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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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이를 구해주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풀리리라 생각한 것은 미미의 착각이었다.
미미의 생각대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긴 했지만, 대체 이걸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
청이나 청운님께서는 언제라도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하셨지만, 뜬금없이 처나 첩으로 삼아달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럽고 두려웠기 때문.
가장 큰 문제는 목숨은 구명 받은 청이는 자기를 마친 친자매처럼 돌봐주는데, 자기 남자를 탐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청이가 얼마나 슬퍼할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청이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던 것.
‘도, 도둑년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런 이유로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늦은 밤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왕, 자고 있나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곧바로 미미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 아닙니다. 궁주님. 드, 들어오세요.”
자기가 청운님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분.
청이의 어머니인 북해빙궁주 그녀가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미가 깜짝 놀라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자, 다가온 그녀가 미미의 몸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밤에 찾아와서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이 밤에 어찌 찾아오셨나요?”
‘이 밤에 왜 찾아왔을까?’ 어둠 속 걱정된 얼굴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미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한가지였다.
‘서, 설마? 딸인 청이를 위해서 물러나라 하실 생각인가?’
-주르륵.
미미의 귓가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긴장에 마른침을 삼킨 순간.
청이 어머니인 궁주의 물음이 들려왔다.
“소원은 역시나? 그것인가요?”
역시나.
미미는 어둠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후···.”
그러자 흘러나오는 빙궁주의 한숨.
미미가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예감하고 이불을 말아쥔 손을 꾹 움켜쥐자, 궁주의 손이 미미의 손을 덮으며 말했다.
“나쁜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
따듯한 손길과 목소리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미미.
그녀에게 궁주님의 물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혹시 북해에 대해 아십니까?”
“아, 아니요.”
“북해는 아주 척박한 땅입니다. 따듯한 기간은 넉 달 정도 될까? 겨울에는 혹한이 계속되기에 사람이 서로 돕지 않으면 결코 살아나갈 수 없는 곳입니다.”
“예, 그, 그렇군요···.”
갑자기 북해의 이야기를 꺼내는 궁주님.
‘왜 갑자기 북해 이야기하실까?’하는 의문을 품은 미미의 귓가에 다시금 궁주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해서 북해에는 받은 도움은 반드시 갚는다는 율법이 있습니다. 양식은 양식으로, 도움은 도움으로, 목숨은 목숨으로···.”
“그, 그런데?”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한 미미, 그런 미미에게 궁주가 설명했다.
“예, 물론 여기는 북해가 아니지만, 딸아이의 목숨을 구명 받은 제가 계속 모른 척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서 말이에요.”
-후
그리는 궁주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해서 제안할까 합니다.”
“제, 제안이요?”
“계속 이렇게 눈치만 보지 마시고, 사위님에게 대답을 받아오세요. 그러면 제 딸아이와 다른 아이들은 제가 설득해 볼 테니.”
“그, 그럼!?”
“예.”
궁주의 고개가 어둠 속에서 끄덕여지고, 그 말에 미미는 주먹을 꼭 쥐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그분께 꼭 대답을 얻어내고 말리라고.
***
“청아, 저것을 한번 맞춰 보거라.”
“알겠습니다. 어머니.”
장모님의 신호에 아내가 가볍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살며시 손가락을 튕겼다.
-슈카악!
그러나 분명 부드러운 손동작에 가벼운 튕김인데, 그녀의 손끝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정체를 아는 사람의 온몸을 쭈뼛하게 만드는 죽음의 소리.
소리가 들려온 아내의 손끝에서부터 목표물까지 공간을 가르는 실선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엄청난 액션에 목표물인 돌덩이가 가루가 되거나 하는 당연한 결과를 기대했는데, 뭔가가 터지거나 깨지는 소리도 아닌, 돌덩이에서는 뭔가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뽁!
돌덩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이유는, 아내의 손에서 쏘아진 탄지신통(彈脂神通)이 목표물인 돌덩이에 아내의 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을 내버린 것이 그 이유.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내의 탄지신통은 이제 예전에 학을 지워버리던 위력에 특수능력까지 추가된 상태.
특수능력인 냉기를 머금은 아내의 탄지신통은 머리통만 한 바위에 앙증맞은 구멍을 뚫어놓고는, 주변으로 냉기를 풀풀 뿜어내며 주변을 얻어 붙게 하고 있었다.
-콰드득. 콰득.
깨부수는 것은 단순히 강한 충격을 주면 되지만,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아내의 탄지신통이 한점에 집중된 빠른 속도를 가진 강한 물리력이라는 소리였다.
-꿀꺽.
무공도 모르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관이 허락된 내 입에서 감탄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 대단합니다. 부인.”
“감사해요. 노공.”
옆에서 아내의 성취를 칭찬하자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답하는 아내.
아침에 떠오른 햇살에 반짝이는 아내의 은발이 부드럽게 휘날렸다.
아내가 아침부터 공터의 바위를 깨부순 지는 열흘째.
장모님의 명으로 매일같이 아내가 공터의 바위를 깨부수는 이유는, 전부 아내의 몸을 위해서였다.
장모님과 함께 새로 바뀐 신체에 적응하기 위해서 몸을 푸는 것.
환골탈태하면 무공을 사용하고 내공을 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완벽한 신체를 가지게 되는데, 뇌는 이전의 오래된 신체에 적응해 있어 불균형이 일어나므로 그 불균형을 해소하는 과정.
몸을 움직여 머리를 새 신체에 적응시켜 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열흘간 매일같이 아내는 장모님의 명으로 탄지신통을 쏘기도 하고, 경공을 펼치기도 하고, 아니면 장모님께 배운 북해빙궁의 무공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탄지신통을 쏘자마자, 장모님이 가르쳐주신 빙공의 무공 몇 가지를 차례대로 펼치고는, 무희가 춤을 추는 것같은 아름다운 손동작을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내쉬며 모든 과정을 끝냈다.
“후우···”
그러자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신 장모님께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씀을 이야기하셨다.
“청아, 이제 기의 수발이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으니. 몸이 완벽히 적응한 것 같구나.”
“예, 제가 느끼기에도 그렇습니다. 이제 기가 자연스럽게 수발 된다는 것이 느껴져요. 어머니. ”
‘오옷!’
둘의 대화에 마음속에 저절로 감탄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인가?
장모님의 말씀은 그러니까 이제 아내의 신체적 문제는 모두 사라진 상태라는 것.
내가 바라마지않던 그 날이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었다.
완치 통보!
‘드디어 끝났구나!’
아내의 문제는 이제 완벽히 해결되었고 처소의 문제도 이미 정리된 상태.
이제 남은 것은 장인이 일찍 도착하던지, 장모님이 눈치 있게 합방시켜주시던지 둘 중 하나였다.
처소 문제가 정리되었다는 말은, 장모님의 등장으로 내가 더 이상 가위눌리면서 자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것은 장모님이 숙소 배정을 지켜보다가 직접 교통정리를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열흘 전 장인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숙소 쪽으로 들어서자 들려오던 영영이의 목소리.
“저랑 소소는 그냥 가가와 같은 방을 쓸게요.”
“네, 저희는 그냥 같은 방을 쓰면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끼리 여행할 때처럼 영영이와 소소가 나와 같은 방을 쓰려고 하자, 장모님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씀하셨던 것.
“세, 셋이 같은 방을 쓰려고요?”
“네?”
“어, 그게···.”
“아직 둘은 혼례도 올리지 않았으니,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 가문에 알려지면 어찌하시려고요.”
속도위반 전과자이신 장모님이 하시는 말씀으로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 속도위반의 결과로 내 아내가 태어났으니 장모님은 무죄!
영영이와 소소가 조금 서운한 얼굴이 되었지만, 장모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장모님이 자리를 비워주면 나와 아내가 숙소를 같이 써야 하는데, 둘만 소외되니 서운한 모양이었지만, 뒷간 똥물의 파도도 순서대로 치는 법.
정실의 위엄과 순서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기에 둘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하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되지 않아 밤에 나 혼자 있는 숙소로 몰래 찾아오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아내의 아침 몸풀기가 끝나고 우리는 일단 식당 쪽으로 향했다.
“장모님 일단 아침 식사부터 하러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사위님.”
그렇게 장모님과 룰루랄라 식당으로 향할 때 갑자기 들려오는 장모님의 전음.
[사위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예?”
“어찌 그러시는 지요? 노공.”
갑자기 들려오는 전음에 깜짝 놀라 대답하자, 아내가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다.
그러자 다시금 들려오는 장모님의 전음.
[듣기만 하세요. 듣기만.]
“아, 아니요. 내 잠시 착각을. 영영이가 아침을 먹으라 부르는 줄 알았소.”
“아, 그렇군요. 배가 고프셔서 그런가? 어서 가요. 우리.”
아내가 내 손을 잡아끌 때 장모님의 전음이 이어졌다.
[제가 며칠간 청이와 같이 잔 것은,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아직 새 몸에 익숙하지 않아 사위님을 상처입힐까 하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이가 이렇게 오늘 새 몸에 완벽히 적응했으니. 오늘 향수행에 좀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요? 사위님.]
역시나 도둑질도 해본 놈이 한다고, 전과자인 장모님은 이 분야의 전문가셨다.
향수행에 다녀오라는 것은 깨끗하게 씻고 오라는 소리.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놈은 살아갈 자격이 없는 놈.
내 역천의 눈치가 오늘 밤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속삭였다.
아마도 자기의 딸은 내 아내가 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음을 얼른 알리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소처도 있고 정인도 있다니, 뭔가 정실의 자리를 공고하게 하고 싶으신 느낌이랄까?
이유가 어쨌든, 나에게는 호재.
마음속으로 강호의 도리가 바로 섰음을 감탄했다.
‘강호! 강호의 도리가 이제야 바로 섰구나!’
그래, 이것이 바로 올바른 강호의 도리.
그간의 설움을 오늘 다 씻어내리라 생각하며, 글썽이는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장모님께서 인자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전음을 남기셨다.
[사위님, 그럼 밤에 방으로 찾아오세요.]
***
장모님과의 대화 이후, 나의 정신은 온통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 정신이 집중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오늘 밤.
아침을 먹고 저녁이 되기 전까지 왜 이렇게 시간은 더디 가고, 하루는 또 왜 그렇게 길던지.
아침을 먹고 차를 먹는 자리에서 소소와 영영이가 뭔가를 물어오는 것도 건성으로 대답해 둘에게 혼이 났을 정도였다.
“가가, 그런데 제 본가는, 언제 찾아뵙죠? 곧 찾아뵈실 거죠? 더 이상 혼자 자기 싫다구요.”
‘아주 오늘은 깨끗하게 씻고 와야겠구나. 그나저나 이쪽에서 향수행은 못 봤는데···.’
“가가?”
“그, 그래 알겠구나. 영영아.”
‘어디 있으려나? 저자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은공, 여기서는 영영이의 본가가 가까우니, 영영이의 본가에 들렸다가 저희 본가에도 들려주세요. 생각해보니 청이 어머니의 말씀이 맞네요. 아무래도 저희 마음대로 했다가 본가나 은공의 체면에 누가 될까 두려워요.”
“아. 그, 그래 알겠소이다.”
‘아차, 그러고 보니. 저자에 나간 김에 형님댁에도 한 번 들렀다 와야겠구나! 잘 계시려나?’
“가가?”
“그래, 그래.”
“은공?”
“알겠소이다.”
그렇게 한창 생각에 빠져있을 때 들려오는 뾰족하게 날이 선 둘의 목소리.
“가가!”
“은공!”
“어이쿠 깜짝이야!”
깜짝 놀라 손에서 춤추는 찻잔을 다시 손에 쥐자, 영영이와 소소가 서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가가! 저희가 무슨 말씀 드렸는지 기억하세요!?”
“은공, 자꾸 다른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시나요?”
“미, 미안하구나. 내 자, 잠시···. 미, 미안하오. 소소.”
“무슨 생각 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가가. 저희보다 중요한 이야기 아니면 용서하지 않을 테에요!”
둘에게 싹싹 빌고 위기의 아침을 간신히 넘긴 나.
그 후에는 오늘 밤 결전을 위해 덕구랑 공터에서 팔굽혀펴기하기도 하고,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서 괜히 식모가 준비하는 요리를 거들기도 하며, 또 낮잠이라도 자면 시간이 빨리 갈까 싶어 처소에서 뒹굴기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지루한 하루였지만 결국 더뎌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고, 주변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던 것!
역사가 이루어지는 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벌컥.
자면 좀 시간이 빨리 갈까 싶어 처소에서 뒹굴다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해 질 녘.
아직 저녁때가 조금 남아있었기에 이때쯤 향수행에서 씻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처소를 나서려 하자, 근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공자님?”
“아, 투왕.”
열흘 정도 요양한 투왕은 이제 살살 돌아다닐 정도가 되었는데, 산책을 하려는지 자기 처소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 어딜 가시나 봐요?”
힘이 드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투왕.
그녀의 물음에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예. 잠시 향수행에 다녀오려 합니다.”
“저, 그럼 저도 잠깐 걸으려 하는데, 그, 근처까지만 도, 동행해도 될까요?”
“예, 뭐 그러시시지요. 덕구야! 형 씻으러 갈 것인데 같이 가겠느냐?”
근처 돌 위에 배를 깔고 누운 덕구를 부르자, 덕구가 냉큼 내 쪽으로 달려와 앞장섰다.
조금씩 따듯해지기 시작하니 털갈이를 시작한 덕구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씻으러 가자니 냉큼 따라나선 느낌이었다.
‘털갈이할 때 좀 근지러운가? 아니, 지금 덕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씻고 향낭이라도 하나 사서 차야 하나? 몸에서 냄새나면 어쩌지?’
그렇게 오늘 밤의 일로 가득한 머릿속으로 투왕과 객잔을 나서 조금 걷고 있을 때, 투왕이 뭔가 물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고, 공자님.”
“예, 투왕.”
-두근두근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가슴까지 뛰어왔는데, 그 와중에 투왕의 물음이 이어졌다.
“다, 다른 게 아니라. 저에게 부, 부인을 구해주시면 어, 어떠한 부탁이라도, 소원이라도 드, 들어주신다고 하, 하셨잖아요?”
“예, 물론입니다. 뭐든지 들어드려야죠!”
사나이 류청운이 설마 한 입으로 두말할까, 투왕의 물음에 얼른 대답하고 다시금 밤 생각에 집중했다.
‘오늘도 설마 흑사(黑紗)일까? 저번에 흑사 정말 좋았는데.’
그러자 다시금 확인하듯 물어오는 투왕.
“그, 그래서 그런데. 어, 좀 무, 무리한 부탁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사람 죽이는 것만 아니라면 무조건 들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셔도 됩니다. 사람 죽이는 일입니까?”
“아, 아니요. 서, 설마요. 따, 따지자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긴 한데···.”
그깟 소원 무엇이라도 들어준다니까 왜 그리 의심하는지.
자꾸만 물어보는 통에 머릿속이 복잡에 대충 대답하고, 다시금 생각을 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사람 여럿 살려봤습니다.”
‘좀 전에 뭐에서 끊겼더라? 아 흑사! 은빛 머리카락에 흑사라. 묘한 대비를 이룰지도?’
“그, 그러시군요.”
‘첫날밤은 진짜 어떤 느낌일까?’
“그, 그러면. 저, 저를! 펴, 평생 채, 책임져 주실 수 이, 있겠습니까? 그, 그러니까 처. 아니, 첩···.”
‘분명 전생에는 첫날 밤 그건 다 인간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유머도 있었는데, 진짜 두근두근 하구만.’
다시금 한참 망상에 빠져있는데, 투왕의 마지막 물음이 들려왔고, 자꾸 계속되는 물음에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살짝 짜증 난 목소리로 내며 대답했다.
“아이고, 투왕. 걱정하지 마시라니까 그러네. 처소 가서 쉬고 계시면 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자자.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처소에서 몸이나 쉬고 계십시오. 이 류청운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셨습니까?”
“예!? 저, 정말로? 이, 이렇게 간단히? 가, 감사해요! 감사해요! 저, 저는 그럼 처소에 가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투왕은 절룩거리면 다시 객잔으로 뛰어가 버렸고, 그 모습에 나는 덕구를 보며 투덜거렸다.
“이 식룡 류청운이 그리 신의가 없는 사람이 아닌데, 험한 환경에서 살아서 그런지 의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안 그러냐 덕구야? 그나저나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월!”
“왜 그러느냐 덕구야?”
“월월!”
갑자기 짖어대는 덕구.
이제 덕구와 좀 오래 지내서 그런지 대충 이놈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것도 같았는데, 지금 덕구의 모습은 그러니까···.
‘너 인마 사고쳤어?’
“내 참 개랑 무슨 쓸데없는 생각인지, 덕구야 형이 사고는 이따 밤에 칠 예정이니까. 얼른 목욕이나 하러 가자.”
쓸데없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덕구를 재촉해 다시 향수행으로 향했다.
투왕이라는 방해꾼이 사라져 이제 더 이상 나를 방해할 사람은 없었기에, 이따 밤에 전생에 시청했던 어쩐 시청각 교재의 힘을 빌릴까 고민하며 말이다.
아내에게 뉴비로 보이기 보다는 더 전문가(?)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