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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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분위기가 싸하다 싶었는데, 화산파놈들을 보자마자 종남파 쪽에서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화산이 상주에 이리 버젓이 돌아다니게 된 것인가!? 문파간의 약조가 이리 하찮을 줄이야!”
“사형, 같은 근본이라도 본류에서 벗어났으니, 수치를 몰라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대뜸 패드립을?’
지금 이 자리는 중원 양대 조직의 조직간 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
원래 같은 정파 소속 문파들끼리는 어지간해서는 충돌을 피하는 법인데, 종남 쪽에서 항쟁도 불사하겠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종남파 쪽에서 언급한 내용은 약간 위험한 발언이니까 말이다.
왜냐하면 원래 수많은 무협의 설정 중.
종남파가 자리 잡은 종남산은 원래 전진교의 성지.
그 전진교의 전진칠자라는 사람들이 권력 싸움을 벌이다가 일곱으로 나뉘어 세운 문파들이 화산, 곤륜, 청성을 비롯한 다른 도가 문파들인데.
역사대로라면 원래 지금 종남산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지만, 특이하게 송나라에 무협 문파들만이 자리를 잡은 것같은 이 세계는 종남과 화산이 존재하는 것.
그러면 전진교는 이미 이전에 생겨났다 사라진 것이거나 다른 설정을 가졌다는 말이 되는데, 놈의 말에서 본류 타령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뿌리는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너희는 정통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나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화산의 근본을 두고 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저건 싸우자는 말이나 똑같았다.
유교 문화인 중원에서 근본 모욕은 욕 중 최고의 욕.
위로 올라갈수록 욕의 등급이 증가하니, 근본 언급은 욕 중 욕이랄까?
원래 같은 정파라도 주먹 쓰는 놈들인지라 당연히 싸움질은 생기기 마련이라도,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저건 선을 씨게 넘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종남쪽의 말에 역시나 계단에서 올라온 화산파 쪽에서도 분노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그 말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구료! 상주가 종남의 땅도 아닌데, 어찌 대뜸 본문을 모욕하는 것이오!? 사과하시오!”
“그렇소! 사과하시오!”
“사과하시오!”
종남파 제자 중 하나의 말에 계단에서 우르르 올라온 화산파 놈들이, 이제 종남과 식탁을 하나 가운데 두고 삿대질하며 말싸움을 시작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어쩔 텐가!?”
“뭐라!? 본문을 모욕하고 감히!”
“진정하십시오! 대인들! 제발 진정하십시오!”
소란에 점소이가 얼른 이층으로 달려와 둘을 말리려 했지만,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자네는 물러나게!”
“그렇소 점소이는 물러나시오. 이건 본문의 명예와 관련된 일!”
“흥. 약조도 지키지 않는 화산에 명예가 있었던가?”
“뭐라? 이자들이!? 정말! 피를 보자는 것인가?”
“이번에는 우리도 물러날 수 없으니, 피 까짓거 봅시다!”
결국 터질 것같은 상황은, 종남 쪽의 한 명이 은자 몇 개와 함께 검을 식탁 위에 올리는 것으로 정점을 찍게 되었다.
-척! 쩔그렁.
경악하는 점소이의 얼굴.
점소이의 눈덩이에 있던 시커먼 복점이 얼굴 전체로 확장되듯, 점소이의 얼굴빛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떠오르는 과거의 트라우마.
‘저 십새들이! 왜 요리집에 와서!’
동종업종 종사자로 분노가 치밀었다.
중원 새끼들은 왜 꼭 밥 먹는 데 와서 이 지랄들인지.
밥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우리 선조 님들이 얼마나 예의 있는 분들인지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본격적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서슴없이 칼을 뽑아 드는 양쪽 조직원들.
연장을 빼 드는 본격적 항쟁의 시작이었다.
-챙!
-채챙!
“사제들 화산의 매화를 모욕당하고 어찌, 사조님들을 뵐 수 있겠는가? 오늘 피를 볼 것이니 주저하지 말게나!”
“쳐라!”
“오늘 섬서에서 도가의 정통을 다시 세울 것이니 사제들은 두려워 말게!”
“오오!”
아내인 제갈청에게 부탁하면 이 상황이 정리되겠지만, 요리집 이층, 아니, 요리집 전체도 같이 정리될 것이기에 물러나야 하나 고민하는데, 소소가 먹던 만두를 앞접시에 내려두고는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은공, 조용히 시킬까요?”
모처럼 목욕까지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데, 먼지를 풀풀 날려대니 소소가 화가 난 모양.
조용히 시킬까 묻고 있었지만, 이미 식탁에 양손을 올리고 바로 튀어 나가려는 자세였다.
생각해보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음식이 아깝긴 했지만 일단 빼는 것이 맞았으니까.
“그냥 자리를 피하는 게···.”
같은 업종 종사자로서 점소이와 주인이 불쌍하긴 하지만, 조직간 항쟁에는 끼어드는 것이 아닌 것.
괜히 또 트집을 잡아 서로 상대편을 들어줬다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고, 잘못하면 이런 사소한 항쟁이 중원 전역의 항쟁으로 번질 수가 있기 때문.
우리까지 끼어들면 중원 구대문파 칠대세가 중 다섯이 연관되니까 말이다.
이건 잘못하면 전국구 항쟁으로 번질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소소가 검을 잘 다루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혼자 연마하는 것 외에 아직 그 실력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아내가 많긴 해도 하나같이 소중해.’
그렇게 물러나자는 말을 하려는 그때였다.
-콰당! 뻐억!
“저놈들이! 내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法)이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보다 뛰어남을 알게 해줄 것이다!”
갑자기 등과 관자놀이에 연속으로 느껴지는 충격과 바닥에 처박힌 몸.
싸우던 놈 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밀리며 내 등에 부딪혔고, 놈이 다시 앞으로 뛰어나가려 자세를 잡는다고 팔을 뒤로 휘두르는 통에 그의 팔꿈치가 내 관자놀이를 후려친 모양.
세 여자의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노공!”
“가가!”
“은공!”
빙글빙글 도는 세상.
영영이의 걱정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가가, 괜찮으세요? 어떡해! 내공 실린 팔꿈치에 맞으신 것 같은데.”
그리고 영영이의 걱정 어린 외침은 두 여자의 분노를 촉발했다.
“이 게 지 금 무 슨 짓 들 입 니 까!?”
“감히! 은공의 몸에 상처를!”
-콰르르르르르.
달달 떨리는 식탁.
내공을 끌어 올리려는 듯한 아내의 모습.
정신없는 와중에 아내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지, 진정하시오! 부인.”
살인멸구(殺人滅口) 할 것이 아니라면 레일건은 꺼내는 것이 아닌 것.
조직 간에 항쟁에서도 총은 최후의 수단.
아내가 레일건을 꺼내는 순간 여긴 식사하다 습격받은 남미 어느 변두리 식당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난자한 총알구멍이 여기저기 생겨나 요리집이 아니라 벌집이 될 것이 명백한 것.
그러자 옆에서 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갈부인, 제가 나서겠어요.”
간신히 한쪽 눈을 떠 상황을 살피자 저놈들은 저희 목숨을 구한 것인지도 모르고 싸움에 열중인 모습.
-콰직!
소소가 화를 참지 못하고 옆 식탁 하나를 박살 내더니, 긴 몽둥이를 하나 만들어 곧바로 싸움이 일어난 무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슬슬 산책하는 것처럼 걸으며, 인정사정없이 두 문파 제자들의 손목과 뚝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콰직!
“끄아악!”
-뻐억!
“꺼흡!”
일단 손모가지를 날린 후 손모가지를 부여잡으면 뚝배기에 한 대.
무슨 검의 묘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열하게 싸우는 놈들 사이로 슬슬 걸어가서 내려치기 한방.
-빠악!
“께흑···.”
몽둥이가 아래로 휘둘러질 때마다 한 놈씩, 한 놈씩 조용히 잠들었다.
마치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 같은 모습.
모두 흑백인데 소소의 붉은 입술만이 붉고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주, 죽지는 않겠지?”
너무 인정사정없이 뚝배기를 깨는 모습에 혹시 두개골파열로 죽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영영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후훗, 저 정도로는 안 죽어요. 아마?”
결국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이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각자 한 명씩 남았을 때.
오대 오로 싸우던 자기편이 모두 리타이어된 후였다.
“큭···.”
“커흡···.”
소소가 치열하게 싸우던 두 놈을 동시에 작살낸 순간.
대치하던 둘 중 하나인 종남의 제자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이 무슨! 누, 누구냐! 감히 종남의···. 어!? 거, 검봉? 거, 거봉이 여기 어떻게. 아니, 이 무슨 짓이요! 검봉.”
아마 소소를 아는 모양인데, 그러나 소소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내 쪽으로 몽둥이를 향할 뿐.
‘저 꼴을 봐. 너희가 먼저 쳤잖아?’라고 말하는듯한 모습.
놈이 그 모습에 우리 쪽을 바라봤으나,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자 바로 몽둥이가 놈의 머리통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르면 처맞아···.
‘남궁소소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 확인.’
그래도 실력은 있는 놈인지 검을 들어 소소의 몽둥이를 막으려 했으나, 소소의 몽둥이는 마치 검을 통과하듯, 놈이 막은 검을 지나쳐 놈의 머리로 그대로 떨어졌다.
-콰직!
“검봉 그···. 꿉!”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혀까지 빼문 상태에서 스르르 무너지는 녀석.
그렇게 마지막 남은 화산의 제자.
“거, 검봉 지, 진정하시고. 무,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오해가 있었다면···.”
놈이 필사적으로 자기 운명을 피하려 말을 꺼냈지만, 도리도리 저어지는 소소의 머리.
‘왜 좋은 몽둥이로 대화할 수 있는데, 입 아프게 말로 하자는 것이지?’ 약간 그런 느낌.
그렇게 소소가 놈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서던 놈이 벽을 등지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놈이 눈이 번쩍 떠지고, 놈이 나를 향해 저승사자 앞에서 살길을 찾은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혀, 형님! 이, 이게 누구십니까! 시, 식룡 류청운 혀, 형님 아니십니까!?”
그러자 소소가 조금 커진 눈으로 내 쪽을 바라봤다.
서로 아는 사이인 줄 몰랐다는 느낌.
동시에 소소 앞에서 빠져나와 부리나케 내 앞으로 달려와 포권을 하는 녀석.
“혀, 형님. 오, 오시기 전에 연통을 주, 주시지. 이리 급작스럽게. 그렇지 않아도 사부님께서···.”
나를 아는 것 같은 모습.
근데 나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새끼 누구지? 왜 친한 척인지?’
“나를 아는가? 우리가 대체 언제 봤던가?”
기억이 도통 나지 않아 누구냐고 물었을 때.
-빡!
-콰직!
“께훕···.”
소소의 몽둥이가 놈의 머리통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부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무너지는 녀석.
그러자 내 옆에서 나를 돌보던 영영이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가가, 화산파의 백승곽 이잖아요. 저의 할아버지 생신에 화산파 장문인과 같이 왔던 후기지수. 왜 같이 모임도 몇 번 했는데, 기억 안 나세요? 마지막에 가가의 처소로 장문인과 찾아와 그, 오덕인지 십덕인지 이야기 나누면서, 나중에 혼례 올리면 찾아오라고 했었잖아요.”
“그, 그랬나?”
영영이의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절한 놈이 아는 놈이라는 사실보다, 영영이의 말도 안 되는 기억력에···.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라니깐.’
그리고 영영이의 말에 생각을 떠올려보니 그런 일이 있긴 했다.
내 요리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던, 화산 장문 태청양이 화산으로 한번 찾아오라고 했던 일이.
그때는 내가 혼례를 올린다는 사실을 몰라 그냥 인사말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혼례를 올리고 한번 꼭 찾아오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정식으로 초대한다고 했으니, 앞에 쓰러진 녀석은 아마도 내 얼굴을 보자 약조를 지키러 왔다고 생각한 모양.
‘하아, 이거 그냥 지나쳤으면 모르겠지만, 저놈한테 얼굴을 들켰으니, 결국 화산에 얼굴을 비춰야겠구나.’
정식 초대 약속을 지키러 가야 하는 현실.
지금 널브러진 녀석들에 더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을 때.
이어서 소소의 당황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 은공께서 아, 아시는 분이었나요? 거짓말하는 줄 알고···. 그럼. 사, 살살 칠 걸 그랬나?”
소소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치지 않을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 점소이가 기절한 놈들을 하나둘씩 끌어 한쪽에 정리했다.
“소, 손님들 괜찮으시겠습니까? 화, 화산과 조, 종남인데?”
이층이 다 작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식탁 하나 부서지고 의자 두어 개 박살 나는 선에서 끝났으니, 다행이라는 얼굴의 점소이.
착하게도 우리 걱정까지 해주는 놈이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요기 이 공자는 물을 뿌려 좀 깨워주시오.”
“아, 알겠습니다. 대인.”
뭐 어쩌겠나 사고는 이미 쳐버렸는데, 잘 무마를 해봐야지.
그런 이유로 아직 내 앞에 구겨져 있는 백승곽이라는 놈들 깨워달라 부탁했다.
깨워서 왜 쳐 싸웠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점소이가 물을 뜨러 사라지고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자 들려오는 영영이의 분노에 찬 외침.
“얼마 먹지도 못했는데!”
영영이의 외침에 식탁을 보니, 얼마나 푸덕거렸는지 먼지 쌓여 식어버린 음식.
그나마 위안이라면 오리구이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
“나머지는 다시 시켜야겠구나.”
“배고픈데···.”
영영이가 화가 나는지 숟가락으로 기절한 백승곽의 머리를 후려쳤다.
-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