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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火鍋) (199/344)

훠궈(火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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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새하얀 영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자 들려오는, 화산 장문인 태청양의 분노에 찬 목소리. 

“뭐라!? 되다만? 되다 말다니!? 매화영단이 되기 직전. 영단의 기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영약이 분명하거늘 그 무슨 망발 이시오!” 

그러자 종남의 장문인 천허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 알기로는 매화영단이 보통 이년 정도의 내공을 얻게 해주는 하급 영단일 텐데, 거기서 기운이 빠졌다면 그걸 뭐라 불러야겠소? 최하급?” 

‘아니, 최하급이었다고? 그건 좀 그렇네.’ 

종남 장문인의 지적에 화산파에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내 실망한 눈빛과 종남파 장문인의 지적에 화산 장문인 태청양이 당황해 우물거렸다. 

“무, 무슨. 말조심하시오! 하급 영단이라도 우리 매화영단은 다른 문파와 전혀 다르오! 백팔 가지 약초를 연단로에 넣고, 여섯의 장로가 삼십 일간 매화의 기운을 불어넣어 만드는, 다른 문파에 중급 영단 못지않은 영단이란 말이오! 영단이 완성되었으면 오 년 내공도 문제없는데, 그 무슨 망발이란 말이오!” 

“하지만, 그건 화산 문도나 그런 것이고, 하급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지. 그리고 지금 상태로라면 반편이일 텐데, 식룡이 심각한 상태였다면, 과연 그것으로 일으킬 수나 있으셨겠소?” 

“바, 반편이라니! 지, 지금 우리 화산의 영단을 모욕하는 것이오!” 

“모욕이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외다. 나는 식룡이 생사를 오가는 위중한 상태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십 년 내공을 얻을 수 있는 본문의 중급 영단인 유운단을 꺼내왔으니까 말이오.” 

‘이 집 장사 잘하네.’ 

역시 원조집이라더니 손님 대하는 서비스가 남달랐다. 

호랑이 고약 정도 챙겨왔을 줄 알았더니 영단이었고, 하급도 아닌 호기롭게 중급 영단이라니. 

그가 나에게 인자한 얼굴로 권했다. 

“자, 식룡 고민하지 말고, 되다 만 것 말고 이걸 드시게.” 

“어허, 이 무슨! 식룡, 아니네. 걱정하지 말고 매화영탕을 드시게. 식룡은 무림인이 아니라 기운이 강한 것은 도리어 몸에 좋지 않을 수 있네.” 

뭔가 변명 같은 화산 장문인의 이야기. 

맞는 말인가 싶어 아내와 영영이, 소소가 있는 쪽을 바라보자 셋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내가 대표로 나를 향해 말했다. 

“화산 장문인의 말씀이 맞긴 합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종남 장문인 천무자의 물음. 

“제갈 부인이신가?”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갈가의 제갈청이라 합니다.” 

“아, 아버지는 잘 계시는가? 내 혼례에 참석 못해 많이 미안했다네. 본문에 일이 있어서 말이야.” 

장인어른과의 친분을 들먹거리는 원조집 사장님. 

그의 말에 아내가 머리를 숙이며 다시 한번 인사했다. 

“아닙니다. 장문인. 아버님과 친분이 있으셨군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 내 자네 아버지에게 자네 혼례에 ‘초대’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지. 아, 그리고 혹 영단의 기운이 강해 식룡이 몸을 다칠까 걱정한다면, 염려하지 말게. 내 직접 진기도인(眞氣導引)까지 해줄 테니까 말이야.” 

‘진기도인(眞氣導引)!’ 

이 집 서비스 정말로 확실했다. 

이 시대에 고객 맞춤형 서비스라니. 

진기 도인이란 내가 영약을 먹은 기운을 직접 몸 안에 골고루 스며들 수 있게, 자기의 내공으로 관광 가이드 해주듯 먹은 기운을 한 바퀴 돌려주겠다는 말. 

꼭꼭 대신 씹어서 넘길 수가 있게 입 안에 넣어주겠다는 말이나 똑같았던 것. 

그러자 화산의 장문인 태청양도 얼른 나서 말했다. 

“지, 진기도인은 당연한 것, 나도 해줄 테니, 식룡은 염려하지 말고, 매화영탕을 드시게.” 

‘이것이 기연이라는 것인가?’ 

나로 인해 화산이 쩔쩔매고, 종남이 안절부절. 

가슴에 웅장함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의 웅장한 기분도 모르고, 내 감상을 방해하는 세 여자의 뾰족한 외침. 

“안 돼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방안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셋을 바라보자, 약간 상기된 셋 사이에서 아내가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 

“아, 아직 노공께서는 어떤 무공이나 내공심법(內功心法)도 익히지 못한 상태. 혹 진기도인이 이루어진다면, 내공을 익히게 되는 것인데, 노공께서는 제갈가의 접각부시니 다른 내공을 익히게 둘 수는 없습니다.” 

영단을 먹는다는 사실에 잠시 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진기도인이란 원래 내공으로 난 길을 따라 진기가 돌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나는 아무 길도 없는 오프로드 몸이니, 길부터 내야 했는데, 길을 낸다면 그것은 내 내공심법으로 굳어질 수도 있는 것. 

일단 외부에는 내가 제갈가의 접각부로 알려져 있으니 타 문파의 내공심법 곤란했다. 

일단 나는 제갈가의 데릴사위니, 제갈가의 상표가 붙어 있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제갈가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 

데릴사위라고 쓰고 노예라고 부르는 그것이 나였으니까. 

소유권자의 허가 없는 무허가 도로 개발은 큰 문제였던 것이었다. 

받아도 제갈가의 내공심법을 받아야 했던 것. 

‘내공심법과 내공이 코앞인데, 왜 먹지도 받지도 못하니!?’ 

그렇게 현신을 마주한 내가, 내 처지에 실망한 눈빛이 되자, 세 여자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노공, 이왕 얻으실 내공이면, 저, 저와 같은 것으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노공의 사람이고, 노공은 저의 사람이니까. 그리고 진기도인 제, 제가 해드리고 싶습니다.] 

[가가, 얻을 거면 당문의 내공을 얻으셔야죠. 그러면 어지간한 독에 중독도 되지 않으며, 독도 약이 되는데, 저분들 분명 상승 내공을 가르쳐주시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나중에 할아버지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해서라도 당가의 상승 내공을 얻어드릴 테니 실망하지 마세요.] 

[은공, 은공도 채도라는 도를 쓰시는 분. 제, 본가가 검문이기는 해도 검과 도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저와 같은 것을 익히시면, 그,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네요···. 그리고 제 것을 익히시면 나중에 아버지에게 허락받기도 좋을 것이고···.] 

‘아니, 그런 이유였어?’ 

나와 하나라도 공통점을 만들고 싶다는 그런 셋의 고백. 

저마다 욕심은 있었지만, 이런 고백 아주 좋았다. 

제갈가가 놀라고, 당가가 눈치 보고, 남궁이 전전긍긍. 

그래 이것이 진정한 무림 생활. 

그리고 진기도인이 어미 새가 새끼 새가 먹기 좋게, 씹은 먹이를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시커먼 남자들이 씹은 음식을 받아먹는 것보다야, 받는다면 아내나 영영이, 소소가 씹어 넘겨주는 것을 받아먹는 것이 맞았다. 

흐뭇한 마음을 담아 셋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자 약간 붉어진 볼로 셋이 기뻐했다. 

‘얘들아, 걱정하지 마! 난 어차피 영원히 너희들의 것이야···.’ 

그러자 이제는 다른 것을 권하는 두 장문인. 

“그러면 이 영단은 잘라 먹어도 되니, 네 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만 드시고, 나머지는 나중에 드시게.” 

“우리 매화영탕은 몸에 부담이 없으니, 쭉 들이키게 자자.” 

잠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분이 주도하는 대화에 끌려가고 말았지만, 아내와 영영이, 소소의 말에 정신이 든 상태. 

셋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난 좀 이기적인 남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둘이 코앞으로 들이미는 영약을 각각 다른 손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 

“저 때문에 두 분이 언쟁하시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이 편치를 않군요.” 

“어허, 이거 우리가 아픈 사람을 두고.” 

“크흠. 미안하게 되었네. 식룡.” 

자신들도 병자 앞에서 너무했다 싶었는지 한발 물러나는 모습. 

둘을 그만 싸우게 하려고 내 결심을 이야기했다. 

“하니, 두 분께서 저 때문에 고민하시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말에 당황한 둘. 

둘을 그대로 두고 고개를 돌려 소소와 영영이를 향해 부탁했다.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야. 이런 말이지.’ 

“영영아, 소소, 두 분이 가져오신 선물 받아두겠소? 어차피 둘 다 받았으면 되는 문제였는데, 괜히 고민했구나.” 

그러자 둘이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소소와 영영이가 날랜 걸음으로 다가와 둘의 손에서 영약을 낚아채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가가. 두 분 어르신의 선물에 감사드려요.” 

“은공을 위해 귀한 선물을 준비해 주신 두 분 감사드립니다.” 

서로 자기 약을 나에게 먹여서 친분 라인을 만들어 두려고 했나 본데, 나는 세 아내와 당선 확정자들에게도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는 남자니까. 어느 사람도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 

‘아쉬워하지 마쇼. 어차피 다 나 주려고 가져왔다면서. 그나저나 흥(汞 수은)과 유황, 납인 연(鉛) 같은 것은 안 들어있겠지?’ 

불량 영단은 곤란했기에 나중에 꼭 함량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둘이 멀어지는 영약을 허공에서 움켜쥐며 아쉬워했다. 

*** 

그렇게 영약의 향방이 결정되고, 두 장문인과 사람들을 식탁에 둘러앉게 했다. 

약은 약이고 두드려맞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양쪽 다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비공식적인 만남이라도 정상적인 사과는 받아야 하는 거니까 말이다. 

좀 전처럼 대충 뭉개는 거 말고. 

-쪼르륵. 

정실이자 첫 아내인 청이가 나서 여섯의 잔에 차를 따르는 것이 끝났을 때, 불편한 기색으로 식탁 앞에 마주 앉아있던 여섯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침상 위에서 소소와 영영이에게 부축받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렇게 화산과 종남에서 귀한 선물과 함께 저를 걱정해 찾아주셨으니,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이 청운 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밝아지는 여섯의 얼굴. 

원래 비공식으로 만나서도 이야기가 잘 안되면 공식적으로 변하는 것이니. 

자신들이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고 해도, 내가 맘에 안 들어 하면, 장인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제갈가로 사과 사절을 보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면 또 제갈가의 입장에서는 옳다구나 하면서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할 것인데, 내가 잊겠다고 하니 얼굴이 밝아지는 것. 

“역시 식룡이 의인인 것은, 내 독왕 어르신의 생일잔치에서도 느낀 바였지만, 그 느낌이 부족했던 것 같네. 의인이 아니라 이건 성인이 아닌가?” 

“식룡이 그리해준다면, 이 종남도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네.” 

세가 중 절반과 척을 진다는 것은 다른 세가 전체와 척을 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중원 전국구에 대항해 뭉친 가문의 연합체인 칠대세가 전체와 불편한 사이가 될뻔했는데, 영약 한 개로 세이브를 했으면 남는 장사라 생각했는지, 둘이 기뻐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기뻐하는 둘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그런데?” 

“불편한 것이 있나? 아, 연릉이 이 녀석을 벌해야 하는데, 내 잠시 그것을 잊었구만, 식룡이 아무리 그 일을 없는 일로 한다 해도, 벌 받을 놈은 받아야 하는 것인데. 내 식룡을 그렇게 만든 녀석과 녀석을 단속 못한 대제자 연릉이를 어찌 벌하면 좋겠나?” 

종남 장문인의 말에 장문인의 직전제자인 감연릉이라는 놈의 얼굴이 시커멓게 줄어들어 갔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아니란 말에 다시 밝아지는 감연릉이라는 놈의 얼굴. 

누구 하나 벌주자고 하는 게 아니라는 말에 장문인들이 나를 향해 되물었다. 

“그러면?” 

“그래, 마음이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보시게. 식룡.” 

“실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그날 두 문파가 싸우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가 않아서 말이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공을 배운 자들이 계속 싸움한다면, 무공을 익히지 못한 저 같은 범인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 상주의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 말입니다. .” 

“크흠···.” 

“그러니까 그것이···.” 

내 지적에 부끄럽다는 둘의 얼굴. 

그들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도문으로 이름 높은 두 문파에서,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무림의 호사가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해서 두 문파에서도 서로 간에 사과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약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도 불편한 것은 잊을 테니, 두 분도 그리하시지요.” 

‘형들 그만 싸우고, 우리 밥이나 한 끼 하면서 다 잊자.’ 

“그리 약조해 주신다면, 두 분이 화해하는 자리를 위해, 제가 직접 요리를 준비해 대접하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제안하자 화산파의 장문인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화산에서야 분쟁이 빨리 끝나면 이득이니 거침없는 모습. 

“오, 요리를 말인가? 식룡의 요리를 대접받을 수 있다면, 이를 말인가? 내 당연히 잊어야지. 아무렴.” 

그러나 종남의 장문인은 불편한 얼굴이었다. 

내 머리통 깬 것을 잊는 조건으로 화해를 내걸었으니 거절은 못 하지만,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을 터. 

그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 그래. 식룡이 그리 말한다면. 뭐, 우리도···.” 

일단은 모른 척하고 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면 내일 저녁 다시 들러주시겠습니까? 제가 오늘 영단을 먹고 기운을 차려 내일 요리를 준비해 보도록 하지요.” 

“그렇게나 빨리?” 

“화해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고. 화산과 종남의 영단을 먹었는데, 설마 내일까지 몸을 추스르지 못하겠습니까?” 

“아니지! 당연히 벌떡 일어날 수 있지! 아무렴!” 

“종남의 유운환 반의반 쪽만 드셔보게 죽은 자도 살아날 테니.” 

그렇게 두 장문인과의 전격적 저녁 식사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 싶었는데, 들려오는 화산 장문인의 물음. 

“식룡 그런데 우리가 먹을 요리는 무엇인가?” 

내일 우리가 저녁에 먹을 요리. 

화산을 상징하는 홍탕과 종남의 백탕이 어우러진 요리. 

먹으면 친해질 수밖에 없는 요리. 

훠궈(火鍋 화과)였다. 

“훠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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