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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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의 문파 중, 전국구와 지역구를 나누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문파의 규모?
아니면 그냥 전통?
무공과 무력의 차이?
아니다.
구파일방(九派一幇)과 칠대세가(七大世家)를 나누는 기준은 그런 것이.
혹자는 관계 그러니까, 사제관계의 무림 단체이냐 혈연관계의 단체냐로 나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제활동을 하느냐 마느냐.
일을 하느냐? 아니면 개백수 날건달 새끼들이냐.
그렇다. 칠대세가는 각자 경제활동을 한다.
상단을 운영하거나 당가처럼 자기 고유상품인 독을 마약처럼 은밀히 유통하거나, 이 시대의 총기나 마찬가지인 과학기술의 결정체 암기를 팔아먹는다거나. 아니면 무림의 전형적인 돈벌이 수단인 표국을 운영한다거나, 소작을 준거나 뭐 방법은 많다.
우리 제갈세가는 뛰어난 머리를 이용해 무림의 주먹들이 잘 모르는 컨설팅 같은 것을 진행하거나 계약을 돕기도 하고, 팽가는 머리가 나쁘니 몸 쓰는 일로 돈을 벌지 않던가? 그래도 안 되니까 부잣집과 정략결혼도 하고.
먹고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은 중원 조폭이라도 세가 쪽이 좀 더 근면 성실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전국구인 구파일방은?
아, 이 새끼들은 세가와는 반대로 호기롭게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대부분의 문파가 도가나 불가 계통의 문파이니, 세속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도나 법력을 닦는 자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표면적 사유.
존나 멋진 말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개 같은 논리도 없는 것.
그렇다면 수십에서 수백 명 되는 제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데 들어가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신선이나 부처가 되기 전에 굶어 뒤질 텐데?
결국 남은 것은 한가지.
그렇다.
시주. 구걸. 후원.
타인에게 백 프로 의존하는 것.
이 새끼들은 자기들의 의식주를 백 퍼센트 시주와 구걸, 후원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뭐 구걸은 구파일방 중 일방인 개방에만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나머지 구파는 전부 시주와 기부금 같은 것으로 의식주를 충당하는 것.
받는 놈은 시주와 기부금이라 부르고 내는 놈은 보호비와 삥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시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도가 계열 문파 내부에 모시는 중원 칠선 중 하나의 사당에 참배하고 헌금을 내게 하거나, 불가인 소림처럼 불공을 드리게 해서 뜯어내는 방법.
또는 자기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역의 유지들에게 시주를 가장한 보호비를 걷는 것이다.
정파라고 대놓고 보호비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뭐 전각을 올리거나 그럴 일이 생기면, 지역 유지들을 초대해서 잔치 한번 크게 열고, 뭐 칠선이나 석가에게 바쳐질 전각이라며 은근히 시주를 유도하거나, 평소에는 지역 유지 중 자기 사람을 시켜 시주를 유도하는 느낌이랄까?
‘아, 화산파가 흑도의 무리들에게서 우리를 이리 지켜주는데, 저희가 보름에 한 번 정도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장사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구대문파의 주 수입원이자 유일한 수입원.
그래서 이놈들을 내가 중원 조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말 날건달 새끼들이기 때문에···
“그래, 내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 왜 싸움이 났는지 설명해 보거라.”
승곽이가 시주를 나왔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설명했지만, 결국 장사 잘하는 영세업자들에게 수금하러 왔다는 말이기에 왜 싸웠는지나 설명하라고 물었다.
그러자 난감해하는 승곽이.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형님.”
“아니, 아까 보니, 저치 들이 무척 화가 났던데?”
“아, 그것은 그러니까······.”
붙임성 좋은 인싸라서 호형호제를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본 순간부터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던 백승곽 녀석이 아주 억울하다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승곽이는 점소이가 가져온 걸레 빤 물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가정 먼저 깨어난 상태.
내 옆에 앉아 아내와 영영이, 소소의 눈치를 보며,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라는 추궁 받으며 그렇게 설명을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이놈이 이리 눈치를 보는 이유는, 이놈들의 충돌에서 표면적으로 내가 가장 크게 다쳤기 때문.
그리고 그 파문이 가져온 결과 때문이었다.
다른 놈들은 뚝배기가 터질 것처럼 얻어맞았지만, 소소가 기술적(?)으로 팼는지 기절만 했지, 그렇게 크게 다쳐 보이지 않는 상태.
백승곽도 물을 뿌리니 금방 깨어나 머리가 좀 아픈지 머리를 긁긴 했지만, 혹도 나지 않는 상태로 멀쩡했는데, 나는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도 익히지 못한 내가 무림인의 내공 실린 팔꿈치를 얻어맞았으니, 어떻게 되었겠나?
관자놀이 부근이 주먹만 하게 부은 상태.
머리뼈에 금이 가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부어오르고 있었던 것.
그 때문에 점점 부풀어 오르는 내 머리통에 아내와 소소, 영영이의 분노게이지도 동반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 녀석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칠대세가의 남궁, 당, 제갈가의 아가씨 셋이 남편과 오라버니 그리고 정인(情人)의 부상에 분노하고 있으니까.
“똑바로 설명해욧! 우리 잘생긴 가가, 얼굴이 만두가 되어가고 있어서, 지금 기분이 별로니깐! 확 그냥! 흑도 놈 같았으면 독수로 녹여버렸어!”
“제갈가의 접각부를 이리 만드시다니, 화산은 당연히 책임지실 준비는 된 것이겠죠? 손님을 불러놓고 이리 패다니···.”
“검수는 말보다 검으로 대화하는 법. 제, 정인을 이리 만드셨으니, 검으로 잠시 대화해야 할까요? 제가 요전번에 곰의 앞발을 자르면서 떠오른 초식이 있는데, 수절(手切)이라고···.”
“힉! 저는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상주를 자꾸 자기들이 관리 아니, 도를 전하는 곳이라고 우겨서···.”
소소는 일단 황궁 쪽에 혼례가 결정된 상태였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마음을 나누는 사이인 정인이라고 알리기로 정한 상태,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가 날 사달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세 여자가 서로 저마다 관계를 내세우는 모습으로 협박하자, 백승곽이 달달 떨 수밖에 없는 것이다.
꼬리를 만 개처럼 기가 죽은 녀석에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나와바리 아니, 뭐라고 해야 하나 상주의 지배권을 두고 싸움이 난 거라는 말 이더냐.”
“어휴. 형님 지배권이라뇨. 화산을 따르고자 하는 시주님들이 많은 지역인지라. 도에 대해서 저희가 가르침을 전파하다 보니까······”
‘그나저나 이거 잘못하면 뒤집어쓰겠는데···.’
원래라면 이런 전국구 항쟁이 끼어들면 안 되지만, 이미 상대 조직의 말단들을 단체로 떡으로 만든 상태.
내가 좀 다치긴 했지만, 저쪽도 다섯 명씩 쓰러졌으니, 승곽이야 쫄아있지만 높은 사람이 나서면 잘잘못을 따질 때 불리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이쪽은 한 명, 저쪽은 다섯 명씩이니까.
잘못하면 둘이 도리어 이쪽에 시비를 걸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이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그래야 양쪽에서 욕을 먹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연성공 형님의 백이 무식한 무림 조폭들에게 크게 먹힐 리도 없으니, 이건 결국 무림 쪽에서 해결을 봐야 하는 문제.
나는 아내와 영영이, 소소에게 잔뜩 쫄아 기가 죽은 백승곽에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승곽아, 이 형님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수금 아니, 시주를 걷으러 나왔다가. 네 말대로라면 원인 모를 이유로 싸움이 붙은 것 같은데···. 이리 시주를 걷으러 나와서 하라는 시주는 받지 않고 싸움질하다가. 장문인께서 손님으로 초대한 제갈가의 사위이자, 당가의 의남매이며, 남궁가 후계의 정인을 이 꼴을 만들었으니, 돌아가면 화산의 장문인께서 뭐라 하겠느냐? 우리 승곽이 아주 잘했다고 하시려나?”
내 말에 부릅떠지는 승곽이의 눈.
녀석이 떨리는 눈으로 그제야 무슨 사고를 친 것인지를 깨닫고 변명했다.
“혀, 형님. 형님을 그리 만든 것은, 분명 저기, 저 종남의···.”
승곽이의 변명에 머리를 쥐고 아픈 척을 했다.
아니, 솔직히 욱신거리긴 해.
“아이고, 머리가 어지럽네···.”
그러자 들려오는 세 여자의 음성.
“노공! 어, 어지러우십니까!?”
“은공? 괜찮으세요?”
“가가! 어쩜 좋아! 가가께서 매우 아프신 것 같은데, 화산은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욧!? 애초에 싸우질 않았으면 가가께서도 다치실 일이 없는데! 우리 음식값 물어내욧!”
‘아니, 영영아 내 몸 걱정하면서, 왜 음식값을 물어내라고 하니···.’
그렇게 영영이의 음식값 타령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때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화산과 종남에 저희 제갈, 당, 남궁에서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그러자 승곽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혀, 형님! 제,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승곽이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
승곽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승곽이를 보니 화산의 미래가 매화처럼 밝구나.”
매화는 봄에만 피는 꽃이니까 곧 질 테지···
***
종남파 장문인의 직전제자(直傳弟子) 감연릉은 깨질 것 같은 머리로 깨어났다.
‘아윽, 무슨 일이 일어났었지?’
깨어나 보니 왜 자신이 쓰러져 있었던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
옆을 보니 그의 사제들도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제들 괜찮은가?”
“크윽. 대체 무슨 일이···.”
“술이라도 마신 듯 머리가 깨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자네 머리는 깨지는 것같은 게 아니라 깨졌네···.”
“예!?”
사제의 머리에는 피딱지가 눌어붙은 상태.
저건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게 아니라 깨진 것이 분명했다.
욱신거리는 머리의 통증.
주변을 둘러보자 한쪽 구석에서 화산의 제자들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가 기억나고, 자신이 남궁소소에게 맞아 기절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맞아! 검봉!’
이번에 나갔던 무림비무대회에서 자신의 체면을 사정없이 구겨버렸던 검봉 남궁소소.
그때도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실력에, 체면이라도 보중(保重)하려고 삼 초식을 양보한다고 말했었는데, 사정없이 자신을 기절시켰던 검봉,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
보통 실력이 없는 자가 삼 초식을 양보한다고 하면, 적당히 몰아붙여, 이쪽에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하고 졌다고 하면 되는데,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검집으로 자기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켰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자기 뒤의 놈은 약삭빠르게 여자와 싸울 수 없다며 기권했다지···.
‘그런데 왜 검봉이 나타났지? 화산 쪽의 편을 드는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왜 갑자기 검봉이 난입해 자기들을 제압했는지 이해하지 못해, 생각에 빠져있을 때.
한쪽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어찌 이러십니까?”
“가가! 정신 차려 보세요.”
“은공!”
감연릉은 옆에 굴러다니는 검을 허리에 다시 패용(佩用)하고, 얼른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왜 자기들에게 출수했는지 검봉에게 물어보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여자들이 난리를 치는 곳으로 다가가자, 머리 한쪽이 주먹 두 개 정도 크기로 부어오른 남자가 실신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무슨 일인가를 묻자 세 여자의 원망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저들 무슨 일이시오?”
“무슨 일!?”
“무슨 일이냐고욧!?”“지금 사람이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무슨 일!?”
검봉은 아는 얼굴이었지만 둘은 모르는 여자.
여자들의 기세에 움찔하자, 옆에서 느껴지는 소매를 잡아당기는 손길.
누구의 손길인지 흘깃 보자, 화산파의 놈이었다.
자신과 같은 화산파 장문인의 직전제자 백승곽.
사이가 이리 험하지 않았을 때, 오다가다 한 두어 번 인사를 한 사이.
놈의 손길을 뿌리치며 정색했다.
“뭐 하는 짓이요. 치졸한 화산파가!”
그러자 자기의 날카로운 말은 신경 안 쓴다는 듯, 들려오는 그의 다급한 말투.
“지금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오. 지금 우리가 큰일을 만들었소!”
“큰일?”
연릉이 놈의 말에 무슨 개수작 질 이냐는 듯 바라봤다.
상주를 쥐새끼마냥 야금야금 처먹는 것보다 큰일은 없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감연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기 누워있는 자가 우리 화산의 손님인데, 아까 우리의 싸움에 휘말려 크게 다친 모양이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소이다.”
“뭐요!? 아니, 뭐 화산의 손님이면 손님이지···. 잠깐. 그럼!?”
그의 말에 아까 검봉이 뛰어들어 자신들을 제압한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쓰러져 있는 자가 검봉의 지인(知人)인 느낌.
“누, 누구요 저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들려오는 대답.
“제갈가의 접각부 이시오.”
분명 검봉의 지인이라 생각했는데 제갈가의 접각부?
이상했지만 큰일이 맞았다.
제갈가 사위를 저지경을 만들었으면,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아있는 백승곽의 말.
“그리고, 당문의 금지옥엽 독접의 의남매라고 하더이다.”
“그, 그럼 저 소저가!?”
제갈가 하나로도 큰일인데 당문까지.
지끈거리는 머리의 통증은 이미 사라진 상태.
놀란 눈으로 백승곽을 바라보자 그가 마지막 말을 끝냈다.
“그, 그리고 검봉의 정인이라 하더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마디.
“아니, 뭐가 그렇게 부러운···.”
그리고 감연릉은 좀 전 백승곽의 손길을 뿌리친 것을 곧바로 후회했다.
바로 자신이 옷소매를 잡아야 했으니까.
“대체 어, 어쩐단 말이오!?”
부러운 것은 둘째치고 칠대세가 중 셋을 동시에 건드렸으니, 아까 맞은 것 때문은 아닐 텐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