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봐요 심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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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사천당가.
심우현에 밀명을 받고 나갔던 무사 중, 온몸에 땀을 흠뻑 뒤집어쓰고 도착한 것은 한 명뿐.
무사가 기진맥진한 체 당가의 대문 앞에서 쓰러지자 당가는 발칵 뒤집혔다.
“번삼! 무슨 일인가!”
“도, 독 왕께···.”
“독왕 어른을!?”
가주도 아닌, 물러나신 독왕 어르신을 찾는다는 것은 큰 문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
무사들이 기진맥진하는 번삼을 끌고 독왕전 앞에 도착하자, 이야기를 듣고 독왕께서 문짝을 박차고 뛰어나오셨다.
-쿠당탕!
“무슨 일이냐! 심우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무사의 상태로 보아 자지도 먹지도 않고 뛰어왔는지 탈진해버린 느낌.
독왕이 매서운 눈으로 어떤 놈들이 당가를 건드렸는지를 묻자, 번삼이 동료 무사들이 흘려주는 물을 한 모금 받아마신 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
“아?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말해보거라.”
그러자 실신할 것 같은 번삼이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어 독왕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아, 아가씨가···. 시, 심우현에.”
-털썩.
“이, 이보게 번삼! 번삼!”
쓰러진 번삼을 깨우려 했으나 이미 실신해버린 상태.
뒤늦게 독왕전으로 달려온 가주가 독왕전 앞에 벌어진 모습에 당황할 때, 독왕의 입에서 스산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가주. 지금 당장 심우현으로 가세.”
그 말에 당가의 가주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어떤 놈들의 습격입니까!?”
그러나 독왕의 대답은 이상했다.
“아니, 습격은 우리가 해야지.”
“예?”
“지금부터 영영이를 잡으러 가야 할 것 같네.”
독왕의 대답이 끝나자 시선을 교환한 부자(父子)가 경공을 펼쳐 심우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봄의 꽃이 만개한 호북 제갈가의 영산(靈山)인 복룡산(伏龍山) 제갈가 앞.
아홉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제갈가의 구진문(九進門) 앞에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나타난 무리의 모습은 하나같이 허리에 똑같은 검을 차고, 똑같은 푸른 무복을 입은 무사들.
갑자기 나타난 무사들의 모습에 제갈가 입구에서 번을 서던 무사하나가 깜짝 놀라 물었다.
“누, 누구시오!”
그러자 나타난 무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와 대답했다.
“남궁가의 남궁성이라고 하네. 연통도 없이 찾아와 미안하네만, 검왕인 남궁강천께서 직접 찾아오셨다고, 제갈 가주께 아뢰주시게.”
“거, 검왕!”
제갈가 앞에 모습을 드러낸 무리의 정체는 남궁세가 최고의 무력대인 천풍대(天風隊).
그리고 검왕 남궁강천과 그의 동생 남궁성이였던 것이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검왕이 직접 찾아왔다는 말에 번을 서던 놀란 무사 하나가 경공까지 펼치며 제갈가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그 빈 자리에 검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갈가라. 오랜만이구나. 그나저나 설마 제갈 가주가 자리를 비우지는 않았겠지?”
뒤에서 들려오는 형님의 질문에 남궁성이 얼른 대답했다.
“저희가 연통도 없이 오긴 했지만, 설마 자리를 비우기야 하셨겠습니까?”
“하긴, 가문을 비우고 어딜 가실 분이 아니지.”
“그럼요. 형님.”
둘의 대화 너머 무사가 뛰어 들어간 제갈가 안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
지난겨울 형님의 명령으로 음적을 잡기 위해 동경으로 떠났던 남궁성.
개방에서 정보를 구할 수 없어 누님이 계신 제갈가에 들렀던 남궁성은, 누님을 통해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음적은 음적이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남궁가의 은인이었던 것.
“성아 이 동경까지 어찌 온 것이냐? 뒤에는 천풍대? 천풍대까지 끌고? 가문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개방에서 허탕을 치고, 해 질 무렵 도착한 동경의 제갈가 앞에서, 천풍대를 끌고 도착한 남궁성을 보고 누님이 놀란 목소리로 물으셨다.
가문 최고의 무력대인 천풍대를 전원 다 끌고 나타났으니 놀라신 모양.
“매제, 이 밤에 천풍대까지? 정말 무슨 일인가? 큰일이라도 벌어졌는가?”
그리고 이어서 저부의 놀란 음성까지 들려왔다.
천풍대와 함께 찾아온 자기의 모습에 놀란 누님 내외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기에, 남궁성은 얼른 인사하고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놀라운 이야기긴 하지만, 둘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님! 저부(姐夫 매형)! 오랜만입니다. 두 분 너무 그리 놀라지 마십시오.”
“천풍대를 이끌고 왔는데 놀라지 않을 수 있더냐? 무슨 일이더냐.”
“실은 죄인을 하나 잡으러 왔긴 한데.”
“죄인?”“예. 그, 놀라지 마십시오. 실은 우리 소소를 감히 탐한 음적 놈을 형님의 명으로 잡으러 왔습니다,”
“으, 음적? 소, 소소?”
소소가 음적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자 놀라신 누님.
가문에 하나밖에 없는 예쁜 조카인 소소가 험한 일을 당했다는 말에 충격이 크신 느낌.
남궁성은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한 얼굴로 설명했다.
“예, 소소, 그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집안사람 아무도 모르게 어떤 음적 놈과 혼례를 올렸다지 무엇입니까!?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분명 우리 소소가 아무도 모르게 혼례를 올렸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아이가 정절을 잃어 어쩔 수 없이 혼례를 치른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것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지요!”
“···”
“정말 어떤 정신 나간 음적 놈이 감히. 검왕의 딸이며 남궁의 보물인 소소를 건드렸는지! 형님이 분노에 차서 놈의 더러운 물건을 직접 베겠다고 하시며, 놈을 당장 잡아 오라 하셨기에, 제가 지금 놈을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
“아, 그런 이유로 제가 그 음적 놈을 잡아가야 하는데···. 그···. 아무래도 찾을 길이 없어 이렇게 저부의 도움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저부, 소소의 일이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개방이 어째선지 놈의 정보를 알려주질 않아서···.”
남궁성의 설명이 끝났음에도 할 말은 잃은 누님.
소소가 음적놈에게 당했다는 말이 충격이었는지 누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오셔 남궁성의 등에 손을 올리고는, 왠지 차가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성아.”
“예. 누님. 충격이 크십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누님이 충격이 크신 것 같아 진정시키려 하자, 누님께서 남궁성의 말을 끊으며 말씀하셨다.
“성아, 내 혼례를 올리고 동경으로 온 후, 남궁가가 많이 변한 모양이구나. 분명 또 검만 휘둘러 댄 것이겠지? 가문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 이리 없다니···.”
“예?”
“내 그리 학문에도 힘써야 한다고 일렀거늘. 일단 예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맞고 시작하자꾸나.”
“누, 누님?”
누님이 학문에 항상 힘쓰라 하셨고, 똑똑한 사내를 좋아해 제갈가의 둘째 공자와 혼례를 올린 것은 알았지만,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고 있던 남궁성에게 찾아온 것은 충격.
-짜작짝!
등짝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
한 번에 삼 타.
남궁가의 장법인 천뢰삼장(天雷三掌)의 묘리가 들어있는 누님의 등짝 치기.
“꺼흡! 누, 누님.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내 정녕 주객낭중(主客郎中) 앞에서 부끄럽구나! 뭐? 음적!? 음적!? 가문의 큰 은인으로 대접하여도 부족하거늘! 뭘 베어? 정말 오라버니와 너 때문에 부끄러워 죽겠구나! 오늘 그냥 죽자! 죽어!”
“누, 누님! 진정하십쇼! 저부! 저부! 누님을 좀 말려주시오!”
그렇게 남궁성은 신나게 누님께 매타작당하고, 동경의 제갈가 앞에 꿇어앉혀져서는 누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소소가 어찌 혼례를 올리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해서 현이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되었느니라.”
“그, 그런 일이···. 현이가 그런 고초를 겪다니···.”
“가문을 위해서 큰 선택을 한 아이를 어찌 돌보지 않은 것이냐! 몰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독고가에서는 아이를 저리 노리는데!”
“죄, 죄송합니다. 누님. 내, 이. 독고가 놈들을!”
누님의 말에 남궁성이 분노에 떨자, 누님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나중에 네가 알아서 하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세가로 앞장서거라. 내 오라버니께 가서 직접 설명할 것이니!”
“아, 알겠습니다. 누님.”
그렇게 불타는 등짝으로 다시 도착한 세가에서 남궁성과 형인 검왕 남궁강천은 누님이자 여동생에게 다시금 혼쭐이 나야 했다.
생각을 좀 하고 알아보면 될 일을 대뜸 음적을 잡아 뭘 베겠다며 천풍대를 보낸 일로 말이다.
“오라버니, 제가 분명 검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찌 알아보지도 않고 음적이니 뭐니, 사람부터 보낸 것입니까!?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생각해보고, 확인해보고, 검은 제일 마지막에 뽑는 것이라고!”
“그, 그것이···.”
“아무튼 이것이 소문이나, 은혜를 베풀어준 제갈가의 접각부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두를 것이면 소소 혼례부터 서두르셔야지! 황제의 제서를 받고 어찌 그리 태평하십니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가문의 안주인이었던 여동생이자 누님의 말씀은 역시나 무서웠다.
그렇게 누님은 태풍처럼 남궁가를 휩쓸고 가셨고, 그렇게 누님이 휩쓸고 지나간 세가에서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없으신지 멍한 목소리.
“성아, 내 정신이 없어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분명 제갈가의 접각부라고 하지 않았더냐?”
“예, 맞습니다. 형님.”
“그러면 우리 소소는 소처인 것이냐? 아니면 설마 첩? 분명 제갈가 가주의 딸과 이미 혼례를 올렸다고 했으니 말이다.”
형님의 질문에 남궁성은 멈칫했다.
본인도 그 부분은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
“그, 글쎄요. 저도 그것은 듣지 못했는데···.”
“그럼 이거 제갈 가주를 한번 만나봐야겠구나.”
“어, 어째서?”
“낭궁가의 여식이 데릴사위의 첩이라니. 우리 남궁의 체면이 있지. 아무리 은혜가 깊어도 첩은 안되지 않겠느냐?”
남궁성이 생각해보니 형님의 말씀은 맞는 말씀이셨다.
어찌 남궁가의 딸을 첩으로 준단 말인가?
돈이 궁해 딸을 첩으로 주고 신부 몸값인 빙채(聘采)를 받기 위함도 아니고.
남궁가의 체면이 있지.
범인들의 집이라면 모르겠지만, 무림에서 명망 높은 남궁가에서 딸을 첩으로는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제서에도 처라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그러면 제갈가의 가주를 만나 소소의 위치를 상의 하시기 위함입니까?”
“그래, 못해도 소처 자리는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긴. 형님 그런데 생각해보니 체면도 체면이지만, 저희 가문에 대를 이를 자가 없으니 이러면 대가 끊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도 그렇구나! 얼른 제갈가로 떠날 준비를 하자꾸나!”
그런 연유로 다음 날 지친 천풍대가 다시 호북으로 쏘아진 것이었다.
이번에는 검왕을 포함해서.
***
남궁성과 검왕 남궁강천이 제갈가를 찾은 이유는 모두 제갈가의 가주를 만나기 위해서, 가문의 중대사인 소소의 문제를 제갈가의 가주와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집안의 대를 잊는 중요한 문제부터,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제갈가 접각부의 여자로 결정되었으니, 혼례도 올려야 했던 것.
또한 제갈가로 오면서 생각해보니, 황제께 제서까지 받은 상태.
여동생이 말했던 대로 어서 혼례를 올리지 않으면 황제를 기만한 것이 되니, 그건 둘의 문제를 떠나 가문의 문제가 될 수 있는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초조하게 기다리자 소란스러운 제갈가 안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검왕인 남궁강천이 기다리던 사람은 아니었다.
제갈가에서 달려 나온 사람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자는 가주가 아닌 제갈가의 우내총관(右內總觀) 허적이라는 자.
가장 앞에서 허적이라는 자가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검왕 어르신 처읍 뵙겠습니다. 우내총관 허적이라 합니다.”
가주가 나와 직접 맞아야 하는데, 총관을 내보낸 제갈가.
예의가 아닌 행동에 살짝 당황했지만, 동생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일단 연유를 묻기로 했다.
화를 내거나 검을 뽑는 것은, 확인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제일 마지막에 하는 것이라는 말을 정신이 멍해질 때까지 들었기 때문.
“제갈 가주께서는 바쁘신가? 어찌 자네가?”
“아, 아닙니다. 검왕 어르신. 때마침 자리를 비우셔서···. 혹시 어떤 연유로 찾아오셨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연통을 넣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허, 이런 낭패가···.”
마침 자리에 없다는 제갈 가주.
안타까운 듯 말하자, 총관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급하신 일입니까?”
“무척 급한 일이긴 하네. 멀지 않다면 가주께서 어디에 계신지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겠나? 우리가 그쪽으로 찾아가도 되네.”
이건 생각하고 대답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가문의 미래와 소소가 걸린 일이니 이보다 급한 일이 없었던 것.
그러자 제갈가의 우총관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먼 곳이긴 한데. 실은 저희 가주께서 접각부께서 보내신 서찰을 받고, 접각부를 만나시러 가셔서···.”
“오! 접각부! 그, 그게 어딘가? 그도 함께 있다면 더욱 잘 되었네!”
“예? 본가의 접각부를 만나보셔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네. 거기가 대체 어딘가?”
기대하는 얼굴로 묻자 제갈가의 총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것이. 사천과 감숙, 섬서의 경계에 있는 심우현이라는 곳인데···.”
그러자 대답을 듣자마자 검왕이 곧바로 소리쳤다.
“성아! 어서 사천으로 가자!”
“예! 형님!”
“어, 어르신?”
그리고 당황한 제갈가의 총관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남궁가의 천풍대가 사천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성아, 잘하면 사위 놈 얼굴도 볼 수 있겠구나. 음적은 아닌 듯한데 아비 몰래 딸을 훔쳐 갔으면 도둑놈은 맞지 않겠느냐? 얼마나 잘난 놈이지 한번 보자꾸나.”
“우리 소소에게 어울리는 놈인지 참 기대가 됩니다. 형님.”
관도를 따라 경공을 펼치는 둘의 뒤로 한층 밝아진 둘의 목소리가 봄 햇살처럼 따듯하게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