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碧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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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지나 난주로 향하는 길.
밤마다 쓸데없이 짖어대는 덕구 때문에 우리는 며칠이나 잠을 설쳐야 했다.
심지어 자기 무공을 뽐내듯 나무 위에서 짖는 일도 있었는데, 결국 참다못해 덕구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 했다.
“월월! 월!”
아직 이른 새벽 다시금 짖기 시작하는 덕구.
오늘 밤은 이것이 벌써 세 번째.
덕구를 향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덕구야, 밤마다 왜 그러냐 진짜. 잠 좀 자자. 그렇지 않아도 노숙해서 피곤한데, 왜 자꾸 밤마다 짖어대! 들짐승 같은 건 일일이 짓을 필요 없어. 제발 덕구야!”
“그래, 덕구야. 우린 상관없지만, 가가께서는 잠이 부족하면 안 된다고. 왜 자꾸 그래?”
“덕구, 자꾸 은공의 잠을 깨우다니, 혼나고 싶나요?”
-철그럭.
“월!”
소소가 칼까지 어루만지며 협박까지 했지만, 알아들었다는 건지 말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덕구의 대답.
정말 눈 위의 출렁이는 살덩이를 접어 어떤 눈빛인지를 살피고 싶을 정도.
결국 나의 분노에 아내가 나서 거들었다.
“덕구, 전부 다 짖을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잘 때 누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우리를 깨우세요. 알겠죠?”
“월!”
내 분노 때문인지 아내의 주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덕구의 헛짖음은 사라졌고, 우리는 수면 부족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난주가 가까워져 오면서 덕구가 아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전생의 접경지역을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난주로 향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일반적인 접경지역이 아니었다.
서하는 몽골의 유목민들 같은 그런 유목민들이 주류를 이루는 국가였고, 국경에서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
말을 탄 유목민들이 약탈과 도적질을 일삼는 무법천지 같은 그런 곳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주가 송의 땅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다시 난주를 수복하려는 군사 행동도 빈번히 일어난다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난주를 수복한 영웅이 태후께 웅장을 바칠 때 도움을 받았던, 이헌 태감이라고···.
무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아, 내시들의 무공인 그것을 익히신 느낌.
나는 태감이 궁에서 내시로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헌 태감 그분은 이쪽 북방에서 알아주는 장군 뭐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개봉에 가 있는 것은 반대파들 때문에 좌천된 것이라고.
아무튼 그렇기에 산길임에도 생각보다 순찰을 다니는 관병 무리도 많고, 검문도 몇 번이나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위하의 물길을 벗어나 난주로 향하는 관도에 이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뭐 일반인 그것도 여자 셋이 낀 무리가 지나다니니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지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역시나 아내의 푸른 눈.
저 안데스산맥 꼭대기의 아침 이슬 같은 아내의 어여쁜 눈동자가 아무래도 서하의 접경지역인 이곳에서는 문제가 되는 느낌이었다.
벽안이라는 것은 이민족이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이고, 그러다 보니 남들의 배나 되는 검문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난주를 얼마 안 남긴 시점, 국경 안쪽의 가장 큰 도시인 희주(熙州).
“동경 개봉부의 제, 제갈가 말씀이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부인께서 벽안(碧眼)인지라 오해가···.”
희주의 수비대쯤으로 보이는 관병의 아장이 성문 입구에서 우리를 붙잡았다가, 내가 내민 제갈가의 패를 보고 기겁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나마 제갈각 숙부께서 관에 계시니 그 버프를 받는 느낌.
소소의 검이나 우리의 옷차림 그리고 내가 내민 패를 보고 믿어줘 다행이지, 산길에서 만난 관병처럼 꽉 막힌 놈이면, 그의 지휘사가 있다는 주둔지까지 들러서 우리의 신분을 입증해야 했을 것이었다.
송 시대에는 국가에서 발급한 신분을 증명하는 패라고는 관원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어대(魚袋)뿐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의 신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니까 말이다.
주민등록증, 그러니까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패 제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난주까지 가야 하는데, 앞으로 이러면 곤란할 것 같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내가 거듭된 검문에 지쳐 난처한 듯 질문하자, 그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지, 지휘사(指揮使)께 가시지요. 난주까지 신분을 증명하는 서찰을 써달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었나?’
품에서 은자를 하나 꺼내 그의 손을 양손으로 쥐는 척하며, 그의 손아귀에 은자를 쥐여주며 말했다.
“내 그리하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부탁해도 괜찮겠습니까?”
“왜, 괜찮다마다요. 어서 가시지요!”
그렇게 그와 근처에 있는 지휘사가 업무를 보는 건물에 들러 차를 한잔 대접받고, 명령서 같은 것을 두 장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동경 제갈가에서 온 사람이고 희주의 지휘사가 신분을 보장한다는 그런 서찰이었는데, 난주까지는 이것을 보여주면 편안히 지날 수 있다고 지휘사가 가슴을 두드리며 보장했다.
물론 지휘사에게 편의를 봐준 대가로 은자를 다섯 개 정도 쥐여주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들어선 접경지역 이선 도시 희주(熙州).
우리가 제일 먼저 희주에 들어서서 찾은 것은 객잔.
그리고 목욕탕인 향수행(香水行)이었다.
긴 노숙으로 목욕과 푹 쉬는 것에 관한 생각이 무엇보다 간절했기 때문이다.
“가가, 저희는 그러면 셋이 먼저 세욕을 하고 올 테니, 가가도 씻고 오세요.”
“은공, 저희끼리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아내와 소소, 영영이는 객잔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빨래와 목욕을 한다며 옷가지를 품에 안고 행수행으로 향하려 했다.
전생이면 목욕탕에서 빨래한다고 한 소리 듣겠지만, 이곳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
가는 김에 본전을 뽑고 오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자, 잠깐. 부인 이것 가지고 가시오. 혹시 또 관병들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이것을 보여주시오.”
“아, 참. 알겠습니다. 노공.”
보름 넘게 씻지를 못했으니, 얼른 향수행으로 향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챙길 것을 챙겨야 했기에 아까 두 장 받았던 서찰 한 장을 아내의 품에 넣어주었다.
성 안쪽에서 혹시나 검문에 시달릴지도 몰랐기 때문.
“다녀오겠습니다. 은공.”
“가가, 이따가 봐요!”
그렇게 셋을 보내고 나서 짐을 정리하고, 나도 목욕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덕구야? 목욕하러 가려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
혼자 가기 심심하기도 하고, 덕구도 씻길 때가 되었기에 같이 가겠느냐고 묻자, 벌떡 일어나는 덕구.
덕구가 내 앞에서 문을 열고 나서며 나를 향해 짖었다.
“월!”
빨리 안 오고 뭐 하냐는 물음 같은 느낌.
피식 웃으며 덕구를 따라나섰다.
“점소이, 내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짐을 좀 신경 써 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르신.”
그렇게 점소이에게 철전을 하나 던져주고 밖으로 나서, 아까 객잔을 향하며 확인해 두었던 향수행으로 향했다.
“월월!”
덕구도 오래간만에 뜨듯한 물에 씻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지, 앞서가며 나를 돌아보며 짖었다.
그렇게 해가 지기 시작해 어두워지는 거리.
덕구를 따라 향수행으로 향하는데, 덕구가 처음 보는 길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가 왔던 큰 길이 아닌 골목골목을 지나는 덕구.
사람이야 이런 뒷골목을 피할 테지만, 덕구는 개인지라 이런 길과 큰길을 별로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근데 저놈 잘 가고 있나?’
후각에 의지하는지 골목골목을 지나 나를 이끄는 덕구.
그렇게 해가 져 등롱이 걸리기 시작하는 골목, 덕구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어이쿠!”
“어머!”
코너에서 사라진 덕구를 따라 급하게 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뭔가와 부딪혔고.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서자, 눈앞 어둠 속에 머리를 검은 천으로 뒤집어쓰고 면사까지 해, 마치 히잡을 뒤집어쓴 것 같은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죄, 죄송합니다. 소저.”
일단 부딪힌 것에 대해 사과하고 여자를 바라볼 때 들려오는 소리.
철컹거리는 갑옷 소리와 함께 남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쪽인가!?”
“쫓아라!”
그리고 그 소리에 놀라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자, 어둠 속에서 그녀의 반짝이는 푸른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아내의 눈처럼 안데스산맥의 이슬을 머금은 것 같은 그런 눈동자였다.
“벽안?”
그리고 튀어나온 내 말에 눈앞 여자의 눈빛이 당황함과 난처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빙설화(氷雪花)는 우빙(右氷)과 함께 한밤중 성벽을 넘어 난주로 숨어들었다.
이십여 년 전 당시에는 난주가 서하의 도시였지만, 지금은 송의 땅이 되었기에 혹시 몰라 밤을 택한 것이었는데, 역시나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객잔에서 여독을 채 풀기도 전에 점소이의 발고(發告)를 받은 관병들이 들이닥쳐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던 것.
대낮에 성문으로 들어섰으면 더욱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했던 것이었다.
그나마 은자 몇 푼으로 해결해 볼 수 있는 지금이 나았던 것.
하지만, 그런 다행스러움도 잠깐.
관병들에게 조사받는 와중에 자신에게 무례한 관병들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우빙이 출수했고, 그 후로는 결국 쫓기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궁주님.”
하루도 채 쉬지 못하고 난주의 성벽을 넘는 자신의 옆에서, 우빙이 죄송하다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허락도 받지 않고 출수해 자신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사과하는 것.
“아뇨. 이해는 합니다. 확인한다면서 우리가 가진 것들을 다 빼앗으려고 했으니까요. 다만 너무 소란스러웠어요. 혈도만 짚었으면 좋았는데···. 더군다나 빙궁의 무공을 썼으니, 근처에 저희와 은원 관계를 쌓은 공동파에서 움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가족을 만나러 서하 너머에서 왔다는 자기의 정직한 대답을 듣자마자 도둑놈으로 돌변한 관병들.
갑자기 빙궁에서부터 가져온 은과 금 그리고 딸아이에게 줄 선물까지 빼앗아 가려는 놈들의 모습에 자신도 출수할뻔 했었으니, 우빙의 잘못을 따질 이유는 없었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빙궁의 장법으로 병졸 둘을 실신시킨 것.
죽지는 않을 테지만 얼어붙은 두 관병의 모습은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던 것이었다.
“성내도 소란스럽고 관병과 공동파에서도 따라붙을 수 있으니, 일단 둘로 갈라지죠.”
“하, 하지만!”
“이렇게 둘이 같이 다니다 보면 더 이목을 끌 것입니다. 저희가 둘이라는 것이 금방 알려질 테니까요.”
“제, 실수 때문에···.”
“아뇨. 대신 임무가 있습니다. 우빙은 갈색 눈이기에 혼자 다녀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섬서를 지나 호북의 제갈가로 최대한 빨리 향하세요. 그리고 아이가 혹시라도 떠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제가 도착할 때까지, 아이를 지키세요.”
임무를 맡기자, 충직하게 대답한 우빙이 곧장 들판을 달려 먼 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빙설화는 경공을 펼쳐 바로 난주 아래 가장 큰 도시인 희주로 향했다.
산길을 타던 관도를 이용하던 지금 입고 있는 털옷을 중원의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늦은 저녁 성벽에 번을 서던 병사들의 눈을 피해 희주로 숨어들었고, 저자 구석의 옷을 파는 곳에서 미리 준비했던 두건과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옷을 사 갈아입는 데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또다시 마주친 병사들.
해가 지고 있어 자기의 눈을 살피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눈이 좋은 놈이 있었던 모양.
“거기, 잠깐! 분명 눈이?”
-탁탁탁.
재빨리 뛰어 뒷골목으로 몸을 피했고, 골목골목을 돌아 추적을 따돌리는데 갑자기 앞에서 튀어나온 개.
그리고 남자 하나가 튀어나와 자신과 부딪혔다.
“어이쿠!”
“어머!”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서자 들려오는 남자의 사과.
“죄, 죄송합니다. 소저.”
그리고 뒤쪽에서 관병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쪽인가!?”
“쫓아라!”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앞에 남자의 입에서 호기심 어린 목소리의 말이 들려왔다.
“벽안(碧眼)?”
‘혈도를 짚어야 하나?’
빙설화는 뒤에서 들려오는 관병들의 목소리와 눈앞의 남자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