했고, 그러자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나서며 나에게 말했다. 

“노공, 노공께서는 잠시 물러나 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눈빛. 

여자들끼리 서열정리라도 하겠다는 느낌. 

“자, 자리를 피해주어야 하오?” 

“아뇨. 이야기에 따라서 노공의 여자가 될 수도 있으니, 노공께서도 있으셔야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남궁소소에게도 하는 이야기. 

당신이 말하는 것에 따라서 자신의 결정이 달라질 수가 있다는 의미를 담아 아내가 남궁소소를 긴장시켰다. 

거기에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넣어 희망까지. 

‘이것이 첫째인 정실의 위엄인가?’ 

심리적으로 둘도 나에게는 버거운 상황인데 거기 하나가 더 추가될지도 모르는 상황. 

거기에 내가 나 살자고 적극적으로 남궁소소를 받아들인다면, 다른 두 아내와 아내 후보에게 원망을 피할 수 없으니 살짝 물러나는 것도 좋을 터. 

아내야 제갈가의 사람이니 상황을 아예 망쳐 버리는 트롤링은 하지 않을듯해, 일단 조금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아, 알겠소. 나는 그러면 한발 물러나 이야기를 경청하겠소.” 

그렇게 내가 대답을 끝내자 아내가 남궁소소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남궁 소저. 소저의 결정에 따라 난처해지는 것은 저희 둘 이지요. 다만, 방법이 꼭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네? 다른 방법이 있다고요?” 

‘다른 방법이 있어?’ 

아내의 말에 나도 놀라고 영영이도 놀라고 남궁소소도 놀랐다. 

아무리 봐도 외통수인 상황인데 방법이 있다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른 방법이 있다는 아내의 말에 집중되는 시선. 

그 시선을 받으며 아내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 제 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북해빙궁의 피를 이었습니다. 하여 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봄에 잠시 중원을 떠날 계획이었지요. 그러니 저희는 이대로 성지를 받들라는 말을 듣지 못한 상태로 중원을 떠나면 될 일입니다.” 

‘오! 역시 제갈! 그래 그런 방법도 있었어! 역시 제갈이라는 성은 게임에서나 현실에서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구나!’ 

아내의 말에 영영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현원법사가 봄에 떠나라고 말한 것이 조금 걸렸지만, 확실히 아내가 말한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긴 했다. 

“하, 하지만 언제든 돌아오실 텐데요?” 

아내의 말에 다급한 목소리로 되묻는 남궁소소. 

그러나 아내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남궁소소에게 대답했다. 

“황제께서 아직 어린 나이라고 하시지만, 황가에는 여러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 그분께서 붕어(崩御)하실 때까지 중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됩니다.” 

황제가 죽어서 다른 황제로 바뀔 때까지 처의 외가에서 신세 좀 진다는 이야기. 

그 말에 영영이가 얄미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짐이나 싸야겠다. 북해(北海)는 과연 어떤 곳일까?” 

계속 깐족거리는 녀석.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가 보기에는 아내가 떠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상황. 

왜냐하면 떠날 것이었으면 굳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자기 눈이 왜 그런지 따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떠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누가 뭐래도 야반도주. 

곗돈 떼먹고 튈 때도 원래 야반도주가 국룰인 것. 

그렇기의 아내의 말이 어떻게 결론이 날까 궁금해지는데, 남궁소소가 너무 치사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 하지만 그러면, 그렇게 하시면, 저, 저는 은공과 혼례를 올린 상태가 되어버려 평생 수절(守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대외적으로 혼례를 올린 상태가 되니 재혼도 못 하고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 

송나라에서는 이혼도 할 수 있지만. 이미 결혼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남편에게 이혼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받지 못하면. 다시 혼례를 올릴 수 없으니 독수공방 확정. 

어찌 보면 아주 잔혹한 말이었다. 

“오라버니의 목숨을 구해주어 노공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걸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해 주시겠지요? 무림인의 맹세는 피를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니까요.” 

TKO. 

아내의 말은 너만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알아서 기라는 말. 

저 모습은 분명 내가 존경하던 그분의 모습이었다. 

제갈공명! 

전율하는 신체!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아내의 마지막 말에 전의를 상실한 남궁소소. 

남궁소소가 아내를 향해 곧바로 사과를 해왔다. 

남궁소소도 아까 곤란할 것이라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기보다는 그간 괴롭힌 영영이에게 한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죄송해요. 제갈 부인. 제가 건방져 보였다면요.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어찌 은공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하며, 어찌 정실부인의 권위에 도전하겠나요? 저와 은공의 관계는 황실 쪽에만 그리 알려진 상태이니,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당 소저와의 호칭 문제를 바로 잡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에요.” 

아내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챈 모양. 

원래 모든 거래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해야 하는데, 남궁소소는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겠다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건 다 양보할 수 있지만, 하나만 얻어가겠다는 것. 

그러자 아내도 그간 영영이가 너무했다고 생각했던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영이를 향해 말했다. 

“언니가 그간 좀 너무하시긴 하셨어요.” 

“응?” 

아내의 지적에 설마 네가 나에게 그럴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영영이. 

아내가 그런 영영이에게 정실의 권위로 위엄있게 말했다. 

“언니, 이제 남궁소소 소저도 저희와 한배를 탄 몸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그, 그럼?” 

아내의 말에 놀란 눈을 부릅뜨는 소소.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감사해요! 제갈 부인. 감사해요! 은공, 이리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 남궁소소, 평생을 다해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정실인 아내가 받아들인다는데, 소처인 영영이는 따라가야 하는 것. 

입을 삐죽거리긴 했지만, 자기 본분은 아는 영영이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에 대답했다. 

“으, 응···.” 

그렇게 영영이의 삼일천하(三日天下)가 막을 내리고 청운 삼분지계(三分之計)가 완성되었다. 

『류 / 청 / 운』 으로··· 

과연 이 파란만장한 요리사의 삶은 어찌 될 것인지···. 

내가 봐도 내가 참 걱정되었다. 

‘대체 어쩔래? 청운아···. 이러다 조각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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