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熙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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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의 푸른 눈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푸른 눈을 대하자, 혹시 아는 사람이 아닌가 착각될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이유를 모르게 그녀의 눈매에서 아내가 생각났다.
허겁지겁 달려온 모습과 들려오는 관병들의 목소리로 보아 여자는 아마 푸른 눈이라는 이유로 관병들의 검문에서 도망치고 있을 것으로 보였는데, 여자가 뭔가를 잘못했다기 보다는 푸른 눈 때문에 검문당하는 것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도 아내의 눈 때문에 계속된 검문에 시달렸고, 우리야 여자가 셋이지만 무림인이 셋에 남자인 나까지 있어서 험한 일은 당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에 무림인도 아니고 여자 혼자 관병에게 검문당한다는 것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몸수색을 가장한 이렇고 저런 일을 당한다든지···.
이 시대 관병 새끼들은 일종의 국가 공인 양아치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익숙한 아내와 같은 푸른 눈이라는 사실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
“저기, 혹시 벽안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처하신 것이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나를 피해서 뛰어나가려던 것인지, 달려 나가려는 포즈를 취하려던 여자가 내 말에 멈칫했다.
내 말에 당황한 느낌.
초면에 갑자기 도와준다니 놀란 모양이었다.
“아마 눈 때문에 관병들이 쫓아오는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부인도 벽안인지라, 이곳까지 도착하는데, 조금 고초를 겪었거든요.”
내가 부인의 이야기와 그녀도 벽안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당황한 여자가 의심 어린 눈에서 다소 안심하는 눈빛이 되었고, 그사이 관병 넷이 뛰어와 우리에게 창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제길, 감히 도망치다니! 네년, 우리 지휘사께 끌려가 험한 문초를 당할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헉헉. 제기랄 다 저녁에 얼마나 뛴 것인지!”
“뭐야? 네놈도 한패냐!?”
분노한 병사들의 목소리.
당장 여자를 어찌하겠다는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와그르릉! 월월!”
그리고 병사들이 우리에게 창을 겨누자, 덕구가 병사와 우리 사이에 달려들어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움찔하고 놀란 병사들이 한걸음 물러나며 소리쳤다.
“무, 무슨 개새끼가 이리 사나운 것인가!”
“지금 우리와 대적하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그들 뒤로 배 나온 아장 하나가 뛰어서 헉헉거리며 도착하더니,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 헉헉···. 자, 잡아들여랏!”
육중한 몸에 뛰느라 고생했는지 우리를 잡기 전에 먼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습.
나는 일단 품 안에서 지휘사에게 받은 서찰을 꺼내, 아장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아이고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헉헉···. 오, 오해···?”
“예, 아장 어른. 오해.”
“헉헉···. 그쪽의 여자가 우리의 부름에도 멈추지 않고, 도망간 것으로 봐서는. 아이고 죽겠구나. 부, 분명 서하의 세작이거나 나쁜 짓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것이 분명하다. 헉헉···. 한패가 아니면 비키고 한패라면 네놈도 무사치 못할 줄 알아라!”
다 저녁에 여자 때문에 달리기 한 것이 못마땅한지 씩씩거리는 아장과 병사들.
나는 서찰을 펼쳐 좀 더 아장 쪽으로 보이며 설명했다.
“자, 이것 보시오. 이 희주의 지휘사이신 이름이 뭐였더라? 아! 왕방. 그래, 왕방 어른이 써주신 서찰이오.”
내 입에서 그들의 상관인 지휘사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움찔하는 관병들.
아장이 나서 물어왔다.
“다, 당신이 지휘사님을 어찌 아는가? 아니, 아십니까?”
“자, 여기 지휘사께서 써주신 서찰이 있으니 한번 살펴보시오.”
아까부터 보라고 들이밀어 주는데도 숨이 차서 그런지 확인하지 못하는 아장.
내가 종이를 다시금 내밀자, 그가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그것을 비춰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이런. 실례했습니다. 대인. 갑자기 부인께서 도망가시기에···.”
서찰에 푸른 눈의 여자는 내 아내라는 사실과 함께 제갈가의 사람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는데, 그것을 확인한 모양.
그가 고압적인 태도를 바꾸며 사죄하기에, 그녀가 내 아내인 듯 설명했다.
“아마, 나와 저자를 구경하다 잠깐 떨어졌는데, 그사이 관병들이 다그치니 놀란 모양입니다.”
“저, 정말 실례했습니다! 이 녀석들 부인께 이 무슨 잘못이란 말이냐!”
괜한 관병들을 다그치는 아장.
관병들의 표정이 썩는 것으로 봐서는 아장이 시킨 모양인데, 모른 척하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요. 저기 이건 뛰느라 숨이 차셨을 텐데.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아이고! 대인 뭐 이런 것까지! 감사! 감사합니다!”
아장에게 은자를 하나 쥐여주자, 아장이 머리를 최대한 숙여 포권을 하고는 병사들을 끌고 재빨리 사라졌다.
겁이 많은 놈인지 더 있다가 괜히 다른 트집이라도 잡힐까 그러는 것인 느낌.
그렇게 놈들이 사라지자 이상하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
“대협,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청운아 정신 차려. 다른 여자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다니!’
얼른 쓸데없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여자의 인사에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별것 아닌데요. 희주와 진주로 가는 산길에서는 관병들이 눈의 색을 보고 사람을 붙잡아 이것저것 물어보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대인의 존성대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고마웠는지 내 이름을 물어보는 여자.
무심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아, 저는 제ㄱ.”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여자가 이름을 알려달란다고 뽀르르 이야기하려는 정신머리 쏙 빠진 놈.
진짜 청운이는 아직 정신을 차리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운아 이쯤 되면 정신 차려야지? 중원에서 일 도움은 일 아내인데, 정신을 못 차리고 또 하나 추가하려고? 삼등분이 부족했냐? 사 등분을 원한 거야? 왜? 하나 더 추가해서 오 등분하지? 원래 극형은 오체분시(五體分屍)잖아?’
마음속으로 자신을 맹렬하게 꾸짖으며, 얼른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큰 도움을 드린 것도 아니니, 그냥 잊으시면 됩니다.”
“하, 하지만?”
“제 부인도 벽안인지라 도운 것뿐이니,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이만.”
“저, 저기···”
여자의 목소리가 묘한 여운을 남겼지만, 얼른 여자가 뛰어왔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뒤쪽에 덕구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에 녀석들 불러들였다.
“덕구야, 그만 가자!”
“월!”
-달그락.
그러자 덕구 녀석이 뒤를 흘깃거리며 나를 따랐고, 조금 떨어진 지붕 쪽에서 기왓장이 깨지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휴···. 아내 플래그를 다시 밟는 우를 범할 뻔했군.’
***
백미미는 마음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낭군님의 일행을 따르고 있었다.
요 며칠 자기의 낭군 되실 분이 기르는 개 때문에 근처에 다가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자는 모습이라도 좀 더 가까운 데서 지켜보기 위해 조금 가까이 갈라치면, 개가 한밤중에 온 산속이 떠나가라 짖어대는 통에 멀리서만 물끄러미 얼굴을 확인해야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더군다나 개가 짖어대는 통에 낭군님께서 짜증까지 냈기 때문이었다.
‘저 잘생긴 얼굴이 짜증도 낼 줄 안다니.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긴 했지만···.’
새로운 모습에 즐겁기도 했지만, 낭군께서 피로한 것은 보기 힘들었기에 멀리서만 그를 지켜봐야 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개를 향해 맹렬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
그렇게 멀찌감치서 그를 뒤따르다가 며칠 만에 따라 들어선 희주.
개에 대한 분노에 불타오르는 미미였지만, 희주에 들어선 그녀에게 찾아온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당황함이었다.
산길이야 지나는 사람이 없으니 멀리서도 낭군님을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골목과 집들 때문에 순간 그의 일행을 놓쳐버리고 말았기 때문.
‘이런 제기랄! 개새끼 때문에···. 내 낭군님이! 어, 어디 가셨지?’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낭군님을 찾다가 반 시진 만에 포기하고 혹시나 해 성문으로 되돌아오자, 성문 근처의 건물에서 나오는 낭군님과 그 일행.
한참을 돌아다니고 나서야 간신히 성문 근처에서 다시 발견한 낭군님의 모습에 미미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놓쳐버린 줄 알았네.’
그리고 낭군님을 놓쳐버릴 뻔한 사건으로 인해.
미미는 낭군님을 놓쳐도 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마련해서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쭉 개 때문에 멀리서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텐데, 난주로 들어가면 결국 그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주는 희주보다 더 큰 도시이기에 한 번 사라지면 그를 다시 찾는 데는 더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
‘이거 안 되겠어.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지. 이거 잘못하면 이러다가 낭군님을 놓치겠잖아?’
그렇게 낭군께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그를 찾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다고 고민하던 미미는 곧 그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미 그녀에게 해결책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맞다! 그게 있었지? 왜 그걸 전혀 생각 못했지? 늙은이가 준거라서, 금방 떠올리지 못한 건가?’
미미는 곧장 품 안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약병은 투왕이 되고 나서 늙은이에게 받은 선물.
아마 꼴 보기 싫은 늙은이가 준 것이라 금방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지만, 손안에 이것이라면 낭군께서 아무리 자기 눈 밖으로 벗어나도 그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미미가 손에 든 약병 속에 있는 것은 만리추종향(萬里追從香).
만리추종향이라는 것은 특별한 향을 내는 약물인데, 평소에는 아무 향도 맡을 수 없지만, 이것과 한 쌍이 되는 다른 약을 코끝에 바르면, 그 향기를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맡을 수 있게 되고, 그 향을 쫓아 만 리까지 추적할 수 있다고 해서 만리추종향.
자기가 늙은이에게 도망치려 해도 계속 붙잡힌 원인이 되는 물건이었다.
더러운 늙은이 자꾸 도망처도 어찌 귀신같이 잡으러 오나 싶었는데, 저걸 자기한테 발라두고 잡으러 다녔으니 도망칠 수가 있나?
‘그러면서 아무리 도망쳐도 자기가 다 보고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정말 더러운 늙은이라니까!’
어릴 때 늙은이의 그 말에 벌벌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시금 몸이 분노로 벌벌 떨려왔다.
‘진정하자 미미야. 이제 이건 너의 자유를 구속하는 물건이 아니라. 너의 낭군님께 너를 데려다줄 물건이니까. 아무렴.’
미미는 예전 생각에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키고는 손에든 만리추종향을 살펴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기를 잡으러 온 방법이 만리추종향이었다는 사실에 받는 순간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래, 낭군님께 이것만 발라두면 언제 어디로 가시든 따라갈 수 있겠지?’
그리고 이제는 만리추종향을 낭군님께 어찌 바르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민에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고민은 절망이 되었다.
부끄러워서 그의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데, 그분과 스치고 그분의 몸에 손을 대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벌렁거려 도저히 바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객잔의 지붕위에서 그녀가 절망할 때 들려오는 소리.
“다녀오겠습니다. 은공.”
“가가, 이따가 봐요!”
셋이 어딜 가나 살펴보았더니, 향수행에 간다는 셋.
‘어!? 그러면 낭군께서도 혼자 향수행에 가시려나?’
혹시 정말 그렇다면, 더는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낭군님께 만리추종향을 발라야 했으니까.
혼자 계신다면 좀 더 성공하기 쉬울 테니까 말이다.
세욕을 하고 나오는 길에 머리카락이나 목덜미에 발라두면, 다시 세욕을 할 때까지는 그 향을 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예상대로 하필 낭군께서는 망할 개새끼를 데리고 향수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개가 따른다는 사실에 조금 고민되었지만, 기회는 한 번뿐.
떨려도 어쨌든 성공시켜야 했다.
내조지현(內助之賢)이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그렇게 미미는 다시 그분을 따라 지붕을 뛰었다.
‘그래, 용기를 내자 미미야. 너 황실 담장도 넘어놓고, 이런 것에 떨면 되니? 잠깐 스치듯. 아마, 느끼지도 못하실 거야.’
그렇게 낭군의 뒤를 밟아 그를 따르는데, 그녀의 눈에 들어온 멋진 장면.
관병에게 쫓기는 여자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은 무림의 영웅 같은 면모.
마지막에 아무것도 아니란 듯 대수롭지 않게 이름까지 숨기려 자리를 뜨는 모습까지.
낭군님의 멋진 모습에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가슴을 잡고 진정하려할 때 들리는 소리.
-달그락.
아마 오래된 기와가 갈라져 소리를 낸 모양이었다.
사소한 실수.
미미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눈치챈 사람이나 짐승은 없는지, 그리고 낭군님의 모습을 눈으로 훑었다.
그런데 뭔가 달라진 장면, 미미는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했다.
‘분명 개와 낭군께서는 골목으로 사라지고 있고···. 여자는···. 여, 여자!?’
분명 그분과 개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는데, 남겨진 여자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목덜미에 느껴지는 서늘함과 함께 한겨울 칼바람 같은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분을 은밀히 따르는 것이죠? 혹시 저분께 해를 끼치려는 것이면, 은혜를 입은 처지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부득이하게 피를 볼 수밖에 없겠군요.”
그분께 도움을 받았던 여자가 자기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서늘한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