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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이자 (244/344)

법정 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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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가 위치한 당가산에서 사흘 만에 심우현에 도착한 독왕과 당가의 가주. 

성질 급한 독왕은 심우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효시(嚆矢) 대신 사용하는 당가의 소리 나는 암기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삐이이이이이···. 

매가 우는 것과 아주 닮은 소리를 내는 당가의 암기가 독왕의 손에서 쏘아져, 심우현을 좌에서 우로 가로질렀다. 

이 암기는 영영이가 집을 비운 사이 만들어낸 물건. 

소리를 듣고 영영이가 도망칠 리는 없는 물건이었다. 

암기를 쏘아 올린 것은, 청운이를 따라갔던 영영이가 심우현에 있다고 듣긴 했지만, 좀 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청운이의 객잔이 이곳에 있다고 했지만, 독왕과 당가의 가주는 그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 

예전에 무사들이나 총관들에게 청운이의 객잔을 잘 살펴주라고만 했었지, 직접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암기를 쏘아 올린 지 일각.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발 빠른 무사 하나만 온 것으로 보아서는, 다른 무사들이 영영이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 뻔했고, 이제 무사들이 슬슬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할 때쯤. 

두 명의 무사가 재빠른 경공으로 나타나 독왕의 앞에 부복했다. 

“사천당문 외당 소속 갑조 우두머리 묵호. 독왕 어르신과 가주 어르신을 뵙습니다.” 

둘이 나타남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풍기는 꼬치구이의 냄새. 

독왕이 코를 씰룩거리자 묵호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훔치며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요, 요기를 잠깐.” 

몸에 꼬치구이 냄새가 절어있는 것으로 봐서는 영영이를 감시하느라 며칠간 꼬치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운 느낌. 

독왕이 모른 척하고 되물었다. 

집 나간 손녀 때문에 무사들이 고생하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 

“그래, 영영이는 어디 있더냐?” 

그러자 갑조 우두머리 묵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예, 지금 청운 공자님의 객잔에서 며칠째 머물고 계십니다.” 

“그래? 역시 그런가? 그럼 바로 안내하거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독왕이 안내를 명했으나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위처럼 멈춰 서 있는 묵호. 

묵호가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묵호의 모습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독왕. 

독왕이 불안함을 느끼고 묵호를 다그치듯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이가 다치기라도 한 것이냐? 아니면 아프기라도 한 것이냐?” 

제갈 가주가 보내오는 서찰에서 확인했던 영영이의 위치는 남만야수궁을 시작으로 청운이의 고향이라는 복건의 복주부터, 개봉, 소림, 외가인 팽가, 심지어는 저 북쪽 위험한 곳인 난주까지. 

집을 나가 중원 구석구석을 아주 들쑤시고 다닌 느낌. 

여행이 길고 험했을 테니 어디가 다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병이라도 온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묵호의 입에서 들려온 것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그것이. 다, 다친 것이나 아픈 것은 아니 옵니다만. 저, 저희가 아가씨의 동태를 계속 살피다가 확인한 것인데,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이···.” 

아프거나 다친 것이 아닌데 이상한 일이 있다는 말. 

독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친 것도 아니라면 이상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아프거나 다친 게 아닌데 이상한 것은 무엇이냐?” 

그러자 묵호가 아주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가씨께서 아무래도. 사, 사내가 생기신 것이···.” 

-콰드드득! 

묵호의 대답에 독왕이 딛고선 땅이 독왕의 발자국을 남기며 움푹 파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독왕의 날카로운 물음. 

“그, 이야기. 틀림없는 이야기렸다?” 

“아니, 영영이가 진짜 사내가 생겼단 말이냐? 그래 어디의 누구인가? 그 정신 나간 놈은? 아니, 가문의 은인은? 아니, 아무튼.” 

“크흠! 가주!”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항상 모든 일에 놀라는 법이 없는 느긋한 성격의 가주도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고, 그 물음에 묵호가 주먹을 꼭 쥐며 대답했다. 

“예, 확실합니다. 아, 아가씨께서 그 사내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셨습니다. 그, 그러면 아무래도 확실한 것이···.” 

“뭬야!” 

“오오! 그러면 확실 하구만!” 

영영이의 최고 애정 표현은 자기가 먹고 있던 음식을 나눠주는 행위, 사내의 입에 직접 먹을 것을 넣어주었다면 그것은 사내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 확실했다. 

어지간히 영영이의 마음에 들지 않고서는 먹고 있던 것을 나눠주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뿌드드드드드! 

다시 한번 주변이 독왕의 내공에 짓눌리고, 독왕의 입에서 서늘한 물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어느 놈이 감히 당문의 문외불출 금지옥엽을 훔쳤더냐?” 

그러자 묵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그러니까 청운 공자님이···.” 

“그래, 청운이를 따라 집을 나선 것은 우리도 알지, 그러면 일행에 다른 사내가 있었더냐? 어느 가문의 누구더냐?” 

“아, 아가씨가 청운공자님의 입안에 먹을 것을 넣어주셨습니다!” 

“뭬야!” 

“처, 청운이 말인가?” 

독왕과 당문의 가주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 

남궁가 식구들의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를 일깨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남궁 장인은 평범한 사람과 생각하는 방향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남궁가의 가주라는 신분과 무림에서의 위치 때문에 참아야 했던 것들을 다 놓아버린 느낌. 

이제부터 뭐든지 참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인 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 

‘생각해보니 네 말대로 소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했어, 그러니까 귀하게 데려가.’ 

그냥 소처나 첩으로 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소중해서 안 되겠다는 말. 

남궁 장인의 이상한 결론에 요즘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좀 꼬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내 기분이겠지?’ 

그러나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궁 장인의 요구는 듣기에 따라서 무척 무례가 될 수 있는 말. 

장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장모님 쪽 식탁이 거대한 대형 지진의 전조 증상이라도 찾아온 듯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드드드드. 

위에 올려둔 요리들이 식탁 위를 살아서 움직이듯 이동하고, 장모님의 이름을 얻은 요리 화권이 떨려오는 진동에 바람맞은 진짜 백목련이라도 되는 양, 꽃가루를 떨어트릴 것 것같이 흔들렸다. 

장모님이 이리 분노하는 이유는 아내 티오가 하나인데, 소소를 아내로 맞으라는 이야기는 이미 있는 아내를 정리해고하든지 아니면, 좌천(左遷)시키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어느 어머니가 딸의 좌천을 반기겠는가? 

더군다나 좌천의 내용이 이혼이나 본처에서 첩으로의 강등이면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아내와 소소도 당황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장모님의 차가운 음성. 

“남궁 가주, 지금 그 이야기는 듣기에 따라서 무례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이군요.” 

끓어오르는 뭔가를 차가운 무언가로 내리누르며 인내하고 계신 느낌. 

그런 장모님을 향해 남궁 장인이 물으셨다. 

“아니, 궁주의 따님을 소처나 첩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처는 안 되겠소이까?” 

장인의 물음에 장모님의 관자놀이에서 솟아오르는 토룡. 

그래도 나 때문인지 이를 꽉 물고 한 번 더 참으며 말씀하셨다. 

“중원의 법도가 하나의 처만을 허락하는 것은 새외인인 저도 아는바. 소소를 처로 삼자면 제 딸아이가 소처나 첩실이 되라는 말씀이고, 또 둘 다 처를 삼으라는 것은 억지가 아니 옵니까?” 

“크흠.” 

-드드드드드드. 

남궁 장인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떨려오는 장인 쪽의 테이블. 

둘 다 불편하다는 감정을 겉으로 한껏 드러내고 계셨다. 

딸 가진 부모끼리 네 딸도 첩은 싫으면서 그럼 내 딸은 되겠냐? 

그런 감정이 실려있는 진동이랄까? 

얼른 식탁에서 떨어진 것같은 그릇들을 부여잡으며 제안했다. 

“지, 진정들 하시고. 저희 이, 이야기를 나눠 보시지요. 저, 저희가 이렇게 모인 것은 모두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함이 아니었던지요. 부, 분명히 원만하게 해결한 무엇인가가···.” 

분노한 두 분을 진정시키기 위한 안간힘. 

이대로 놔두면 전 북해빙궁주와 검왕의 싸움으로 시작되는 이차 새외혈사는 확정이었으니까. 

그러나 멈추지 않는 두 분의 분노. 

-뿌드드드득. 

-뿌득. 

-달그락다달. 

두 분의 분노에 기울었던 기둥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고 식당 건물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미 무림인들에 의해서 두 번이나 박살이냐고, 며칠 전에 장모와 장인에 의해서 심각한 충격까지 받았던 내 객잔. 

기둥과 지붕에서 들려오는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죽여줘! 이대로 그만 죽게 해 줘···. 너무 고통스러워! 이 미친놈들아!」 

인제 그만 고통 속에서 놓아달라고. 

‘이놈의 건물은 마가 끼었나? 어찌 우환이 마를 날이 없구나!’ 

개업 이후 무림인들만 찾아왔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하는 나의 객잔. 

골병이든 내 객잔은 안락사를 원하고 있었다. 

“어, 어머니 진정하세요.” 

“이 어미는 지금 아주 많이 진정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고정하세요.” 

“혀, 형님! 부, 분명히 누님께서 일단 대화부터 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대화하려고 하지 않느냐?” 

아내와 소소도 둘을 말리기 위해서 각자의 부모에 매달려 사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은 조금 다른 방식의 대화가 필요하신 느낌. 

대지진의 전조 증상은 그 증상을 크게 키워가기만 할 뿐이었다. 

기둥이 울고, 서까래가 울고, 대들보고 울고. 

그리고 나도 울고. 

대들보가 힘겹게 비명을 지르며 인제 그만 고통을 끝내고 반으로 똑 분질러 달라고 신음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던 먼지와 잔해들이 우리가 앉아있는 중앙의 식탁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뾰족한 비명. 

“꺄악! 안돼!” 

영영이가 더 이상 못 견디겠는지 비명을 질러버린 것. 

영영이의 비명에 잠시 다들 움찔하자, 기회라는 듯 신속하게 움직이는 영영이. 

영영이가 지붕 위에서 떨어지는 먼지에 더 이상 안 되겠던지, 화권을 하나 입에 물고 삼투압이 든 냄비 하나를 들고는 얼른 객잔 밖으로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영영아?” 

[무너지겠어요! 얼른 챙길 거 챙겨서 나와요!] 

이미 객잔을 글러버린 것 같으니, 일단 저녁은 살려야겠다는 그런 의지가 가득한 모습. 

며칠 전에도 전가복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식혀버려서 그런지, 이런 난장판에서 저녁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객잔이 박살 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순간에 먹을 것을 챙기는 영영이의 모습에 당황할 때. 

-쨍그랑! 

밖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다시금 영영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아까와는 전혀 다른 절박한 영영이의 비명.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으로 봐서는, 자기 혼자 먹고 살겠다고 들고 나갔던 삼투압을 담은 냄비를 땅바닥에 떨어트려 깨트린 모양이었다. 

안에서는 두 분이 힘겨루기로 객잔을 부수고 계셨고, 밖에서는 영영이의 비명. 

대환장 파티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런 대 환장 파티 속에서 객잔의 문 안으로 들어서는 두 명의 인영. 

남궁 장인과 북해 장모님 두 분의 힘 싸움으로 흔들리는 객잔 때문에, 걸려있던 등롱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그렇게 흔들려 깜빡거리는 등롱으로 인하여 안으로 들어서는 두 남자의 모습이 클럽 댄서처럼 번쩍이며 이동했다. 

그리고 찾아온 충격. 

-꾸릉! 

“꺼흐흡!” 

남궁 장인과 북해 장모보다 조금 강력한 기운이 끼어들어 둘의 기운과 함께 밖으로 터져나갔다. 

문짝과 창문이 객잔의 식당 외부를 향해 터지듯 열리고, 모든 등롱과 등잔이 다 꺼져버렸는지 내려앉은 어둠. 

바닥을 굴렀다가 엎어지자 내 앞에 두 명의 인영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어둠과 속에서 둘을 향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본 검왕의 일에 참견하느냐!” 

“본녀의 일에 누가 감히!” 

그러나 난입한 둘은 아무 말이 없었고, 엎어진 내 귓가에 들려온 발걸음 소리. 

어둠 속에서 두 남자의 발걸음이 내 바로 앞에서 멈췄다. 

어둠 속 열린 창으로 흘러들어온 달빛에 드러난 누군가의 발끝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들자, 달빛 속 나이 많은 남자의 손에 강아지 새끼마냥 뒷덜미를 잡혀있는 울상의 영영이. 

[가가, 잡혔어요.] 

영영이의 영문 모를 전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영영이의 뒷덜미를 움켜쥔 익숙한 실루엣의 얼굴이 나에게 화내듯 물으셨다. 

“청운아, 이 의조부가 분명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당 문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했지만, 문외불출인(門外不出)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어찌 문외불출인 물건에 손을 댄 것인지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겠느냐?” 

당문의 문외불출 물건이라면 아마도 영영이. 

익숙한 목소리로 보아, 의조부 독왕 등장이셨다. 

‘과연 내일 해를 볼지 장담할 수 없겠구나.’ 

그간 밀린 부채를 받기 위해서 빚쟁이들이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자가 많이 센 느낌의. 

‘아무래도 법정 이자 초과인 것 같은데···.’ 

불법 대부업 이자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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