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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과 요리 (231/344)

노을과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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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가까워져 오는 조금 한가한 시간. 

영영이와 소소는 투왕과 함께 저자로 마실을 나갔고, 나는 저녁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어제 장인을 붙잡고 밤늦게까지 정신 교육을 실시하느라 너무 핏대를 세워서 그런지,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 진짜 피곤하구나.” 

그런 이유로 목덜미를 만지며 혼잣말하자, 놀란 목소리로 내 상태를 묻는 아내. 

아내는 환골탈태 이후 어지간하면 병 같은 것에 걸릴 일이 없으니, 이제 오로지 내 걱정 뿐이기로 작정한 느낌이었다. 

“노, 노공, 몸이 불편하십니까?” 

“아니요. 부인.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어제 장인과 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렇소.” 

부엌에서 내 일을 돕겠다며 따라 들어온 아내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이자, 아내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때문에···.” 

“어허, 가족끼리 미안하게 어디 있소. 나도 이제 제갈가의 일원이고, 그분은 이제 내 아버지 같은 분이거늘.” 

조금 많이 부족한 아버지지만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자 아내가 감격했는지, 내 손을 붙잡고 고마워했다. 

“노공, 항상 감사해요. 이 제갈 청, 평생 노공을 온 힘을 다해 모실 것입니다.” 

평생도 좋지만 당장 급한 것은, 무엇보다 오늘 밤 모시는 것. 

아내에게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요리를 돕는 것도 좋은데, 크흠. 좀 이따 저녁을 먹기 전 하인 하나를 데리고 저자를 좀 다녀오시오.] 

[예? 저자를요? 심부름시키려 하십니까?] 

이유도 모르고 나를 따라 목소리를 낮추는 아내. 

왜 저자에 다녀오라는 것인지 눈치를 못 챈 아내가 되물어오기에, 부엌문 쪽을 한번 살피고는 그 이유를 이야기해주었다. 

[크흠. 내 오늘 어떻게든 장모님과 장인을 화해시킬 테니. 나를 믿고 햐, 향수행에 다녀오시오.] 

오빠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정리하고 방으로 찾아갈 테니, 깨끗하게 샤워하고 기다리라는 말. 

내 말을 이해한 아내가 부끄러운지 입을 살짝 가리고는 고개를 살포시 끄덕였다.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을 배경으로 붉게 물든 아내의 볼은, 다른때보다 유난히도 붉게 물든 모습이었다. 

*** 

오늘 저녁 만들 요리는 이미 아주 예전에 한 번 생각해둔 상태였다. 

그것이 오늘 이렇게 사용될지는 몰랐지만. 

왜냐하면 중원요리를 배운 웍과 채도를 잡은 요리사라면, 뭔가 요리로 승부를 보고 싶을 때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럴 때 떠올릴 수 있는 요리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선택지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이것을 북해빙궁에서 선보이려고 했었다. 

아무래도 북해빙궁 출신 장모님이라니, 뭔가 나도 하나쯤 장모님께 재주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았고, 그런 이유로 이 요리는 어떨지 생각을 해봤었기 때문이었다. 

냉랭한 차도녀가 북해빙궁 앞에서 ‘무공도 모르는 너 따위 녀석을 사위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차갑게 말씀하실 것 같았고. 

내가 장모님의 다리를 붙잡고, ‘장모님 제발 저에게 기회를! 제겐 따님밖에 없습니다!’라고 사정하면, 못이기는 척 ‘뭐 그래도 가진 재주를 이용해 나를 감동하게 한다면 한번 기회를 주어보는 것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것 같았기 때문. 

뭐 장모님은 내 예상과 다르게, 차가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따듯하고 배려심 많고 좋은 분이긴 했지만. 

‘그런데 왜 장인을···.’ 

중원에는 이해 못할 기인이사(奇人異士)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내 급에도 이걸 만들 재료는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여행하느라 상태가 나빠졌기에 어제 급하게 포형님 댁을 다녀온 상태. 

어제 포 형님댁에서 받아온 재료들과 시장에서 구입한 재료들을 늘어놓고 살펴보았다. 

복어(鰒魚 말린 전복) 

건해삼(乾海蔘 말린 해삼) 

간패(干貝 키조개 관자) 

향고(香菇 표고버섯) 

송용(松茸 송이버섯) 

광목이(光木耳 목이버섯) 

호시(濠豉 말린 굴) 

하미(蝦米 말린 새우) 

건합리(乾蛤蜊 말린 조개) 

노순(蘆筍 아스파라거스) 

백채(白菜 배추) 

청채(青菜 청경채) 

죽순(竹筍) 

은행(銀杏) 

건오적(乾烏賊 말린 갑오징어) 

총(蔥 대파) 

대산(大蒜 마늘) 

양총(洋蔥 양파) 

이중 메인 재료는 해삼선(海三鲜)과 지삼선(地三鲜)으로 준비한 전복, 해삼, 관자, 그리고 표고, 송이, 목이버섯 삼총사. 

갑오징어는 영영이 포지션. 

새우와 말린 조개로는 육수를 낼 것이고, 굴은 굴 소스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재료들은 곁들임 재료. 

일단 해삼선인 전복, 해삼, 키조개 관자와 영영이 갑오징어를 손질하기로 했다. 

어제 내 지시로 식모가 건전복과 해삼과 말린 갑오징어와 키조개 관자는 물에 불려둔 상태. 

전생이라면 싱싱한 재료로 만들 수 있었겠지만, 아직 냉장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니 말린 재료들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가끔 들어온다는 건전복은 전복 중 최고로 치고, 해삼은 생물 해삼보다 건해삼이 훨씬 탄력이 좋고 식감이 좋다. 

그 때문에 요리에 사용하기 좋아 중식 요리에는 건해삼을 많이 사용하기에, 전복은 씻어 칼집을 내고, 불린 녀석의 배와 표면에서 이물질을 제거해주고 한쪽으로 살짝 치워두었다.

다음으로 키조개 관자와 오징어. 

말린 오징어와 키조개 관자는 설탕물에 담가 최대한 마르기 전의 식감을 살려두었는데. 

말린 오징어 관자와 키조개를 설탕물에 담가 불리는 이유는 조직 침투에 좀 더 용이 한 설탕물을 이용해 마른 재료를 최대한 생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이다. 

말라붙은 시체를 되살리는 요리계의 흑마법사 같은 과정이랄까? 

설탕물에서 건져낸 키조개 관자를 깨끗한 물에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갑오징어를 살피자, 물은 머금은 말린 갑오징어는 이미 반건조 오징어 정도가 된 상태. 

껍질을 벗기고 칼로 표면에 칼집을 내 이것도 관자와 비슷한 크기로 손질해두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손질할까 재료를 훑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아마 자신도 한 손 거들고 싶은 모양인데, 아내가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요리 기술을 펼칠 수 있으니 도움은 필요 없었다. 

오늘 밤을 생각하면 힘을 낼 수밖에 없는 것. 

그런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청 그대는 그냥 옆에 숨 쉬고 있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오.” 

“하, 하지만···.” 

라드유 같은 멘트를 하나 던져주고 눈을 찡긋하자, 다시 한번 붉게 물드는 아내. 

‘대체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 사단을 만들었는지!’ 

잠시 장인 생각에 분노가 솟았지만. 얼른 가라앉히자 다시금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희는 이제 부부이니, 뭐, 뭐든지 같이 하고 싶습니다.” 

고운 손에 험한 일을 시킬 수는 없어 망설였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고, 아내에게는 굴 소스를 맡기기로 했다. 

“그러면 이 물에 불린 굴을 절구로 빻아주겠소?” 

“알겠습니다. 노공.” 

“아! 잠깐 기다리시오.” 

“어찌 그러십니까?” 

“혹, 옷이 더러워질까 싶어서 말이오.” 

아내의 옷이 더러워질까 싶어 내가 항상 앞치마를 두던 곳을 살피니, 역시나 준비되어있는 앞치마. 

아내의 허리에 직접 앞치마를 둘러주자 아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가, 감사해요. 노공.”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 절구로 시선을 얼른 옮겼지만, 나는 좀 더 아내를 지켜보기로 했다. 

어디 가서 구경하기 힘든 아내의 앞치마 두른 모습을 감상하는 것. 

‘앞치마 좋구나···.’ 

그렇게 잠시 아내를 감상하니 아내가 부끄러워하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손절구 질을 시작했다. 

아내에게 굴을 빻으라고 한 이유는 굴 소스를 만들기 위한 밑 작업의 일환. 

원래 굴 소스는 전생의 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게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기급 재료이니 만들어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굴 소스는 원래 염장해 말린 굴을 끓여, 그 국물을 졸여 사용하지만, 직접 만들어 쓸 때는 굴을 갈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훨씬 풍미가 좋은 굴 소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 

그런 이유로 어제 다른 재료들과 같이 불려둔 굴을 손절구로 아내에게 빻아달라 부탁한 것. 

곧이어 아내의 절구질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콩콩. 콩. 

그렇게 아내에게 굴을 빻는 것을 부탁하고, 들려오는 콩콩 소리를 멜로디 삼아 다음으로 지삼선인 향고(香菇 표고버섯), 송용(松茸 송이버섯), 광목이(光木耳 목이버섯)를 꺼내 들었다. 

지삼선은 원래 전생에 가지, 감자, 피망을 가리키는 말이거나 그것으로 만든 요리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땅에서 나는 귀한 재료를 뜻하는 의미도 있으니 표고, 송이, 목이면 충분했다. 

전생에는 목이버섯이 중화요리 어디에나 들어가기에 중원에서는 헤픈 여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해서 삼선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지금은 충분히 고급 재료. 

역시나 물에 불린 녀석들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한쪽에 잘 정리해 두었다. 

그렇게 해삼선과 지삼선의 준비가 끝나면, 남은 것은 채소 손질. 

노순(蘆筍 아스파라거스), 백채(白菜 배추), 청채(青菜 청경채), 양총(洋蔥 양파), 죽순(竹筍)까지 손질을 끝내자, 아내의 물음이 들려왔다. 

“노공, 다 빻았는데, 이제 어찌할까요?” 

아내가 든 손절구를 확인하자, 내공이라도 썼는지 곤죽이 되어있는 굴. 

화구에 불을 붙이고 냄비를 올린 후, 곱게 빻은 굴과 물을 넣고 끓여주기 시작했다. 

“노공, 그런데 굴은 왜 빻은 건가요?” 

“아, 그것은 장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장 말입니까?” 

원래 굴 소스라는 것이 굴을 물에 넣고 계속 끓여 농축시킨 걸쭉한 액체에 노두유를 넣고, 설탕을 캐러멜화 시켜서 섞은 것. 

아내에게 국자를 들려주고 굴 소스 제조를 맡겼다. 

“이건 부인에게 온전히 맡길 테니 잘 부탁합니다. 눌어붙지 않게 잘 저어 주고. 혹시 넘치려고 하면, 찬물을 위에 살짝 뿌리던지. 부채를 부쳐 끓어오르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뭔가를 온전히 맡겨 주는 것이 좋았던지, 아내가 앙증맞은 주먹을 움켜쥐고 대답했다. 

아내가 굴 국물을 조리는 사이, 나는 우선 육수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많은 양은 필요 없고, 말린 새우와 말린 조개를 이용해 반 컵 정도의 분량이면 충분했기에, 아내가 굴 액기스를 조리는 화구에서 불타는 장작을 하나 꺼내, 바로 옆에 화구에도 불을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작은 냄비를 올리고 새우와 조개, 마늘과 파를 넣고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바글보글. 

내 냄비는 금방 올렸기에 지금 들려오는 액체가 끓어오르는 소리는 아내 쪽에서 들리는 소리. 

아내가 살피는 굴 소스가 끓어오르며 진한 굴의 향기가 부엌으로 먹물 번지듯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흐응. 향이 너무 좋아요. 노공.” 

국자를 휘저으며 미소를 짓는 청. 

옷이 더러워질까 들러주었던 앞치마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새색시 같은 모습에 가슴이 떨리다 못해 저리기 시작. 

‘마치 새색시가 아니고 새색시 맞는구나.’ 

조금만 참으면 요리가 완성될 것이니, '참을 인' 자를 가슴에 새기며 요리를 서둘렀다. 

다음 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곧이어 육수 냄비가 끓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올라온 새우와 조개가 어우러진 시원하고 진한 국물의 향이, 아내가 끓이던 굴의 향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바글바글.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냄비에서 솟아오르는 진한 향. 

솟아오른 수증기가 냄비 위에서 서로 섞여 어우러지고 있었다. 

마치 오늘 밤을 예고하듯. 

그리고 그때 굴 소스를 휘젓고 있던 아내가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사방으로 안구를 움직이며. 

“노, 노공. 마, 맡겨 주신 일인데, 끄, 끝마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응? 무슨 일이 있소?” 

갑자기 화장실이라고 가고 싶은 것인가 의문이 들어 묻자, 아내가 창밖을 슬쩍 가리키며 대답했다. 

“어, 얼마 안 있으면 해가 질 테니. 노, 노공이 말씀하신. 햐, 향수행에 다녀와야 할 것 가, 같습니다.” 

내색은 안 했지만, 계속 시간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내가 끓이던 소스는 어느 정도 걸쭉한 상태였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자, 어, 얼른 다녀오시오. 그보다 급한 일이 어디 있겠···.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하인 하나 데리고 조심해서 다녀오시오.” 

“예, 노공.” 

내게 대답하는 아내의 등 뒤. 

열린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붉은 노을빛에 아내의 머리카락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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