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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맛집 (196/344)

원조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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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놈이 한쪽에서 서로 심각한 대화를 나누자, 녀석들의 사제들이 몰려들어 두 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내 긴 소개에 자기들이 무슨 사고를 쳤는지를 깨닫고 경악하는 표정이 되어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들려오는 폭소하는 음성. 

“픕!” 

녀석들의 반응에 소소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던 것. 

이런 연기가 처음이라서 그런지, 내가 기절한 척하는데 보이는 화산과 종남의 반응이 참을 수 없게 웃긴 모양. 

‘원래 웃음이 많은 성격인가?’ 

저렇게 웃는 건 본 적이 없어서, 실수했는데도 귀여운 소소. 

하지만 나의 감상과는 다르게 획 돌아보는 열 쌍의 눈. 

그러자 영영이가 야수 같은 동작으로 소소의 손등을 꼬집으며 말했다. 

“꺄흐···” 

“소, 소소야 너무 슬퍼하지 말아. 괜찮으실 거야. 가가는.” 

“꺄흐으으으읍. 으, 은공···.” 

비명인지 울음인지를 터트린 소소가 영영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영영이가 내공이라도 실어서 꼬집은 모양. 

소소가 손등으로 눈물 닦는 척하며, 자기 볼에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 

“안 되겠습니다. 일단 객잔으로!” 

아마도 더 있으면 소소가 실수할 듯하니, 어서 객잔으로 가자고 하는 느낌이었다. 

뭐 다 각본에 있는 내용이지만, 살짝 타임테이블이 빨라진 느낌. 

그렇게 실신한 척 아내의 등에 업혀 요리집 계단을 내려오게 되었다. 

“가가. 가가··· 어떡해.” 

“은공···.” 

한 번의 실수 후 영영이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는지, 영영이의 연기를 적당히 추임새 넣으며 소소가 따르고. 

그렇게 무사히 요리집을 벗어나나 싶었는데, 요리집 계단을 막 내려서자, 앞에서 점소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손님들 이게 무슨 일 입니까? 좀 전까지만 해도 괜···.” 

“결국, 혼절하셨습니다! 자리에 눕히기 위해서 객잔으로 가려 합니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려는 점소이의 말을 가로막는 아내. 

코끝으로 구운 오리의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봐서는, 점소이가 마지막 요리인 오리구이를 가지고 올라오다 우리와 마주친 느낌이었다. 

아내가 점소이의 말을 끊고 허겁지겁 문밖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다시 우리를 붙잡는 점소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가 무척 미안한 목소리로 우리를 불러세웠다. 

“저, 손님들!?” 

점소이의 부름에 셋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나도 아내의 등에서 실눈을 뜨고 왜 부르는지를 확인했다. 

우리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뼛거리는 목소리도 점소이가 물었다. 

“그, 음식값은···?” 

미안하긴 한데 받을 건 받아야겠다는 목소리. 

아주 야무진 놈이었다. 

그의 말에 아내와 소소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돈은 나에게 있으니, 나를 깨워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그러자 그의 물음에 잽싸게 나서는 영영이. 

영영이가 얼른 나서 점소이가 손에 든 종이 깔린 오리구이를 종이에 감싸 품에 안더니, 이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들이 계산한다고 했어요!” 

영영이의 동물적 순발력과 알뜰함. 

‘오오! 역시 영영이!’ 

그러자 이층 난간에 매달려 우리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이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눈길을 피해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크흠!” 

“크흐으음!” 

서로 책임을 피하는 모습. 

그러나 어림없었다. 

‘영영이 말대로 너희들이 내는 게 맞긴 해.’ 

*** 

-냠냠. 

-틱. 

“맛있겠지? 덕구야.” 

-으르릉···. 왈! 

영영이가 고기를 다 뜯은 오리 다리를 덕구에게 던져주자 덕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짖었다. 

아까 맛있는 거 가져다준다고 해서 짐을 지키고 있었는데, 받아든 것이, 고작 영영이가 먹고 버린 오리 뼈면 화가 날 만도 한 것. 

그와 함께 침상에 누운 내 이마를 어루만지며 아내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노공, 문제없이 빠져나오긴 했는데, 생각대로 되시겠습니까?” 

저 다정한 눈망울에 부드러운 손길. 

부어오른 관자놀이와 함께 영혼이 같이 가라앉는 느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그럴 것이오.” 

일단 작전 첫 단계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하는 데는 성공한 상태. 

한 대 맞았는데 열 명을 떡으로 만들었으면, 시비가 걸릴 수도 있지만, 내가 혼절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다른 것이니까. 

무공도 모르는 제갈가의 접각부가 두 문파의 분쟁에 끼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무조건 피해자 확정이었다. 

이제 적당히 양쪽에서 사과받고, 그걸 빌미로 둘의 화해를 중재해서 대협의 면모를 보이면 되는 일. 

내가 화해까지 시킬 필요는 없지만,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그냥 놔두면 매일 쳐 싸우며, 객잔과 요릿집을 박살 낼 것이 분명했으니, 상주 요식업계를 위한 이 식룡의 서비스랄까? 

아무튼 그러면 항의가 찬사로 바뀌는 매직을 경험하게 되는 과 동시에, 뭐하나 부족한 사람으로 나고 있는 소문도 좀 잦아들 테니까. 

“그나저나 노공. 백승곽이 말을 잘해주어야 할 텐데요.” 

“다른 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 일단 믿어봅시다.” 

승곽이가 봄의 끝에 핀 매화같이 금방 질 것 같은 놈이라는 이유로 거듭 걱정된다는 아내의 이야기. 

하지만 똘똘한 놈이면 우리 제안을 거절했을 터. 

백승곽과는 세 가문의 정식 항의를 받고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뒈지게 혼나는 것에서, 은밀히 사고 친 것을 문파에 알리고 적당히 한 소리 듣는 것으로 합의를 본 상태. 

정식항의하지 않을 테니, 가서 높은 사람에게 사고 친 사실을 알리는 조건으로 설득한 것이다. 

예를 들의 그의 사부인 장문인 이라든지···. 

이제 이것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가가. 화해시키려면, 화산파 말만 들어서 되겠어요? 왜 양쪽 말 다 들어봐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오늘 맞은 건 나인데 맞는 말을 하는 영영이. 

손에 다른 오리 다리 하나를 쭉 찢어 든 채로 영영이가 물어왔다. 

“그래, 그래서 내일 다 같이 좀 해주어야 할 일이 있구나.” 

“뭔데요? 재미있는 건가?” 

내 대답에 영영이가 오리 다리를 든 채로 궁금해하고 있을 때였다. 

덕구가 폴짝 뛰어올라, 영영이가 손에 쥔 오리 다리를 낚아챈 것은. 

-와앙! 텁! 

“야!” 

그리고 덕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구석에서 오리 다리를 맛보기 시작했다. 

물론 남은 뼈를 물어다 영영이에게 건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 

‘맛있으니까 너도 줄게.’ 그런 느낌. 

덕구의 행동에 분노한 영영이. 

영영이가 요리에 관심이 생겼는지 요리법을 물어왔다. 

“가가, 개는 어찌 요리해야 맛있나요?” 

“그야, 고려장(된장)을 발라가지고···.” 

결국 소소가 영영이와 덕구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오리를 세 마리 더 구워와야 했다. 

*** 

다음날 아내와 소소에게 정보 조사를 부탁했다. 

나야 지금 생사불명(生死不明) 상황이니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고, 승곽이 보다는 주변 상인들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이 좋았기 때문. 

영영이 말대로 화해시키려면 왜 싸우는지 원인을 알아야 했으니까. 

승곽이의 대답이야 화산에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일면식 없는 종남을 부를 수도 없는 일. 

이럴 때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제일 좋은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침을 먹자 아내와 소소가 정보를 얻기 위해 저자로 출동하고, 영영이는 내 옆에서 간병을 하는 중. 

영영이가 부어오른 내 관자놀이에 오리알을 문지르며 말했다. 

“가가, 괜찮을까요? 이거 객잔 주인한테 받아오긴 했는데, 달걀은 아니고 오리알이래요. 이제 달걀은 없데요.” 

“그래, 이번에는 깨 먹지 말자꾸나.” 

“헤헤, 이제 익숙해졌다니까요?” 

“그 말은 아까 두 번째 달걀에도···.” 

“쉿! 난 가가가 과묵하실 때가 좋더라.” 

영영이의 동물적 요망함. 

내가 문지른다니까 기어코 자기가 문질러준다고 하다가 벌써 달걀을 두 개나 깨 먹은 영영이, 덕분에 달걀 팩은 원 없이 한 상태. 

영영이를 저지할 수는 없을 것 같기에, 그냥 내 걱정은 말고 아직 돌아오지 않는 두 사람 걱정이나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둘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한번 나가볼까요?” 

그렇게 점심때가 지나 저녁때가 가까워져 오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 아내와 소소를 걱정하는데, 엎드려있던 덕구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치며 문 앞으로 달려갔다. 

-탁탁탁탁. 

너무 꼬리를 흔들어 엉덩이까지 씰룩거리는 덕구.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 

‘이상하게 나보다 청이를 더 반기는 것 같단 말이야.’ 

덕구의 반가운 꼬리치기가 붕붕 소리가 날 때가 돼서야 문이 열리고, 아내와 소소가 안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노공.” 

“은공, 다녀왔어요.” 

“오, 그래 고생들 하였소. 그래, 필요한 이야기는 들었소?” 

“예, 노공 지금부터 말씀드릴게요. 언니, 저희 차 한 잔씩만 부탁드려요.” 

“응! 그래 알았어!” 

-호르륵. 

따듯한 차를 마시며 시작된 아내의 설명. 

오늘 소소와 아내가 조사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원래 전생의 무협에서 도가 계열 문파들은 전진에서 시작해, 전진칠자라는 자들의 집안싸움으로 갈라져 나온 문파들이 이름을 바꾸거나 시간이 지나며 거기서 나온 제자들이 세운 문파들이라고 보면 되는데. 

내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중원 칠선 중 하나인 검선 여동빈(呂洞賓)의 가르침을 사사(師事)한 직전제자들이 각자 세운 문파가 내려온 것이라는 말로 아내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약간의 설정 차이니까. 

그런데 다른 도가계열 문파들이야 다 따로 떨어져 있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여기 섬서. 

전생의 전진교처럼 검선 여동빈의 제자에 의해 처음 세워진 곳은 종남산의 종남파이고, 그 나머지 문파는 차례대로 세워졌다고 보면 되는데, 화산파가 종남산의 코앞 화산에 자리를 잡은 것이 이 문제의 발단. 

같은 원류(源流)를 가졌다고 내세우는 두 문파가 근처에 자리를 잡았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해서 종남과 화산의 사이가 계속 좋지 않았다고 해요.” 

“그건 당연할 것이오.” 

검도 종남은 중검(重劍)을 쓰는 문파이고 화산은 쾌(快)와 환(幻)을 중요시하는 그런 문파니까. 

같은 가르침은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끝에 이르고자 하는 느낌이기에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것. 

거기에 짜장면집 만들어서 영업 잘하고 있는데, 누군가 바로 앞에 다른 짜장집을 낸다? 

이건 상도가 없는 행위. 

전생에도 요식업 하면 아주 자주 일어나는 분쟁인 것. 

‘그러면 결국 원조 맛집 분쟁으로 서로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지.’ 

그러다 보니 결국 세력권이 겹치는 두 문파는 감정싸움이 자주 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번 만나 합의를 보게 되었는데, 섬서의 가장 큰 도시인 서안은 반절 잘라 나눠 관리하고, 상주 북쪽은 화산이 남쪽은 종남이 관리하기로 했다는 것이 아내가 알아 온 정보였다. 

그런데 그 합의에서 문제의 여지를 남겼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게 당시에는 상주를 기점으로 북쪽은 화산이 도를 전하고, 남쪽은 종남에서 도를 전하기로 했는데, 정작 상주 자체를 어찌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다고 해요.” 

‘도를 전하기는 이 새끼들! 결국 나와바리 갈라 먹어 놓구!’ 

결국 저희끼리 섬서를 나눠서 관리하기로 했는데, 접경지역 설정을 잘못해서 계속해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뭐 모든 국경 분쟁이 그런 느낌이니 이해가 가는 부분. 

“아, 그래서 싸움이 났다?” 

“정확히 이야기가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원래 언급이 없는 지역인지라 그냥 자율적으로 서로 도를 구하는 분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는데, 이게 요즘 들어 이상하게 화산 쪽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아져, 종남이 그리 예민해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쪽에서 들어오는 시주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상도 없이 코앞에 문 열고 영업한 화산이 원인제공, 그리고 주먹만 쓰는 놈들이 제대로 생각도 안 하고 저희끼리 합의를 봐버린 것 때문에 결국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말이었다. 

요식업 하는데 떡하니 앞에 원조 이 지랄 하면서, 가게 내는 놈들이 생기면 빡치기는 할 터. 

종남의 입장이 십분(十分)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장사할 때 그것만큼 분한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원래 원조집 경쟁에서 불리한 것은 나중에 영업을 시작한 가게. 

아무래도 기존의 영업을 하는 가게는 고정 손님도 있고, 어디가 원조인지를 아니,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힘든 구조. 

가격도 내리고, 이쪽이 원조라고 간판도 크게 달고, 공격적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화산이 같은 중원 전국구인 종남을 대상으로 그럴 것 같지는 않았던 것. 

시주도 가격을 깎아 주는 구조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면 왜 화산이 요즘 상주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지는 알아보았소?” 

그러자 내 물음에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소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대답했다. 

“은공, 그것은 제가 알아 왔어요. 아마도 제가 알아 온 것이 맞을 겁니다.” 

“오, 소소가? 그래, 말해보시오.” 

‘생각보다 정보 조사 같은 능력이 뛰어난가?’ 

이게 혼례가 결정되고 연애하는 느낌이 되어버려 소소에 대해서 아직 완전히 모르는 상태.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소소의 말에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다. 

칼뿐만 아니라 머리도 똘똘한 듯했으니까. 

그러자 들려오는 이상한 답변. 

“그게 꽃 때문인 것 같아요.” 

“꽃?” 

“봄에 피는 그 꽃말이요?” 

“예.” 

그 말에 조심스레 영영이를 바라봤다. 

‘소소도 설마 영영이 과인가?’ 

난데없이 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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