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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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 그리고 남궁가의 소저와 함께 원치 않는 저자 구경을 나서는 길.
“언니, 괜찮으세요? 걷기 불편하시지는 않아요?”
왼쪽 팔에 팔짱을 낀 당가 소저의 살가운 물음에 미미가 얼른 대답했다.
“으, 으응. 이, 이제 불편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미미의 어색한 대답에 다시금 살갑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당가의 소저.
“미미 언니, 좀 더 편하게 말씀하시라니까 그래요.”
“그, 그럴까?”
“네. 청이의 목숨을 구해주셨으면, 당연히 제 언니이기도 하니까요.”
미미가 자기의 몸을 살갑게 챙기는 당영영이라는 소저의 목소리에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지금 자기의 말과 행동이 모두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외출의 목적은 미미가 그간 부상으로 침상에만 누워있다가 이제 거동이 할 만해졌으니, 바람을 쐬게 해주겠다는 이유였지만, 그것은 전부 거짓말.
실제로 자신의 우측을 부축하고 있는 당가의 소저와 좌측을 부축하고 있는 남궁의 소저는 자기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외출 전에 귀를 열지 않았으면 큰일날뻔했어.’
그녀들의 숨은 목적을 알아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투왕이 가진 세 가지 기술.
도둑질, 경공, 그리고 은신 및 추적술.
추적술 하면 단순히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중 하나가 내공을 이용해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재주.
외출하기 전 침상에 앉아있다가, 심심한 나머지 열고 만 귀.
그 귓가에 당가의 소저와 남궁가의 소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었다.
[영영, 투왕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이번 외출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해요. 아무래도 궁주께서 하신 말씀은 그냥 넘기기 힘드니까요.]
[알았다구! 나는 걱정하지 말고. 소소, 너만 정신 똑바로 차리면 된다니까? 나도 가가의 여난으로 더 이상 아내가 늘어나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응!? 어, 어떻게 된 일이지?’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하지만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제 낭군님께 허락받은 순간 빙궁주님을 찾아가 허락받은 사실을 바로 알렸었다.
그러자 궁주께서는 낭군께서 신의 있게 약속을 지키려는 모양이라 대답하시고는 셋을 설득한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제갈가주와 난투 아니, 구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궁주께서 다른 일을 챙길 여유가 없으셨던 것.
그러니 아직 자기가 낭군님의 여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들 모르는 모양이었다.
낭군께서도 분명 다 알아서 하신다고 하셨는데, 둘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제갈 가주 때문에 낭군님도 정신이 없으신 느낌.
그제를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일이었다.
미미는 일단 빙궁주님과 낭군님이 나서기 전까지는 자신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두 분이 알아서 하신다고 하셨는데, 본인이 나서면 실례가 되는 것이니까.
집안의 큰 어른 두 분께서 하시는 일에 여인인 자신이 나서면 안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불편한 저자 구경.
웃음 속에서 추궁하는 듯한 물음이 계속되었다.
“언니, 그런데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데, 혹시 혼례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나? 그, 글쎄···. 나 같은 도둑년을 누가···.”
나이가 많다는 말에 움찔했지만, 영영이의 물음에 어색하게 대답하자, 호들갑 떨며 부인하는 둘.
“어머, 도둑년이라뇨! 투왕이라면 잡도둑들과는 다르잖아요? 안 그래 소소야?”
“영영이의 말이 맞아요. 미미 언니. 어디 잡도둑들과 투왕을 비교할까요. 그리고 언니 나이가 조금 많긴 하지만, 이렇게 예쁜데, 누구라도 거절하지 못할걸요?”
“그, 그럴까요?”
“당연해요!”
“그래도 나 같은 여자를 누가···.”
그렇게 둘은 속보이게 자신을 마구 칭찬하더니, 갑자기 영영이가 소소를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난 듯 외쳤다.
“아! 소소야, 네 오라버니!”
“네? 제 오라버니요? 아!”
곧 눈빛을 교환한 둘이 양쪽에서 미미를 다정하게 부축하며 말했다.
“미미언니, 저쪽에 나무 그늘에 가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봐요. 꽤, 괜찮은 남자가 있다구요!”
“그래요. 제 오라버니도 요리사에 잘생긴 사내. 마음에 드실 거예요.”
“아, 아니···. 자, 잠깐만···.”
광기 어린 둘의 인도에 미미의 다리가 흙바닥에 질질 끌려 긴 흔적을 남기고는 나무 아래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봄의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올라오는 나무 아래서, 미미는 한참 동안 소소의 오라버니라는 남궁현이라는 남자의 칭찬을 들어야 했다.
“······어때요? 소소의 오라버니 멋지죠?”
“그, 글쎄?”
“아니, 동생을 위해서 차기 가주의 자리를 버리고 집을 나간 멋진 남자인데요?”
“나, 나는 그냥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앗···. 소소야 미안···.”
얼굴도 모르는 남궁가 소저의 오라버니라는 사람을 칭찬하던 둘은, 자기의 마지막 소감에 낭패라는 듯한 얼굴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바, 바보···.”
그것을 끝으로 이제 풀려나나 싶었는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꼬르륵.
미미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자, 영영이가 부끄러운 듯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말을 계속했더니, 배, 배가 고프네요.”
그 말에 미미는 아무 생각 없이, 항상 품속의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녹포(鹿脯)를 꺼내 영영이에게 내밀었다.
저번에 청이를 업고 달릴 때는, 먹는 시간도 아까워 몇 개 먹지도 않고 달렸던 육포였기에 아직은 여유가 있었던 것.
“이, 이거라도 먹겠나요?”
“네? 이건?”
자기의 손에 들린 녹포를 바라보며 깜짝 놀란 얼굴이 된 영영이.
영영이가 녹포로 슬쩍 코를 가져다 대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킁킁. 지, 진짜 녹포! 어, 언니 어디서 사셨어요?”
“응? 그, 그냥 내가 잡은 사슴으로 마, 만든 건데요?”
“만드셨다고요!? 진짜 녹포는 구경하기 힘든데. 하, 이 향긋한 사슴고기의 향.”
저자에서 파는 죽은 말고기로 만든 녹포와는 다른, 자신이 직접 잡아 말려 만든 육포라는 사실에 영영이는 무엇에 홀린 듯 녹포를 입안에 가져가 맛봤다.
그리고는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녹포, 너무 맛있어요!”
이어서 정신없이 녹포를 먹기 시작하는 영영이.
순식간에 녹포 한 조각이 오물거리는 영영이의 입안에서 사라지고, 두 번째 녹포를 집으려 하다가 영영이가 움찔했다.
아마 자기 눈치를 보는 느낌.
미미는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를 영영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 다 먹어도 돼.”
“네에!? 전부 다? 고, 고마워요. 언니! 언니, 좋은 사람이군요?”
그렇게 영영이가 녹포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소소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언니, 저 소피 좀···.”
“그, 그래요.”
볼일을 보러 간다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소소가 영영이의 팔을 잡아채며 말했다.
“영영, 같이 가요.”
“아니, 그냥 혼자 다녀오지? 자, 잠깐만.”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팔아 잡아끄는 소소에게 끌려간 영영이.
귀를 기울이자 곧바로 풀숲 너머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영! 제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지요! 먹을 거에 넘어가서는!]
[아니, 이렇게 먹을 것도 나눠 주시는데, 아무래도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오해한 거 아닐까? 그리고 가가께는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은데?]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욧! 녹포 몇 개에 정말 한심해요!]
[아니, 녹포 때문이 아니고, 청이를 살려주셨는데.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에 가가께 거둬달라 한다면 거절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잖아. 무림에서는 목숨은 목숨으로 갚는 것이니까.]
[어휴. 제가 영영이를 믿은 것이 잘못입니다! 저 혼자 살필 때니 들키지나 마세요!]
녹포를 나눠 먹은 이후 영영이가 보내오던 자신에 대한 감시의 눈길은 씻은 듯 사라졌다.
대신 소소가 두 배로 날카로워졌지만.
하지만 그런 날카로움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녹포를 먹은 지 얼마 안 돼 다시금 배가 고프다는 영영이를 위해서 찾아간 노점.
영물인 덕구를 따라간 곳에서 꼬치를 먹을 때였다.
신기하게 꼬치를 먹는데 입가나 손에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고기를 빼먹는 영영이와는 다르게, 먹으면 먹을수록 꼬치대로 사용한 나무 때문에 먹기 힘들어지는 꼬치에 어쩔 줄 모르는 소소에게 내민 단검.
꼬치 끝을 자르는 데 쓰라고 미미가 내민 단검을 보며 소소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이 단검은?”
“꼬치 끝을 자르는데, 쓰세요.”
꼬치를 자르는 데 쓰라고 대답하자 화들짝 놀라는 소소.
그녀가 말도 안 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것을요!? 칼끝이 이리 날카롭고 칼날도 이리 아름다운 모습인데? 이, 이걸 꼬, 꼬치 자르는 데 쓰라고요?”
소소에게 내민 단검은 망할 늙은이의 보물고에서 몰래 꺼내 온 물건.
그냥 사슴을 잡거나 짐승을 잡을 때 쓰기 편해 사용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에, 미미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마음에 들면 줄까요? 저는 필요 없는데?”
가지고 있어 봐야 망할 늙은이 생각이나 날 테고, 소소가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 듯 보여 묻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소.
소소가 단검을 내민 손일 움켜쥐더니 손을 떨며 말했다.
“언니, 저, 정말 좋은 사람이었군요!?”
“에?”
***
객잔으로 돌아오는 길.
어쩐지 자신의 마음을 알아본다고 의지에 불탔던 둘은 사소한 일로 경계를 풀어버렸다.
미미가 속으로 ‘얘들 내가 멀리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을 알고, 일부러 나를 떠보려 이러는 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
살갑긴 했지만, 날카로웠던 저자로 향할 때와는 다르게, 둘은 완전히 느슨해진 상태였다.
도둑질하려고 찾아간 집의 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육포를 던져줬을 때와 같은 반응이랄까?
도둑인지도 모르고 먹을 것을 주니 꼬리를 치는 그런 느낌.
둘의 반응에 이게 맞나 싶을 때, 왼쪽에서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
“미미 언니, 그런데 녹포 왜 그렇게 맛있어요? 저는 요리 잘하는 사람 부러워요.”
“그, 그래? 나도 뭐 여러 가지 할 줄 아는 건 아니고. 그냥 녹포 정도? 어, 마음에 들면 나중에 만들어서 더 줄까?”
“저, 정말요? 가가의 환병은 먹으면 좀 목이 마른대, 번갈아 가면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녹포 한 주머니 이렇게 풀어진 모습이라니.
이해가 잘되지 않을 정도.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에서 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제, 제가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될까요? 청이의 목숨도 구해주셔서 도리어 제가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품 안에서 꺼낸 천으로 미미가 준 단검을 열심히 닦고 있는 소소.
입으로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소소는 눈을 단검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그, 그럼. 괘, 괜찮아. 우, 우리 사이잖니.”
그러나 대답을 잘못했는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묻는 소소.
“저희가 무슨 사이인데요. 언니?”
‘마, 말을 잘못했나?’
미미가 움찔하며 말실수했다 생각 생각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변명했다.
낭군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실 텐데, 나서서 집안을 시끄럽게 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
“아, 아니 그, 그러니까 우리 사이는 그 친근하고···. 그러니까···.”
실수한 말을 주워 담으려고 변명하는데, 양쪽에서 미미의 팔을 휘감아오는 둘.
미미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둘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할 때.
둘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말을 못 해요. 저희는 이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당황한 미미의 반대편에서 자신들을 보지 못했는지, 붉어진 얼굴의 청이가 하인 하나를 데리고 저자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