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清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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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룡, 어떻게? 준비는 되었나?”
“아, 내당주(內堂主) 어른. 예, 준비할까요?”
잔치가 시작되었는지 허겁지겁 달려온, 며칠 전 저녁 식사에 소개받았던 화산의 내당주이자 장로.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화색 하며 대답했다.
“그럼, 준비해서 올리시게. 내 요리를 나를 사람을 보내겠네.”
“알겠습니다.”
우선 내가 제일 먼저 하려는 일은 두장(豆浆)인 콩국을 손님상에 내는 일.
처음에는 초선 두부만 올리려 했는데, 우물물이 좋았는지 생각보다 두부가 많이 나와 두유로 먹을 양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기 때문.
그리고 아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봄이니, 잔치를 시작하는 음식으로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손님을 초대했으니, 손님을 초대하면 으레 내는 탕은 이미 준비되어있을 테지만, 탕보다야 두장이 좋을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송 시대에는 우유인 내(奶 우유)가 아주 귀한 음식.
그 우유와 비슷한데 콩으로 만들었다?
먹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채식이라면 고급이라고 생각하는 송나라 문화에서 콩으로 만든 우유라니.
당연히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
“자, 이건 주전자에 받아오신 손님들에게 한 잔씩 차처럼 내면 됩니다.”
잠시 후 요리를 내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을 끌고 온 내당주에게 두장이 든 나무통을 내밀자, 그가 그 향을 맡더니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아, 정말 고소한 향이구만 이건 대체 뭔가? 내는 이번 잔치 음식에 준비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두장이라고 합니다. 두부로 만든 ‘내’라고 할 수 있지요.”
“오. 두부로 만든 내라니! 알겠네. 내, 어서 내가겠네.”
두부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두부는 송 시대에 이르러서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진 음식.
두부를 만들어 먹기도 바쁜데 콩국을 직접 먹는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두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에게는 역시나 흔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가 처음 보는 듯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두장이 잔칫상으로 나가고 그다음에 할 일은 물기를 뺀 두부를 틀에서 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것.
이미 틀에서 꺼내놓은 두부들이 있지만, 첫 두부는 따듯한 두부를 내야 했기에 가장 마지막쯤에 만든 두부 중 하나를 골랐다.
“승곽아 그쪽을 좀 잡아주거라.”
“예, 형님. 이리 잡으면 됩니까?”
“두부가 깨지지 않게 조심하거라.”
“예, 형님.”
승곽이와 함께 틀에서 천을 잡고 들어 올리자 쏙 빠져나오는 두부.
그 천을 나무 도마 위에 올리고 천을 벗겨냈다.
그러자 드러나는 김이 몽글몽글 오르는 두부.
그런데 이번에는 옆에서 화산 내당주의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초선 요리인가? 그런데 그냥 두부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실망감 가득한 표정.
아무래도 겉보기에는 수수한 요리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요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원래 이 초선 두부는 안에 쏙쏙 숨겨진 미꾸라지가 묘미인데, 아직 한모 크기로 가르지 않았으니 외견상 일반 두부와 같아 보이니 그럴 수 있었다.
“이 요리는 초선두부.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응? 안에 비밀이?”
내 말에 갸웃하는 화산의 내당주.
그리고 그가 내 말에 의구심을 품었을 때 한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당주 어른 장문인께서 월주를 더 내오라 하시는데, 어찌할까요?”
“벌써 술이? 내 남은 술을 먼저 살펴야겠구만. 식룡, 자네가 직접 들어가 요리에 관해서 설명해주는 것은 어떻겠나? 아무래도 난 다른 걸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아서.”
“예? 아, 네 뭐. 알겠습니다.”
술이 떨어진 것을 살피러 간다고 내당주가 사라지고, 일단 옆에 요리 만드는 곳으로 가 양념간장부터 만들었다.
간장과 식초, 파와, 마늘, 거기에 화초와 참기름까지.
재빨리 재료들을 섞어 양념장을 만들고 요리를 나르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이걸 일단 상마다 올려주시게.”
“예, 대협.”
그렇게 상마다 간장을 올리라 부탁하고 바로 돌아와 재빨리 초선두부를 썰기로 했다.
-슥.
마개조한 칼이 처음 나서는 자리.
허리에 찬 칼집에서 채도를 재빠르게 뽑았다.
그러자 들려오는 승곽이와 그 사제들의 놀란 목소리.
“오! 저것이 식룡도(食龍刀)!”
“저것이 대사형께서 말씀하신 식룡도!”
“철장 막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만들었다는 명도(名刀)!”
‘뭔 도? 무슨 도?’
내 도에 붙여진 개떡 같은 이름에 승곽이를 바라보자, 괜히 두부 누른 돌을 살피는 승곽이.
괜히 멀쩡한 누름돌을 들었다 놓으며 승곽이가 헛소리를 해댔다.
“도, 돌이 좀 가벼운가?”
“그쪽에 돌 좀 더 줘보거라.”
“예, 사형.”
승곽이는 이따가 조지기로 하고 한번 눈을 질끈 감은 후. 큰 두부판에 한모 크기로 칼집을 넣었다.
그리고 채도를 두부 밑으로 넣어 한 모씩 들어내 도마 위로 올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기 시작했다.
-탁. 탁. 탁.
명도는 명도인지 부드럽게 나가는 칼과 채도의 표면에 달라붙지 않는 느낌까지.
확실히 실력이 좋은 대장장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초선두부를 썰어 전체적으로 살짝 기울이자, 가지런히 눕혀진 두부.
두부마다 예쁘게 썰어 접시들에 올려 얼른 잔칫상으로 내가라고 건네줬다.
“자, 식기 전에 내갑시다.”
두부가 온기를 오래 머금고 있는 요리이긴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지체해서 식어버리면 맛이 없기 때문.
그렇게 사람들을 통해 두부를 내보내고 나도 그 뒤를 따라 잔치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잔치가 열리는 장소.
화산의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넓은 후원 아래 여기저기 상이 깔린 그런 곳이었는데, 바람에 날린 매화향과 꽃잎이 살짝 날리고 있는 멋진 장소였다.
그렇게 초선두부의 접시를 따라 제일 앞쪽 상석에 앉아있는 화상 장문이 곁에 다가가는데, 들려오는 당황한 물음.
“이것이 진짜, 식룡이 초선 요리라고 낸 것이랑 말이냐?”
“예, 장문인.”
종종걸음으로 화산의 장문인 곁으로 다가가자 장문인이 앉은 식탁에는 한 스무 명 정도가 같이 앉아있었는데, 절반은 이미 한번 소개받았던 화산의 장로들이었고, 절반은 배가 불룩하게 나온 사업가 호구들이었다.
이마에 나 호구라고 써 붙여둔 것같은 얼굴에 천편일률적으로 겁 많아 보이고 살 많은 놈들.
그리고, 스무 명 모두의 입에 똑같이 우유 수염이 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두장을 다들 맛있게 먹은 모양.
“분명 초선 요리라 했는데, 어째서 그냥 두부가?”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화산 장문인의 당황한 목소리.
얼른 다가가 요리에 관해서 설명하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식룡이 그냥 요리를 냈겠습니까? 한번 장문인께서 맛을 보시지요.”
“그, 그렇겠지? 어디. 한번.”
독왕 어른의 생일잔치에 화산의 장문인과 같이 왔던 장로였는데, 그도 나의 요리를 그때 맛보아서 그런지 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모양이었다.
화산의 장문인처럼 믿음이 약한 자가 아니라.
화산 장문인 십자와 만자 형님 사이에서 고민하는, 갈대 같은 나와 비슷한 인물인 것 같았다.
그렇게 화산의 장문인이 두부 하나를 젓가락으로 들려다가 부드러운 두부가 뭉개질까 숟가락까지 이용해 두부를 수저 위에 올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상에 올려진 두부가 제일 테두리 부분이었는지, 흰 두부에 가운데 딱 미꾸라지가 하나 박힌 상태.
‘어떤 새끼가 장문인 상에 저걸 올렸냐?’
미꾸라지가 다닥다닥 박혀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테두리다 보니 미꾸라지가 테두리까지는 배열이 안 된 모양.
전생이었으면 용납 안 될 실수였기에 짜증을 내며 걸음을 다시 옮기려는데, 화산 장문인의 입에서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
“호오. 안에 뭐가 들었소이다.”
그러자 너도나도 집중되는 시선들.
화산 장문인의 숟가락 위에 올려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초선두부를 보고는 다들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 당금 무림에 명성을 날리고 있는 식룡까지 초대하셨다 해서, 이 곽모 기대하는 바가 컸는데, 이런 두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요리는 처음 봅니다.”
“그런데 저것이 무엇일까요? 장문인 어서 드셔보시지요.”
“그렇소. 장문인 어서 드셔보시지요. 그래야 저희도 먹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재촉에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 화산의 장문인.
그는 양념장도 찍지 않은 초선 두부를 입으로 가져가더니 호로록하고 입안으로 빨아들였다.
-호로록.
그리고 입을 잠시 오물거리고는 자기 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담(清淡)!”
청담이란 담백하다는 중원인들의 맛 표현 감탄사.
전생의 청담동이 아니라, 맑을 청자와 맑을 담 자라를 써서 맛이 담백하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저런 소감을 내놓은 것은, 초선 두부에 들어간 미꾸라지가 초봄 미꾸라지이기 때문.
보통 요리에 쓰는 미꾸라지 중 가을 미꾸라지는, 겨울을 나기 위해 기름기가 올라 아주 고소하고 기름지지만, 봄의 미꾸라지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
뱃속이 깨끗하고 기름기가 빠진 담백한 맛이 특징인 것이다.
그렇기에 초선두부에 사용하면 부드러운 두부의 맛을 즐길 수 있음과 동시에, 담백하고 고소한 미꾸라지의 맛이 거기에 추가되어 아주 담백하게 즐길 수 있는 것.
“이리 맛이 담백하고 고소할 줄이야. 안에 들어있는 색이 진한 것은, 아주 담백하며 고소한 맛이 나고, 두부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역시 식룡입니다. 내 잠시 식룡을 오해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흔한 두부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요리입니다.”
방황하는 영혼이었다가 이제 다시 믿음을 되찾은 화산의 장문인.
그의 소감에 다른 자들도 신이나 대답했다.
“오오, 그 정도입니까?”
“자자, 어서들 들어보시지요.”
그렇게 화산 장문인의 시식이 끝나고 본격적 초선두부 품평이 시작되려 할 때.
“그런데 아까 그 두부와 두부 안에 든 것은, 초선의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갑자기 내 요리가 초선의 무엇을 표현하느냐고 묻는 누군가의 물음에 멈칫하는 사람들.
다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멈칫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서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이건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 같습니다.”
“무엇 말이요?”
“가슴!”
“가슴!? 어, 어찌 그리 생각하시오?”
“처음에는 분명 콩으로 만든 내(우유)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초선의 젖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어서 나온 것은 부드러운 두부. 여인의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분은 어디겠소이까? 당연히 가슴! 그러니 두부는 부드러운 초선의 살결 그것도 가장 부드러운 가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오! 그럴듯하구려!”
전혀 헛다리인데, 이상한 상상을 하시는 형님들.
어렸을 때 젖배를 골았는지 이상하게 가슴에 집착하는 형님들이셨다.
오해가 커지기 전에 다시 설명하려고 나서려는데, 이어지는 누군가의 물음.
“그러면, 두부 안에 들어있는 그 거뭇한 것은 무엇이오?”
그러자 아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던 사람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허 이 답답한 작자 같으니, 내 그러니 장사만 하지 말고 평소에 틈틈이 서책도 좀 읽으라 하지 않았소? 희고 부드러운 가슴에 거뭇한 것 하나···.”
‘서, 설마! 아니겠지? 미친놈아, 멈춰! 너무 추해!’
너무나도 음흉한 생각에 나조차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을 때.
그는 숟가락을 접시로 가져가 초선 두부를 하나 떠올리더니, 그것을 뽀뽀하듯이 쭉 내민 입으로 가져가 미꾸라지를 쪽하고 빨아들이며 미소 지었다.
“뭐겠소?”
그렇게 그의 말이 끝나자, 다급해진 형님들.
순식간에 숟가락이 초선두부로 날아들더니, 식탁에 앉은 형님들이 저마다 숟가락으로 초선두부를 떠 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쭉 내민 주둥이로 미꾸라지와 두부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쪽.
-쪽. 쪽.
“청담(清淡)!”
“부드럽구려!”
“이것이 바로 초선의 ㄲ···.”
‘초선 누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정말···.’
미인 요리만 만들면 왜들 저 지랄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뒤로 물러 나오려는데, 문 앞에 들어서는 청이, 영영이, 소소.
영영이와 소소가 모처럼 늦잠 자던 아내인 청을 데리고 오는 모양이었는데, 저 흉험한 장면을 셋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얼른 팔을 벌려 셋을 막으며 말했다.
“우리, 넷이서 오붓, 단란? 아니, 화기애애하게 처소에서 먹지 않겠소?”
“왜요. 가가? 이건 무슨 소리람?”
-쪽. 쪽쪽.
얼른 영영이의 귀를 막으며 외쳤다.
“더러운 소리니 듣지 말거라 영영아!”
그렇게 더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셋을 끌고 얼른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처소로 향하는 우리 뒤에서는 쪽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맺힌 여성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