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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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탁.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도자기 냄비와 화권이, 나무로 만든 식탁 위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식모가 가져온 오리고기를 넣은 채소볶음과 몇 가지 간단한 요리가 뒤따라 식탁 위로 향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이지만 대충 구색을 갖춘 한 상.
송 시대 손님 대접에는 갱이든 탕이든 국물 요리는 예의상 필수이니, 구색이 맞춰진 것이었다.
그렇게 세팅이 끝나고 제일 먼저 삼투압이 든 도자기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화아악.
냄비의 뚜껑을 열자, 뿌연 수증기와 함께 흘러넘치는 그윽한 향.
“오오. 내 사윗감이 직접 만든 요리라니. 어디.”
남궁 장인이 뚜껑을 열자 솟아오르는 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 흠뻑 향을 들이켰다.
그리고 곧이어 감탄한 듯 향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오, 이것은 죽순과 향고의 향인가? 훌륭하구나.”
하지만 뿌연 김으로 된 보자기가 한 꺼풀 벗겨지자마자 드러난 요리의 모습에 장인은 놀란 듯한 음성을 내뱉었다.
“허허, 난생처음 보는 요리이구나. 이런 모습이라니.”
누구라도 케르베로스 오리탕인 삼투압을 보면 저런 반응 당연했다.
솔직히 유교의 영향을 받아 대가리까지 온전히 요리하는 중원이어서 그렇지, 당장 한국이나 서양에서 저런 요리를 만든다고 치면 괴식 또는 엽기라는 말이 따라붙을 테니까.
큰 오리 몸통에 쏙 삐져나온 대가리 세 개.
아무래도 기괴한 모습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탕 자체의 맛이 나쁘지 않고 외견을 제외하면 삼계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며, 장인과 소소를 위한 메시지를 담은 요리이니, 얼른 식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소소, 숙부님을 모셔 오시겠소?”
먼저 소소의 숙부께서 보이지 않기에 소소에게 숙부님을 모셔 오라 부탁했다.
검왕이랑 같이 와서 그렇지, 남궁가의 둘째라면 어디 가서 빠지는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
어지간한 가문의 가주나 장로급이니, 무사들과 식사하게 둘 수는 없었던 것.
“알겠습니다. 은공.”
그렇게 잠시 후 방에서 쉬고 계시던 소소의 숙부까지 모시고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탁에 자리를 잡은 사람은 나와 영영이, 소소, 미미, 청, 장모님과 남궁 장인 그리고 그의 동생인 남궁 숙부님.
앞 접시를 하나씩 분배하고 식을까 싶어 화권을 덮고 있는 대나무 채반을 얼른 열었다.
뚜껑을 열자 드러난 것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탐스러운 꽃처럼 피어난 화권.
밀가루 반죽을 세 번 접어 자른 반죽 두 장을 겹쳐 가운데를 세로로 눌렀으니, 총 열두 겹의 흰 꽃잎이 여름을 맞은 것처럼 탐스럽게 대나무 찜기 안에서 피어나 있었다.
“어머.”
한 송이 탐스러운 백모란꽃(白牡丹花 흰목단꽃) 같은 화권들이, 뽀얀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어 식구들을 맞이하자 들려오는 놀란 아내의 목소리.
“노공, 이건 무엇인가요?”
그 모습에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꽃 같은 만두는 처음 보니 아마도 신기한 모양.
그녀에게 눈앞에 있는 만두의 이름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부인, 화권이라고 하는 꽃 모양으로 빚은 만두요.”
“화권···.”
그리고 같은 여자라 그런지 기뻐하는 장모님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어머. 정말 예쁜 만두군요. 꼭 흰 모란꽃 같습니다. 제가 이십 년 전에 중원에 모란꽃을 보러왔다고 말씀드렸던가요. 사위님?”
‘장모님께서 꽃을 좋아하셨구나?’
이십 년 전 중원 구경을 오셨다 장인을 만났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장모님의 이름인 빙설화처럼 꽃을 좋아해 중원으로 꽃구경을 오셨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십 년 전에 중원은 닉값을 하려고 오셨던 모양.
꽃을 좋아하는 것은 진심인지 밝은 장모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북해는 꽃도 보기 힘든데, 탐스러운 흰 꽃 같은 만두라니. 제가 사위님 덕분에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살짝 촉이오는 느낌.
‘잠깐. 이거 장모님 성함이 빙설화에 꽃을 좋아하시고, 내가 만든 화권도 흰색?’
생각해보니 장모님 성함이 빙설화, 화권도 흰 꽃, 거기에 장모님이 좋아하신다는 백모란꽃을 닮은 화권.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
재빨리 장모님을 향해 설명했다.
“하하하, 이 사위가 자, 장모님을 생각해서 만든 요리. 화권. 다른 이름은 ‘설화’라고 하고 싶은데, 어찌 제 미천한 요리에 장모님의 존함을 붙여도 되겠습니까? 흰 눈꽃 같은 만두이기에 실례인 줄 알지만, 감히 여쭐 수밖에 없군요. 장모님.”
그리고 얼른 대나무 채반 안에서 김을 피워올리는 화권 하나를 장모님의 앞 접시에 올려드렸다.
나는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남자.
시기적절한 행동이었는지 소녀처럼 기뻐하는 장모님.
“어머, 우리 사위님. 감사하군요. 저를 위해 특별히 만드셨다니, 꽃을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이 요리에 제 이름을 붙여준다니. 우리 사위님은 아주 낭만적인 분이시군요.”
“아하하, 장모님과 청이의 모습이 마치 한 떨기 흰 목단꽃 같으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달까?”
“좋습니다. 사위님. 설화···. 눈꽃 같은 만두라···.”
장모님의 나에 대한 평가점수가 치솟는 느낌.
마치 머릿속에서 ‘촤르르르륵’ 하는 점수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장인도 도달하지 못한 점수에 도달해 전광판 제일 꼭대기에 딱 내 이름을 새겨둔 느낌이랄까?
장모님이 크게 기뻐하시니 작전 성공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메인 손님은 아무래도 남궁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어색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남궁 장인과 남궁 숙부님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셨는지 장모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손님들을 모시고. 이 무슨 추태인지.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서 식사하시지요.”
이쪽의 제일 어른인 장모님의 식사를 권하자, 그제야 남궁 장인과 남궁 숙부도 젓가락을 들었다.
“감사합니다. 궁주. 어서 드시지요. 자 모두 같이 들자꾸나.”
장인의 말과 함께 시작된 저녁 식사.
장인은 제일 처음 삼투압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아마 가장 신기하게 생긴 요리이니 궁금했던 모양.
-주르륵.
장인이 젓가락으로 삼투압의 배를 가르자. 안에서 뜨거운 김이 한번 훅하고 솟구치며 기름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속으로 채웠던 다진 햄, 표고, 죽순이 드러났다.
그리고 햄, 표고, 죽순이 갈라진 오리의 배를 따라 흐르는 기름과 함께 옆으로 흘러내리자, 그 사이에서 빼꼼하고 배를 드러나는 작은 오리.
“오호. 역시나.”
“형님, 뭐가 이리 신기합니까?”
처음 보는 요리의 모습에 남궁 숙부님이 신기해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장인이 작은 오리의 배마저 가르자, 안에서 배가 빵빵한 비둘기가 튀어나와 장인을 맞이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장인의 젓가락이 스르륵 비둘기의 가슴을 가로지르자, 떡 벌어진 비둘기의 가슴 가운데 소복하게 솟아 올라와 있는 속으로 채운 양념들.
표고의 은은하면서도 진한 향과 햄 특유의 풍부함, 거기에 죽순의 담백함이 어우러진 향긋한 속.
세 가지 재료가 오리와 비둘기의 기름에 익혀져 고소하고 담백한 향기와 함께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누가 저 모습을 참을 수 있으랴.
남궁 장인도 마찬가지였는지, 장인이 양념과 비둘기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얼른 입안으로 가져갔다.
“세 마리 새로 만든 요리라니. 젓가락으로 배를 가르니 안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새가 무척 재미있는 요리입니다. 형님.”
하지만 장인은 남궁 숙부님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들려오는 남궁 숙부님의 목소리 사이로 남궁 장인의 감탄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살이 이리 부드럽고, 향긋한 향고와 죽순의 향이 배 아주 은은하고 맛있구나.”
“오오. 정말입니다. 진한 오리의 기름이 여러 가지 재료들과 어우러져 아주 담백하고 맛있습니다.”
자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장인을 따라 얼른 삼투압을 맛본 숙부께서 장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어찌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나도 좋네.”
두 분 모두 만족하신 느낌.
하지만 맛만으로 만족해하시는 것은 곤란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장인을 향해 삼투압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화권을 빙궁주이신 장모님을 생각해 만들었다면, 드신 요리는 남궁가를 생각하면 만든 요리. 요리의 주인들이 마음에 드신다니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군요.”
“오! 우리 가문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아니, 그런데 어찌 이리 생긴 것이 기괴한 요리인가?”
의도했던 질문이었지만, 질문을 한 것은 장인이 아니라 숙부.
남궁가라면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왕검형(帝王劍形) 같은 것을 메인 무공으로 가지고 있는 검가.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머리 셋 달린 오리와 연관된 어떤 것도 없으니, 남궁 숙부께서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로 말씀하실밖에.
하지만 숙부님은 갑자기 손바닥을 짝하고 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
“아! 설마 천뢰삼장(天雷三掌)을 생각해 만든 요리인가? 한 번에 세 번의 장법이 나가는 천뢰 삼장을 떠올리고 만든 요리라면 이해가 가는구만. 제갈가에 시집가진 누님의 성취가 높으신 무공이었으니. 한번 견식을 한 적이 있는 모양이었군?”
왠지 자기 등짝을 긁으며 말씀하시는 남궁 숙부님.
하지만, 천뢰삼장이 뭔지 나는 모르는 무공.
세 번을 치든지 네 번을 치든지 알게 무엇인가.
“아, 아닙니다. 숙부님.”
“아니야? 그럼?”
숙부님의 말씀에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되묻는 숙부님.
그냥 두면 자꾸 헛다리만 짚으실 것 같아, 얼른 연유를 이야기했다.
“제가 남궁현 형님의 목숨을 구하고, 소소와 형님께 가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경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남궁 장인과 숙부님의 시선이 소소를 향했다.
사위 될 사람에게 뭐 그런 이야기까지 했냐는 시선 같았지만, 말을 이었다.
“해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이것이 남궁이구나.”
“그래 자네가 느낀 남궁은 무엇이었나?”
“소소가 화퇴와 죽순, 향고 같은 뛰어낸 재주와 따듯한 마음을 품었으니 그것이 합자(鸽子 비둘기).
남궁현 형님이 그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비우고 동생만을 품었으니 야압(野鸭 야생오리).
검왕께서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오라비의 소원을 고통으로 품었으니 압자(鸭子 집오리).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고통도 죽음도 불사하는 남궁의 정신이 담긴 요리.
사랑하는 가족을 온전히 가슴에 받아들이는 요리.
삼투압(三套鴨).
이 요리사인 사위가 남궁이라는 가문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바치는 요리이옵니다.”
“······”
내 말이 끝나자 찾아온 정적.
-팅그렁. 투툭. 툭.
숙부님께서 들고 계신 젓가락을 그대로 떨구는 소리만이 정적 속에서 들려왔다.
-뚝. 뚝.
“끄흐읍.”
그리고 곧이어 누군가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소소인 줄 알았으나 눈시울만을 붉히고 있는 소소.
다시금 장인 쪽을 확인하자, 장인 옆의 남궁 숙부께서 아랫입술을 깨문 모습으로 물결치는 파도처럼 턱을 떨며 울음을 참아내고 계셨다.
원래 조폭들이 가족이니,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거니 이런 단어에 환장하는 분들.
그래서 중원 조폭들이 꽌시에 환장하는 법.
중원 조폭의 감성을 자극하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남궁가의 행동대장쯤으로 보이는 숙부님은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지, 곧이어 참던 눈물을 좔좔 흘리며 말씀하셨다.
“혀, 형님. 우, 우리 가문이. 사, 사위를 무척 잘 얻은 것 같습니다. 크흡···. 음 적인 줄 알고 잘라버렸으면 크,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그, 그런 일이 있었나?’
사시미 전문 조직이라고 소소를 내가 채갔다는 말에 그런 계획을 진행 시켰었다니, 어딜 자를지는 뻔했고 그 말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잠깐의 여운이 흐르고 장인께서 입을 열어 소소를 향해 말씀하셨다.
“소소야. 형제의 피 위에 쌓아 올린 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었더냐?”
“···”
“네 말대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네 오라비를 내 손으로 그리 만들고, 너마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찾아온 것은 분노였으나 뒤따른 것은 후회였느니라.
후회했느니라···. 내가 현이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담아들었더라면, 아니, 선대의 약속 따위는 잊고 조금 더 욕심을 냈더라면···. 그러면 너희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못난 이 아비의 결정이 결국 한 아이에게는 몸에 씻기지 않는 상처를 또 다른 아이에게는 마음에 씻기지 않는 상처를 남겼을 뿐이라니···.
둘 다 잃을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느니라. 검보다 아니, 그 무엇보다 네가 네 오라비가 소중함을. 미안하구나. 이리 못난 아비여서.”
“아, 아버지···. 흑···.”
결국 소소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지고, 울먹이는 소소를 뒤로하고 나에게 들려오는 남궁 장인의 물음.
“사위, 소소를 무엇보다 아껴줄 텐가?”
남궁 장인의 물음에 얼른 대답했다.
“두 분이 품었던 소중한 보물을 이제 제가 소중히 품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장인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알겠네. 그리 대답하면 안심이네. 소소는 나에게도 그 무엇보다 귀한 아이.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냥 혼례 영장이 나왔으니 혼례를 치러라 하는 분위기에서, 이제 정식으로 허락받는 느낌.
남궁 장인어른께서도 인정한 공식 사위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원래 이게 맞지. 그나저나 남궁가는 어찌 잘 넘어가겠구만.’
남궁 장인께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으니.
일단 남궁과 당문이라는 두 산을 넘어야 하는데, 하나의 산은 편하게 넘어가는 느낌.
이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소소의 위치에 대한 것을 궁리하자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결심한 것 같은 장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럼 분명 소중히 한다고 했으니, 그러면 나도 욕심을 좀 내야겠네.”
“예? 요, 욕심이라면?”
“내 그간 체면이나 세간의 시선 때문에 소소에게 몹쓸 짓을 한 느낌이네, 해서 조금 욕심을 내려 하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크흠. 자네가 소소를 소중히 한다 했으니, 그러면 첩이나, 소처로 아니라. 처로 데려가 주면 좋겠는데···.”
“예!?”
-드드드드드드드.
장인의 말에 장모님 쪽 식탁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겨, 결론이 좀 이상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