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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초반(三鮮炒飯) (202/344)

삼선초반(三鮮炒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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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덕구 녀석. 

아내가 어떻게든 내보내려 했지만, 덕구는 요지부동이었다. 

전생의 사람이라면 나가서 돈가스라도 사 먹고 오라고 만원이라도 한 장 쥐여주었을 것인데, 덕구는 개. 

철전을 준다고 해서 신이나 달려 나갈 것이 아니니, 어떤 꼬심도 불가능했다. 

나가서 놀라는 말도 솔직히 덕구 입장에서는 웃긴 말이었으니까. 

개가 처음 오는 곳에서 대체 어딜 나가서 놀다 온단 말인가? 

그러니 아내의 여러 제안에 덕구는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애견인인 내가 나선다면? 

“덕구야 심부름 잘했으니 부엌에 가서 맛있는 거 줄까?” 

“월!” 

“자, 얼른 따라오너라.” 

*** 

[청,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덕구를 밖으로 유인해서 두고 올 테니.] 

[예? 유, 유인 말입니까? 아, 알겠습니다.] 

귓가가 간지럽게 들려오는 귓속말에 흠칫한 청이는 류청운이 덕구를 끌고 사라지자마자 괜스레 귀밑머리는 쓸어 넘기고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의 화끈거리는 볼을 손등으로 식히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아직도 뛰는 가슴. 

분명 세 번째 접문이지만, 첫 번째는 자신이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자신을 살리고자 했던 것. 

두 번째는 사람을 구명하는 기술을 배울 때 한 것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맨정신에서 의미 없이 아니, 의미 있이 해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그러니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노공께서도 그동안 무척 힘드셨을 텐데. 이런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다니···.’ 

혼례를 올릴 때 집안의 어른들과 시비들에게 배운 바로는 남자는 어지간한 인내심이 없이는 그것을(?) 참기 힘들다는데, 청이의 몸을 생각해서 일 년 가까이, 노공은 정말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분이었다. 

그렇게 청이가 노공의 사랑에 감사하며, 영영 언니와 소소가 돌아오기 전에 노공이 원하는 대로 실컷 접문을 해드려야겠다고 결심할 때. 

“윽.” 

단전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 

그리고 단전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들이 혈맥으로 쏟아지려 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날이 조금씩 따듯해지면서 단전에 꽉 들어찬 기운들이 살짝살짝 버거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런 일은 없었기에 깜짝 놀란 청. 

청은 내공을 누르며 재빨리 몸을 움직여 노공의 급을 찾았다.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던 노공의 보물창고 급. 

맛있는 요리재료들이 잔뜩 들어있지만, 지금 청이 찾을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찾아야 할 것은 약왕께서 만들어준 약이었으니까. 

그렇게 다급하게 어깨에 메는 끈을 잡고 천을 걷어, 안에 있을 약왕이 만들어준 약을 찾을 때 들려오는 소리. 

-투둑. 

청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급의 어깨끈이 끊어지고 말았던 것. 

청이는 내공으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약함을 꺼내 그 안에서 약왕이 만들어준 환약을 얼른 집어삼켰다.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내리는 환약. 

그 약 기운이 단전에 닿자 전신에 탄력감이 들고, 곧바로 내공이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전신의 세맥과 단전에 느껴지던 고통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냥 한번 일어난 일이겠지?’ 

청은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어 당황했지만, 일단 약이 있어 위험한 상황은 넘길 수 있었고, 그냥 어쩌다 한번 일어난 일이겠거니 생각하며 약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약함 안에 들어있는 환약의 개수는 오십여 개. 

‘괜찮겠지?’ 

“덕구야! 가만 서보라니까! 고기 좀 더 줄게 부엌 다시 가자! 야!” 

그렇게 청이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고민할 때 문밖에서 노공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혹 노공께 심려를 끼칠까 싶어 청이는 얼른 약함을 급 안에 넣고 침상으로 몸을 움직였다. 

*** 

결국 내가 나서서 부엌에서 맛있는 걸 준다며 녀석을 꾀어내, 사 왔던 고기 한 점을 아낌없이 던져주었지만, 녀석은 고기를 먹자마자 금방 되돌아갔다. 

“덕구야 부엌에서 잠깐 기다리면 좀 있다가 더 맛있는 거 준다니까? 야! 인마! 덕구 인마!

그렇게 덕구와 실랑이를 하다 보니, 한 시진은 금방 지나버렸고, 어느새 소소와 영영이가 냄비를 가지고 처소 안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어요. 가가.” 

“다녀왔습니다. 은공.” 

“고생하셨습니다. 두 분.” 

“수고들 했소. 자자, 다들 앉으시오. 내 따듯한 차라도 내올 테니.” 

처소 안으로 들어서자 발그레해진 둘의 볼. 

초봄이긴 했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 

추운데 고생했을 테니 몸을 녹일 따듯한 차라도 준비해 주려고, 식탁 위에 내려둔 냄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부엌을 향하려는데 들려오는 영영이의 말. 

“가가, 저랑 같이 가요.” 

“영영이 너랑? 그냥 쉬고 있지 그러느냐.” 

“아니에요. 같이 다녀올래요.” 

“그래, 뭐 그럼 그러자꾸나.” 

추운 데 있다가 왔으니 그냥 쉬고 있으라 권했지만, 영영이는 기어코 나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둘이 부엌으로 향해 점소이가 육수를 끓이는 것을 한번 살피고, 다른 솥에서 끓고 있는 물을 받아 객실로 되돌아올 때. 

이층에 올라서자 영영이가 갑자기 나를 빈방으로 잡아끌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가가, 우리 가가 저랑 소소랑 없을 때 청이랑 뭘 하셨을까?” 

“그, 그것을 어, 어떻게!?” 

영영이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대답하자, 영영이가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방안에 들어서자 느껴지는 흥분한 남녀의 땀 냄새. 그리고 가가의 입술에서 나는 청이의 여린 체향. 분명 입이라도 맞추셨을 테지요?” 

정확한 짐작. 

‘아, 당가···. 개코였지.’ 

-꿀꺽. 

들켰다는 사실에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키자, 영영이가 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가, 긴장하지 마세요. 서운한 것 아니니깐.” 

“그, 그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서운하지 않으니깐.” 

그리고 나를 향해 입술을 내밀어왔다. 

청이도 해줬으니 자기도 해달라는 제스처. 

“그, 그럼 내 다 해주려고 했느니라.” 

-쪽. 

앞으로 뭘 하려면 환기 플러스 가글 필수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했다. 

*** 

티타임이 끝나고 다 같이 부엌으로 이동했다. 

이제 점심때도 지나 저녁이 가까워져 올 시간이고, 냄비를 씻고 재료를 준비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부엌에 도착해 요리를 시작하려 하는데,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 

“가가, 그런데 뭐 먹을 것 없을까요? 밖에서 한참 서 있다가 왔더니 좀 배가 고파요.” 

“영영, 분명히 아까 철장포(鐵匠鋪)에서 대접해주는 만두를 몇 개나 먹었던 것으로···. 웁!.” 

영영이의 배고프다는 말에 소소가 뭔가 말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곧 영영이의 손에 의해 강제로 입이 틀어막혀졌다. 

아무튼 배가 고프다는 이야기. 

그간 영영이 아내와 생활하다 보니 영영이 식탐의 비밀을 약간이나마 파헤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송나라 사람들은 전생의 일반인 서너 배는 먹는데, 근육 비율이 높은 영영이같은 무림인은 더욱 효율이 나쁜 느낌. 

뭐 영영이야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보다 더 먹는 느낌이긴 했지만, 아무튼 배가 고프다니 뭔가를 먹여줘야 했다. 

“먹을만한 게 뭐가 있을까?” 

저녁에 먹을 재료 이외에는 준비하질 않아서 뭘 해야 하나 걱정하며 점소이에게 물었다.

밖에서 사다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너무 거나하게 먹어 버릴 테니,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까 물었던 것. 

“점소이 혹시 음식 재료나 먹을 게 좀 있소? 내가 있으면 사리다.” 

그러자 점소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달리 사다 둔 것은 없고, 찬밥은 좀 많이 있습니다. 귀찮아서 데워먹으려고 좀 많이 해 두었거든요.” 

“찬밥?” 

‘찬밥? 아, 찬밥이라 그렇다면 그게 딱이구나.’ 

“좋소. 그러면 찬밥을 좀 가져와 주겠소.”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밖으로 나가 들고 온 것은 찜기. 

부엌은 사용하지 않고 따로 화로를 이용해 쌀을 쪄먹은 모양. 

저러면 밥알이 날아다녀 식사로는 별로이지만 내가 지금부터 만들 요리의 재료로는 완벽했다. 

-탁. 탁. 탁. 탁. 

먼저 저녁에 쓰려고 불려둔 말린 버섯을 꺼내 다지고, 닭 뼈를 분리해 빼두었던 닭고기도 똑같이 다져주었다. 

“영영아 방에 가서 내 급에 들어있는 하미(蝦米 말린 새우)를 좀 가져다주겠느냐?” 

“알겠어요. 가가.” 

“아, 가는 길에 방에 있던 오리알도 가져다 주거라.” 

“네.” 

충분히 우러난 백탕을 옆으로 치워두고, 그 화로 위에 웍을 올렸다. 

기름을 듬뿍 넣어 웍을 달구고, 기름으로 웍을 코팅한 후 기다리자 도착한 영영이. 

영영이의 손에 들린 것은 오리알 세 개와 건새우인 하미가 들어있는 주머니. 

그것을 건네받아 달궈진 웍에 기름을 다시 두르고 오리알을 까 넣었다. 

-촤아아아아. 

달궈진 기름과 만난 오리알이 내는 기름 끓는 소리. 

곧장 새알 특유의 고소한 향이 폴폴 솟아올랐다. 

왼손으로 웍을 잡고 오른손으로 국자. 

웍을 잡은 손을 스냅을 줘 안에 든 오리알을 적당한 크기로 부서지게 볶아주었다. 

뭉치지 않게 일정한 크기로 부서지게 하는 것이 관건. 

그렇게 오리알 볶는 것이 끝나면 오리알을 옆에 건져두고, 기름을 다시 두른 웍에 파 투하. 

-지글지글지글. 

뜨겁게 달궈진 기름으로 쏟아져 들어가 파에서 향이 확 하고 뿜어지며, 파가 붙잡고 있던 자신의 향기를 기름으로 토해냈다. 

여기 넣을 것은 건새우. 

-탕! 탕! 

채도 옆면으로 후려쳐 건새우 한 줌 정도를 가루를 내고. 

일부는 통으로 넣어 웍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러면 파기름에 튀겨지는 건새우에서 새우 특유의 진한 향미가 뿜어져 나오는데, 여기에 다져둔 닭고기 양파를 넣고, 어느 정도 익혀주면, 오리알과 밥을 넣고 볶아준다. 

-치이이이익. 

-덜컥. 덜컥. 

윅을 흔들어 밥을 섞고, 국자를 움직여 재료가 균등하게 섞이고 볶아지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간의 간장으로 풍미를 주면 볶음밥 완성. 

재빠르게 그릇을 청이와 영영이, 소소에게 들려주고 배급하듯이 한 국자씩 크게 떠, 그릇 안에 담아 주었다. 

저마다 손에 든 그릇에서 올라오는 볶음밥의 향기를 들이키는 모습들. 

“흐응. 파와 건새우, 닭고기, 표고버섯의 향에 살짝 늘어 붙은 간장의 진한 향. 맛있겠다! 감사해요. 가가.” 

“저는 잘 모르겠지만, 맛있는 향이 나는 것 같아요. 은공.” 

영영이는 자기 재주를 십분 살려 향을 듬뿍 즐기는 모습. 

향만으로 맛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 

“저기, 어르신. 헤헤.” 

-꿀꺽. 

옆을 보니 점소이가 빈 그릇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놈은 얄밉지 않은 법. 

피식 웃은 후 녀석의 그릇에도 볶음밥을 올려주었다. 

원래 눈치 빠른 놈이 절에 가서도 고기를 얻어먹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러자 숟가락도 없이 개처럼 얼른 맛을 보는 점소이. 

“슈릅. 허으으으···. 허으. 어르신. 그런데 이게 후···. 무슨 요리입니까? 마, 맛이 허으···.” 

녀석이 볶음밥을 들이켜며 감격하는 표정으로 물어왔기에, 녀석의 그릇에 볶음밥을 조금 더 올려주며 대답했다. 

“삼선초반(三鮮炒飯)이라고 하네.” 

삼선볶음밥이라는 뜻. 

삼선이란 육, 해, 공의 귀한 재료를 한가지씩 넣었다는 뜻인데, 원래는 해삼, 꿩, 표고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천천히 구하기 쉬운 재료로 바뀌다가 큰 의미의 육해공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도 해삼, 꿩, 표고가 삼선을 가리키는 의미일 테기에, 그냥 이대로 이름을 사용해도 되나 싶어 아내와 영영이 소소가 있는 쪽을 바라보자, 셋이 입 안에 있는 것을 꼭꼭 씹어 삼킨 후, 부끄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삼선(三鮮) 세 가지 고운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요? 점소이도 있는데, 가가 정말 부끄럽게···.” 

“요리에 그런 뜻을 담아 주시다니. 노공 가, 감사합니다.” 

“이, 이것이 은공이 요리에 뜻을 담는 법. 사, 삼선···.”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목소리. 

‘그런 뜻 아닌데···.’ 

자기들이 아는 삼선과 다르니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양. 

꿈보다 좋은 해몽이 이런 뜻인가 싶었다. 

어쨌든 점수를 땄으면 만족. 

셋에게 얼른 대답했다. 

나는 기회를 잡을 줄 아는 남자니까. 

“하, 하하. 내, 사, 삼선.” 

그러자 셋이 부끄러운지, 뒤로 돌아 벽을 바라보며 삼선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 

넷이 식사를 하는 사이 소소가 만들어 온 냄비를 씻어주고, 홍탕, 백탕에 넣어 먹을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얇게 잘라 준비했다. 

그리고 같이 먹을 두부, 물에 불린 마른 표고버섯, 여기에 양파와 무, 콩나물과 겨울난 배추를 잘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준비해 주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식당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주인장. 주인장 계시는가? 위층에 손님에게 화산파에서 찾아왔다 전해주시게.” 

“종남에서도 찾아왔다 전해주시게.” 

저녁으로 살짝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마침 딱 맞게 손님들이 찾아오신 모양이었다. 

“자, 그럼 태극 모양으로 나누어진 냄비에 화산과 종남을 어우러지게 해볼까?” 

화해모드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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