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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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설화 자신은 이십 년간 혹한의 땅에서 모은 냉기로 반쪽의 빙정(氷精)을 다시 완벽한 하나의 크기로 키우는 데 성공한 것이 고작이었는데, 딸아이 안에 자리 잡은 빙정은 이미 완벽한 빙정의 세 배나 되는 크기.
자신보다 이전 북해빙궁주인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조화경(造化境)의 경지에 근접하는 크기였다.
분명 자신이 키운 빙정의 세배 정도 되는 크기면 조화경에 오를 수 있다고 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어찌 중원에서···.”
자신도 혹한의 북해(北海) 땅에서도 빙정을 다시 원래 크기로 키우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딸은 어째서인지 보다 따듯한 중원에서 그것을 세배로 키운 상태.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몸이 아마도 이렇게 된 것은 그 빙정의 기운이 전신에 고르게 퍼져나가지 못하고, 단전에서 커질 대로 커진 것이 원인인 것이 분명했다.
거대해진 빙정의 기운이 신공의 구결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고, 전신에 퍼진 기운이 몸을 변화시켜야 했는데, 단전에만 뭉쳐있으니.
거대해지기만 한 기운이 변화하지 못한 아이를 안에서부터 망가트리고 있었던 것.
아이가 깨어 있다면 빙백신공(氷白神功)의 구결을 알려주어 입문만 시켜주어도 간단히 해결될 일이긴 했지만, 아이가 혼절한 상태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저 거대한 빙정의 기운을 딸의 혈도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니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넣어둔 것인데, 도리어 아이를 죽이는 일이 될 줄이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니 청아?’
안타까움도 잠깐.
어서 아이를 안고 안전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빙백신공을 아이에게 완벽히 전수해줘야 했다.
폭주하는 냉기를 보아서는 말미가 촉박했던 것.
‘서둘러야겠어요.’
아이의 상태를 파악했으니, 이제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때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익
기이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쓰러진 여자의 팔, 다리, 머리에서 솟아오르는 김.
딸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과 반응해, 여자의 몸에서 뿌연 안개가 몽글몽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극양의 기운인가?”
그제야 딸아이의 상태가 이해되었다.
빙정의 기운이 이정도로 폭주했다면, 벌써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아직 딸이 숨을 붙들고 있는 이유.
분명 빅뱅신공은 냉기에 근원 하기는 하지만, 추울 때는 몸을 따듯하게, 따듯할 때는 몸을 차갑게 하는 기운.
쓰러진 여자아이가 따듯한 봄을 맞아 폭주한 기운을 극양의 기운을 뿜어내는 자신의 내공으로 억누르며, 희주에서부터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그, 먼 거리를 쉬지 않고···.’
자신의 작은 도움을 딸아이의 목숨을 살리는 큰 은혜로 갚을 줄이야···.
빙설화는 재빨리 그녀의 단전에 침투한 냉기를 빨아들이고, 불타오를 것같은 그녀의 몸 주변을 냉기로 뒤덮었다.
“내공이 고갈되어 그런 것 같으니, 곧 괜찮아질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이를 살피고 곧바로 오겠습니다.”
그렇게 동굴로 딸인 청이를 안고 들어간 빙설화는 무너지는 청이를 등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빙백신공의 구결대로 내공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주한 빙정의 기운을 억누르며 찢겨나갈 것같은 딸아이의 혈도를 통해서···.
***
-똑.
-똑. 똑.
-콰드득. 콰직.
떨어지는 물방울이 고드름으로 바뀌고, 동굴 안에서부터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동굴은 이제 한기를 내뿜는 빙굴(氷窟)이 된 상태.
혹한의 겨울에 북에서부터 불어오는 기운보다 더 강한 냉기의 기운이 동굴 주변을 순식간에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봄을 맞아 아침 일찍 일어나 벌레를 찾던 새들도, 근처를 지나가던 다람쥐들도, 뿜어지는 냉기에 기겁하고 동굴 입구에서 멀리멀리 도망쳤다.
그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동굴 안에서 눈을 뜬 청.
‘여, 여긴?’
분명 고통 속에서 노공께 자신을 보내지 말고, 품에서 숨을 거둘 수 있게 해달라 부탁했는데, 아직은 살아있는 느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주변 상태를 파악하려 했지만,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조용히 들려왔다.
“깨어났으면 당황하지 말고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누, 누구지? 설마?’
십구 년 동안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목소리일까?
청이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청이의 마음이 흔들리자 기운을 인도하는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에 찬 외침.
“끄흑. 집중해야 해요. 제발.”
얼어붙은 동굴이 울리며 여자의 목소리가 청이의 귓가를 울렸다.
그 목소리에 여기가 어딘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다만 자기와 여자 둘 다 위험한 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정신을 집중하자 자기의 몸 안에 날뛰던 기운이 얌전히 가라앉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
아마도 여자가 혼절한 자신의 기운을 억지로 인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신이 깨어 있었다면 구결을 일러주는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지만, 몸 안에 날뛰는 기운을 강제로 제압해 자신의 인도대로 따르게 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잘못하면 기운을 인도하는 여자의 기운과 자기 기운의 충돌로 인해 둘 다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이미 둘의 기운이 청의 몸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한 번의 대주천이 끝날 때 까지는 그녀의 말을 따라야 했다.
“몸을 움직이지 말고,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위험한 곳이 아니니. 제가 인도하는 흐름을 따라 내공을 움직이세요.”
일단 다른 생각은 다 접고 여자의 말을 따라 기운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금 눈을 감고 기운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차갑지만 왠지 그립고 따듯한 느낌의 기운.
자기의 몸 안에 날뛰던 기운도 처음 가는 길이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운이 몸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출발점이 되는 순간.
-화아악.
전신으로 녹아내리듯 흩어지는 기운들.
그리고 그 기운들이 다시 천천히 단전에 모여들어 하나의 모양을 이루기 시작했다.
심상(心想)에 비치는 것은 반짝이는 기이한 모양.
그것은 마치 겨울에 노공께서 보여주셨던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 결정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미 한번 지나왔던 길을 따라 기운들이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거칠게 내달리는 기운에 깜짝 놀라 기운을 누르려고 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그냥 그대로 두세요. 마음대로 뻗도록.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혹한에 강물이 얼어붙어 나가듯, 하늘에서 날리는 눈발이 강해지듯, 겨울에 부는 거친 바람이 기세를 더하듯. 몸 안에서 기운들이 뻗어나가는 대로 두세요. 그것이 빙백신공의 무리(武理). 냉기는 뻗는 대로 두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겨울이 찾아오듯.”
들려오는 말대로 억지로 붙들었던 기운을 놓아버리자, 곧바로 기운들이 한 번도 간 적 없는 곳으로 이미 달렸던 길이 아닌 곳으로 사정없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뻗어나갈 때는 손끝에 전율이 일고, 발끝으로 뻗어나갈 때는 발끝에서 번개가 쳤다.
그리고 그 기운이 목을 지나 머리로 빠져나가 뭔가를 열어젖힌 순간.
머릿속이 하얀 눈 속처럼 새하얗게 물들고,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청아 내 딸. 십구 년간 꿈에도 그리던 너를, 이리 이 어미의 손으로 두 번이나 태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니. 감격스럽구나. 다시 태어난 것을 축하해요. 내 딸.”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청이의 정신이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내리듯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청이의 입에서 환희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
“헉···. 헉···.”
남겨진 만리추종향의 향을 쫓아 닷새.
나를 업은 영영이 등에서 진한 땀 냄새와 함께 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의 소소도 이제는 지치는지 거의 쓰러지기 직전인 상태.
사흘 동안 자지도 먹지도 않고 달려오다가 내가 혼절하자, 영영이와 소소가 번갈아 가며 나를 업은 채 경공을 시전하고 있었으니, 나보다 둘의 피로가 더욱 심했다.
“잠깐 쉬어 가자꾸나 영영아!”
-털썩. 털썩.
내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소소와 영영이가 그대로 주저앉았고, 우릴 뒤따르던 덕구도 우리 옆에서 그대로 널브러졌다.
“헥헥헥헥헥.”
혀를 길게 빼고 지친 덕구의 모습.
셋을 그대로 두고 호리병을 하나 가지고 주변을 살폈다.
물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 더 살피자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졸졸졸.
“다행이구나! 마침 개울이 있는 모양이야!”
반가운 목소리로 외치며 물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뛰었다.
산속의 외진 곳이라서 개울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침 발견한 개울가, 둘에게 먹이기 위해서 목마른 것도 참고 한참 물을 뜨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살피자, 얼어붙은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고, 뭔가에 홀리듯 내 발걸음이 개울 너머로 향했다.
-철벙, 첨벙.
허겁지겁 개울을 넘어 얕은 둔덕을 오르자, 저 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동굴의 새하얀 입구.
입구가 완전히 새하얀 얼음으로 얼어붙어 마치 거울처럼 반짝이는 동굴의 입구가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건!?”
북해빙궁의 무공으로 인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느낌.
“여기인가!?”
얼른 달려가 놀란 목소리로 얼음 안쪽을 살폈지만, 불투명한 얼음 안쪽을 확인할 수는 없었고, 일단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기에 소소와 영영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그렇게 뒤로 돌아 달려 나가려는데, 동굴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쓰러져있는 백미미.
이곳으로 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는지 그녀는 아주 처참한 모습이었다.
팔다리의 옷은 반쯤 타서 없어진 상태였고, 잠행복은 흠뻑 젖어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상태.
입에 물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빼 가지런히 해주고, 얼른 내 옷을 벗어 그녀를 덮어주며 그녀를 살폈다.
“이보시오 괜찮소? 투왕. 괜찮소이까?”
코끝에 손을 대자 느껴지는 숨결.
일단 소소와 영영이를 얼른 데려오기로 했다.
아무래도 여자를 돌보는 것은 나보다 둘이 나을 테니까.
-첨벙첨벙.
다시 개울을 가로질러 되돌아가자 기운을 차린 덕구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내력을 회복하려고 소소와 영영이가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눈을 뜬 둘.
둘에게 얼른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한 사실을 알렸다.
“영영아! 도, 도착한 것 같구나! 저 앞에 투왕이 쓰러져있더구나!”
“저, 정말요!?”
내 말에 벌떡 일어난 영영이가 자기 혼자 경공을 펼쳐 내가 손가락질 한 방향으로 뛰어가 버리고, 소소가 매고 왔던 네 개의 급을 얼른 들쳐메고 재촉했다.
“은공, 어서 가봐요!”
그렇게 소소와 개울물을 건너 동굴 앞에 도착하자, 동굴 입구에 멈춰 서 있는 영영이.
영영이가 나처럼 얼음을 문지르며 안을 살피다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 이 안에 있는 건가요? 가가?”
“그런 것 같은데, 일단 물러나 있자꾸나. 너무 소란스러우면, 안될 것 같으니.”
“알겠어요. 가가.”
일단 영영이의 손을 잡아끌고 투왕 있는 곳으로 물러나 그녀부터 살피기로 했다.
안에서 심법이라도 운용하고 있으면 방해가 될지도 모르고, 아내가 정말 환골탈태한다면 그것은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과정.
외부에서 어떤 충격이나 잡음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
그건 무린이도 알 수 있는 무림 기초 상식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물러나 투왕 미미란 여자를 돌보기로 했다.
언제 도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히 탈진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
“우리 때문에, 이분이 모진 고초를 겪으셨구나.”
“손발의 옷이 다 타버렸어요. 은공.”
“일단 몸이 젖었으니 마른 갈대 위에 누이고, 불을 피웁시다. 소소 갈대를 좀 베어와 주겠소? 덕구야 힘들겠지만, 나뭇가지를 좀 물어다 주거라.”
소소가 물가에서 잘라 온 마른 갈대 위에 백미미를 눕히고, 덕구가 물어온 마른 장작으로 불을 지폈다.
그리고 영영이가 천에 물을 적셔 여자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한참 여자를 돌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콰직. 우르르.
깜짝 놀라 그쪽을 다 같이 살피자, 동굴을 막았던 얼음 한쪽이 부서지며 사람 하나가 걸어 나왔다.
희주 뒷골목에서 내가 도움을 줬던 여인.
그 여자가 걸어 나왔던 것.
내 장모님.
바로 그분이셨다.
얼른 달려가 계수배를 올리며 인사했다.
“장모(太水 태수)님. 사위 류청운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쳐들자 들려오는 당황한 목소리.
“응? 다, 당신은? 설마 당신이 내 사위 그러니까···. 청의 남자라고요!?”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와 면사를 걷다가 내 인사에 화들짝 놀라는 장모님.
면사 뒤에 드러난 얼굴은 역시나 연예인들이 밭을 갈고 김을 맨다는 그곳 분이라 그런지 대단한 미인.
아내의 엄마라기보다는 언니 정도로 보일 분이셨는데, 그녀가 이마를 짚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백미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