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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 청 MK II. (225/344)

제갈 청 MK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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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동굴 쪽으로 긴장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무너져내린 얼음들을 피해 조금씩. 

-저벅. 저벅.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 

장모님이 하셨던 말씀이 묘하게 머릿속에 남아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사위가 우리 청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아마 저 동굴 안에는 아마도 지금까지, 사위님이 알던 것과 다른 청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과 다른 아내라니. 뭘까? 다시 찐빵이 된 것일까? 아니면 냉기 풀풀 날리는 차도녀?’ 

예전처럼 모르는 사이에 혼례를 올리는 것도 아니고, 아내와 나는 이제 한 몸. 

찐빵은 이제 큰 흠이 되지 못했다. 

찐빵이 아니라 팔다리가 없거나 거동을 못 한다 해도 그건 내 아내니까. 

그리고 전생 무협에 보면 신공을 익히면 성격도 변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하는데, 아내가 빙공으로 인해서 성격이 바뀐다면 그건 아마도 차도녀. 

‘음···. 차도녀는···. 그건 업계포상 아닐까?’ 

‘흐응. 저, 절대로 노공이 좋아서 안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덕구 같은 지, 짐승도 아끼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업계포상이었다. 

쌀쌀맞은 아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들과 다가올 진실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어두운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은 그리 깊은 동굴은 아니고 십여 미터 깊이의 깊지 않은 그런 동굴이었는데, 입구의 얼음들을 넘어 안쪽으로 조금 발걸음을 옮기자, 저 동굴 제일 안쪽에서 뭔가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 청?”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부르자, 움찔하는 형체. 

동굴 벽을 울리며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오지 마세요!” 

그리고 아내가 다람쥐처럼 민첩하게 좀 더 동굴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이내 막다른 동굴 끝에 다다라 어쩔 줄 몰라 해야 했지만. 

그런 아내의 목소리와 행동에 멈추는 발걸음.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를 향해 물었다. 

“어, 어째서 그러시오? 청.” 

그러자 도망치듯 동굴 제일 안쪽 벽으로 물러났던 아내가 석주 뒤에 숨어 아주 슬프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이런 모습을 노공께 보일 수는 없어요···. 조, 좀 전에 얼음에 모습을 비추어 보았는데···. 그게 그러니까···.” 

아내의 목소리로 보아 정신에 대한 문제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외모에 크게 문제가 생긴 느낌. 

그러나 혼례를 올릴 때 같이 서로 간에 마음을 나누지도 못한 생면부지 남이면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내가 외모 따위로 아내에게 실망하거나 할 쓰레기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같이 보낸 시간이 있지 않은가? 

일단 아내가 두려워하는 듯하기에 제자리에서 멈춰서 아내를 향해 물었다. 

“청, 혹시 코가 없어졌습니까?” 

“예!?” 

내 물음에 화들짝 놀라는 아내. 

잠시 후 동굴 안쪽에서 조용히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 아뇨···.” 

쭈뼛거리는 목소리.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눈이 하나 없어졌습니까?” 

“아, 아뇨···.” 

“그러면 귀나, 입이나 팔이나 다리가 혹시 없어졌습니까?” 

“아, 아뇨 다 있어요! 하, 하지만···.” 

‘다 있구만.’ 

아내의 말을 자르며 이야기했다. 

괜히 더 이야기를 나눠 봐야 혼자 구멍을 파고들어 갈 것 같으니까. 

“그럼 괜찮습니다. 그리고 청, 내 얼마나 걱정한 줄 아시오? 왜 몸이 아픈 것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소?” 

“저, 그, 그건···.” 

“서운하군요. 아니, 혼이 나야 하려나?” 

“예!?” 

서운하다고 혼이 나야 한다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아내. 

내가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이 충격을 받았는지, 아내가 동굴 안쪽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우리 사이에 비밀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거늘. 나에게 아픈 것도 숨기고···. 지금도 제가 청의 모습에 실망할 거로 생각하니, 어찌 서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편인 나에게 비밀을 숨기고, 하마터면 큰일이 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혼은 나중에 밤에 단둘이 있을 때 신음이 날 때까지 엄하게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안 된다고 해도 아주 그냥 단호하게!’ 

그러자 안쪽에서 아내가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흑···. 죄, 죄송해요. 노공···. 하, 하지만 너무 흉한 모습이 되어서는···. 노공을 실망하게 할까···. 아니 그게 아니고···.” 

뭔가가 무척 혼란스러운 느낌. 

다시 한번 다정하게 대답했다. 

“자, 인제 그만 이쪽으로 나오시오. 내 그대가 어떤 모습이라도 이전과 변치 않게 사랑할 테니.” 

그러자 잠시 후 안쪽에서 들려오는 쭈뼛거리는 목소리. 

“저, 정말로요?” 

입술에 침을 살짝 바르고 대답했다. 

잘 모르는 찐빵일 때는 내가 아무래도 조금 그런 마음이었기에. 

“당연하지 않겠소! 내 그대가 불치병에 걸려 찐빵. 아니, 모습이 지금과 다를 때도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했거늘. 어찌 나를 의심한단 말이오. 자 얼른 나오시오. 괜찮으니까.” 

그러자 석주 뒤에 숨어 얼굴 반쪽만 그림자로 보여주던 아내가 천천히 몸을 밖으로 빼고, 쭈뼛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천천히 드러나는 아내의 윤곽. 

동굴 입구에서부터 밀려 들어온 빛에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는 아내의 모습이, 화가가 색을 칠한 것처럼 자기 색을 찾기 시작했다. 

드러나는 그녀의 발끝부터 무릎, 허리, 가슴,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 하관이 빛을 받아 생기를 머금었다. 

‘뭐가 흉하다는 것이지?’ 

전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 

피부가 고와진 것이라면 그것이 변한 모습일까? 

하관도 저러면 눈과 코가 평타만 쳐도 마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아내가 용기를 낼 수 있게 손을 내밀자, 그녀가 멈칫하며 내 손을 잡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마치 아기의 피부 같은 부드러운 감각. 

환골탈태(換骨奪胎)하면 피부도 고와지고 모습도 신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상태가 된다고 했는데, 아마 그렇게 변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아내의 손을 천천히 잡아끌자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고, 아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주변이 조명을 켠 듯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다. 

-화악. 

‘응? 은빛?’ 

그 모습에 아내를 그늘진 곳에서 빛이 닿는 곳으로 바짝 끌어당겨 품에 안자, 아내를 따라와 물결치는 은빛 물결. 

“윽. 노, 노공.” 

아내의 부끄럽다는 음성과 함께 부끄러워한 원인이 그제야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부끄러워한 원인은 그 무엇도 아닌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썹과 머리카락. 

아내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은색이 되어있었던 것. 

“아!”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의 감상과는 다르게 살짝 움츠러드는 아내. 

아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파르르 떨었다. 

“윽···.” 

혹시 내가 놀랐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전혀 아니었다. 

아니 놀란 건 맞았지만, 이건 다른 놀라움이니까. 

‘이것은 깜짝 파티인가? 사위를 위한 장모의 배려인가? 이래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나?’ 

첫날밤이 늦은 보상을 장모님이 과하게 추가한 느낌. 

장모님의 은혜가 장강(長江)의 물결처럼 흘러넘쳤다. 

이제 나는 십자 형님도 만자 형님도 아닌, 장모님을 섬기리라! 

괜히 마음을 졸이고 걱정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은, 눈앞에 있는 이 생명체의 이름은, 그러니까 명명하자면. 

제갈청 MK. II(마크 투). 

이전의 제갈청이 노멀 제갈청 MK. I(마크 원) 이었다면, 지금 제갈청은 제갈청 MK. II(마크 투) 남편 심즉살(心卽殺) 업그레이드 버전. 

이전의 아내가 판타지에서 엘프를 건져내 머리에 춘장을 살짝 발라둔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아내는 북유럽 숲속의 이슬 머금은 엘프 그 자체. 

중원화가 모두 사라진 아내는 한 떨기 백합이요 절벽의 꽃.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아, 아름답소!” 

그렇게 내가 감탄하자, 아내가 부릅뜬 눈으로 물었다. 

“저, 정말? 이, 이렇게 노파 같은 모습인데요?” 

원래 자고로 북해빙궁의 여궁주와 그 핏줄이라고 하면 은발이 국룰. 

장인의 중원 혈통으로 인해 아쉽게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환골탈태하고 나니 아내가 자기의 본모습을 찾은 모양이었다. 

원래 환골탈태란 자기 신체가 생전 가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 

아내가 익힌 무공이 지금 저 모습이 아내에게 가장 완벽한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무공 녀석. 뭘 좀 아는 놈일세.’ 

아내를 꼭 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로. 내 가슴이 이렇게 뛰지 않소이까.] 

그러자 아내가 내 품속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더니, 나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나를 확 하고 끌어안으며 외쳤다. 

“내, 야서(野鼠)!” 

아내의 품에서부터 나는 좋은 향과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우드득. 

들려오는 우드득. 

‘우드득?’ 

“커흡!” 

“괘, 괜찮으신가요 노공!?” 

예쁘긴 한데 아내는 환골탈태 후 약간의 힘 조절 기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원래 환골탈태 후 바뀐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 며칠 정도 살짝 필요한 법이니까···. 

익숙한 고통이었다. 

*** 

갈비가 잠깐 놀라는 사고가 있었지만, 예전처럼 며칠이나 요양을 원하는 큰 부상은 아니었다. 

잠깐 놀란 것뿐. 

우드득 소리에 아내가 순간 힘을 빼자 근육만 살짝 놀란 상태가 되었으니까. 

아마도 현재 조금 어색해도 힘 조절이 예전보다 좋아져 그런 모양. 

이제 부지불식간에 사망할 위험도는 줄어든 듯했다. 

“자 나갑시다. 이제. 장모님이 걱정하시겠소.” 

“예, 노공.” 

그리고 장모님께 우리 사이는 변함없다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아내를 공주님 안기로 안고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 

“청아! 괜찮은 거야!?” 

“청! 괜찮은 가요!?” 

“미, 미안해요. 두 분.” 

영영이와 소소가 달려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본 장모님이 놀란 얼굴로 물으셨다. 

“사, 사위님 괘, 괜찮습니까?” 

나는 걱정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걱정한 모양인데, 우리가 다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니 놀란 얼굴. 

아마 내가 은발의 매력을 잘 모를 거라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예? 아, 은발(銀髮) 때문이라면 아주 예뻐서 마음에 듭니다.” 

“예!? 저, 정말로요?” 

“물론입니다.” 

내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장모님이, 머리부터 뒤집어써 눈썹까지 가린 두건 같은 것을 벗었고, 그러자 드러나는 장모님의 은발. 

아, 이거 갑자기 눈이 호강하고 있었다. 

아내와 똑같은 장모님의 은발. 

둘이 같이 서면 자매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중원인이 우리 머리를 보고 은발이라고 칭하다니. 사위 생각보다 안목이 있군요? 중원인들은 백발(白髮)이라 말하며 요녀니, 요괴니 그러는 놈들도 있어서요.” 

하긴 아내의 흰 피부를 창백하다고 하는 놈들도 있으니, 장모님의 말씀이나 우려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했다. 

대충 중원인들 눈에는 이게 은발이 아니라 백발(白髮) 정도로 보일 테니, 아마 그런 면에서 걱정하셨을 모양. 

하지만 나는 결코 이런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남자. 

다시 한번 장모님을 향해 감사를 드렸다. 

“장모님, 아내를 이리 어여쁜 모습으로 낳아주셔 감사합니다.” 

“어머···.” 

내 감사에 장모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장모님에 대한 공식 사위 인증식이 끝나고, 잠시 후 아내는 다시 장모님과 동굴로 들어가야 했다. 

십구 년 아내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들을 장모님과 나누고 싶을 것 같기에 조용한 장소를 권한 것. 

장모님이 왜 아내를 버리고 북해로 가야 했으며, 왜 아내를 만나러 오지 못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모님도 아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자기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같은 것들을 듣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본가에서 마교 출신인 어머니를 만났을 때도 우리 사이에 많은 대화가 필요했으니.

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 

우리도 궁금한 것은 많지만, 일단 모녀 사이에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을 테니, 둘은 안쪽으로 들여보낸 것. 

우리는 그 틈에 나무를 주워 와 모닥불을 키우고, 식사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으니, 뭔가를 먹어야 했으니까. 

“영영아, 배고프면 급에서 환병을 꺼내 먹거라.” 

“정말요!?” 

“그럼. 며칠 고생하지 않았느냐. 음식이 준비될 때 동안 소소와 그것이라도 먹고 있거라.” 

“알겠어요. 가가!” 

바이칼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급을 열어 영영이에게 환병을 마음껏 먹으라 허락했으며, 급 안에 들어있던 재료들을 꺼내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뭐 그래봐야 말린 고기와 말린 채소, 쌀로 끓이는 죽 정도이지만. 

그렇게 모닥불 주변에 돌을 궤고, 웍을 올려 죽을 끓이고 있을 때였다. 

영영이와 소소 뒤쪽에서 나직한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응···. 아이고···. 뒈질 것 같아···.” 

여자치고는 거친 말투였지만, 우리도 익히 아는 사람의 목소리. 

아내를 살리는데, 최대 공헌을 한 그녀의 목소리. 

아마도 혼절했던 투왕이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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