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원 (220/344)

소원

.

미미는 갈대숲에 숨어 자기가 정실이 되면, 자기 머리통을 깬 이유로 반드시 두 번째 첩으로 만들리라 생각한 여자와 낭군님의 싸우는 소리를 엿듣는 중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개새끼와 화해(?)했기 때문. 

처음에는 근처에만 가도 짖어대는 개 때문에 그분께 접근할 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며칠 전부터 꽤 가까이 가도 개가 짖거나 덤벼들지 않았고, 선물을 두고 오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걸렸을 때 짖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설명했더니,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 후부터는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토끼를 주려고 찾아간 밤. 

멀찌감치서 상황을 지켜보는데, 자기를 찾아온 개. 

[아니, 씨.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잖아! 나 나쁜 사람 절대 아니거든? 도둑 같은 거 아니라니까? 이거 그래, 이, 이거 봐봐. 내가 이거 너희 주인 먹으라고, 두고 가려고 가져온 거야!] 

잡아 온 토끼를 흔들며 말하자, 자기의 설명에 머리를 갸웃거리며 잠시 고민하던 개가 슬그머니 다가와 미미가 내민 토끼의 냄새를 맡고는, 길을 열어주기라도 하듯 옆으로 물러난 모습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너, 호, 혹시 영물이니?] 

그 모습에 놀라 설마 알아들을까 싶어 묻자, 물음에 알아듣기로도 하듯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그, 그렇구나. 여, 영물이었구나. 그, 그럼 진작 이야기를 나눠볼걸. 나는 나쁜 사람 아니고, 저기 멋있는 분이 좋아서 말이지···. 아참. 너 좋아한다는 게 뭔 줄 아니? 헐···. 안다고? 아무튼 그래서 따라다니는 거야. 그러니까 가까이 가도 짖으면 안 돼 알았지?] 

그리고 현원 법사도 좋아하신 미미가 만든 육포를 상납하자 화해는 금방 이루어졌다. 

[저기 혹시. 너, 육포 좋아하니? 좋아하면 좀 줄 수 있는데···. 좋다고? 알았어! 잠깐만.] 

그런 이유로 이렇게 근처 갈대숲에 몸을 숨기고 엿들을 수 있게 되었던 것. 

지금도 자기가 있는 갈대숲을 슬쩍슬쩍 바라보는 것이,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있는 느낌. 

아마 바람이 그쪽으로 불어서 그런 것 같은데, 미미는 어제처럼 따로 육포라도 좀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좀 더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 

“미안하구나. 영영아. 내 잠시 오해한 모양이구나.” 

“그럼. 보상 꼭 해주셔야 해요?” 

“그래,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좋아요! 그럼 좀 전에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로 할게요.” 

그리고 둘의 대화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분노하는 이유가 고작 도둑으로 의심받은 이유라는 사실과 낭군님께서 그 보상으로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고작(?) 도둑으로 의심받았는데 소원을 들어준다고?’ 

도둑으로 의심받으면 속이야 상하겠지만, 아니면 그만일 일이었고, 그분이 그런 사소한 오해로 만약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시면, 미미니는 그냥 영원히 그분의 도둑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이유야 어쨌든 자신은 도둑이니 도둑이라는 의심을 받아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기 때문. 

‘하, 고작 도둑으로 의심받고 소원. 정말 부럽다. 나도 소원 들어주신다면, 바로 아내로 삼아달라 할 텐데···.’ 

미미는 이 순간 둘째 첩이 정말로 부러웠다. 

*** 

그날 밤. 

유난히도 달이 낮고 밝게 뜬 밤. 

‘오늘도 요리를 남겨주셨겠지?’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해서 남겨주셨을까 기대감에 부푼 미미는, 너구리 한 마리를 잡아 그분이 묵고 계신 폐가밖에 도착했다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낭군님의 일행이 일찌감치 폐가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는 것까지 멀리서 지켜봤고, 다들 이르게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모두 자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분의 정실인 아내가 잠에서 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물아. 영물···. 헉!] 

폐가 밖에서 너구리를 슬쩍 놓고 나오기 위해서 영물을 불렀는데, 나오라는 영물은 안 나오고 그분의 정실인 제갈가의 아가씨가 안에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 밖으로 걸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모습에 재빨리 갈대숲으로 몸을 날린 미미는 엎드려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부, 분명 제갈가의 아가씨라고 했지?’ 

지금까지는 그냥 서로 이름만 부르기에 여자들의 가문을 확실히 확인할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쟁쟁한 가문들. 

아까 낭군님과 둘째 첩과의 말다툼이 끝난 이후 공동파의 도사들이 몰려왔고, 그 공동파와의 대화 중에 흘러나왔던 말. 

제갈세가의 사위이자, 당문의 양아들이며, 남궁가 검봉의 정인이고, 공가 연성공의 의형제인 식룡 유청운. 

그 말로 그녀들의 가문을 이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멋있어···.’ 

뭐가 잔뜩 대단한 가문들을 거느리고 심지어 연성공의 의형제라는 분. 

정말 멋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도 들었다. 

나중에 쟁쟁한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저 눈앞의 정실은 이제 곧 떠날 분이고, 정실은 자신이 될 테니 상관없었다. 

정실의 견고한 위치는 유교를 섬기는 이 중원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 

연성공의 의형제라니 그런 문제는 확실하실 것이 분명했던 것. 

첩실들의 가문이 대단하거나 좀 귀엽다고 자신을 소홀히 대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알면 알수록 믿음이 가는 분이랄까? 

그렇게 아까의 일을 떠올리며 갑자기 나타난 정실의 모습에 놀라 있던 미미는, 뭔가 이 상한점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뭐지?’ 

여자의 표정이 너무도 숙연했기 때문이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런 여자의 처연한 표정에 느낌이 좋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너구리를 놓고 나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미미는 여자를 몰래 뒤쫓기로 했다. 

-사박. 사박. 

-쏴아아아아아. 

마침 바람이 은은하게 불고 있어 자신의 움직이는 소리를 감춰주기에 미미는 그녀와 최대한 가까이 붙었다. 

그렇게 몇 걸음 옮겼을까? 

여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폐가 바로 옆 갈대가 우거진 언덕. 

봄을 맞아 아직 새로운 갈대가 돋아나지 않아 겨울은 난 마른 갈대 언덕이었다. 

언덕에 도착한 여자가 잠시 달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때가 가까워져 오고 있구나···.” 

‘뭐지? 어느 때가 가깝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해 못 할 말을 한 여자가 영물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덕구야 가는 길에 인사라도 하고 떠나게 조용히 노공을 모셔 올 수 있겠니?” 

“월!” 

‘떠난다고? 어딜 갑자기 오밤중에 간다는···. 서, 설마!?’ 

여자의 떠난다는 말에 번쩍하고 떠오른 생각. 

저 여자의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옷도 제일 화려한 옷으로 차려입고, 몸도 깨끗하게 한 것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자신의 어머니도 병석에 오래 계셨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부탁해 머리를 다듬고 얼굴도 매만지고 떠나셨던 것이 떠올랐던 것. 

-두근두근두근. 

죄를 저지른 것도 도둑질하기 직전도 아닌데,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가슴. 

잠시 후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분이 나타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지 차려입은 여자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짓는 낭군님. 

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도저히 둘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 제기랄!’ 

그렇게 질끈 눈을 감자 들려오는 소리. 

“부인, 잠이 오지 않는 것이오? 옷은 어찌 갈아입은 것이오? 달빛 아래 선녀(仙女) 같은 모습이라, 날아가 버릴까 무섭소이다. 하하.” 

그분의 해맑은 목소리가 어쩐지 더욱 슬프게만 들렸다. 

그래, 그분의 말대로 그녀는 날아 가버리리라. 

천계가 아닌 저승으로. 

그렇게 그분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아련하게 메아리쳤다. 

이제 저 웃음은 절망이 되고 미소는 눈물이 되리라. 

괜히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를 지은 것 같고 움츠러드는 마음. 

미미는 속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미미야! 그냥 현원 법사님의 점대로 되는 것뿐이야 정신 차려! 네가 뭘 한 것도 아니잖아? 그녀의 운명일 뿐이야 네 잘못은 없어. 너는 상처받으실 낭군님만 생각하자.’ 

그렇게 미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갈대숲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이것이 그녀의 운명이라면 마음속으로 뭐든지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중원에서 가장 빠른 자신의 경공처럼.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마지막 고백과 낭군님의 절망.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었다. 

망할 늙은이에 의해서 단련된 그녀의 오감이 눈을 감았지만, 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너무나 슬픈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에 이슬이 맺힐 정도. 

그리고 영물이 그분의 명에 다른 여자들을 불러오고, 그분의 정실이 몰래 먹던 약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했을 때. 

“노, 노공. 죄, 죄송합니다. 커흑.” 

‘미, 미야. 미, 미안하구나. 커흑.’ 

자신을 두고 떠나시던 어머니의 마지막이 겹치듯 떠올라, 더욱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 

“괜찮으니 마, 말하지 마시오. 조금만 견디시오! 우리 갑시다! 북해빙궁의 장모님께 갑시다! 지금 당장!” 

‘어? 어디? 누구를 찾아간다고!?’ 

그분의 절망에 찬 목소리에 미미는 자신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둘을 살피고 있었다. 

분명 그분의 입에서 아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 

그리고 자신의 그런 놀라움을 다시 확인시켜주려 하듯, 그분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하셨다. 

“이대로 그, 그대를 떠나보낸다면, 결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구려. 영영아 나를 부축하거라. 난주로 난주에서 북쪽으로 그리고 북해빙궁까지 멈추지 말고 가자 꾸나···.” 

지금까지 겪었던 일이 차례로 떠오르고···. 

‘가서, 네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거라.’ 

‘내가 가장 잘하는 일 뭐지?’ 

‘셋에게는 미안하지만, 언니도 급해서 잠깐만 빌릴게. 한 오십 년만?’ 

‘저승에 가면 전 북해빙궁주인 이 빙설화가 보냈다고 하세요.’ 

‘어머 귀엽기도 해라. 내 딸아이도 이럴 나이일 것 같은데···’ 

‘나도 소원 들어주신다면, 바로 아내로 삼아달라 할 텐데.’ 

‘북해빙궁의 장모님께 갑시다!’ 

머리에 벼락처럼 떨어지는 충격과 떠오른 한 가지 생각. 

머릿속에 떠오른 사실이 주는 충격에 입이 벌어지고, 무릎을 꿇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달빛 사이로 떨어지는 별. 

‘아!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보물이 숨겨져 있는 비동의 위치를 알리는 장보도 조각들처럼 흩어져있던 말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맞춰져, 현원 법사님이 하셨던 말씀의 진실이 그간의 일로 완벽해져 떠올랐다. 

현원 법사님께서 하셨던 말씀. 

‘가서, 네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거라.’ 

잠시 착각했지만, 그녀가 할 일은 그분의 마음을 훔치는 하기 싫은 도둑질 따위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그녀가 할 일은 달리는 일. 

중원에서 가장 빠른 경공으로 그분의 정실을 숨이 끊어지기 전, 그녀의 어머니라 짐작되는 북해빙궁주에게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저 앞 아내를 끌어안은 낭군님의 눈썹이 얼어붙은 것으로 봐서는, 그녀는 북해빙궁의 것으로 보이는 극한의 음기를 가진 내공이 폭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 

그녀를 업고 달린다면, 극양의 양기를 가진 신풍을 쓰면 찾아오는 몸을 불태울 것 같은 뜨거운 열기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녀의 음기도 잦아들리라. 

그러면 그녀의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있든 멈추지 않고,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곳까지 찾아갈 수 있으리라. 

전 북해빙궁주는 분명 지붕 위에서 자신의 만리추종향을 확인하기 위해 만졌으니, 향이 남아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렇게 달려 그녀의 앞에 도착하면 미미가 바라던 소원이 완성될 것이 분명했다.

사소한 다툼에도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구한 자신이 소원으로 거둬달라는 부탁을 한다면 절대 거절할 리가 없었던 것. 

더군다나 정실이니 첩이니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그분께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미미는 그분을 쫓기로 시작한 후 처음으로 용기를 내 앞으로 나섰다. 

“자, 잠깐 만요!” 

신풍(迅風)을 펼치기 위한 내공이 미미의 몸속에서 뜨겁게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