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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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말인가?”
살벌한 분위기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맛있는 걸 같이 먹는 것이고, 마침 저녁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기에 식사를 제안하자 되묻는 장인.
“예, 장인어른. 제가 작은 재주가 있어 가진바 재주를 장인어른께 선보이고 싶으니,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오, 그래. 내 자네가 식룡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럼 어디 사위 실력 좀 볼까?”
사윗감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어디선가 듣고 오셨는지, 요리를 만들어준다니 기뻐하는 장인.
장인이 기뻐하는 틈을 타, 소소의 위치에 관한 이야기는 분위기가 정리되면, 제갈가쪽의 어른들까지 모시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제안하기로 했다.
소소는 첩도 상관없다지만, 칠대세가의 우두머리인 남궁세가의 고명딸이 첩이라는 건 중원의 체면 문화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맞기 때문.
송나라 문화에서 첩이라는 건 아무래도 정상적인 가정에서 하인과 가족의 중간쯤 되는 비교적 낮은 위치.
해서 정실부인이 첩을 남편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가난한 집이 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하는 목적에 사용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소소를 첩으로 주었다고 소문이 나면 남궁가는 딸 팔아서 먹고산 만큼 쪼들리는 가문이라는 광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다른 칠대세가에게 쪽이 팔리는 것.
체면문화라는 것이 알고 보면 큰 땅덩어리에 인간이 너무 많이 모여 사니 경쟁자도 많고,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에서 생겨난 문화인데, 이렇게 개쪽을 팔면 남궁가의 위신이 깎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소를 처나 소처로 받아줄 수도 없었다.
송나라의 법 제도는 처도 하나이지만, 소처도 하나만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
그런 이유로 둘 다 티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를 하고 싶다는 분들은 줄을 섰는데, 티오가 없네···.’
그리고 이거 아무렇게나 처리하거나 대충 뭉갰다가는 잘못하면 집안싸움이 날 수 있는데, 이 집안싸움은 단순히 집안싸움이 아니라 중원의 거대세력 두세 개가 엮인 개판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주 신중해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였다.
‘이래서 가정의 평화가 중원의 평화인가?’
망할 땡중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아련히 울려왔지만, 이제 땡중의 말을 신뢰하지 않기로 했기에, 생각을 정리해 이 문제는 일단 양가의 어른들과 상의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장인에게 제안했다.
“예, 그리고 소소의 위치 이야기는 제갈가의 어른들과도 상의해야 하니, 저 혼자서는 당장 결정을 내리기 힘든 부분입니다.”
“아, 그렇지! 여기 제갈 가주도 와 있다 들었는데, 왜 그는 보이지 않는가? 그와도 이야기해야겠군.”
제갈가 어른에 대해서 언급하자마자 장인을 찾는 장인.
그런데 갑자기 머리에 오류가 떴다.
머릿속에서 호칭이 겹쳐버리는 것.
일단 머릿속에서 호칭부터 정리해야 했다.
장인이 현재 둘이고 더 늘어날 것 같으니 호칭 정리가 필수였던 것.
‘아니, 이러면 호칭이 겹친다. 뭐라고 불러야 하냐······. 첫째 장인 둘째 장인도 이게 분류가 안 되고. 그래! 청이의 아버지는 제갈장인. 소소의 아버지는 남궁장인으로 불러야겠구만. 그럼 영영이 아버지는 당장인? 아 뭔가 이상한데? 에라 모르겠다. 남궁장인, 제갈장인, 당가장인으로 가즈아.’
그렇게 얼른 호칭을 정리하고 생각해보니, 나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객잔에 제갈 장인이 있었던 것.
제갈가의 어른을 모시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객실 안에 장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그런데 대체 이 사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며칠 전을 마지막으로 며칠째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걸 생존하고 있는지로 해야 할지, 아니면 생존했었던 것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환자로 처리하기로 했다.
“아, 그. 병환 때문에···. 잠시 기다리시면 제갈가의 안주인이신 장모님께서 오실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될 것입니다.”
장인보다 장모가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쪽은 검왕이 왔는데 같은 팔왕급인 북해빙궁주 정도는 나서야 모양이 맞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장모에 대해서 언급하자, 제갈 장인이 십구 년 독수공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외라는 표정으로 묻는 남궁 장인.
“제갈가의 안주인?”
“예, 제 아내의 친모이신 분입니다.”
“오, 그런가? 그래, 그럼 잠시 기다리지.”
일단 장인을 식당에 자리 잡게 하고 소소를 끌고 나가기로 했다.
얼굴 마주하고 있어 봐야 괜히 싸움만 날 것 같았기 때문.
“소소. 소소도 따라오시오.”
“알겠습니다. 은공.”
재빨리 소소를 일단 부엌으로 끌고 들어가자, 부엌 안쪽 몸을 숨기고 밖을 흘깃거리고 있다가 튀어나오는 영영이와 미미.
영영이가 나를 와락 끌어안으면서 촉촉한 눈망울로 물었다.
“가가, 저 소처 못해요?”
미미가 손가락을 꼬물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를 듣고 영영이에게 알려준 모양이었다.
분명 아까 소리를 잘 듣는 재주 같은 것이 있었던 느낌이었으니까.
미미까지는 아직 좀 어색하긴 하지만, 나는 바로 팔을 크게 벌려 셋을 품 안에 안아 들었다.
아름드리나무를 안은 것처럼 꽉 차는 품 안.
조금 과한 따듯함이 느껴졌지만 책임지기로 했으니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나는, 누굴 소처로 누굴 첩으로 그렇게 나누고 싶지는 않구나. 영영아. 셋 다 아니, 넷 다 내 처로 맞고 싶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 방법을 찾아볼 테니.”
‘오빠만 믿어 영영아. 오빠 못 믿니?’
그렇게 말하고 나자 따개비같이 달라붙는 셋.
세 여자가 내 몸통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말했다.
“가, 감사해요. 가가.”
“은공,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낭군님, 소녀는 낭군님만 믿습니다.”
‘이래서 거북이에 따개비가 많이 달라붙으면 거북이가 죽는구나.’
그렇게 따게비들이 달라붙은 거북이처럼 셋의 꽉 조여오는 사랑에 벅차하고 있을 때.
“에그머니!”
달걀과 돈을 찾는 식모의 목소리.
식모가 부엌 안으로 들어서다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치다가 문지방에 걸려 뒤로 넘어간 것.
“괘, 괜찮으시오?”
붙어있던 따개비들이 화들짝 놀라, 파도 만난 갯강구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얼른 다가가 식모를 일으켰다.
그러자 흘러나오는 어색해하는 식모의 목소리.
“하, 하하. 이야기는 들었는데 직접 보니. 다, 당황하게 되네요. 저, 점주 어른.”
얘들이 다 신부 후보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기에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넷이 엉켜있으니 오류가 난다는 말.
나도 오류가 나니 그럴 수 있었다.
일단 관심을 다른 데 돌리기 위해서 식모에게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아직 저녁 식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니까.
“크흠. 미, 미안하게 되었소. 식모. 그런데 부엌에는 어찌?”
“아! 방 준비가 되었는데, 어느 분들을 안으로 모실까요?”
방을 치우고 준비시키라고 했는데, 그것이 준비된 모양이었다.
“일단 장인어른을 안으로 모시게, 소소 혹시 같이 오신 분 중에 높은 분이 있소?”
“아, 저희 숙부께서 같이 오셨어요.”
아까 밖에서 장인이 신나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숙부님인 느낌.
나중에 인사하고 두 분을 안으로 모시라고 이야기했다.
“일단 두 분을 안으로 모시고 무사들은 뜰이나 식당에서 쉬도록 해주시오. 차도 좀 내가고, 말이오.”
“알겠습니다. 점주 어르신.”
식모가 하인들과 점소이를 불러 다시금 밖에 손님을 접대하기 시작했고, 그사이에 우리는 요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가가, 그런데 무슨 요리를 하실 건데요?”
요리를 하려는 것을 알고 있던 영영이가 무슨 요리를 할지 궁금한지 물어왔다.
하지만 아까 분위기를 피하려고 꺼낸 말이니, 무슨 요리를 할지는 지금부터 생각해볼 문제.
먼저 장인이 어떤 요리나 재료를 좋아하는지를 소소에게 물었다.
“글쎄, 지금부터 생각해봐야겠지. 소소, 혹시 장인어른이 좋아하시는 요리나 재료가 있으시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긴 소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특별히 좋아하시는 것도 싫어하시는 것도 없습니다.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적게 먹으면 몸이 약해지니, 검을 익히는데 필요한 정도로만 드십니다.”
“그, 그렇소?”
조금 당황스러운 대답.
모든 사이클을 검이라는 것에 맞춘다는 이야기.
아무튼 가리는 것은 없다니 다행이랄까.
‘그러면 재료는 무엇을 써도 상관없을 테고.’
고민하는데 들려오는 소소의 의견.
“저번처럼 황산돈합(黄山炖鸽)은 어떠신지요?”
호적 팠다고 주장하면서도 아버지의 요리니, 맛있고 좋은 요리를 내서 내가 좋은 점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있는 적극적 의견.
하지만 황산에서 오신 분에게 대접하기에는 파워가 좀 약했다.
소소의 오라버니인 형님처럼 황산이 생각나 먹는 음식이 아니라면, 황산돈합 자체는 그리 뛰어난 풍미나 맛을 가진 요리는 아니기 때문.
일단 소소의 적극적 의견에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남궁 장인에게 어떤 요리를 대접할지.
대충 형님의 독/고 사건의 이야기를 소소와 형님의 관점으로 모두 들어본 제삼자의 입장으로는, 장인은 약속을 중요시하는 정의로운 사람.
딸이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었음에도, 확인해보면 욕심이 생길까 싶어 확인조차 안 하고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을 보면 그런 성향임이 분명했다.
마음을 쉽사리 내비치지 않고 말도 적은 그런 사람.
그러니 소소가 토라졌을 테니까.
거기에 소소의 오라버니인 형님의 단전을 자기 손으로 직접 폐했다는데, 자식에게 무림인으로서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그 후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니, 소소가 ‘나는 이렇게 힘든데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그러면 소소랑 장인 눈물이나 빼볼까?’
식사하면서 둘의 화해도 시켜야 했으니.
오늘 요리는 둘의 눈물을 쫙 빼게 할 요리 확정이었다.
눈물 콧물 짜면서 부녀의 사랑을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결정이 끝났으니, 미미, 소소, 영영이에게 임무를 내리기로 했다.
우선은 미미.
“미미, 난주 근처에서 오리를 잡아다 준 것을 기억하는데, 혹시 오리 같은 새를 잡아 올 수 있소? 아직 움직이는 것은 무리이려나? 그러면 영영이를 보내야 하나?”
“아, 아뇨. 낭군님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움직이는 것은 충분해요. 어떤 오리를 잡아 올까요?”
미미가 움직일 수 있다고 대답하기에, 같이 산책하던 물가에 있던 원앙 같은 녀석을 잡아다 달라 부탁했다.
“우리가 같이 산책하던 물가에서 보았던 그 작은 오리들 기억하시오?”
“예, 물론입니다. 한 쌍이 노니는 것이 아주 예쁘다고 하셨지요.”
“오늘 몇 놈을 홀아비로 만들어야 할 것 같소이다.”
내 말에 움찔하는 미미.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얼른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다음은 영영이.
“영영아, 나와 함께 저자에 갔을 때 보았던 비둘기 기억하느냐?”
“아, 기억하고 말고요. 비둘기를 잡아 오면 되나요?”
“그래, 그 비둘기를 잡아 오려무나.”
수당을 사러 갔을 때 저자에 모여있던 비둘기들을 잡아오라 부탁하자 영영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가가.”
“저는 무엇을 하면 되나요. 은공.”
그러자 마지막 남은 소소가 자기는 무엇을 하면 되냐고 물어왔다.
소소야 있다가 눈물을 빼야 하니, 물을 많이 마시고 쉬면 되는데, 그래도 또 이 임무라는 것도 심부름일 뿐이라도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법.
원래는 영영이에게 둘 다 시키려고 했는데, 남은 것은 소소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소소는 영영이를 따라가 저자에서 큰 오리를 몇 마리 사다 주시오.”
“큰오리? 알겠습니다. 은공.”
“아, 그리고 화퇴(火腿), 계순(雞肫)、계간(雞肝)도 같이 부탁하오.”
“예. 화퇴, 계순, 계간. 알겠습니다.”
그렇게 세 여자가 내 이야기를 듣고 저자와 물가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남궁가 부녀의 눈물을 쏙 뺄 요리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