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콩물 (207/344)

콩물

.

승곽이가 꼭두새벽부터 자기 사제들을 끌고 미꾸라지를 잡으러 산 아래로 떠나고, 화산 한편에서는 잔치를 준비하느라고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끌려온 양과 닭, 오리들이 도축되고. 

그릇과 식기 그리고 요리재료들이 준비되는 모습. 

화산의 입구로도 여러 가지 요리재료들이 사람에 의해 하나둘 운반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사들도 육식을 하나 싶었지만, 양도 잡고 닭과 오리도 잡는 것으로 봐서는 먹을 것은 가리지는 않는 느낌. 

하긴 화산의 장문인도 요리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불문인 소림처럼 육식 금지는 아닌 것 같았다. 

비록 우리는 이틀째 매화만 먹고 있다지만. 

“매화제라는 것이, 큰 잔치 같은 느낌인가 봅니다?” 

아침 식사부터 다시금 시작된 매화 들어간 음식의 향연에 영영이와 소소는 매화향에 토할 것 같다며, 산 아래 만두를 사러 갔고. 

승곽이가 미꾸라지를 잡으러 직접 떠났기에, 녀석이 떠나기 전에 붙여준 그의 사제의 안내를 받아 콩을 준비하는 것을 감독하러 가는 길. 

아내가 분주한 잔치 준비를 보고 놀랍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승곽이의 사제. 

“예, 봄에 열리는 매화제는 화산에서 가장 큰 잔치라 할 수 있지요. 작년에 시주로 본문을 도와주신 시주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올해도 변함없이 잘 부탁드린다는 그런 의미의 잔치입니다.” 

‘아, 보호세를 내는 사람들의 결속을 다지는 가장 큰 상납 행사라는 말이구만?’ 

그러면 이런 준비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중원 최대조직답지 않게 왜 보호세를 걷는 사람들에게 비싼 양까지 잡아 음식을 대접하나 싶었는데, 결국 내용을 살펴보니 결속력을 다지고 올 한해도 변함없이 호구가 되어달라는 행사. 

먹은 만큼 아니, 먹은 것 이상 토해내라는 것이 분명했다. 

한해 뜯어내는 보호비의 큰 부분이 이번 행사로 결정된다는 그런 느낌. 

참 중원 조폭 새끼들 악랄하다고 생각하며, 승곽이 사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화산파의 요리가 준비되는 곳. 

찾아온 목적대로 필요한 것과 주의할 것을 전달했다. 

“채반과 두부를 만드는 틀을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채반과 두부 틀은 화산에도 있습니다. 열 개 정도 있는데 그 정도면 될까요?” 

“예, 그 정도면 충분하고, 천도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예, 그리고 혹시 다른 것은?” 

화산에서도 두부는 종종 해 먹는지, 역시나 두부 틀은 있었기에 나는 다음으로 콩을 손질하는 요령을 전달했다. 

“콩에서 돌을 골라내고 깨끗하게 씻어 물에 불려주셔야 합니다.” 

“예, 두부 만들 때처럼 준비하면 됩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절대 우물물에 콩을 불려서는 안 되고, 씻는 것도 계곡물을 떠다가 씻어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협.” 

우물물에 불린 콩을 끓이다가 시작부터 엉겨 붙으면 곤란했으니, 어쩔 수 없이 콩을 씻거나 불리는 물은 좀 떨어진 계곡물을 이용해야 했고, 결국 화산의 제자들이 물통을 지고 날라야 했다. 

그렇게 하나둘 재료들과 필요한 도구들이 준비되는 모습을 둘러보고, 승곽이가 붙여준 그의 사제의 안내를 받아 화산 곳곳을 구경하고 되돌아가는 길. 

해가 뉘엿뉘엿 지는 화산의 입구로 두 명의 인영이 들어섰다. 

“가가!” 

“은공!” 

나와 청이를 보고 쪼르르 달려오는 영영이. 

신이나 매달리려 했다가 옆에 승곽이의 사제를 보고 흠칫하며 인상을 쓴 영영이에게서는 무척이나 맛있는 냄새가 폴폴 나고 있었다. 

“잘 다녀왔느냐?” 

“예, 저희가 만두와 고기를 사 왔어요.” 

영영이의 대답에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자,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영영이의 허리춤에 묶은 보따리. 

맛있는 냄새는 그곳에서 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공, 얼른 들어가서 드시지요.” 

“가가, 얼른 가요. 배고파요.” 

“영영, 화산에 오르기 전에 분명 배고프다고 만두를 열 개나 드셨지 않습니까?” 

영영이의 배고프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소소. 

하지만 만두 열 개라면 분명히 영영이가 입가심도 못 했을 양. 

“만두 열 개라니! 우리 영영이 이러다 굶어 죽겠구나! 볼이 이리 홀쭉해지다니. 어서 들어가자꾸나!” 

“뭐라구욧! 바보! 바보!” 

“하하하하!” 

너스레를 떨며 대답하자, 영영이가 그게 무슨 뜻이냐며 나에게 매달려왔고. 

그렇게 다 같이 하하 호호하면서 웃고 있을 때. 

-철퍽. 질퍽. 

질척한 무엇인가가 흘러내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화산의 입구로 부정형의 마물들이 들이닥쳤다. 

지는 해에 눈이 부셔 정확히 그 모습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배경으로 영혼 잃은 눈빛으로 나타난 이십여 마리의 마물들. 

저기 저 어두운 심연 깊은 곳에서 기어 올라온, 부정한 것들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그런 모습의 마물이었다. 

그 괴이한 모습에 다들 화들짝 놀라 코를 막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바람결에 놈들에게서 비릿함과 함께 썩은 하수구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가 밀려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 등에 매달려서 나에게 바보라며 냥냥펀치를 날리던 영영이가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저게 뭐죠?” 

그러자 영영이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마물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대답했다. 

“혀, 형님···.” 

“형님!?” 

익숙한 목소리.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스, 승곽이?” 

그리고 내 물음과 함께 역광으로 비추던 해가 산 끝에 걸리자, 마물들의 모습이 확실히 드러났다. 

미꾸라지 잡으러 갔던 승곽이와 그의 사제들. 

하수구 속을 기어 다니기라도 했는지, 시커먼 진흙에 떡칠이 된 모습의 스무 명. 

“예, 형님. 크흑.” 

맨날 하와이안 무복만 입고 패셔너블한 삶만 영위하다가, 진흙탕을 뒤지며 미꾸라지를 잡는 통에 멘탈이 나간 표정. 

그의 사제들도 승곽이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승곽이를 달래기로 했다. 

“어, 어 그래 승곽아 고, 고생했다. 그래 니, 니추는 많이 잡았느냐?” 

그러나 달래는 와중에 튀어나온 실적 확인. 

고생한 것은 알겠는데, 미꾸라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 미꾸라지를 얼마나 잡았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그러자 그의 사제 서넛이 앞으로 나서더니 내 앞에 쿵 하고 물통을 내려놨다. 

내려둔 물통은 흔히 볼 수 있는 물지게 양쪽에 거는 그런 물통이었는데, 그런 통이 네 개.

물통의 안쪽을 살피자 안에서 미꾸라지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으, 징그러워.” 

내 등위에서 영영이가 미꾸라지가 꾸물거리는 모습에 징그럽다고 말하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승곽이의 사제들. 

그 틈에서 승곽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이, 이 정도면 되, 됩니까?” 

설마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물음이었는데, 승곽이가 가져온 양은 필요한 양의 절반 정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스무 명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젓자 절망으로 물드는 스무 명의 눈동자. 

“그, 그럼 얼마나?” 

승곽이를 바라보며 대답해주었다. 

“이만큼 더?” 

그러자 승곽이와 그의 사제가 진흙으로 만든 골렘처럼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귓가에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가, 얼른 만두나 먹으러 가요.” 

*** 

다음 날 저녁 승곽이와 그의 사제들은 비슷한 양을 다시 잡아 왔다. 

절망하든 어쨌든 장문인의 명이니 어쩌겠나, 조직 보스의 명령을 어기는 자는 이 바닥에서는 손가락이나 손모가지로 끝나지 않는 것. 

그래도 이제 익숙해지는지 점심때 도착한 승곽이와 그의 사제들. 

영혼 잃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주고, 푹 쉬다가 매화제가 열리는 새벽 일찍 일어났다. 

-슥슥슥슥.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는 곳으로 다가가자 들려오는 맷돌 돌리는 소리. 

내가 도착하기 전에 콩을 다 갈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마도 열심히 콩을 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요리하는 곳에 도착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승곽이와 그의 사제들. 

승곽이의 사제들은 어제 승곽이와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던 녀석들인 모양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마계에서 올라온 진흙 괴물 같던 승곽이는 사제에게 정화라도 받았는지, 인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래, 이틀 동안 고생했을 텐데 피곤하진 않더냐?” 

“괜찮습니다. 형님.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무인이라서 그런지 회복이 빠른지, 괜찮다는 승곽이. 

그렇다면 팍팍 부려 먹어줘야 했다. 

“그러면 일단 니추를 손질하자꾸나.” 

미꾸라지는 위험을 느끼면 몸에서 미끄러운 점액을 분비하는데, 그런 이유로 그대로 요리에 사용할 수가 없다. 

이걸 요리에 그대로 먹으면 토할 수도 있기 때문. 

식감이 좋지 않고 비린내가 심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꾸라지의 이런 미끄러운 성분에는 뮤신이나 렉틴, 콘드로이틴 황산이라는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데, 뮤신은 마를 갈면 나오는 끈끈한 성분과 같은 것이고, 콘드로이틴 황산은 상어 지느러미나 곰 발바닥에 포함된 아주 좋은 성분. 

연골 건강과 피부 보습에 아주 좋은 것이다. 

‘생긴 건 이래도 미꾸라지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니까.’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들 요리에서는 미꾸라지 점액은 전부 제거해야 했다. 

그러니 일단 미꾸라지 세척부터. 

“소금과 밀가루를 좀 가져다 주거라.” 

“예, 형님.” 

“그리고 큰 솥에 물을 잔뜩 끓여주시오. 아주 많이.” 

“알겠습니다. 대협.” 

-촤아악. 

큰 채반에 미꾸라지 한 통을 때려 넣고, 곧바로 승곽이의 명령으로 준비된 소금을 촥 하고 뿌렸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채반으로 뚜껑을 덮었다. 

-파다다다다다다닥! 

채반 안에서 발작하는 미꾸라지들. 

그 모습에 화산의 여자 제자 몇 명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자 기운 빠진 미꾸라지들. 

채반의 틈으로 점액들이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기에 이제 밀가루를 촥촥 뿌려주고, 빨래 빨듯이 손을 움직여 남은 점액질도 제거해주었다. 

밀가루를 뿌려주는 이유는 미꾸라지의 점액들을 밀가루에 흡착시켜 제거하기 위함. 

그리고 물을 부어가며 미꾸라지들을 깨끗하게 헹궈주었다. 

이 과정까지 끝나자 축 늘어진 미꾸라지들. 

소금과 밀가루 이 연타에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미꾸라지들이었다. 

“자 다들 보았으면 이렇게 손질해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화산의 제자 일부는 힘쓰는 일을 돕고, 일부는 미꾸라지를 손질했다. 

그렇게 모든 미꾸라지 손질이 끝나자, 승곽이의 사제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대협 물이 끓고 있는데 어쩔까요?” 

“아 이 통에 물을 좀 떠다 주시겠소?” 

“예, 대협.” 

펄펄 끓는 물이 도착하고, 이제 이어지는 과정은 확인 사살. 

축 늘어진 미꾸라지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것. 

-촤아악. 촤악.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이유는 소금과 밀가루로 손질하더라도 완벽히 점액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뜨거운 물을 뿌려주면 남은 점액질들이 마치 껍데기처럼 베이지색으로 미꾸라지 표면을 허옇게 만드는데. 

이걸 찬물에 씻어 벗겨내 주면 매끈한 미꾸라지가 되는 것. 

굳이 이렇게 해주는 이유는 점액질이 남아있으면 두부와 미꾸라지가 완벽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나중에 다 빠져나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꾸라지 손질이 완벽히 끝나고, 미꾸라지들을 길쭉한 모습으로 정렬해 준비해달라 부탁하자, 이제 들어갈 작업은 두부에서 가장 중요한 콩물 내기. 

콩물을 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갈린 콩을 면포에 올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주면서 콩물을 내리는 방법. 

두 번째는 칼린 콩에 물을 넣고 통째로 끓인 후, 이것을 면포에 넣고 콩물을 짜내는 방법.

그러면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 

당연히 나는 두 번째. 

뜨거운 콩물을 직접 짜내야 한다는 위험이 있지만. 

콩물을 내는데 가장 좋은 온도는 약 육십에서 팔십도. 

그 정도 온도에서 콩에 있는 단백질이 가장 많이 추출되니, 훨씬 고소하고 부드러운 두부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조금 위험하긴 해도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요리사라면 가장 맛이 좋은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니까. 

“자, 간 콩을 솥에 넣고 물을 그 두 배 추가해준 다음에 끓입시다. 절대 팔팔 끓어오르면 안 되고, 뜨거워 댈 것 같을 때까지만 끓여야 합니다.” 

“형님, 말씀 다들 들었느냐? 자 어서 움직이거라!” 

승곽이의 외침에 다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가 있던 주변을 끓어오른 콩물의 고소한 향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중원 사대 미인 중 하나, 중원 미녀 사천왕 중 일각을 차지하는 초선. 

그 초선 두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