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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 (205/344)

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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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호박 같은 거절에 화산파 장문인 태청양이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나 자랑질해댔는지, 같이 동석한 화산의 장로들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가, 내 거절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장문인의 부탁을 이리 단호하게 안 된다고 거절할 줄은 몰랐다는 느낌. 

내 반응에 화산의 장문인 태청양이 당황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어, 어째서 말인가? 아! 하, 하돈을 구할 수 없을까 봐, 그러는 것인가!?” 

‘이 양반 결국 서시 누님의 젖을 노린 거였구만!’ 

화산에서 제일 도력이 높을 장문인이 이렇게 속세에 아니, 여색에 미련이 많으니, 검선 여동빈처럼 신선이 못 되는 것이 당연한 느낌.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 걱정하지 마시게! 장강뿐만 아니라 봄에 황하에도 하돈이 올라오니까 말이야. 내 경공이 빠른 제자들을 보내 하돈을 구해오라 하겠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화산의 장로들. 

우리가 황하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기에 화산에서 황하는 그리 멀지 않거니와, 그의 말대로 봄의 황하는 산란을 위해 황복들이 많이 올라오는 시기. 

아직은 본격적으로 봄철 산란기가 아니라, 때가 이르긴 하지만, 찾아보면 잡을 수도 있을 터. 

그래서 하돈 공수 계획까지 생각해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활어차도 없거니와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활복을 살려서 가지고 오는 것은, 당가처럼 독물을 취급하는 노하우가 있는 집이 아니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욕심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 

승곽이 같은 놈을 갈아 넣으면 운반이야 어떻게든 될 테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하돈을 경공으로 물통에 넣어 가지고 오다 한 놈이 죽거나 내장이 찢어지면, 다른 녀석들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 

죽은 녀석에게 흘러나온 독 때문에, 안전한 다른 부분에 독이 스며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현재 서시 누님은 복건의 복주에서 장기간 능욕당하고 계신 분. 

물론 서시에 관련된 요리는 더 있지만 더 이상 이분을 끌어다 쓸 수 없었다. 

‘이러다 누님이 꿈에 나와 나를 원망하시겠어.’ 

장문인을 설득하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장문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선 하돈을 화산에서 요리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단 말인가? 어, 어떤?” 

문제가 있다는 말에 다시금 당황하는 화산의 장문인. 

“먼저 물통에 넣어서 살려 이 화산 위까지 가져와야 하는데, 혹 중간에 한 마리가 죽어버리면 다른 녀석들도 사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통에 넣어 운반할 때 통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내장이 혹 손상되기라도 하면 더 큰 일이고 말입니다. 독이 뿜어져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하돈이 죽음도 불사하는 맛이긴 해도, 죽기 위해서 먹는 것은 아무래도 아니니까요.” 

“허허, 그런···. 내 제자들에게 꼭 맛보게 해주고 싶었거늘···.” 

내 설명을 들은 장로들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고, 안타깝다는 화산 장문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느낌이 제자들에게도 먹여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분명 장로들과 자기들끼리 복어로 한잔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예전에 그의 초대에 생각 없이 대답해 지금 이렇게 그의 앞에 서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의 초대에 응한 상태. 

그의 요구를 어느 정도 맞춰줄 필요가 있었기에 생각했던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장문인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저는 식룡. 그에 못지않은 요리를 준비하도록 하지요.” 

서시 누님의 젖을 맛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어두워진 안색이 된 화산의 장문인에게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내 제안에 시큰둥한 화산의 장문인. 

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크흠. 그래, 뭐···. 식룡이 맛없는 요리를 내지는 않겠지···. 그런데 아무래도 서시가 없는 요리는···.” 

장문인의 말에 단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화산의 장로들. 

‘하여튼 이 나이대 형님들은 정말.’ 

해만 지면 어떻게 와이프 눈 밖으로 도망칠까 궁리만 하고, 와이프가 샤워라도 할라치면 침대에서 죽은 척하시는 분들이 왜 그리 와이프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해 관심들은 많으신지. 

발기 아니, 활기찬 아침을 맞고는 계시냐고 질문을 드리고 싶지만, 꾹 참고 다음 말을 이었다. 

여성호르몬 폭발해 삐지기 전에 다른 제안을 설명해 드려야 했으니까. 

“장문인 중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인은 누가 있겠습니까?” 

내 물음에 이젠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의 화산 장문인이 영혼 없이 대답했다. 

“그, 뭐. 서시, 양귀비, 왕소군, 초선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미인들 아니겠나? 뭐 이제 아무 상관 없는 말이지만···.” 

‘거참···. 사람 옹졸하기는. 참자 청운아 참아. 이런 일 한두 번 겪냐? 적응할 때도 되었잖아?’ 

그의 맥 빠지는 대답에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예 그분들이 중원의 사대 미녀가 아니겠습니까? 해서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에는 그분들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가?” 

속상한지 찻물을 벌컥 들이켜는 화산 장문인. 

그리고 이어지는 내 설명. 

“예, 해서 하돈에 정에 서시의 유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요. 부드럽고 진하고 달콤하니 아름다운 서시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젖과 진배없다는 뜻으로.” 

“그래, 그렇지. 서시유 다시 한번 맛보고 싶구나···. 쩝.”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지 요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화산 장문인의 모습. 

그 모습에 아내와 소소, 영영이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빠진 그를 향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장문인 하돈의 정에 서시의 젖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다른 세 분의 미녀들에게는 그런 이름이 붙은 요리가 없겠습니까?” 

그러자 무슨 다중인격인 사람처럼 태도를 싹 바꾸고 내 말에 집중하는 화산의 장문인. 

“오! 그렇다면!?” 

세상 잃은 표정이었다가, 다시 나를 향해 한껏 기대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와 장로들에게 대답했다. 

“서시가 오나라의 제일 미녀였다면, 그에 못지않은 위, 오, 촉의 명장들이 중원 대륙을 호령하던 시대의 최고 미녀인 폐월(閉月) 초선. 그녀의 이름이 붙은 요리라면 어떠시겠습니까?” 

초선, 닉네임 폐월. 

실존 인물이다, 아니다 말은 많지만, 실존의 관점에서 볼 때, 보통 우리에게는 그녀의 이름이 초선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초선의 본명은 임홍창. 

초선은 이름이 아니고 관명인데, 초선이 열다섯에 입궁해 초선관(貂蟬冠)이라는 모자를 관리하는 일을 했기에 그녀를 초선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그녀의 닉네임은 그의 의부인 왕윤이 그녀의 미모를 사방에 알리기 위해서, 우리 딸은 예뻐서 달도 부끄러워 숨는다고 입을 털고 다녀서 달도 숨는다는 뜻의 폐월. 

시대의 간웅 동탁과 무력만큼은 삼국지 최강으로 거론되는 여포를 치맛자락 하나로 농락한 팜므파탈의 여신. 

삼국지 세계의 장수들에게 하사한다면, 충성도 만렙을 단숨에 찍어버리고 절대 배신치 않는다는 전설의 아이템! 

초선! 

‘초선은 절대 참을 수 없을걸?’ 

역시나 그 초선의 이름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자, 화산의 장문인과 장로들도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오, 장문인 초선이라면?” 

“초선이라면 분명 서시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장문인” 

“초, 초선! 그, 그래! 삼국의 영웅들이 손에 넣고 싶어 했다는 초선이라면, 능히 서시라는 이름을 덮고도 남지. 아무렴! 그래, 그러면 우리에게 서시 대신 초선의 요리를 맛보여 줄 것인가?” 

화산의 장문인과 장로들을 향해 포권하며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폐월 초선의 이름이 붙은 요리를 화산과 화산의 제자들이 맛볼 수 있게 해드리지요.” 

“오오! 고맙네! 마침 그렇지 않아도 매화제(梅花祭)라 해서 화산에 매화가 필 무렵에 산 아래 시주들을 초대해 제를 올리는데, 마침 그게 이틀 후니, 그때 오시는 손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겠나? 내 대가는 자네가 섭섭하지 않게 준비하겠네.” 

“사람을 몇 명 붙여주신다면, 괜찮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본문의 제자들이 다 자네를 도울 것이네! 그럼 부탁하네! 초선, 초선이라···.” 

화산 장문인의 기쁜 목소리 속에서 마음속으로 초선 누님을 향해 죄송함을 전했다. 

‘초선 누님 갑자기 초면에 늙은 도사들에게 그 존함을 팔아먹어 죄송합니다만, 서시 누님 대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저녁 식사를 끝내고 처소에 들어서자, 청, 소소, 영영이가 나에게 달라붙어 물어왔다. 

아마 궁금한데 사람들이 많으니 묻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던 느낌. 

“노공, 어떤 요리를 만드실 겁니까?” 

“또, 서시설 같은 거 만드시나요? 장진처럼 흉하게 먹는 요리 아니죠? 그렇죠? 정말 서시설 먹는 장진은 끔찍했어요! 출수할 뻔했다니까요?” 

“어? 제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 건가요. 은공?” 

아내의 질문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장진이 떠올랐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영영이, 그리고 소소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화산을 위해 만들 요리는 이미 이야기한 대로 초선과 관련된 요리. 

셋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제부터 만들 요리는 초선두부(貂蟬豆腐)라고 하는데, 먹는 모습이 흉한 요리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영영아.” 

화산을 위해 만들 요리는 초선두부(貂蟬豆腐) 또는 한궁장교(漢宮藏嬌)라 부르는 요리. 

원래 전통적인 중원의 에로섹시 과즙팡팡 사대미인(四大美人) 요리는 네 가지이다. 

서시의 혓바닥 요리 서시설(西施舌). 

양귀비의 닭 요리 귀비계(貴妃鷄). 

왕소군의 오리 요리 소군압(昭君鴨). 

초선의 두부 요리 초선두부(貂蟬豆腐). 

그런 이유로 화산이 원하는 미인 요리를 준비하려면, 비연에게 조리법을 팔아먹은 서시설을 제외하고 남은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많은 화산의 제자들을 다 먹일 수 있는 요리라면, 닭이나 요리로 만드는 요리보다 두부 요리가 맞았기에 초선 누님의 초선두부를 선택한 것. 

두부는 일단 대량으로 조리하기 편하고, 잘 만들면 호불호가 적은 요리니까 말이다. 

“초선 두부요?” 

“노공, 그, 그것도 막 초선의 살결, 막 그런 뜻입니까?” 

“초선의 가, 가슴 그런 것일까요? 가가?” 

초선 두부라는 말에 하얗고 매끄러운 두부를 떠올리고는 초선의 살결이나 가슴을 상징하는 요리는 아닌지 물어오는 청과 영영이.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 두부 자체가 초선을 뜻하긴 하니, 백 퍼센트 아니라고 할 수는 없으려나? 

일단 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대답했다. 

“두부 자체가 초선을 뜻하긴 하는데, 신체의 어떤 부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둘 다” 

내 대답에 안심하는 둘과 영문을 모르겠다는 소소. 

영영이가 혼자만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소소에게 예전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가가의 고향인 복건 복주의 장의문에서 있었던 일인데······.” 

부끄러운지, 화가 나는지, 그도 아니면 끔찍한 것인지, 영영이가 소소의 귓가에 몸을 떨며 장진의 추태를 이야기해주자, 소소가 역겹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앞에서 그러면 혀를 잘라버리고 싶을 것 같네요! 잠깐, 저희 오라버니도 그곳으로 가셨는데, 설마 그걸 그렇게 드시진 않겠지요?” 

정말 진실한 분노의 마음인지 검에 손을 가져갔던 소소는, 형님이 그곳으로 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일단 분노와 역겨움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서, 설마 형님이 그러시려고, 그리고 이번에 만드는 요리는 그런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 그럴까요? 은공?” 

“물론이오. 내 형님을 오래 뵙지는 않았지만, 성품이 훌륭한 분이지 않소. 그리고 영영이도 그만하거라.” 

“알겠어요. 가가.” 

“그래, 그건 그렇고. 영영아, 초선 두부라니 어떤 요리일지 궁금하지는 않느냐?” 

“아! 맞다! 그냥 두부라면 초선 두부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텐데, 어떤 요리인가요?” 

셋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부드럽게 돌리자, 유도대로 따라오는 셋의 관심사. 

셋에게 초선 두부에 관해서 설명했다. 

초선두부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 요리이기 때문. 

“초선 두부는 세 가지 재료로 만듭니다. 첫째, 콩. 두 번째, 물. 그리고···.” 

세 가지 재료에 관해서 설명하는데 들려오는 질문. 

“노공, 그런데 물이라면 어떤 요리에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따로 언급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역시 예리한 아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갑시다. 확인해볼 것이 있으니.” 

“은공, 이 밤중에 확인해 볼 것이 있으시단 말입니까?” 

“그렇소, 소소. 우물을 한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우물요. 가가?” 

일단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며, 셋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등롱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근처에 번을 사던 화산의 제자 두 명이 다가와 우리에게 물었다. 

“류 대협, 네 분께서 이 늦은 때에,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지요?” 

“아, 마침 잘 되었습니다. 혹시 우물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물이라 하시면? 혹시 목이 마르시면, 하인들에게 부탁하시지요.” 

“아, 아닙니다. 매화제에 만들 음식을 위해서 우물을 한번 봤으면 해서요. 물이 어떤지 확인해봐야 하거든요.” 

“물, 말입니까?” 

내가 갑자기 이리 한밤중에 우물을 구경하러 가자는 것은, 두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 물이기 때문. 

내 말에 화산의 두 제자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당황했다. 

한밤중에 우물에 가서 물을 확인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느낌. 

하지만, 두부를 만드는데 물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이번에 만들 요리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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