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윤회(輪回) (226/344)

윤회(輪回)

.

동굴에 들어선 청이는 어머니의 첫 물음에 곧바로 조금 서운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십 년간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가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닌 노공에 대한 것을 먼저 물어오셨기 때문.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무엇을 물을까? 

무슨 이야기를 물어오실까? 

한껏 기대했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서운했던 것.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혹 아버지에 대한 것을 물어오시리라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으나, 어머니가 물어오신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노공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가, 이 어미가 조금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런데 물어도 되겠나요?” 

“예? 궁금한 것이요? 예, 물론입니다. 어머니.” 

“우리 사위님 말이에요. 아가.” 

“노공, 말씀입니까?” 

“그래요. 우리 사위님.” 

하지만 자신과 평생 함께할 노공의 이야기니, 청도 서운한 마음을 내려두고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했다. 

자신이 쓰러지기 전 노공께서 평생 함께하자 손을 잡아주셨던 것이 기억나 살짝 부끄러워 볼을 붉히면서. 

“어, 어떤 것이 궁금하신지요? 어머니.” 

“내 잠깐 네가 환골탈태를 이루는 동안, 밖에서 사위님과 그리고 다른 소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더구나. 아니, 좋은 사람 같더구나.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의인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도울 때마다 부인이 생기는 느낌이라···.” 

청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한번 언제 노공을 마음에 두게 되었는지 여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영영 언니도 백부님을 구해주는 모습에 노공을 마음에 두게 되었다고 했고, 소소 언니도 환관 옷을 입고 모욕을 감내하면서 약속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격했다고 했으니까. 

어찌 보면 어머니의 말씀이 틀린 말씀이 아닌 것. 

자신도 자신을 위해 아버지 앞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에 감격했지 않은가. 

그렇게 치면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부인이 하나씩 생긴 것이 맞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구나.’ 

청은 어머니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했다. 

이걸 대체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대답이 애매했으니까 말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잘 모르겠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아! 맞다 현원 법사님!’ 

그렇게 잠시 대답을 고민하던 청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현원 법사. 

현원 법사께서 노공이 여난(女難)에 시달리는 삶을 타고 태어났다고 하셨다는 말씀이 떠올랐던 것. 

그러니까 노공 잘못은 없고, 다 그냥 어쩔 수 없이 그분의 사주(四柱)가 그렇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지금까지는 몰라서 대응하지 못했기에 일어났던 일지만, 이제 셋이서 철저하게 막아낼 테니 더 늘어날 일은 없을 것이고. 

그렇기에 청이는 현원 법사의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주기로 했다. 

“아! 어머니 혹시 현원 법사님을 아십니까?” 

“물론 알지요. 이십 년 전에도 도움을 받았는데요. 아주 고마운 분이에요.” 

역시나 알고 계신 어머니, 그러면 이야기가 잘 될 것 같았다. 

“아, 그렇군요. 그분이 이제 법력이 높아지셔서, 가끔 사람들의 점을 봐주시곤 하시는데, 아무나 봐주시지 않고, 또 봐주시면 아주 틀림이 없는 것으로 이름이 높으십니다.” 

“그런데요?”“그런데 그 현원 법사님이 노공의 점을 봐주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데요. 여난(女難)의 상이라고···.” 

“예!?” 

청이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어머니. 

청이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 전 까지는 제가 그 사실을 몰라 노공의 운명(運命)에 대처하지 못했지만, 이제 저희 셋이 알고 있어 접근하는 여자들을 막아낼 테니. 더는 늘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혹 그런 이유로 걱정되어서 물어보신 것이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빠진 어머니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셨다. 

“그, 그러면 제 탓은 아니군요. 응 그래. 내 잘못이 아니었어···. 다행이야···.” 

“예?” 

“아, 아니에요! 그나저나 우리 아기 어미가 손을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얼버무리는 느낌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잡아 오시는 어머니. 

청이는 아까 뒤에서 자기를 끌어안았던 어머니의 온기를 다시금 손에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어, 어머니. 보, 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내 딸” 

그리고 이를 품에 안고 등을 두드리는 어머니의 입에서 조그마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운명이 대처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구나 청아.] 

*** 

“투왕, 괜찮으십니까?” 

얼른 달려가 그녀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자 다시금 들려오는 신음. 

“끄으으···.” 

그렇게 신음과 함께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려던 투왕은, 그대로 다시 갈대 더미 속으로 파묻혔다. 

투왕이 팔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해 보았지만, 마치 팔이 따로 노는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 

팔다리의 옷이 다 타버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는, 무리한 내공 운영으로 팔다리 근육이 전부 풀린 느낌이었는데, 아마 아내를 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며칠을 달렸을 테니, 그 반동 때문에 그리된 듯싶었다. 

“괜찮으세요. 투왕?” 

“괜찮으신가요? 팔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으십니까?” 

영영이와 소소가 양쪽에서 그녀를 부축해 상체를 들 수 있게 돕기에, 얼른 대접에 물을 따라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자, 이 물을 좀 드셔보시오. 입술이 마른 것으로 보아, 목이 마를 것 같아 가져왔소이다.” 

-벌컥. 벌컥. 

그러자 목이 말랐는지, 대답도 하지 않고 내가 내미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투왕. 

대접의 물을 모두 들이키고 나서야 투왕은 긴 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후우···. 가, 감사합니다.” 

“감사라니요. 감사는 저희가 드려야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투왕. 제 아내의 목숨을 살렸으니 투왕께서는 제 평생의 은인입니다.” 

내 말에 그녀가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펴, 평생? 여, 역시···. 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 했을 뿐입니다. 꺄윽···.” 

“괘, 괜찮으십니까?” 

다시금 내뱉는 신음에 깜짝 놀라 물었지만, 괜찮을 거라는 대답. 

“아야야야···. 네, 아마도. 며칠 지나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정성을 다해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 

“네, 가, 감사해요.” 

“잠시만 계시면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며칠간 드신 것도 없으실 테지요?” 

“예? 예. 아, 알겠어요.” 

그녀에게 몸은 우리가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그녀도 먹은 것이 없을 듯해 다시금 죽을 살폈다. 

-보글보글 

거창한 요리는 만들 수 없어 쌀과 말린 채소, 육포 정도를 넣고 만든 죽. 

소금으로 간을 하고 눌어붙지 않게 다시금 저어 주고 있자, 배꼽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나도 며칠간 거의 먹지도 못하고 선잠을 자며 달려온 상태. 

얼른 뭔가를 먹고 푹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소소 이 국자로 죽을 좀 저어 주시겠소? 내 동굴 쪽으로 잠깐 다녀와 보리다. 다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알겠어요. 은공.” 

둘이 동굴 쪽으로 향하고 한 시진 반쯤, 약 세 시간이 지난 시간. 

산속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지는 모양인지, 아직 저녁 먹을 시간은 좀 일러도 해가 지기 전에 식사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에 장모님과 아내를 부르러 가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야 밤을 새워서 해도 부족할 테지만, 아내도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동굴 쪽으로 다가가자 들려오는 목소리. 

“그렇군요.” 

“그래, 아가. 해서 이리된 것이란다.” 

“어머니, 저는 아가라고 하기에는 그것이···.” 

“아참. 너와 헤어질 때가 젖먹이일 때다 보니 그만···.” 

생각보다 서로 간에 이야기가 잘되고 있는 느낌. 

어릴 때 헤어지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등에 상처로 남을 수가 있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둘 사이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었다. 

안심하는 마음으로 동굴 쪽으로 좀 더 다가가다가, 발치에 걸린 얼음 조각이 발에 차여 소리를 내자 안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아, 부인 나요. 배가 고플 것 같아서 죽을 준비했는데, 밀린 이야기는 식사부터 하고 나서 하는 것이 어떻겠소? 장모님도 식사부터 하시지요.” 

“아, 알겠습니다. 노공. 어, 어머니 가시지요.” 

“그래, 아가. 아니, 청아.” 

아직까지 서로 부르는 호칭이 어색한 느낌. 

장모님이야 이십 년 만에 만난 젖먹이 딸이 갑자기 훌쩍 자라 혼례까지 올린 상태이니 어색할 테고, 아내야 엄마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니 어색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뭐 시간은 많으니까 서로 익숙해질 터. 

미소를 지으며 둘을 모닥불로 안내했다. 

그리고 조금 이른 식사를 시작했다.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따듯한 채소 고기죽. 

참기름까지 살짝 뿌려 고소한 향이 솟아오르는 죽을 각자 하나 가득 그릇에 담아 분배했다. 

그리고 고생한 덕구에게도 한가득. 

“덕구도 고생했으니 많이 먹거라.” 

“월!” 

그렇게 시작된 식사. 

식사하며 장모님께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아내도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나도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기 때문. 

어째서 중원으로 오시게 되었는지 같은. 

진짜 시기적절하게 나타나셔서 아내가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째서 혼자 중원으로 오셨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십 년 전 한 번 험한 일을 겪으시기도 했고, 투왕의 말로 확인한 장모님의 신분이 북해빙궁주라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 높은 분이 혼자 이곳에 나타난 것이 궁금했기 때문.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들려온 답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해서 이제 중원에서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 

“그럼 완전히 중원에 자리를 잡으실 것이란 말씀입니까?” 

“예, 동생에게 궁주를 넘겨주고, 내 딸과 살고 싶어 말이에요. 이제 이곳에서 살다 한 남자의 아내로 죽으려 합니다.” 

나에게 충격적 대답을 한 장모님이 아내의 한 손을 잡고는 눈을 맞추며 웃으셨다. 

나는 장모님이 잠깐 중원에 아내를 보러 오신 것으로 생각했는데, 장모님은 북해빙궁주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아예 중원으로 오신 것이라고. 

나는 얼른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점수 딸 좋은 기회였기 때문. 

“환영합니다. 장모님! 이 청운이가 이제 평생 모실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잘 모실게요. 가가.” 

“예, 은공. 청이의 어머니니, 저희의 어머니나 마찬가지 십니다.” 

나를 따라 대답한 소소와 영영이의 말에 미소를 지은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고마워요. 사위님. 가족이 많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화기애애한 식사가 끝나고, 모닥불가에서 영영이가 환병을 구워 먹고 있을 때. 

다음 여정에 관해서 상의하려는 듯 소소가 질문했다. 

“은공, 다음 여정은 어디로 정하실 예정입니까?” 

현재 우리는 환골탈태를 거친 탈피한 아내와 부상자인 투왕을 데리고 있는 상태. 

멀리 이동하지 않고 근처에 도시에서 몇 주 푹 쉬어야 하는 상태였던 것. 

장모님께 물어봤더니 역시나 아내는 잠시 환골탈태한 몸에 적응하는 짧은 기간이 필요하고, 장모님이 북해의 무공을 아내에게 전수하신다 했으니 조용히 쉴 곳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장모님이 살펴보시더니 투왕도 한 달은 요양해야 할 것이라고. 

“지금 여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해봐야겠소. 정신없이 달려왔더니 어디쯤인지 확인을 못 해서···” 

갈대 더미에 기대앉은 투왕과 영영이를 바라봤지만 둘 다 어디인지 모른다는 얼굴. 

큰일이다 싶었는데, 장모님은 여기가 어딘지를 알고 계셨다. 

“사위님, 여긴 무도(武都)를 조금 지난 곳이에요.” 

“예? 무도 말입니까?” 

“예, 제가 무도에 들렀다 왔으니까요.” 

“무도라면?” 

무도라면 사천과 섬서를 접하는 요지에 자리 잡은 도시. 

남으로는 사천이 나오고 동쪽으로는 섬서와 인접한 도시로 강을 타고 조금 내려가면 그곳이 있는 곳이었다. 

바로 청천! 

그렇다! 반나절만 가면 심우현! 내 객잔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면 제 객잔으로 가야겠군요!” 

“사위님의 객잔?” 

내 여정은 돌고 돌아 윤회(輪回)하는 것처럼, 여정의 시작점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