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광고
.
“다른 게 아니고 잠화(簪花)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잠화 말이요?”
“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확신이 들었어요.”
“잠화라···.”
종남파와 화산파의 성세가 변하게 된 계기가 잠화일 것이라는 소소의 주장.
소소의 주장에 한번 생각해보았다.
잠화 이야기까지 나오니 마냥 뜬금없는 주장이 아닌 것 같다는, 뭔가 감이 오고 있었기 때문.
난데없이 꽃이라는 하는 통에 잠시 의심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녀도 남궁.
남궁이란 가문은 원래 권력 싸움 특화형 가문이라서, 민심을 잘 파악하고 그런 것을 잘 후비는 것으로 유명한 가문.
그런 면에서 보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던 것.
‘그래, 소소가 영영이과는 아닐 수 있겠어. 백치미는 아무래도 캐릭터가 겹치잖아?’
잠화(簪花).
남자들이 경사스러운 날 머리에 꽂는 꽃을 말한다.
뭐 내가 살던 시대라면 광년이도 아니고, 멀쩡한 남자 새끼가 웬 꽃을 대가리에 꽂느냐 하겠지만, 남자가 머리에 꽃을 꽂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유구한 전통인데, 전생에 조선시대에 과거급제한 자들이 꽂던 꽃도 그런 문화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머리에 꽃을 꽂는 문화가 활짝 꽃핀 시기가 송나라.
전생이라면 꽃을 꽂고 돌아다니면 ‘저 새끼 미쳤나?’ 하겠지만, 이 송나라에서 꽃을 꽂고 다니는 것은 ‘저 새끼 개쩔어!’로 보이는 것.
미친놈도 아니고 왜 이렇게 송 시대에 남자 새끼들이 꽃을 꽂는 문화가 발달했냐면, 이게 전부 황제 때문인데, 송나라 황제가 연회에 꽃을 하사하는 취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 자기 딴에는 잔치에 흥이 올라 내리기 시작했을 테지만, 조정에서 열리는 조회가 끝나고 먹는 식사도 황제가 내렸기 때문에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곳이 이곳인데, 황제가 꽃을 내리면 어떻게 되겠나?
그래, 반드시 황제께 하사받은 꽃을 머리에 꽂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무슨 벌칙 게임도 아니고.’
절대 다른 이가 손을 대서도 안 되고, 집에 가져가서도 말라 꽃잎이 떨어지면, 하사받은 사람이 직접 치워야 하는 것이 송나라의 법.
아니면 모가지가 뎅강.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남자 새끼가 꽃을 꽂고 다니니 병신같다고 생각했을지라도, 그것이 황제가 직접 내린 것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서는, 이게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상징, 플러스 황제에게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되어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런 문화로 정착된 것이 남자 새끼들이 머리에 꽃을 꽂는 문화인 것이다.
“아! 그러면 설마 화산의 매화 때문에?”
“예! 맞아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하는 소소.
자기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해준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리고 화산이 말도 안 되는 시대 버프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시대가 밀어주는 하와이안 무복 새끼들 무쳤냐고.’
매화에 그냥 미친 것뿐인데, 시대를 잘 타서 뭘 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매화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말.
문파 중 유일하게 하와이안 무복을 입고 다니니, 이 시대 감성으로는 뭔가 황제께 공인받은 느낌이 나는 것.
아니면 문파 중에 단연 돋보이는 느낌으로 보이거나.
단지 꽃이 무복에 수 놓아져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말이다.
이 정도면 원조집 종남이 억울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래도 원조집이 이렇게 티가 나게 쑥쑥 밀릴 리가 없는데?’
하지만, 아무리 버프를 받고 있어도 종남이 크게 느낄 정도로 사람이 쑥쑥 빠지는 것은 이상했다.
종남에 시주하던 사람들은 종남 고유의 맛 그러니까 종남에 익숙해진 상태일 텐데, 갑자기 화산으로 돌아서는 것은 이상했으니까 말이다.
이게 정말 요리와 관련된 맛집 경쟁이라면, 뭐 하나 뛰어난 점으로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지만, 조폭에게 올리는 상납금인데, 기존 조폭과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산으로 갈아타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것이니까.
그런 이유로 의구심을 떠올리는데 소소가 남은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겨울이 끝나고 제일 빨리 피는 꽃이 매화이니, 도문 중 제일 첫 번째가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더군요. 거기에 매화가 피면 겨울이 쫓겨 사라지는 것처럼, 화산에서 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 고통받는 사람들의 겨울도 사라진다나요?”
‘아니, 이 사이비 새끼들이?’
그럼 그렇지.
물 들어오니 노 젓는다고,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해놓고, 알고 보니 버프 받는 김에 뒷광고를 겁나게 조지고 있었던 모양.
저런 소문은 원래 후발주자들이 퍼트리는 것.
소문의 내용으로 보아 화산파에서 흘러나온 소문이 거의 확실했다.
첫 번째 도문.
자기들이 도가의 정통이자 장자라고 주장하는 말이나 똑같았고, 유교 문화권에서는 이런 큰형님 버프가 원래 큰 것.
큰형님이 계신 데 굳이 동생한테 시주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승곽이 이 새끼 말할 때 떨더라니.’
“그리고, 봄에 매화가 피면, 화산의 제자들이 그걸 꽂고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그걸 보고 그런 소문들이 사실이라 믿고, 또 화산 제자들이 멋있다고 생각해 자꾸 화산 쪽으로 시주를 한다나 봐요.”
화산에서 대놓고 광고와 뒷광고까지 펼치고 있는 상황.
그래, 아무리 시대 버프를 받고 있어도 원조집이 그냥 허무하게 밀릴 리가 없는데, 하와이안 새끼들 비겁하기가 그지없었다.
원래 공정경쟁 상 뒷광고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런 비겁한 원조 맛집 분쟁이라면, 이 중원 요리사 식룡 류청운이 가만두고 볼 수 없는 것.
‘원조 맛집 살리기 들어야겠네.’
내가 턱을 잡고 생각에 빠지자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노공, 종남을 도와주실 생각이군요?”
“아, 화해를 주선할까 했는데, 이대로 화해시켜봐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 종남을 조금 도와주어야 할 것 같소이다. 그냥 놔둔다면 백성들만 피해를 볼 테니까 말이오.”
두 문파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지금은 화산 쪽으로 많이 기운 상황.
이러면 한쪽에 무게를 더해주어야 했다.
이 상태로 화해 해 봐야 미봉책(彌縫策) 이니까 말이다.
당분간은 잠시 싸움을 멈출 테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으니 다시 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니까.
내가 그렇게 도와주겠다 대답하자, 아내와 영영이, 소소가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저의 야서(野鼠), 노공이십니다. 저의 목숨을 구해주시고.”
“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주셨으며.”
“제, 오라버니를 구해주신 은공.”
미소녀 전사들도 아니고···. 무슨 같이 단체 멘트를 준비한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참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앞다퉈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후, 하루하루가 고비구나.’
이렇게 억누르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 시동이 안 걸리는 고장이 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
***
소소와 아내가 사 온 저녁을 식탁에 늘어놓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방향이 결정되었으니, 세부 계획을 세워보기로 한 것.
“노공, 화해는 어찌 시킬지 생각해두셨나요?”
아내의 질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의미 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려 하오.”
“은공, 의미 있는 요리 말인가요?”
“아, 소소는 모르겠구나. 소소는 아직 가가께서 웅장과 황산돈합같은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밖에 보지를 못했으니까 말이야.”
“요리가 그러면 맛있는 것 말고 또 있나요? 아, 추억이 깃든 요리는 있을 수 있겠네요?”
영영이의 말대로 소소는 자신이 경험한 내가 고급스러운 요리와 맛있는 추억의 요리만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상태.
소소의 질문에 영영이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 그래 수당(獸糖)! 수당 알지 수당?”
어린아이들 먹게 설탕을 짐승 모양으로 녹인 수당 이야기를 꺼내는 영영이.
갑자기 튀어나온 수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당이야 물론 알지요.”
“그래, 그 수당처럼 가가의 요리는 맛도 있지만, 그 뭐랄까 모양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다 달콤한 맛이지만 그 겉모양이 달라서, 아 어렵다. 청아 네가 설명해줘.”
자기가 좋아하는 먹을 것까지 들먹이며 설명하려 했지만, 그것이 영영이의 한계.
머리를 너무 썼는지 에너지를 보충하려 영영이가 잽싸게 만두를 베어 물며 아내에게 설명을 맡겼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며 설명하는 아내.
“요리에 의미를 담아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론 요리로 사람을 깨우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 맞아 그거!”
“감동을 주기도 하고, 사람을 깨우치기도 한다고요?”
‘소소야 오빠 그런 남자야. 너 남자 잘 만났다. 정말루다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소소.
그러자 영영이가 다시 ‘씨익’하며 악동같이 웃었다.
“독을 안 넣고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라. 가가께서는 요리의 고수 식룡. 이시니까.”
“네!?”
영영이의 농담에 소소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이냐고 묻는 눈빛.
“아니, 무슨 사람을 죽인다고, 농은 그만두거라 영영아. 소소가 놀라지 않느냐. 소소도 영영이가 장난을 친 것이니 놀라지 마시오.”
“노, 농이었군요. 깜짝 놀랐네요.”
영영이의 농담에 놀란 소소를 진정시키고 어떤 요리를 만들지를 설명했다.
“둘이 한 근본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좀 일깨워주려 하오.”
“근본이라. 확실히···.”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
한 부모에서 태어났으니, 처 싸우지 말라는 뜻으로 요리를 만들어주려 하는 것.
“그러면, 두 문파의 화해는 노공이 요리로 알아서 하실 테고, 그러면 저희와 상의할 것은, 종남에 어찌 힘을 실어줄지 하는 것이군요?”
“그렇소. 이 상태로라면 화산으로 빠져나가는 시주들을 막지 못할 것이니까 말이오.”
“하지만, 중원인들이 잠화를 좋아하는 것은 바뀌지 않을 테니, 어려운 문제입니다.”
“맞소. 흐음.”
나와 아내가 고민하자 영영이가 옆에서 거들었다.
“청아, 그냥 종남도 꽃 꽂으라고 하면 안 돼?”
뭐 단순한 생각이긴 한데, 나쁘지 않긴 했다.
하지만 꽃 버프를 받고 있으니, 꽃을 이용하는 것은 맞았는데, 그렇다고 아무 꽃이나 꽂을 수도 없는 것.
봄에 피는 꽃아 아주 한정적이니까 말이다.
“꽃을 이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화산처럼 자기의 상징도 아닌 꽃을 꽂을 수는 없으니, 생각해볼 문제로구나. 그것으로 종남이 어떤 이득을 볼지 가늠이 안 되니까 말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꽃을 꽂고 다녀봐야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는데, 소소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은공. 그, 아버지께서 검을 훈련할 때 하셨던 말씀인데, 갑자기 떠올라 그런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장인께서?”
“예, 자, 장인.”
아직 장인이라는 호칭이 부끄러운지, 소소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아버지께서 ‘내가 강해질 수 없다면, 상대를 약하게 만들어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강해질 수 없다면, 상대를 약하게 만들어라···.”
역시 정치적 식견이 뛰어난 남궁 가문.
실로 남궁 가문다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못 이길 것 같으면 상대를 병신 만들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전생의 무협 세계 단골 무림 맹주를 대대손손 해 먹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녀가 전해준 말에 고민해 보았다.
‘화산을 어찌 약하게 만들 수 있을까?’
영영이의 꽃을 꽂아주자는 주장부터.
매화, 봄에 처음으로 피는 꽃.
검선 여동빈에게 가르침을 받아 세운 첫 번째 도문 종남.
그리고 두 번째 도문 화산.
첫 번째. 종남.
두 번째. 화산.
그렇게 머릿속에 떠올린 단어들이 머릿속을 날아다니고. 잠시 후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질 때,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딱!
손가락을 튕기며 외쳤다.
“오! 그래 상대를 약하게 한다!”
그러자 궁금한 듯 묻는 세 여자.
“오, 가가. 떠오르셨나요? 뭔가요?”
“방법이 생각나셨습니까. 노공?”
“어떤 방법인가요? 은공.”
그녀들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매화가 꼭 처음 피라는 법은 없지 않겠소?”
“네?”
“예?”
내 대답에 당황한 모습의 셋.
화산의 뒷광고 아무래도 내가 작살내버려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