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게 (217/344)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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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 미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풀숲에 숨어 토끼고기를 뜯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다들 잠든 후에 눈치를 보면서 고기를 가져오느라 차갑게 식긴 했지만, 그분이 자기를 위해서 남겨주신 고기이기에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고기보다도 맛있고 따듯했기 때문. 

마치 진짜 가족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고 있었고, 고기에서는 역설적(逆說的)이게도 차가운데도 따듯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훔쳐서 먹거나 사 먹는 것 말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이렇게 자기를 위해 누군가가 요리를 해준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기에 그 느낌은 더욱 각별했다. 

“흑흑···. 너무 맛있어.” 

확실히 전 북해빙궁주라는 분의 조언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중원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를 자기 것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고 자랑하더니, 그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느낌. 

허언만 일삼는 망할 늙은이와는 전혀 다른 분이랄까? 

처음에 서로 간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이렇게 그녀의 조언을 듣고 조금 방법을 바꾸자 그분께서 어렴풋이 자기의 존재를 느끼시고 요리도 보내주시지 않았던가? 

미미는 그분이 하셨던 말씀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하셨던 말씀. 

“의미 없게 계속 따르지만 말고 은밀히 자신을 알리세요.” 

“예? 하, 하지만 가, 가까이 가면 가, 가슴이 뛰고···.” 

“어머 귀엽기도 해라. 내 딸아이도 이럴 나이일 것 같은데···. 아무튼 자, 잘 들으세요. 굳이 앞에 나서 실수하거나 당황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 그러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을 알릴 수 있다는 말에 번쩍 떠지는 미미의 눈. 

미미가 다급하게 되묻자 그녀가 조언을 이어갔다. 

“일단 상대방에게 자신이 은밀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지요.” 

“어, 어떻게요!?” 

“선물.” 

“선물?” 

선물이라는 말에 지금 가진 것이 별로 없어 처음에 뭔가를 훔쳐다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빙궁주의 설명은 그것이 아니었다. 

“제가 사는 북쪽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그의 집 앞에 사냥한 짐승들을 몰래 놓아두는 풍습이 있지요. 상대방에게 누군가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입니다.” 

“하, 하지만 여긴 중원인데요?” 

“어허,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합니다. 한번 해보세요. 다 제가 해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그렇군요. 다, 다른 것은 없나요?” 

“나머지는 원래 실전으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여, 역시···.” 

그렇게 서로 두건과 면사로 얼굴을 가린 미미와 북해빙궁자의 대화가 끝이 났고, 다음날부터 그녀의 조언을 듣고 선물을 보내기 시작하자, 남겨진 답례품이 지금 뜯고 있는 토끼고기. 

앞에 나서기 힘들면 그분에게 누군가 그분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선물을 남겨 마음을 전하라는 말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 

더군다나 토끼에 만리추종향을 듬뿍 발라 전달했더니, 그분 몸 여기저기에 만리추종향까지 발라진 상태. 

‘감사해요! 정말로! 제 은인 이세요!’ 

잠시 오해로 핍박당해 죽을뻔했다는 사실은 이미 미미의 머릿속에서 잊혔고, 미미는 마음속으로 그분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 

그리고 남겨진 요리에 감동한 미미는 이제 앞으로 그분께서 드실 저녁 요리재료는 자신이 책임지리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러면 다음에는 꿩으로 해볼까?’ 

*** 

이유 모를 짐승 택배는 내 불안한 느낌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졌다. 

토끼 다음은 꿩, 꿩 다음은 살이 통통히 오른 오리 한 마리와 큰 기러기 두 마리. 

그것들이 다시금 우리 곁에 놓여 있었던 것. 

바뀌는 사냥감의 종류로 봐서는 누군가 우리를 따르며 우리를 챙겨주는 느낌.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강을 따라 난주로 향하고 있었고, 우리의 옆을 흐르는 강에서 우리에게 보내진 오리나 기러기가 자주 보였고, 토끼나 꿩이 놓였을 때는 산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잠든 틈에 근처에서 잡은 것을 가져다주는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가가, 덕구는 분명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굴까요?” 

“글쎄다?” 

“밤에 기다렸다 누군지 확인해볼까요. 은공?” 

“아니요. 소소. 그러면 또 다음날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힘들지 않겠소?” 

나도 누군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또 확인하려고 밤을 새운다면 다음날 여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무림 고수라 해도 잠은 자야 하니까 말이다. 

그간 여행 좀 해봤다고 장기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컨디션 조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 

먼 길을 이동할 때 중간에 컨디션이 나빠지면 쉴 곳이 필요한데, 중원 길바닥 한복판에서 그런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노숙을 이어갈 수밖에 없고, 쳐진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몸살이라도 걸리게 되면, 그것이 폐렴이나 결핵 같은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 결국 길바닥에서 그냥 염라대왕을 만나러 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누군가가 보내주는 사냥한 짐승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 듯싶어, 일단 정체를 밝히는 것은 보류하고 여정을 서두르기로 했고,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다시 길을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먹은 그릇을 근처 물가에서 씻어 급(笈)에 넣고, 오리와 기러기는 미리 손질해 물기를 말려 급에 매달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급에서 흔들리는 기러기의 무게를 느끼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것. 

내가 느낀 이상함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무게. 

내 직업이 요리사다 보니 일반인보다 민감한 감각이 있는데, 그것은 후각, 미각도 아닌 무게 감각. 

같은 무게를 계속해서 가늠해 조리해야 하는 만큼 기형적으로 발달한 내 무게 감각이, 내 급에서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잡아낸 것이었다. 

그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갑자기 생긴 오리와 기러기 때문에 전체 무게를 가늠하다 보니 급에서 뭔가가 빠진 상태라는 것을 느낀 것. 

이미 희주에서 그간 소모한 재료를 채웠고 이제 이틀 정도 재료를 소모했는데, 느껴지는 뭔가 미묘한 차이. 

분명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뭔가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고, 이제는 내게 명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 설마?’ 

무게에 관한 이상함을 느끼자마자 든 생각은 바로 그것. 

이건 분명 그것이었다. 

영영이. 

‘하아···. 그간 좀 힘들었나? 하긴 그간 주는 것만 받아먹고 간식을 전혀 안 먹긴 했지.’ 

영영이는 그간 내가 챙겨주는 음식만으로 버틴 상태. 

여행이라고 짜증도 안 내고 챙겨주는 대로만 먹는 아주 소식하는 상태였던 것. 

일단 영영이를 조용히 불렀다. 

혼내려는 것은 아니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영영이에게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뭐 분명 비상용으로 만들어 둔 환병일 테지만. 

달라면 그냥 주었을 텐데 ‘눈치를 보면서 훔쳐먹느라고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영영아, 잠시 이리 와보지 않겠니?” 

셋이 조잘거리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가 내가 부르자 강아지마냥 뽀르르 다가오는 영영이. 

영영이가 왼쪽 팔에 달라붙어 물었다. 

“가가, 왜 부르세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나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영영이에게 물었다. 

“우리 영영이 요즘 먹는 게 시원치 않았지?” 

“아뇨? 어제 꿩도 먹고 그전에는 토끼도 먹었잖아요? 아, 매일 그렇게만 먹으면 좋겠어요!” 

“그래?” 

“네, 가가. 오늘은 오리랑 기러기로 무엇을 해주실 건가요?” 

천진난만한 표정의 영영이. 

나는 영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영영이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조용히 물었다. 

혹시 아내나 소소가 들으면 영영이가 부끄러울까 싶어서. 

[영영아, 밤에 배가 고파서 혹시 급에서 뭘 꺼내 먹었느냐?] 

“예!?” 

내 물음에 당황하는 영영이. 

이거 당황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백 퍼센트였다. 

‘귀여운 녀석.’ 

“아, 아뇨?” 

말까지 더듬는 것이 뭔가를 먹은 게 분명한 상태. 

나는 다시금 조용히 영영이게 물었다. 

[영영아, 남만에 갔을 때처럼 혼내지 않을 테니. 괜찮으니 말해보거라. 혹시 또 환병을 꺼내 먹은 게냐? 내 난주에 도착하면 환병을 더 만들어줘야겠구나. 우리 영영이가 그리 좋아하는데 내가 좀 소홀했던 모양이야···.] 

그러자 영영이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가가, 저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요?” 

영영이의 정색하는 표정. 

‘우리 영영이 부끄러운가 보구나?’ 

원래 모든 범죄자가 자신의 죄가 들통나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고, 그다음에는 자신이 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정색하는 법. 

거의 심증만으로 완벽해진 상황이기에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다니까 그래도 그러네. 내 그냥 뭐가 얼마나 부족한지 확인하려고 물은 것이니···] 

“진짜 아니라구요! 저번에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영영이가 소리를 빽 지르는 통에 아내와 소소가 놀라 뒤로 달려와 물었다. 

“영영 언니 무슨 일입니까?” 

“영영, 왜 그러나요?” 

그러자 영영이가 서럽다는 듯이 둘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를 원망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가가가! 가가가! 나를 도둑년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는 두 여자의 눈동자. 

나는 둘을 향해 허겁지겁 이유를 설명했다. 

“아니, 영영아 내가 어찌 너를 도둑년이라고 했느냐? 그냥 네가 배가 고파서 환병을 몇 개 꺼내먹은 것은 아닌가 궁금해서 물은 것인데···.” 

“그게 그 말이지 뭐에요! 저는 가가랑 약속한 거 지키려고 배고픈 것도 참았는데, 갑자기 급에서 뭘 꺼내먹었냐고 물으셨잖아요!” 

“노공, 정말 그리 물으셨나요?” 

“은공, 정말로?” 

“아, 아니 그게···.” 

뭔가 내가 너무했다는 느낌으로 둘이 물어오기에, 나는 벼랑 끝에 몰린 생쥐처럼 필사의 이유를 늘어놓아야 했다. 

이거 잘못하면 오늘 공공의 적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 

영영이가 맞더라도 내가 증거도 없이 의심했다는 상황이 알려지면, 나는 나쁜 놈 확정이니까 말이다. 

“아, 아니. 부인, 소소, 내 말 좀 들어보겠소.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래도 요리사다 보니 무게에 예민한데, 아까 오리랑 기러기를 매달고 보니 급에서 뭔가가 많이 빈 느낌이라서, 요즘 그 요리도 잘 못 챙겨주어 혹시 영영이가 좋아하는 환병을 빼먹은 것은 아닌가 싶어···.” 

“노공, 그래도 혹시 노공께서 착각하시거나 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영영 언니가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아내의 말에 셋이 고개를 끄덕이고, 영영이가 씨근거리며 물었다. 

“확인해봐요. 저는 정말 안 먹었으니까! 만약 가가가 틀리셨으면, 저를 서운하게 하셨으니까 보상해주셔야 해요!” 

세게 나오는 영영이. 

오함마를 가져다 두고 영영이와 내가 서로 쫄리면 뒈지는 상황. 

하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쫄리면 뒈지시든가 게임을 영영이와 이어간다면, 영영이의 치부를 들춘 나도 못난 놈이 되는 것. 

나는 미소를 지으며 영영이에게 사과했다. 

“영영아, 내가 잘못했구나, 우리 영영이를 이리 서운하게 하다니, 내가 반드시 보상해주마.” 

뭐 보상이면 맛있는 걸 해달라거나 하는 거겠거니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자, 영영이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뇨. 얼른 확인해봐요. 저 당가의 당영영. 가가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으니까요. 가가의 일방적인 사과는 안 돼요.” 

오늘따라 단호박 같은 녀석. 

녀석의 단호함에 밀려오는 불안감. 

‘정말 아닌가? 이거 오랜만에 몸 녀석 때문에 내가 착각한 거면. 영영이 앞에서 꼴이 우스운데? 가장으로서의 위엄과 체면이 이게 땅바닥에···.’ 

어쩔 수 없었다. 

지고 이기는 방법을 쓸 수밖에. 

“그, 그냥 내가 사과하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될까 영영아? 내가 다 잘못했구나.”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영영이의 턱짓. 

빨리 까보라는 날카로운 눈빛. 

“아, 알았다 영영아.” 

그렇게 결국 관도 한복판에서 내 급이 등에서 내려지고, 밑장을 까는 순간이 다가왔다. 

대나무 급을 가린 천이 화투장의 뒷면처럼 열리고, 말린 식재료들과 조미료를 일단 확인했다. 

혹시 샌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리고 다음으로 환병이 있는 칸을 확인했다. 

칸칸이 종이에 싸여 그대로인 환병. 

‘지, 진짜 다 있네? 이, 이거 큰일이구만. 그러면 대체 뭐가 빈 거지?’ 

당황함도 잠깐 나는 내 감각을 끝까지 믿어보려 급 제일 위에 귀중품이 있는 칸을 살폈다. 

여기는 영약 두 개와 아내가 내공을 썼을 때를 대비한 약왕의 비상약이 존재하는 공간. 

다른 것은 양이 적어 내가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기에 아내의 비상약이 있는 목함을 잡았다. 

그러자 뒤에서 내 어깨를 잡는 느낌과 동시에 아내가 영영이를 향해 물었다. 

“어, 언니. 노, 노공께서 잠시 오해하실 수도 있으니. 조, 조금 서운해도 이만 용서해 주시지요. 저희의 지아비이신데 혹 허물이 있어도 더, 덮어드려야 하지 아, 않겠습니까?” 

왠지 떨리고 더듬는 당황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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