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망주 (210/344)

유망주

.

화산의 장문인과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쪽쪽 거리며 축하하라고 내버려 두고, 미꾸라지 잡느라 수고했던 승곽이의 사제들과 우리 일행은 화산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높은 분들 있는 자리 불편하기도 하고, 청, 영영이, 소소에게 흉한 꼴을 보여줄 수 없었으니까. 

승곽이가 그래도 대제자라 그런지, 요리 같은 것은 이쪽으로 가져다 달라 부탁하니, 이곳에서도 우리끼리 조촐한 잔치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한 번 보냈다던 요리 몇 가지가 감쪽같이 사라지긴 했지만, 요리를 다시 받아 시작된 우리만의 작은 파티. 

“자, 승곽아 수고했다. 니추 잡아 오느라 고생했지?” 

“혀, 형님! 크흑···.” 

월주를 한잔 승곽이에게 따라주자, 화산에 들어와서 이런 고생은 처음이었는지 울컥하는 승곽이.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녀석을 위로해주었다. 

원래 주방팀은 이렇게 큰 행사 치르고 나면, 회식도 하고 이러면서 고생한 애들 위로도 하고 그러는 것이니까. 

쫑파티 느낌이랄까? 

원래는 각자 맛있는 음식 하나씩 만들어서 하지만, 재들이 음식을 잘할 리는 없으니, 그냥 잔치 음식을 가져다 하는 것. 

그렇게 승곽이를 위로할 때 한쪽에서 들려오는 세 여자의 어여쁜 목소리. 

“냠냠. 초선두부 이거 맛있어요. 가가.” 

“노공, 정말 맛이 담백하고 좋습니다.” 

“처음에는 좀 징그러웠는데, 다 만들고 나니 맛있습니다. 은공.” 

처음 보는 신기한 요리에 청이와 영영이 소소도 아주 만족해하는 모습. 

요리를 만들고 요리를 선보였을 때, 이런 반응이면 요리하는 사람은 요리 만들 맛이 나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있던 초선 두부도 셋이 식사를 하는 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렇게 초선 두부를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과 쫑파티를 이어가는 도중. 

입구로 들어서는 누군가. 

인기척에 누군가인지 살피자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화산의 장문인이었다. 

“화산에 입문하고 진흙탕에서 이리 구를 일이 있을 줄이야. 내 정말 너희들과······. 사, 사부님!?” 

승곽이가 월주를 마시며 사제들과 신세를 한탄하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며 화산 장문인을 맞았다. 

승곽이가 죄라도 지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지만, 화산의 장문인은 기분이 좋은지 승곽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했다. 

“오, 그래 다들 여기서 한잔들 하고 있었구나. 아니, 식룡, 우리 쪽에 합석하지 어찌 아이들과 이쪽에서 이러고 있단 말인가.” 

“아, 장문인. 원래 요리를 준비하는 이들은 이렇게 큰 잔치 준비가 끝나면 같이 모여 식사하곤 합니다.” 

내가 부엌 문화에 대해서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화산의 장문인. 

“아, 그렇구려. 그럼 내가 방해였던가?” 

멋쩍게 웃는 화산의 장문인. 

방해는 맞았지만, 화산에서 화산의 장문인에게 누가 방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에게 술과 자리를 권했다. 

“아닙니다. 장문인. 하하···.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제가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오, 내 식룡이 주는 술이라면 한잔 받아야지. 아니, 아니지. 이거 생각해보니, 내가 한잔 대접을 해드려야지.” 

“어찌 제가 장문인의 잔을 먼저 받겠습니까? 중원 무림의 법도가 지엄하고, 유교의 예에서 벗어난 일이 아닙니까? 법도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지요.” 

술을 권하려 하자 도리어 나에게 술을 대접하겠다는 화산의 장문인. 

내가 정색하며 그에게 술잔을 넘기려 하자 그가 웃으며 연유를 설명했다. 

“아니오. 식룡. 오늘 식룡 덕분에 매화제가 잘 되고 있으니, 당연히 내가 한잔 먼저 올려야지. 오늘 참석한 손님들이 초선 두부에 만족하셔서, 작년보다 더 많은 시주를 하시겠다 약조하신 분들도 많소이다.” 

미인 요리에 만족해 호구를 자처하신 분들이 많다는 말. 

원래 두부를 먹으면 술이 술술 들어가는 법. 

무공을 익힌 분들도 아니니, 진탕 먹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원 조폭에게 더 많은 상납금을 내기로 한 분이 많은 모양이었다. 

술을 깨서는 후회하겠지만 어쩌겠나, 이 행사가 원래 그런 행사인데. 

호구들 끌고 와서 술 진탕 먹이고 삥뜯는···. 

화산의 장문인이 따라주는 술을 얼른 한잔 받고, 그에게도 얼른 한잔을 권했다. 

“이리 술까지 직접 내려주시니 영광입니다. 장문인께서도 한잔 받으시지요.” 

“허허, 영광까지야. 이리 화산까지 직접 방문해 요리까지 해주었는데, 정말 고맙네! 식룡.” 

후원의 날 행사가 잘되어서 기분이 좋은지 화산 장문인은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나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식룡, 내 이리 식룡을 찾은 것은, 부탁이 하나 더 있어서인데 괜찮겠나?” 

“부탁 말입니까?” 

‘대체 또 무슨 부탁이지?’ 

중원 최대 조직 중 하나라고 너무 부탁을 남발하는 화산의 장문인.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가 조심스럽게 구매 제안을 넣었다. 

“다름이 아니라. 초선두부 만드는 법을 알려줄 수 있겠나? 손님들이 저리 좋아하시니, 일 년에 한두 번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내 섭섭하지 않게 대가는 지급하겠네.” 

요리 레시피를 사고 싶다는 제안. 

나에게야 뭐 굳이 산다고 하면 용돈 버는 느낌이었지만, 여기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연유로 그의 말에 화기애애하던 쫑파티 현장은 삽시간에 싸늘하게 변했으니까. 

매년 두 번씩 초선 두부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승곽이와 그의 사제들이 매년 두 번씩 미꾸라지를 잡아야 한다는 말. 

스물의 화산 제자들은 미꾸라지 잡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절망에 빠진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 같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힘들었나?’ 

-척. 

애들의 딱해 보이는 모습에 내가 고민하는 듯하여 보이자, 내 앞에 내밀어지는 무엇인가. 

물끄러미 식탁 위를 바라보자, 무엇인가가 내 앞으로 내밀어졌다. 

‘뭐지 이건?’ 

나무판에 붉은 염료로 쓴 글자 ‘화산’. 

그것을 보자 승곽이가 깜짝 놀라 외쳤다. 

“자, 장문 보은패!” 

‘자, 장문 보은패?’ 

장문 보은패라는 것은 아내가 나에게 선물했던 제갈가의 보은패의 상위호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세가에서 받은 보은패는 자기 식구를 도왔으니, 도움을 준 식구 레벨에 준하는 도움을 준다는 뜻이고. 

구대문파의 장문 보은패라는 것은, 요걸 가지고 부탁하면, 장문인의 명처럼 화산의 제자들이 부탁을 들어주는 일종의 인력 동원 패. 

인성에 문제 있는 부탁만 아니라면 화산에서 싹 쓸어준다는 보증수표.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했는지, 승곽이와 그 사제들이 절망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매년 두 번 이상 미꾸라지 잡는 것은 확정이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매화제가 열리는 초봄은 얼음처럼 찬물에 들어가 미꾸라지를 잡아야 하니, 고난 확정. 

이 당시에 장화가 있나 뭐가 있나. 채반이나 바구니 하나 들고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화산의 장문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장문패를 다시 밀어냈다. 

-슥. 

그러자 두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라는 승곽이와 그 사제들. 

장문 보은패를 거절하니 꽤 놀란 모양. 

승곽이는 내 행동에 감격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거절하는 내 모습에 화산의 장문인이 설마 이걸 거절할지는 몰랐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안되는 것인가? 그러면 돈으로 해야 하나?” 

물론 내가 인력 동원을 어디다 한다고 장문 보은패를 받겠나. 

당연히 돈으로 하는 게 맞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장문인. 뭐 요리법이야 그냥 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오, 그, 그냥 준다고? 아니, 이 사람 그래도 그럴 수 있나?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게. 내 제갈가의 사위에게 요리법을 빼앗았다는 소리를 듣겠네그려. 하하하하.” 

공짜로 준다는 말에 대소를 터트리는 장문인. 

그의 뒤편에 승곽이는 기뻐하는 표정이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형님이 그럴 줄은 몰랐다는 배신감에 휩싸인 모습. 

화산의 장문인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문인, 이 초선 두부가 왜 초선 두부인지 아십니까?” 

그러자 들려오는 화산 장문인의 황당한 대답. 

“아, 그야 초선의 가ㅅ···.” 

“아닙니다!” 

“아, 아니야? 그러면?” 

얼른 그의 대답을 자르고 정확한 답을 알려주었다. 

“본래 이 요리가 초선 두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원래 초선두부에 초선 두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초선두부의 독특한 조리법 때문이다.

초선두부에서 더러운 곳에 사는 미끌미끌한 미꾸라지는 동탁을 의미하는 것이고,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두부는 초선을 의미하는데, 초선두부를 요리하려면, 냄비에 동탁을 의미하는 미꾸라지와 초선을 의미하는 두부를 넣고, 물을 천천히 끓이기 시작하면, 미꾸라지가 뒤질까 봐 차가운 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초선 두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왕윤이 초선을 이용해 동탁을 제거한 것처럼, 두부를 이용해 미꾸라지를 요리한다 해서 초선 두부인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조리법인데, 절대 이 방법으로는 초선 두부를 만들 수 없기 때문. 

먼저 냄비에 미꾸라지와 두부를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미꾸라지는 두부에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냄비 밖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냄비 속에서 물의 온도가 오르면 두부의 표면 온도도 올라가니, 미꾸라지가 그걸 차갑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 

미꾸라지도 바보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미꾸라지 표면에 흘러나온 점액으로 온통 비린내가 진동하는 두부를 누가 먹는단 말인가? 

중원의 호사가들이 마케팅하느라고 붙인 이야기지 절대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

그러니 내가 굳이 소금과 밀가루를 써가며 점액을 제거하고, 한번 뜨거운 물로 데치기까지 해서 미꾸라지를 손질한 후 두부에 넣은 것이다. 

만드는 사람은 비밀을 알지만, 먹는 사람은 사기를 당하는 그런 음식이랄까? 

“해서 그리 조리하면 됩니다.” 

“오오! 그렇구만! 교활한 동탁 놈을 자기 품 안으로 끌어들여 죽이게 한다? 그러면 이 두부는 초선의 몸 그 자체겠구나!” 

뭔가 이야기의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이긴 했지만, 조리법은 전달이 되었다. 

두부를 만들어 냄비에 넣고 미꾸라지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니, 얼마나 조리법이 쉬운가. 

화산의 장문인이 조리법을 얻고 기뻐할 때 잔치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누군가가 그를 찾으러 왔고, 그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라지자 승곽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형님.” 

“왜 그러느냐 승곽아.” 

“어, 어째서 저희 스승님께 거,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까?” 

조리법을 모두 보았던 승곽이의 왜 내가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물음. 

그의 사제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단 승곽이를 자리에 앉히고, 녀석에게 어깨동무하며 술을 한잔 따랐다. 

-졸졸졸. 

그리고 녀석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승곽아.” 

“예, 혀, 형님.” 

“네가 어떤 의미에서 나를 형님이라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예? 그게 무슨?” 

내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승곽이.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 사람이 된 것이니, 내 사람은 내가 챙겨야 한다. 나에게 형님이라 불러온다는 것은 그런 의미지.” 

“···” 

“초선두부가 없더라도 매화제가 열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이른 봄에 얼음물에 들어가 니추를 잡아야 하는 너의 고단함을 내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느냐. 장문인이야 한 두어 번 만들어보다 실패하시면, 그냥 포기하시겠지.” 

그러자 승곽이가 나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줄줄 짜내며 나를 끌어안았다. 

“혀, 형님! 크흑! 엉엉!” 

“그, 그래 승곽아 진정하고.” 

들러붙는 녀석을 밀어내자,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벼락같은 합창. 

“““저희도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승곽이의 사제들이 포권을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승곽이는 화산의 매화검수이자 장문인의 직전제자. 

고로 차세대 장문인 내정자라는 말. 

한 이십 년 장투하면, 화산의 장문인이 내 동생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당장의 눈앞에 이득보다는, 이런 엔젤 투자도 나쁘지 않은 법. 

현재 꽌시 슬롯은 가득 찬 상태이니까. 

‘무럭무럭 자라라 승곽아.’ 

차세대 꽌시 유망주인 승곽이 녀석의 어깨를 따듯하게 두드려줬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