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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234/344)

급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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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복(全家福). 

영어 이름이 Happy Family. 

전생의 한국에서 전가복이라면, 주방장이 자기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다 때려 박아, 메뉴판 최상단에 ‘시가’라는 단어로 자리 잡게 하는 그런 고급 메뉴지만, 중원에서는 명절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행복을 기원하며 먹는 가족 요리에 가깝다. 

물론 조리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주로 걸쭉한 소스와 함께 버무려 볶은 팔보채(八寶菜)와 경계가 모호한 요리 중 하나지만, 중원에서는 탕이나 전골 요리로 많이 만들어 먹으니까. 

하지만 정통 중화 요리사인 내가 굳이 한국에서 가장 흔한 방법인 볶는 방식으로 전가복을 만든 것은, 아무래도 탕으로 만들면 재료 본연의 맛이 모두 국물로 빠져나와 재료의 향과 맛이 떨어지니,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귀한 재료들은 더 원본 그대로 즐기는 것이 좋은 법이니까. 

‘이게 좀 더 임팩트가 강하거든. 맛도 좋고.’ 

“흐응···.” 

역시나 내 선택이 맞았던지, 장모님이 얼굴로 밀려드는 향을 한번 들이켜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사위님이 이 장모를 위해서 만들어준 요리라니. 누구와는 다르게 마음 씀씀이가 아주 훌륭하네요. 제가 남편 복은 없는데 사위 복은 있나 봅니다.” 

“예? 아···. 예. 하, 하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북해빙궁산 장모님이 한을 품으니 식당에 북극에서 몰려온 냉기가 휘몰아쳤다. 

‘싸늘하구나···.’ 

칭찬받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몰아치는 차가운 한기. 

그리고 칭찬을 끝마쳤으면 이제 요리를 드시면 되는데. 이상하게 싱글생글 미소만 짓고 있는 장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저것이 미소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이었으니까. 

그 모습에 얼른 발을 뻗어 장인을 발을 콱하고 밟았다. 

“큭.” 

그러자 움찔한 장인이 나를 바라보며 ‘왜?’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느낌. 

장모님이 맛있는 향이 자기의 콧속으로 밀려들어 유혹하고 있는데도, 나를 보고 미소가 아닌 미소만 짓고 있는 이유. 

화가 난 상황에서도 유교 사회이니, 장인이 먼저 수저를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 

화가 나도 장인의 가장으로서의 위치만은 지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럴 때는 눈치 빠르게 얼른 맛을 봐줘야 하는데, 장인이 겁나서 멀뚱거리고만 있으니 관자놀이에 핏대가 서고 있었던 것. 

‘하아. 이 답답한 양반 같으니.’ 

발을 밟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장인에게 얼른 턱짓으로 맛을 보라고 하자, 그래도 제갈가의 눈치가 발동하는지, 장인이 조용히 젓가락을 들어 전가복의 여러 가지 재료 중 전복과 죽순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젓가락을 따라 뜨거운 김이 흐르고.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 

“오! 헛···.” 

장인은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소감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감탄사를 흘리자마자 쏘아지는 장모님의 눈총에, 사냥꾼에게 숨으려는 장끼나 까투리 새끼마냥 조용히 고개를 처박고는 입을 오물거렸다. 

장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가장의 위치를 존중하고 있었지만, 징역 39408029690년쯤 때려진 장인의 죄인 위치도 존치 시키고 있었던 것. 

그렇게 장인이 쭈그러들자, 살벌한 푸른 광선을 쏘아대던 장모님께서 레이저를 거두시더니, 젓가락을 들어 해삼과 청경채를 입안으로 가져가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당연함 감탄. 

“아! 사위님이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식룡 이라더니! 정말 대단한 맛입니다. 달콤하면서 부드럽고···. 이건 바다에서 나는 재료인가요?” 

“예, 맞습니다. 장모님.” 

“이게 바다의 맛이군요. 머릿속에서 시원한 바다가 떠오르는 듯합니다. 북해에서는 바다에서 나는 건 평생 못 먹어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정말 감사해요. 사위님. 저를 위해서 이런 선물을 준비해 주시다니, 저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하긴 생각해보면 장모님은 내륙에 사는 분이니, 평생 바다에서 나는 재료들은 못 먹어보셨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더욱 감동하신 느낌. 

시작이 아주 좋았기에 얼른 이 감동을 더욱 배가시키기 위해 대답했다. 

“장모님, 아리따운 아내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평생을 해도 다 갚지 못할 넘치는 선물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제가 평생 이 은혜를 갚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하자, 감동하신 장모님. 

장모님이 소녀 같은 얼굴로 기뻐하셨다. 

“어, 어쩜···.” 

그 모습에 갑자기 치솟는 분노. 

‘아니, 이걸 대체 왜 못하냐고!’ 

장모님은 차가운 외모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쉬운 분. 

장모님 감동을 주기가 이렇게 쉬운데, 장인은 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곁눈질로 살짝 보자 장인은 밥상머리에서 쭈구리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좀 전에 장모님의 눈치를 받고, 어제 충분히 교육한 대로 때를 기다리는 모양. 

장인과 눈이 마주치니 지금이냐고 묻고 있었지만, 나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아직 좀 더 기다리라 신호를 주었다. 

그때 다시금 들려오는 장모님의 목소리. 

“자자, 너희들도 어서 먹자꾸나. 투왕도 어서 드세요. 맛이 아주 좋군요.” 

혹시 장인과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걸린 것일까 움찔했지만, 그것은 아니고 그냥 식사 신호였다.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알겠어요. 숙모님.” 

그렇게 장모님께서 다른 이들에게 식사를 권하자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네 여자의 손이 일사불란하게 젓가락을 쥐고, 양쪽의 전가복 접시로 쏘아지는 젓가락. 

장모님이 극찬하신 요리의 맛이 궁금했던지, 넷은 얼른 각자 젓가락으로 쥔 재료들을 입 안으로 넣었다. 

그렇게 각자의 입으로 전가복이 사라지고 들려오는 감탄의 사중주. 

“향긋하고 달콤하고 또 부드럽습니다. 노공.” 

“가가. 꼭 입안에 바다를 머금은 것 같습니다!” 

“저는 산을 머금은 것 같아요.” 

“작경(嚼劲 쫄깃쫄깃해)! 마, 맛있습니다!” 

아내는 장인과 같은 전복을, 영영이는 장모님과 같은 해삼을, 소소는 송이를, 투왕은 갑오징어를 먹었으니 다들 각기 다른 감상. 

전가복은 이렇게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니, 각기 다른 소감인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각자 요리에 대한 소감을 내놓고, 감격한 얼굴로 두 번째 젓가락을 접시로 가져가려 할 때였다. 

“이 요리의 이름이 그러니까. 전가복?” 

장모님이 요리의 이름을 다시 물으신 것.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얼른 장모님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전가복(全家福) 온전할 전(全), 집 가(家), 복 복(福). 모든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요리. 가족의 행복을 비는 요리 전가복입니다.” 

“전가복···. 모든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요리라···.” 

아내는 내 말에 기대하는 표정으로 장모님을 지켜보고 있었고, 영영이와 소소는 요리에 뜻에도 감동하는 느낌. 

투왕은 고개를 숙이고 맛을 음미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빠진 장모님. 

내가 어떤 의미를 요리로 만들었는지 알고 고민하시는 모양이었다. 

사위가 둘의 화해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징역 38748342392년을 때린 죄인을 특별 사면해야 하나 말아야 하느냐는 그런 느낌. 

얼른 장인의 발을 냅다 밟았다. 

그러나 느껴지지 않는 장인의 발. 

장인 쪽을 바라보자 내 발을 피하고 씩 미소를 짓고 있는 장인. 

이번에는 피했지, 이런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정말. 이 사람!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멀쩡한 사람이 왜 장모만 엮이면 바보가 되는지. 

얼른 장모 쪽을 턱짓하자, 내 신호를 눈치챈 장인이 화들짝 놀라 장모 쪽을 열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꼬리를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실망감이 파도같이 몰려들었다. 

어젯밤에 장인을 붙잡고 계속해서 숙지시켰던 것은 이런 결정적인 상황이 왔을 때 장모에게 장인이 해야 할 이야기. 

멘트를 하나하나 내가 작성해, 결정적인 상황에 장모에게 제대로 이야기하라고 암기시켜주었는데, 장인이 다른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 

“설화. 당신을 만났다는 기쁨에 내 바보라도 되어버린 듯 이상한 대답을 하고 말았소. 미안하오. 해서 부끄럽지만 이제 내 진심을 전하려 한다오. 그대가 떠난 뒤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아시오? 그대의 이름 빙설화 그처럼 내 마음도 영원히 얼어붙고 말았소.” 

미리 작성해둔 멘트를 이야기하자 장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 정말 그리 말해야 하나?” 

멘트가 길어 그런가 싶어 되물었다. 

“혹 말이 길어 기억하기 힘드십니까?” 

“아, 아니네. 나 제갈 천 그 정도를 못 기억하겠나?” 

“그러면?” 

“아니, 아무래도 딸아이도 있고, 조카인 영영이도 있는데 그 좀 부끄러워서.” 

아무래도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장인에게 얼른 말했다. 

“크흠···. 아무래도 제가 내일 그 멍에 잘 듣는 약을 주셨던 포 형님께 다시 다녀와야 할 것 같군요.” 

“그,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소리긴 무슨 소립니까!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것 같아 더 맞아야 할 것 같으니. 약 더 받아오려고 그러지.’ 

내 대답을 이해 못하고 눈을 깜빡이는 장인. 

장인을 물음에 대답했다. 

“아직 더 맞으실 것 같으니, 약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 이 사람 알겠네! 알겠어! 어, 어서 알려주게!” 

그렇게 다시 시작된 정신 교육. 

“어디까지 했더라?” 

“‘영원히 얼어붙고 말았소.’까지 했네.” 

“아, 그러면 그다음은 이겁니다. ‘장모님께서 절대 찾지도 연락하지도 말라는 말에, 혹 당신이 내가 연락하거나 찾으면 벌을 받지나 않을까. 해서 이십 년 동안 이를 악물고 참았다오. 이십 년 동안 커가는 청이를 보며, 간신히 그 마음을 달래며 말이오. 하지만 내 용기를 내야 했거늘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여기까지 하시고 일어나 다가가 손을 꼭 잡으시면 됩니다.” 

“크흠···.” 

해서 저런 내용을 분명히 결정적인 상황에 입으로 장모에게 전달하라 했는데, 부끄러움을 버리지 못했는지 장인이 전음을 날려버렸기에 실망감이 든 것이었다. 

고백이라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데도 감동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냈다는 사실에도 감동하는 것. 

하지만 전음을 날렸다는 것은, 전생에 고백을 문자 메시지나 SNS로 박았다는 것과 비슷한 것이나 마찬가지. 

내 계획을 완벽히 조진 것이었다. 

‘청아 오늘 밤은 글렀다···. 우리 청이 목욕만 하다가 피부 다 벗겨지겠네···.’ 

그렇게 장인의 한심스러운 행태에 아내의 얼굴을 아련히 바라보는데 들려오는 의자 끄는 소리. 

-드르륵. 

“흐, 흥!” 

곧바로 장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뻘게진 얼굴로 콧방귀를 뀌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머, 먹혔어?’ 

후속타를 먹여야 하는데 반응 없는 장인.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장인의 옆으로 달려가 귓가에 속삭였다. 

[뭐 하십니까? 어서 따라가셔야지!] 

[지, 지금? 화나서 나간 것 아닌가?] 

‘아니, 이 양반이.’ 

[지금 저게 화난 것으로 보이면, 멍에 좋은 약이 더 필요할 것 같군요.] 

[아, 알겠네!] 

장인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 나가려 할 때 장인의 팔을 붙들었다. 

[자, 잠깐만요. 장인어른.] 

[얼른 가라더니 왜 붙잡는가!] 

멍청히 있을 때는 언제고 잠깐 붙잡았다고 이런 반응이라니, 품 안에 챙겨놨던 것을 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걸 줘야 밤새 두 분이 바쁘실 테니, 분노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꺼내 장인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장인의 물음. 

[이, 이게 뭔가?] 

[장인어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그, 약왕 어르신이 직접 만든 회생환(回生丸)입니다.] 

[이, 이것이?] 

남자라면 모를 리 없는 그 이름에 휘둥그레진 눈이 된 장인. 

오늘 밤 야수가 될 장인이 내가 준 약을 받아들고는 내게 전음을 남기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내 자네한테 좀 서운한 것이 있었는데, 다 용서하겠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은인이라 해도 부족할 판에 서운하다니 뭔가 좀 이상한 말이었지만, 이제 그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장인이 장모님을 뒤따라 나간 것으로 내 계획이 완벽하게 완성되었으니까. 

이제 은근슬쩍 눈치를 보다가 아내와 같이 내 방으로 쓱 들어가면 될 일. 

‘갸아아아아악!’ 

기쁨에 가슴이 벅차오를 때.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큭···.”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자, 아까 전가복을 맛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투왕의 어깨가 씰룩씰룩 움직이고 있었다. 

신나는 일이 있는지 어깨춤을 추기라도 하듯 씰룩거리는 어깨. 

그 씰룩거리는 어깨가 사정없이 춤을 추더니. 

-후두둑. 

그녀의 앞으로 눈물방울이 우박같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투왕의 입에서 뭔가 이해 못 할 말이 흘러나왔다. 

“흐으으윽···. 가, 감사합니다. 저를 가족으로 받아주신다고 이런 자리와 요리를···. 말씀대로 꼬, 꼭 행복한 가족이 되겠습니다. 흐윽.” 

“네?” 

이해 못할 투왕의 급발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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