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투압(三套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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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영영이, 소소, 미미가 재료를 구하러 달려 나가고 시간이 좀 지났기에 이제는 하나씩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큰 솥에 오리의 털을 뽑는 데 사용할, 뜨거운 물이 뿌연 증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리고 역시나 노을이 막 지기 시작하는 붉은 보석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세 아가씨가 각자 맡은 재료를 한아름씩 가지고 도착하기 시작했다.
“나, 낭군님! 미미 도착했어요!”
역시나 제일 처음은 미미.
마감 시간을 준 것도 아닌데, 헐레벌떡 도착한 미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부탁했던 것을 내 앞에 내밀었다.
부엌 안을 슬쩍 살피고는 자기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는 것을 기뻐하는 얼굴로 말이다.
하지만 미미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탈진에서 백 프로 회복하지 못한 미미를 생각해 제일 가까운 곳으로 보냈고, 또 중원에서 제일 빠르다는 미미이기에 당연히 제일 일찍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
“고생했소. 미미. 몸은 괜찮소?”
일단 도착하자마자 혹시 무리하게 움직여 덧이 나는 건 아닌지 그녀의 몸 상태부터 체크하자, 그녀가 내 물음에 조그맣게 대답하며, 부끄러운 듯 양손에 내밀었던 것으로 붉어진 자기 얼굴을 가렸다.
“네, 나, 낭군님.”
그녀의 부끄러운 목소리와 함께 나의 시야를 가린 것은 대롱거리는 오림의 몸통.
그녀와 나 사이를 가린 것은, 짝 잃은 축 늘어진 원앙 비스름한 작은 오리 친구들이었다.
내 말대로 미미는 대량의 원앙들을 홀아비로 만든 모양이었다.
내가 무척 참혹한 명령을 미미에게 내린 것 같지만, 다 이것도 정의 구현.
사람들이 원앙은 평생 한 쌍이 정답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바람둥이 자식도 없는 것이다.
이놈 새끼가 정답게 암컷을 따라다닐 때는 짝짓기 전이고, 교미를 하면 바로 날아가 다른 암컷을 찾는 것이 원앙.
그러니 일종의 혼쭐인 것.
그리고 무슨 원앙을 먹나 싶을 테지만, 이 친구들도 오리과.
오늘 할 요리에 큰 오리와 작은 오리가 각각 하나씩 필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어디 보자, 아주 통통하군요. 잘 잡아 왔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낭군님. 쓰, 쓸모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미미의 얼굴을 가린 오리를 받아들자 얼른 고개를 돌리는 미미.
미미는 대담한 행각을 일삼은 도둑들의 대장치고는 부끄러움이 많은 여인이었다.
낭군이라는 당나라 시대의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이 시대로 치면 고전적 미인이랄까?
내 처지에서는 전부 고전적 미인 이지만.
“저쪽에 앉아서 쉬고 있겠소?”
“네···.”
혹시라도 몸이 불편할 수 있으니, 일단 미미를 부뚜막에 앉아 쉬게 하자, 곧이어 부엌의 입구로 영영이가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양손에 주렁주렁 새끼에 꿴 비둘기를 힘차게 쥐불놀이하는 것처럼 흔들면서 말이다.
얼마나 휘두르며 왔는지, 비둘기들의 눈알이 다 튀어나와 있는 채로.
“가가! 합자(鴿子 비둘기) 잡아 왔어요!”
이렇게 많은 비둘기는 필요 없는데, 스무 마리는 되는 비둘기.
일단 얼른 영영이에게 소독을 명했다.
“영영아 얼른 손부터 씻거라.”
“네? 손요? 왜요?”
내 손을 씻으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영영이.
빈대나 벼룩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매일 목욕하는 오리보다는 더러운 것이 비둘기.
전생에 그래서 비둘기는 쥐둘기나 닭둘기로 불리지 않았던가.
“비둘기는 좀 더러우니 만지면,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느니라.”
“그런가?”
“그래. 몸이 아플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 오라버니는 위생에 아주 민감하단다.’
“아, 가가께서는 의술도 많이 알고 계셨죠? 네, 알겠어요. 가가.”
그렇게 영영이가 비둘기가 주렁주렁 엮인 새끼를 부엌에 던져버리고는 손을 씻으러 우물로 가자 이어서 도착한 것은 소소.
소소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부엌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은공, 다녀왔어요.”
품에 안은 대나무 바구니에 가득 담긴 물건들.
새색시가 마트를 다녀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수고했소, 소소.”
“아니에요. 은공. 은공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소소는 저자에 들러 오리를 사고, 화퇴(火腿 훠투이), 계순(雞肫)、계간(雞肝)까지 사와야 했기에 시간이 걸려 제일 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소소에게 부탁한 물건은 집오리 몇 마리와 화퇴, 계순, 계간.
계순과 계간은 닭의 간과 모이주머니 그러니까 닭똥집.
화퇴는 햄이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다른 건 모르겠는데 무슨 천 년 전, 송나라에 말도 안 되게 햄이냐 하겠지만, 어이없게도 햄이 있다.
처음에 중화요리를 배울 때 나도 얼마나 당황했던지.
전생에 요리를 배울 때 가끔 재료에 햄이 등장하곤 했는데, 그때는 그냥 퓨전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돼지 다리로 만든 중국의 전통 햄이 있다고···.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랬다.
‘아, 이 새끼들 이젠. 하다, 하다 햄 공정이냐?’
역사도 유물도 김치도 다 중원의 것이라고 우기는 그런 것으로 생각했던 것.
전통 햄이라는 것을 받아 들었을 때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기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하몽이랑 엄청 똑같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만드는 방식도 비슷하다.
훈제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소금으로 염장해 자연풍으로 건조 시킨 햄.
다만 먹는 방식이 하몽은 얇게 잘라 빵에 끼워 먹거나 샐러드와 먹고는 그런다지만, 중원에서 만들어지는 햄은 엄청나게 짜서 보통 요리에 넣어 재료로 사용한다.
일단 소소가 꺼낸 화퇴를 한번 살펴보고 옆으로 치워두었다.
그리고 재료도 도착했고 저녁도 지척이니 바로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럼 필요한 오리와 비둘기는 다 잡아 왔고, 재료도 사 왔고 슬슬 시작해볼까?’
“누가 가서 식모와 하인들을 불러와 주겠소?”
“제가 다녀올게요. 가가.”
영영이가 휭하니 밖으로 달려 나가고, 부르러 간 사람들이 근처에 있었던지 얼마 안 돼 식모와 하인들을 금방 데려왔다.
부엌으로 들어서는 식모를 향해 부탁했다.
“식모 오늘은 저녁 식사를 조금 일찍 준비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점주 어르신. 사람도 많으니 그러면 만두를 찔까요? 찬으로는 간단한 채소볶음 정도만 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여기 오리와 비둘기들은 내가 요리에 필요한 녀석들을 제외하고 사용해도 좋소.”
“그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채소와 같이 볶아야겠습니다.”
“좋소이다. 아, 그리고 오리를 좀 손질해주시겠소이까? 배를 가르지 말고 손질해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점주 어른.”
남궁 장인이 끌고 온 무사들이 많아 번거로운 요리를 준비하기 힘드니, 간단하게 하자는 식모.
어차피 우리 식구들, 남궁 장인의 상과 장모, 생사불명인 제갈 장인의 식사만 신경 쓰면 되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오리의 손질도 하녀들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오늘의 요리 시작.
한쪽에서 만두에 쓸 밀가루를 식모가 반죽하고, 죽은 오리들에 끼얹어진 뜨거운 물에 비린내가 솟아올랐다.
오늘 요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집오리, 야생오리, 비둘기.
하인들이 손질해 한 마리씩 내가 보내는 새들을 받아 손질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필요한 것은 작은 칼.
영영이에게 비수를 부탁하기로 했다.
“영영아 비수 좀 빌려주겠느냐?”
대부분 요리는 중원의 요리 칼인 채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오늘 만들 요리만큼은 작은 칼이 필요했다.
“네, 요리에 쓰실 거죠? 독이 안 발려있는 걸 드려야겠네.”
독이 발려있는지 확인해본다면서 비수를 하나씩 입에 대보는 영영이.
“아, 여기 있다. 여기요 가가.”
“도, 독은 괜찮은 것이냐?”
“헤헤. 그럼요. 이정도는 그냥 사당 찍어 먹는 것과 비슷해요.”
“그, 그래. 고맙구나.”
뭔가 독이 발려있는지 알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이 있을 테지만, 설탕 찍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영영이.
어쨌든 괜찮다니 어쩌랴 영영이의 비수를 받아 손질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손질할 것은 무엇보다 비둘기.
왜 작은 칼이 필요하냐 하면, 비둘기의 내장을 뺀 작은 구멍으로 칼을 넣어, 고기와 가죽만 남기고 뼈를 모두 분리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놈은 땀이 줄줄 나지만 먹는 놈은 정말 편한 요리가 이 요리.
작은 비수로 엉덩이 부분부터 뼈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비둘기의 작은 목둘레 안으로 비수의 끝을 넣어 목과 가죽을 분리해주고, 엉덩이 구멍으로 비둘기의 살과 가죽에서 뼈를 분리해 밖으로 빼냈다.
처음에는 목과 꼬리 쪽부터.
날개와 다리 같은 단말 부분은 제일 마지막에 관절에서 꺾어 분리해줬다.
그리고 손질 과정에서 금방 벗어둔 양말처럼 뒤집힌 비둘기를 다시 훌렁 뒤집어주면 발골이 완료된다.
그렇게 한 마리의 손질이 끝나자 내 앞에 완성된 것은 정말 기묘한 무엇.
뼈 없는 순살 통 비둘기랄까?
뼈가 녹아버려 가죽만 남은···.
“가가, 이거 뭔지 신기해요.”
“이런 정교한 칼 놀림은 처음 봅니다. 은공.”
소소와 영영이가 감탄하고 특히 소소가 이런 손재주는 처음 본다며 엄청나게 칭찬을 해줬다.
하긴 큰 오리는 모르지만, 진짜 통으로 된 비둘기 고기에서 뼈를 발라내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먹을 때 편하시라고 미리 뼈를 발라두는 것이란다.”
“아아. 그렇군요.”
손질하는 시간은 별개로 하고, 다들 한 마리 손질한 것으로 나를 엄청나게 칭찬했지만, 비둘기만 손질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비둘기와 마찬가지로 야생오리와 집오리도 똑같이 뼈를 발골해주어야 하는 것.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기에 서둘러야 했다.
-탁탁.
-콱.
-뚜둑.
근육과 힘줄을 끊는 소리.
뼈를 연골에서 분리하는 소리만이 가득한 부엌.
그렇게 비둘기부터 오리까지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다해 뼈를 발골해주자 내 앞에 있는 것은 비둘기와 오리의 거죽들.
요괴가 사람을 잡아먹고 가죽을 뒤집어쓰기 위해 대기시켜둔 것처럼, 가죽과 고기만 남은 오리들이 도마 위에 빈대떡처럼 엎어져 있었다.
“낭군님. 그런데 이게 뭔가요? 좀···. 어 모양이.”
‘기괴하긴 하지’
미미를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기괴한 모습에 뭘 만들지 상상이 안 가는지 물어오는 미미를 잠깐 대기시키고, 바로 다음 작업을 이어갔다.
다음 작업은 웍을 화로에 올려 소금을 구워주고, 구운 소금과 간 후추를 섞어 새들의 밑간을 해주는 것.
-촥촥.
새로 온 미미까지 있으니 멋있게 머리 위까지 손을 올려 소금을 뿌려주자 역시나 들려오는 미미의 감탄.
“머, 멋있습니다. 낭군님.”
‘하긴 뭐 미미에게는 지금 뭘 보여줘도 멋있을 테지.’
들려오는 찬사를 뒤로하고 소소가 사온 화퇴(火腿 훠투이), 계순(雞肫)、계간(雞肝)을 작게 다지고, 여기에 표고버섯과 죽순을 다져서 섞어 주었다.
이것은 모두 비둘기의 배 속을 채울 속.
소금과 후추를 뿌려둔 비둘기 배를 이것으로 꽉 채워주었다.
그렇게 빵빵해진 비둘기를 손질하느라 난 두 개의 구멍.
그러니까 목 쪽의 구멍과 엉덩이 쪽에 뚫린 구멍을 꿰매주면, 빵빵한 풍선 같은 비둘기가 완성된다.
이 비둘기를 야생오리의 배 속에 넣고 꿰매준 후.
야생오리를 집오리의 배 속에 넣고 꿰매주면 오늘의 요리의 메인 준비가 끝이 나는 것.
다진 죽순, 표고, 닭간, 닭똥집을 다져 비둘기의 속을 채워주고.
마트료시카처럼 그 비둘기를 야생오리 안에, 야생오리를 집 오리 안에 넣어 조리하는 요리.
다만 여기서 조금 이해 못할 과정이 있는데, 집오리의 목에 뚫린 구멍으로 야생오리의 머리를 꺼내주고, 야생오리의 목에 뚫린 구멍으로 비둘기의 머리를 빼주어야 한다.
그러면 집오리 몸통에 오리 머리 두 개와 비둘기 머리를 가진 모습의 기괴한 녀석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중원의 오리 케로베로스 요리.
이름도 익숙한 삼투압(三套鴨).
농도가 다른 액체가 이동하는 동음이의어 삼투압 현상 말고.
석 삼(三).
덮개 투(套).
오리 압(鴨).
세 개의 외투를 가진 요리.
소소를 품은 형님을 장인이 품은 요리.
이것이 이 요리사가 장인을 대접하는 요리 삼투압인 것이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