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두응(猫头鹰) (삽화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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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에서의 일이 마무리되자 우리는 곧장 영흥(永兴)으로 향했다.
화산파의 장문인이 한 달 정도 푹 쉬고 가라고 권했지만, 생각해보니 더워지면 대막(大漠)을 건너기 힘들 테니 한시라도 서둘러야 했던 것.
서두르지 않으면 사막 한가운데서 여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일정에 늦어졌던 여정을 서두르기 위해 급하게 떠난 화산.
화산을 떠나는 내 급(笈)에는 화산파에서 챙겨준 전표 몇 장과 완성된 매화영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화산에서 그사이 매화영단이 완성되었다고, 출장 요리의 대가로 매화영탕을 매화영단으로 업그레이드해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냥 주려면 다 주지 교체는 뭐란 말인가?
‘쪼잔한 화산파! 오타쿠들이 원래 저희 취미에는 돈을 잘 쓰는데, 남들에게는 박하긴 하지.’
아무튼 그렇게 화산을 떠나 영흥.
영흥은 화산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화산파의 세력권이라서 승곽이의 에스코트까지 받아 가며 도착할 수 있었고, 도착해서도 화산파를 후원하는 큰 객잔에서 돈 한 푼 안 내고 이틀이나 묵을 수가 있었다.
전생에 조폭들이 자기 영향권에 있는 술집에서 돈 안 내고 술 마시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영흥, 그러니까 장안(長安)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는 감격과 휴식도 잠깐.
우리는 이틀 후 곧바로 위하(渭河)를 거슬러 오르는 배편에 올라타야 했다.
그리고 또 열흘이 넘게 배를 타고 위하를 거슬러 올라, 배가 갈 수 있는 최대 위치인 진주(秦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가 관도가 나타나면 관도를 따라 난주(蘭州)로 향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 난주(蘭州)에서 북으로 칠천 리.
현지인들은 백고대하국(白高大夏國)이라 부르는 서하(西夏)를 지나, 대막을 건너 아내의 외가 바이칼로 향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배 여행에 지친 몸을 하루 쉬고 진주의 성문을 나서는 길.
“가가, 무거우면 말씀하세요. 저희가 나눠지면 되니까요.”
“예, 노공 그리하시지요.”
“은공, 언제라도 힘들면 말씀하세요.”
“이 정도는 괜찮소. 내 힘들면 이야기하리다.”
무공을 배웠다고 내 짐까지 챙기는 셋.
진주의 성문을 나서는 그런 셋의 등에도 급이 다 하나씩 매여있었다.
진주에서부터는 청, 소소, 영영이 모두 송 시대 배낭인 급(笈)을 하나씩 사서 등에 둘러매야 했는데, 마차가 다닐 수 없을 길을 지나야 하고, 계속된 노숙이 이어질 것이니, 식료품과 여벌의 옷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옷 보따리 정도는 이미 각자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부족한 것이니까.
칠천 리 여행에는 필요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각자 급을 하나씩 매고 걷기를 며칠.
어제와 같이 오늘도 모닥불을 피운 큰 나무 아래 모여서 잠을 자려고 할 때였다.
“월! 월! 월월!”
덕구가 달마저 숨어버린 어둠이 짙게 깔린 숲에서, 큰 나무 위를 향해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덕구야 왜 그러느냐?”
“월! 월월!”
야생 동물이라도 보았는지 악을 다해 짖는 덕구의 모습.
덕구가 짖는 것은 아내인 청이가 나서서 덕구를 진정시킬 때까지 계속되었다.
“덕구 왜 그러는 거죠? 나무 위에 뭐가 있습니까? 진정하세요.”
“월!”
“노공, 나무 위에 뭐가 있어서 그러나 봅니다.”
“나는 잘 안 보이는데 뭐가 있나?”
아내와 소소, 영영이도 확인 못하는데, 내가 나서서 확인해봐야 보이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덕구가 올려다보는 나무 밑으로 다가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원래 이런 험한 일은 사나이가 하는 것이니까.
“대체 뭐가 있다고 그러는 것이냐? 덕구야.”
덕구에게 물으며 나무 위를 아무리 열심히 올려다보아도 역시나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부웅. 부, 부우웅.”
묘두응, 그러니까 올빼미나 부엉이의 울음소리였다.
아마도 덕구가 짖어댄 원인은 올빼미인 모양.
똘똘한 녀석이 왜 새 따위에 짖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그보다 옆에서 들려오는 영영이의 밝은 목소리가 먼저 귓가를 때렸다.
“앗! 묘두응(猫頭鷹)이닷!”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듯한 반가운 영영의 목소리.
그리고 동시에 영영이가 민첩하게 움직였다.
모닥불가에 앉아 굽던 육포까지 내던지고 쏜살같이 튀어 나가 나무 위를 향해 뭔가를 집어 던진 것.
-쐐액!
-빠악!
그리고 들려오는 뭔가가 터지는 소리.
영영이가 던진 것은 아마 근처에 굴러다니던 돌 같았는데, 올빼미를 잡으려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깊은 밤의 숲을 울렸다.
그리고 곧이어 나무 위에서 뭔가가 뒈지며 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꽤액!”
“어이쿠. 무슨 묘두응 뒈지는 소리가 돼지 멱따는 소리가 같냐? 묘두응이 뒈졌나?”
“자, 잡았나?”
그러나 나와 영영이가 생존 클리셰를 너무 남발했는지,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 위쪽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더니, 영영이가 맞춘 묘두웅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린 듯했다.
뭔가 멱이 따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불구하고,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으니 놓쳤다고 봐야 했으니까 말이다.
“아···. 분명 맞춘 것 같았는데?”
“그러게,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꼭 뭔가가 맞아 죽는소리가 났는데, 이상한 일이구나. 그런데 묘두응은 왜 잡으려 한 것이냐? 영영아.”
갑자기 왜 묘두응을 잡으려 한 것이냐고 묻자 영영이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아, 저거 구워 먹으면 맛있는데. 아쉽다.”
“그, 그래?”
“네, 밤에 잡아 털 뽑아서 구워 먹으면 맛있거든요. 에이 그냥 육포나 먹어야겠다.”
아쉬움 가득한 영영이의 목소리.
영영이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모닥불 옆으로 향하고, 아까 내던졌던 육포를 다시 줍더니 흙을 털어 다시 굽기 시작했다.
요 며칠 노숙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식사가 시원치 않았는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고기가 먹고 싶었던 모양.
덕구는 이제 나무 위가 아니라 저 멀리 어둠 속을 바라보기에, 모닥불로 되돌아가 물었다.
“영영아, 그런데 묘두응은 어떤 맛이냐?”
“아주 고소하죠!”
영영이가 묘두응 고기의 맛을 떠올리는지 입맛을 다시며 미소를 지었다.
영영이의 말에 중원 올빼미는 어떤 맛일지 꼭 잡아서 맛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영이가 아무 음식이나 먹는 것 같아도 후각이 예민해서 어지간한 음식이 아니면 맛있다는 말은 하지 않으니까.
분명 저 묘두응은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살결에 맛이 기가 막힐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궁금하니까 꼭 잡아서 한번 맛을 봐야겠구나!’
원래 요리사라면 새 요리재료의 등장을 기꺼워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
백미미는 며칠 동안 하늘이 자신의 노공으로 점지해준 남자를 조사해야 했다.
원래 모든 것을 훔치는 데는 정보가 필요한 것이고, 완벽한 도둑질을 하려면 이렇게 직접 조사를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뭐 어쨌든 나는 최고의 도둑년이니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조사는 필수야.’
그렇게 화산파의 지붕 위를 누비며 자기(?) 남자를 관찰하던 미미는, 며칠 동안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째, 남자가 아무리 봐도 자기 마음에 쏙 들게 너무도 잘 생겼다는 것과
둘째, 그가 무림에 식룡이라는 별호를 떨치고 다니는 대단한 요리사라는 사실.
셋째, 여자가 셋이나 따르고 있다는 것.
우선 그녀가 알아낸 여러 가지 사실 중 첫 번째로, 생긴 게 참 미미의 마음에 들었다.
어쩜 남자가 저리 멋들어지게 잘 생겼는지, 솔직히 사내다움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얼굴의 선이 곱고 깨끗한 것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할 지경이었고.
목소리도 맑고 말소리도 또박또박하며, 웃음소리는 얼마나 호쾌한지, 자신이 저 남자의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던 것.
지금까지 자신의 고생이 남자 하나로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또한 두 번째로 알아낸 사실.
들려오는 소리를 잘 살피니, 자기의 남자는 무림에 식룡이라는 별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단한 남자.
원래 용이란 칭호는 아무나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무식한 무림인들이 한낮 범인(凡人)이자 요리사인 그의 용이라는 칭호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실력 있는 요리사라면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니, 그 점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범인(凡人) 중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요리사니까, 혹시라도 사는 게 힘들어 자신이 부득이하게 도둑질에 손대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해줄 믿음직한 남자라는 말이었으니까.
‘현원 법사님 감사해요! 제가 혼례만 치르면, 늙은이 보물 다 훔쳐다가 소림에 시주하겠습니다!’
미미는 배고픈 게 정말 싫었는데, 개봉부 뒷골목에서 단둘이 의지하며 살던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저자에서 만두 따위를 훔치던 일이 너무나도 비참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망할 늙은이를 만나 도둑년이 되었으니까.
아무튼 남자의 외모와 요리사라는 점까지 다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알아낸 사실에 좀 문제가 있었다.
그에게 여자가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나 있다는 사실.
처음에 남자와 그를 따르는 세 여자를 본 순간.
뭐 그냥 잘생기고 실력 좋은 남자를 따라다니는, 무림의 흔한 남녀 관계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셋에게로 향하는 남자의 마음을 훔치면 될 일이라 생각했는데, 대화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는 그를 노공이라 칭했으며, 하나는 가가, 하나는 은공이라 부르는 상태였던 것.
이미 부인이 있는 남자였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하나만 그의 부인이라 생각하고 나머지는, 그냥 남자가 좋아서 첩실 자리라도 꿰차려고 따라다니는 그런 관계쯤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밤에 그의 처소 지붕에 구멍을 뚫어 살펴보았더니, 이게 웬걸? 넷이 같은 침상에서 자고 있었던 것.
‘뭐, 뭐지? 내, 내 남자가 밤에는 좀 야수 같은 사내인가? 하나는 처고 둘은 이미 첩인 건가?’
분명 현원 법사께서 처가 될 거라 하셨는데, 이미 처도 있고 첩도 둘이나 있어 보이는 상태.
더군다나 침상에서 넷이 뱀처럼 엉켜서 잠든 것으로 보아, 한 번에 모두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욕심 많은 사내인 느낌.
부끄러워 기와를 얼른 덮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아니, 분명 현원 법사께서 내가 처가 될 거라 하셨는데, 처가 아니라 첩이었나?’
조금 실망감이 들었지만, 저 정도 남자의 첩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뭐 자기는 이 넓은 중원에 혼자인 몸에 나이도 이제 스물셋.
열네 살부터 혼례를 치르는 풍습에 비춰봤을 때,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첩도 나쁘지 않지. 지금 내 처지에 첩도 과분하지. 처는 솔직히 욕심이긴 했어. 그럼 나는 넷째쯤 되는 건가? 아니, 서두르면 둘째가 가능할지도?’
하나는 정확히 노공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고 그의 부인으로 보였지만, 다른 둘은 평소에 다른 이들에게 첩이라는 내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떻게든 선수를 친다면 첫 번째 첩인 두 번째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이 분명했던 것.
투왕의 별호를 따라다니는 두 가지 명성 중 하나는 도둑질이요, 하나는 그 빠른 경공이니 둘보다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미미는 빠른 것에는 아주 자신 있었으니까.
빠른 행동은 자신의 재주였으니까 말이다.
또한 처와 첩 사이라면 서로 견제하고 사이가 나빠야 하는데, 자기의 형님, 동생들이 되실 분들은 생각보다 사이가 좋았기에 한편으로 안심되는 마음도 들고.
그렇게 미미는 마음에 결심을 내리고 넷의 조사(?)를 이어 나갔다.
중간에 한번 넷을 따르는 개새끼에게 나무 위에 있는 것을 들킬뻔하기도 했고, 그 개새끼가 그냥 개새끼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아무리 뛰어나도 개는 개.
투왕인 자신을 잡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화산의 잔치가 열렸던 그 날.
미미는 잠깐 오해했던 현원 법사의 말의 뜻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한밤중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기와를 치우고 넷의 처소를 살피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그의 부인이 무슨 약을 주워 먹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
‘어!? 어디가 아픈가? 아니, 이제 우리 식구인데, 아프시면 안 되는데···.’
그리고 그날 아침, 그가 만들어 보냈다는 두화를 먹고 난 그녀가 다른 첩들에게 하는 이야기에서 신묘한 현원 법사님의 점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그러니 혹 우리 중 누가 먼저 죽더라도 남은 이들이 노공을 잘 보살펴드리기로 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 몫까지. 알겠죠?”
‘잠깐! 이거 설마!?’
그렇다!
그녀는 죽을병에 걸려 오늘내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녀가 죽고 나서 정실부인의 자리를 자기가 넘겨받게 된다는 말!
‘신묘(神妙)! 정말 신묘하구나!’
백미미는 신묘한 현원 법사님의 점괘에 몸을 떨며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다시금 조사(?)를 이어갔다.
화산을 떠나는 그들의 여정을 따르며.
‘후후, 어쨌든 나는 투왕. 결정적인 순간 딱 한 번만 나서 완벽히 훔쳐요. 그것이 무엇이라도!’
언제, 어떻게, 어찌 나서서 남자에게 자신을 알려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나서기 두려워, 조사한다는 핑계로 은밀히 넷을 따르면서 말이다.
한밤중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몰래 가까이 다가갔다가 들킬뻔해.
묘두응 소리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가 그의 여자 중 하나가 던진 돌에 이마가 터지면서도 말이다.
-빠악!
“꽤액!”
‘너, 넌! 내가 정실 되면 가만 안 둘 거야!’
이마가 터진 채 도망가는 미미의 눈물이 이마의 핏방울과 함께 밤하늘에 뿌려졌다.
남자라고는 자신을 쫓는 칼을 뽑아 든 남자와 망할 늙은이 외에는 한 번도 만나보지도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해, 자신의 짝이라는 남자에게도 두려움에 나서지 못하는 스물셋 백미미의 슬픈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