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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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시작하기 전 흘깃 벽면을 바라보자, 어제 미미를 받아들이고 곧바로 새로 써 붙인 부적이, 입구에서 흘러드는 아침 태양에 늠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제 잡아 찢은 객잔의 만(卍)자를 다시 십(十)자로 돌려놓은 것.
여난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해놓고 여자를 보낸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배반적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신도를 엿을 먹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제 안심이군.’
그렇게 다시 십자 형님께로 귀의한 나는 집 나갔다 돌아온 자식.
이쪽은 집 나갔다 돌아온 자식에 대한 대우가 좋다고 했으니 더욱더 안심이었다.
초등학생 때 교회 학교에서 들은 바로는, 집 나간 자식 돌아오면 금반지고 끼워주고 소인지 돼지도 잡아주고 뭐 그런다고 했으니까.
아내와 소소, 영영이 미미까지 다들 벽에 붙은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이냐 물었지만, 그냥 부처보다 영험한 분이라고만 이야기해두었다.
험한 중원 살아가는데 한 분 모시는 것은 필수니까 말이다.
그렇게 벽에 붙은 십자에 다소 안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옆 테이블에서 식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점주 어르신?”
“아니요. 아침 준비해줘서 고맙소.”
우리는 지금 막 아침 식사를 시작하려는 상태.
테이블에는 나와 청, 미미, 소소, 영영이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미를 받아들인 어제부터, 식사는 나와 청, 소소, 영영, 미미 다섯이서 먹어야 했다.
장인이나 장모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장모님께서 장인이 장모님을 뵈러 무리해서 경공을 펼쳐 달려와 그런지 많이 피곤해한다며, 처소로 직접 식사를 가져가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아니, 식사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수발을 직접 드시는 상태.
이틀째 처소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 아니, 감금되신 것같은 장인.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이 정도 했으면 내 할 도리는 다했고, 이제는 아무래도 장인 걱정보다는 내 걱정을 하는 게 맞았다.
지금 정작 내 코가 석 자였기 때문.
어차피 셋이나 넷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임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청이를 치료해야 한다는 대의적인 목적에 움직여 다들 참고 있던 모양이었지만, 그 목적이 사라져서 그런지, 예전에는 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면 충분했는데, 여자들이 각자 따로 개별적인 시간을 은근히 요구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내의 초야 해금으로 인하여 촉발된 미묘한 분위기가 더해져.
그것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소소, 영영이, 청이 셋일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내의 초야가 해금되고 거기에 미미까지 들어오니 다들 각자 나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은공, 제가 검을 연습하는 것을 봐주시겠습니까?”
“검 말이오?”
“예, 은공. 이번에 초식을 연습했는데 은공께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나 검 모르는데? 그래도 이건 눈치 있게 봐줘야겠지?’
“아, 알겠소. 그러면 언제?”
“새벽 일찍 뵈면 좋겠습니다.”
“새, 새벽. 알겠소.”
그런 이유로 오늘은 꼭두새벽부터 소소의 무공을 봐주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야 했으며.
“가가! 저랑 수당(獸糖) 사 먹으러 가면 안 돼요?”
“우리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느냐?”
‘아차 밥 배와 간식 배는 따로이거늘. 특히 영영이는 더욱.’
“아이 수당은 먹어도 배가 안 부르다고요. 자자 어서요.”
“그, 그래 가자꾸나.”
어제 짐승 모양 사탕인 수당을 사달라는 영영이를 데리고 저자를 다녀와야 했다.
수당은 뭐 핑계고 그냥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그리고 다녀와서는 미미와도 개인 시간을 보내줘야 했다.
무엇보다 공평해야 했고, 미미를 알아갈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 여자가 소원이라니 들어주긴 했지만, 미미에 대한 것들은 아무래도 모르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
그런 이유로 시작된 미미와의 산책.
“미미, 잠깐 걸으며 이야기 좀 하겠소?”
“예. 나, 낭군님.”
근처 물가를 걸으며 미미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어제 정신이 없어 확인을 하지 못했기 때문.
“그나저나 내 미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데,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오. 혹시 그, 자오금(子午金)이 걸려있지는 않으시오?”
자오금(子午金) 그러니까 이게 현대말로 바꾸면 현상금이라는 말인데, 새 아내가 범죄자 출신이니 아무래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투왕은 무림에서 유명한 도둑놈이니, 이집 저집 물건을 훔치다가 현상금이 붙지는 않았는지 궁금했기 때문.
그렇게 ‘너 혹시 현상금 걸려있니?’라고 물어보자, 동공에 지진이 나고 있는 미미.
미미가 아내의 눈동자처럼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그렇지. 아무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
미미의 긴장하는 모습에 되묻지 아니할 수 없는 법.
혹시라도 금군을 피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금군들이 집으로 쳐들어온다거나 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어, 얼마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미미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손가락 세 개를 세웠다.
걸스카우스 맹세하듯이, 아니면 뭔가 자기 몸값이 석 장은 된다고 말하는 느낌.
“은자 삼십 냥?”
-도리도리.
내 물음에 미미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하긴 투왕 체면이 있지. 은자 삼십 냥이라는 현상금이 말이 안 되지.’
잡도둑도 아니고 미미가 기분 나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원래 이런 일 종사자들이 이런 현상금 같은 걸로 자존심을 세운다고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
“그럼, 은자 삼백 냥?”
-도리도리.
‘이, 이것도 아니야? 그래, 중원 최고의 도둑놈인데 삼백 냥도 적긴 하네.’
얼른 수치를 수정해서 다시 물었다.
“은자 사, 삼천 냥?”
그러자 내 표정을 본 미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고개를 다시 저었다.
-도리도리.
삼천 냥까지는 어찌 커버치겠는데, 그 이후의 영역은 조금 곤란했기에 긴장된 모습으로 다시 물었다.
삼만 냥이라는 단어는 미지의 단어.
나 같은 소시민이 언급할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꿀꺽.
“으, 은자 사, 삼만 냥?”
-끄덕끄덕.
“헐···.”
위급할 때 아내만 팔아도 한몫 단단히 잡을 금액.
은자 두 냥에 돼지가 한 마리니, 미미를 팔면 돼지가 만 오천 마리.
바로 양돈 후계자 확정이었다.
그렇게 미미의 대답에 내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다급히 쏟아지는 미미의 변명.
“괘, 괜찮습니다. 낭군님. 아, 아무도 제, 얼굴과 이름을 모, 몰라요. 그러니까 드, 들킬 염려는 없어요. 마, 망할 늙은이가 계, 계속 도둑질을 시, 시켜서···. 흑···.”
다시금 눈물을 쏟으려 하는 것 같기에 얼른 미미의 손을 잡아채 양손에 꼭 쥐고 말했다.
“괘, 괜찮소. 울지 마시오. 괜찮으니.”
“하, 하지만···. 죄, 죄송해요. 이 이런 도둑년이라···.”
미미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떨구기에 얼른 가냘픈 턱을 손에 쥐고 미미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미미가 나에게 비밀 이야기해주었으니. 나도 나의 비밀 이야기를 해주겠소.”
“흑···. 어, 어떤?”
원래 말하기 힘든 비밀을 서로 나누면 친해지는 법.
미미와의 거리도 줄이고 각자의 비밀도 나누어 신뢰감도 쌓고, 일타쌍피의 방법을 시전 하기로 했다.
내 최대 비밀을 이야기해주기로 한 것.
“크흠···. 놀라지 마시오. 그러니까···. 음···. 우리 어머니도 마교분 이시오.”
“예!?”
그러자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미미.
미미가 부정하듯 말했다.
“소, 소녀가 듣기로는 범인들이 자, 잘 알지 못해 마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이, 있다고 하던데. 그, 그런 것인가 보군요. 응. 그, 그럴 수 있지요.”
‘아닌데? 우리 엄마 일반신도 아닌데?’
내 어머니가 마교 사람이라니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
하지만 내 아내가 되었으니, 확실한 진실은 이야기해주어야 했다.
“어머니는 그, 일반 신도는 아니시고···. 조금 지위가 높으시오.”
“예? 서, 설마 아장이나, 지휘사 같은?”
지위가 높다는 말에 미미는 귀엽게도 소대장이나 중대장급 정도의 위치가 아닌지를 물어왔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마교의 하꼬 직책은 아니니,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런 낮은 직책은 아니고. 조금 많이 높으신데. 그러니까 혹시 이 별호 들어보았소?”
“어, 어떤?”
“혈화마녀(血花魔女)라고 그, 마교의 장로이신데···. 호, 혹시 들어보셨소? 그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신데, 아주 마음씨가 얼굴처럼 곱고···.”
-털썩.
“미미! 미미!”
서로 간의 고백일 뿐인데 실신해 버린 미미.
자기는 삼만 냥 현상금 걸려있다고 고백해놓고, 고작 가족사를 이야기해줬는데 실신한 미미에게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중에 다시 깨어난 미미에게 잘 알아듣게 설명해주자 미미는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새, 새어머니셨군요. 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제, 친어머니나 다름없으니, 혹시 뵐 때 실례가 없도록 부탁하오. 미미.”
“무, 물론입니다. 낭군님.”
그것이 어제 저녁때까지의 일.
그 후에는 세 여자에게 기가 다 빨려 지친 몸으로 식사하고 처소로 들어갔으나 아내를 보자 다시 기운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아내가 한마디를 하기 전까지는.
침상 위에서 어제보다 능숙하게 옷고름을 잡아당기려 하자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오, 오늘은 안 됩니다. 노공.”
아니, 고작 1회 체험이었는데 안 된다는 아내.
실망스러운 얼굴로 묻자 아내가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어, 어째서 말이오?”
“부, 부상을 치료해야 하니까요.”
“부상? 아···.”
갑자기 부상을 치료해야 한다는 말에 이미 장모님이 몸도 다 치료해 주었는데 무슨 말일까 싶었지만.
그래, 생각해보니 아플 수 있었다.
전생에서 성교육을 들었을 때는 여자의 사랑은 고통을 쾌락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으니까.
“그, 그렇구료. 미, 미안하오. 부인.”
“아, 아닙니다.”
그 후에는 이제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소소의 수련을 봐주고, 아침 식사 후 영영이와 간식을 사러 가고, 저녁 전에는 미미와 산책.
그리고서 할 일은 장인을 위한 보양식 만들기.
보양식이라고 해봐야 단백질이 부족할 것 같았기에 오리탕이나 고기 요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양식까지 만들어 장인의 처소로 들여보내고, 우리끼리 식사를 마치고 나면, 침소에 드는 것이 일과.
넷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지난 일 년간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모처럼의 평화였다.
이렇게 평화롭게 일상적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뭔가 평화로운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사흘째.
미미와 한참 산책을 하고 있는데, 미미가 귀엽게도 토기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말했다.
“나, 낭군님. 개, 객잔 쪽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뭐요?”
물가와 객잔의 거리가 상당한데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미미.
긴가민가했지만, 투왕이라는 별호를 이을 정도면 미미도 허당은 아니었기에 얼른 객잔으로 달렸다.
“가봅시다!”
그렇게 객잔에 도착하자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조금 황당한 모습이었다.
객잔 입구에 수많은 검을 든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객잔 밖에서 소소가 중년의 남자와 맞다이를 하고 있었던 것.
‘뭐, 뭐냐 이건? 또 흐, 흑도 새끼들인가?’
-챙! 채챙! 스컥!
놀란 모습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소, 소소! 이게 무슨 일이오!”
그러자 내 외침에 칼부림이 멈추고, 객잔 입구에 모여있던 모든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중년 남자가 칼을 거두고는 소소를 향해 물었다.
“이 사내더냐?”
살갑던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매서운 눈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소소.
남자가 칼을 검집에 패용하고는 나에게 다가와 내 전신을 슥 훑어보더니, 내 바지춤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쓸만한걸. 자를 뻔했구나.”
그의 말에 갑자기 서늘한 가랑이.
다리를 오므리며 남자에게 소리쳤다.
“누, 누구시오! 누군데 어찌 남의 여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오.”
그러자 중년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벌써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것인가? 아비에게서 딸을 도둑질해간 도둑놈이 이리 뻔뻔할 줄이야.”
‘응? 아비? 딸?’
“처음 보는 군, 사위. 나 소소의 아비 검왕 남궁강천이라고 하네.”
‘누, 누구?’
이렇게 평화롭게 일상적이어도 되나 싶다고 생각한 새끼 정말 혼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쭉 평화롭게 일상적이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아내와의 초야에 성공하고 이제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했으니, 일퀘정도만 매일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알고 보니 아내와의 초야 클리어는 내 긴 연퀘의 또 다른 스타트일 뿐이었다.
‘연퀘 대체 어떤 새끼가 짰냐? 디렉터, 트럭 맛 좀 보고 싶냐?’
연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난이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